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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두 아들 데리고 아프간 戰爭터에서 負傷者 治療한 外科醫師 박세업|週刊東亞

週刊東亞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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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두 아들 데리고 아프간 戰爭터에서 負傷者 治療한 外科醫師 박세업

17年間 海外 醫療奉仕 功勞로 第34回 牙山上(대상) 受賞… “‘利他的 삶’에 勇氣 가져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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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記者

    island@donga.com

    入力 2022-12-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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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로코 내 도시 빈민 지역으로 왕진을 나간 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본부장. [박세업 제공]

    모로코 내 都市 貧民 地域으로 往診을 나간 박세업 글로벌케어 北아프리카本部長. [박세업 提供]

    “戰爭이 나 우리에게 도움이 必要할 때는 오지도 않다 이렇게 難民이 된 後에 와서 藥만 주는 게 무슨 所用이냐.”

    2000年 아제르바이잔 難民村으로 醫療奉仕를 갔을 때 듣게 된 한 靑年의 絶叫는 박세업(60) 글로벌케어 北아프리카本部長의 人生을 바꿨다. 信仰人으로 살아온 朴 本部長은 1980年代 釜山大 醫科大學 在學 時節부터 海外 醫療奉仕에 關心이 많았다. 大學에서 一般外科로 專攻을 定한 것도 “海外 醫療宣敎師로 일하기에는 外科醫師가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大學 卒業 後 結婚해 아들 둘을 낳고, 外換危機를 겪으며 精神없이 살던 30代 後半의 朴 本部長은 하루 平均 250名 患者가 찾아오는 個人病院 醫師의 삶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다 偶然히 떠난 短期 海外 醫療奉仕에서 ‘젊을 적 꿈’을 되찾았다.

    두 아들 學校에 미사일 떨어지기도

    40歲가 된 해 朴 本部長은 慶南 창원시에 있던 個人病院을 處分했다. 그러곤 2005年부터 現在까지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等地에서 醫師로, 保健專門家로 活動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그 功勞를 認定받아 현대그룹 傘下 牙山社會福祉財團이 主催하는 第34回 牙山上 施賞式에서 ‘牙山上(대상)’을 받았다. 2015年 大韓民國 海外奉仕上(大統領賞), 2020年 第9回 이태석奉仕賞과 第36回 保寧醫療奉仕賞(本相)을 받은 데 이은 4番째 首相이다. 朴 本部長은 12月 14日 ‘週刊東亞’에 “高校 時節 敎訓인 ‘웃는 者와 같이 웃고 우는 者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자’를 마음에 새기고 있다”며 “앞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사람 곁에 있겠다”고 受賞 所感을 밝혔다.

    2005年 朴 本部長이 처음 向한 곳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어느 나라로 떠나야 할지 苦悶하던 무렵 戰爭으로 아프가니스탄에 患者가 續出하는데 意思가 없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行에는 朴 本部長 아내도 支持를 보냈다. 戰爭으로 온갖 威脅이 있는 곳이지만 ‘利他的 삶’의 價値를 배울 수 있도록 아들 둘도 同行했다.

    “直接 가서 본 아프가니스탄은 豫想보다 훨씬 悲慘했습니다. 하루 終日 爆彈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끊임없이 自殺 테러 消息이 傳해졌어요. 到着하고 얼마 안 돼 두 아들이 다니는 學校에 미사일이 떨어지기도 했고요. 美國 基督敎 NGO(非政府機構)가 首都 카불에 設立한 큐어國際病院에서 勤務했는데 畫像, 外傷을 입은 患者가 每日 물밀듯이 들어왔던 記憶이 납니다.”



    큐어國際病院에서 一般外科 課長, 敎育 部長을 지낸 朴 本部長은 現地 醫療陣 敎育에도 힘썼다. 當時 腹腔鏡 手術(節槪 없이 腹部 안쪽을 볼 수 있는 內視鏡을 利用한 手術)을 執刀할 수 있는 醫師는 韓國人인 朴 本部長뿐이었는데, 함께 일하던 醫師에게 이 技術을 傳授했다. 朴 本部長에게 腹腔鏡 手術을 배운 닥터 카말은 現在 아프가니스탄 內 最高 外科醫師로 손꼽힌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朴 本部長은 ‘이것만으로는 不足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2007~2009年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美軍基地 내 코이카 韓國病院腸을 지냈다. 病院長이지만 直接 診療와 手術부터 現地 醫療人力 敎育까지 擔當했다. 이때 길게는 12時間 以上씩 끼니를 거르며 手術에 沒頭했다. 그럼에도 죽는 사람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終日 手術해 한 사람을 살려놓으면 밖에서는 數百 名이 죽어나갔어요. 가난해 病院 近處에도 와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수두룩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外科醫師라는 포지션 外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깊어졌죠. 周邊 醫師들에게 苦悶을 털어놓으니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게 바로 保健이라며 존스홉킨스대에서 工夫해보길 勸하더군요.”

    50歲 늦깎이 ‘保健大學院生’ 되다

    朴 本部長이 존스홉킨스대에서 保健學 碩士 課程을 마친 나이는 50歲였다. 朴 本部長이 늦깎이 大學院生이 되는 바람에 形便이 어려워지자 아내는 베이비시터로 일했다. 마지막 學期에는 到底히 工夫를 持續할 수 없는 狀況이었지만 親舊들의 經濟的 支援으로 無事히 學位를 땄다. 家族과 親舊들에 對한 未安함, 懇切함이 더해져 通常 2年 半이 걸리는 碩士課程(100學點 取得)을 朴 本部長은 11個月 만에 마쳤다.

    “碩士學位를 取得하니 여러 機關, 團體에서 러브콜이 殺到했어요. 그 가운데는 安定的으로 月給을 받을 수 있는 保健事業度 있었습니다. 工夫하는 동안 진 빚이 있었기에 率直히 흔들렸어요.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韓國 醫療奉仕團과 NGO가 全혀 없는 모로코로 가기로 했죠. 모로코 周邊에는 모리타니아, 말리, 부르키나파소 等 가난한 나라가 密集해 있어 追後 活動 半徑을 넓히면 되겠다 싶기도 했고요.”

    朴 本部長은 올해로 10年째 모로코에서 保健 專門家로 活動하고 있다. 가장 注力하는 保健事業은 結核 퇴치다. 모로코는 알제리, 튀니지 等 隣接 國家와 달리 如前히 結核 發生率과 有病率이 높아 死亡으로 이어지는 境遇가 많다. 只今까지 朴 本部長이 治療한 모로코 內 結核 患者만 2萬7000名에 이른다. 코로나19 事態가 한창이던 2020年에는 모로코의 確診者를 돌보기 위해 韓國에서 열리는 작은아들 結婚式에도 不參했다.

    “두 아들에게는 늘 未安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제가 奉仕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저와 일해본 經驗도 있어 저를 많이 理解하는 便이에요. 큰아들은 情報技術(IT), 작은아들은 디자인 分野를 工夫했는데 只今도 여러 方面으로 저를 도와줍니다. 큰아들은 現在 제가 患者를 만날 때 쓸 電子醫療차트(EMR)를 製作하고 있고, 작은아들은 弘報에 必要한 動映像과 出版物 等을 隨時로 만들어줍니다.”

    韓國人 最初 모로코 醫師免許 取得

    11월 17일 제34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왼쪽)과 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본부장이 대상 수상을 기념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11月 17日 第34回 牙山上 施賞式에서 鄭夢準 牙山財團 理事長(왼쪽)과 박세업 글로벌케어 北아프리카本部長이 大賞 受賞을 記念해 寫眞 撮影을 하고 있다. [牙山社會福祉財團 提供]

    朴 本部長은 ‘牙山上’ 受賞 이틀 뒤인 11月 19日 곧장 모로코로 向했다. 8月 韓國에서 痼疾病이던 허리狹窄症과 脊椎側彎症 手術을 받고 再活을 하느라 꽤 오랜 期間 모로코를 떠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牙山上’ 受賞 消息은 再活 過程 中에 알게 됐다. 朴 本部長은 모로코로 돌아가자마자 結核 退治, 文盲 退治, 시골 女子寄宿舍 支援 等 自身이 자리를 비운 사이 現地 職員들이 맡아 運營하던 事業을 點檢하는 데 餘念이 없다.

    올해 初 朴 本部長이 門을 연 低所得層 클리닉의 患者들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3月 朴 本部長은 韓國人 最初로 모로코 現地 醫師免許를 取得해 直接 診療를 볼 수 있게 됐다. 朴 本部長은 “最近 12年間 保健 專門家로만 活動하다 다시 흰 가운을 입으니 感懷가 새롭다”고 말했다. 英語, 프랑스語, 페르시아語, 모로코語, 아랍語 等 5個 國語를 驅使하는 朴 本部長은 어떤 患者가 오든 함께 웃을 수 있다.

    朴 本部長은 海外 醫療奉仕에 關心 있는 韓國 醫師들에게도 激勵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醫療人이라는 理由만으로 犧牲을 强要할 수 없는 時代입니다. 그렇다고 醫療人이라면 必須的으로 갖춰야 할 ‘利他的 삶’에 對한 哲學까지 變質되는 것은 아닙니다. 4次 産業革命 時代 先進 醫療 技術을 가진 여러분이 勇氣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只今 머물고 있는 診療室을 박차고 나가 새로운 삶에 한 番쯤 挑戰해보라고 同僚, 後輩 醫師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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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安寧하세요. 週刊東亞 이슬아 記者입니다. 國內外 證市 및 産業 動向을 取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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