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己亥年의 記憶|週刊東亞

週刊東亞 1174

..

설 特級 프로젝트 | 名節 제대로 즐기기

己亥年의 記憶

지나고 나니 肅然해지는 兆朕들

  • 윤채근 檀國大 漢文敎育學科 敎授

    zoongsoo@hanmail.net

    入力 2019-02-01 16:16:01

  • 글字크기 설정 닫기
    [동아DB]

    [東亞DB]

    中國 殷나라 때 干支는 날짜에만 適用됐다. 年度까지 干支로 세며 그 안에 運輸論的 意味를 담기 始作한 건 後代 일이다. 大略 陰陽五行思想이 完成된 한나라 무렵으로 推測된다. 예컨대 後漢의 文字學者 許愼은 著書 ‘說文解字’에서 간지者에 담긴 天地運行의 律呂(律呂·東洋的 音律)를 그만의 獨特한 有機的 宇宙論에 結合해 說明했다. 勿論 甲骨文 硏究가 普遍化된 뒤로 이런 解釋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一例로 許愼이 陰의 기운이 다하고 陽의 기운이 上昇하는 圖像的 象徵性을 갖는다고 解釋한 ‘人(寅)’字는 實際로 화살 模樣을 본뜬 象形字로 街車를 통해 干支自家 된 境遇다. 

    己亥年을 黃金돼지해로 規定하는 생각 속에는 宇宙의 偶發的 흐름에 規則을 附與해 삶에 安定的 리듬을 確保하려던 五行論的 槪念이 담겨 있다. 科學的 見地에서는 迷信에 가깝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運命의 週期를 믿고 싶어 하며, 設令 內心 믿지는 않더라도 즐거운 想像의 遊戱로 肯定하기도 한다. 그런 遊戱를 통해 自身의 삶에 成熟한 비전을 가져올 수 있다면 歷史 속 己亥年을 反芻하려는 우리 試圖도 그저 헛되지만은 않으리라.

    百濟 武王의 王妃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안기와 사리호. 상자 안은 사리봉안기 확대 사진이다.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全北 益山 彌勒寺址 石塔 西塔에서 發見된 舍利奉安器와 事理號. 箱子 안은 舍利奉安器 擴大 寫眞이다. [寫眞 提供 · 國立扶餘博物館]

    639年 己亥年, 百濟 武王의 王妃는 막 完工된 全北 益山의 彌勒寺 西塔에 事理를 奉安했다. 그런데 2009年 復元을 위한 서탑 解體 作業 途中 發見된 舍利奉安器에 따르면 그女는 武王의 아내로 익히 알려진 新羅 善花公主가 아니라 莫强한 權勢를 누리던 百濟 貴族 舍宅積德의 딸로 밝혀졌다. 그女의 歷史的 實體나 善花公主와 關係 같은 專門的 事案은 論外로 하자. 重要한 건 武王 時代에 善花公主로 象徵되는 親新羅 勢力보다 益山과 扶餘를 中心으로 한 貴族 勢力이 强化됐다는 事實이다. 薯童이 돼 眞平王의 딸과 사랑을 속삭일 만큼 新羅에 包容力 넘치는 存在로 보이던 武王은 實際 王이 돼서는 徹底히 新羅를 排斥하고 高句麗, 왜와 同盟을 强化하는 戰略을 폈다.

    高句麗-백제-倭로 이어지는 同盟 라인을 鞏固히 한 武王의 本뜻은 中原에서 일어난 强力한 征服 王朝인 黨을 牽制하면서 隣接國 新羅를 쪼그라뜨려 沈滯돼 있던 자국 王權을 强化하려는 것이었을 터. 하지만 이런 實利 爲主의 戰略은 百濟 貴族을 王 周圍에 結束시키는 效果를 낳은 反面, 新羅와 戰略的 共生關係의 均衡이 깨지는 結果를 가져온다. 그로 인해 切迫한 生存 危機에 處한 新羅가 黨과 聯合해 마침내 백제를 무너뜨리게 된다. 

    武王이 한 選擇은 오로지 그 혼자만의 決斷은 아니었으리라. 가장 弱해 보이는 이웃을 敵으로 돌리고 强盛한 第三者를 友軍으로 삼는 方策은 當場 藥效를 發하는 對症龍 藥材와도 같아 누구나 선뜻 口味가 당긴다. 그렇다 보니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物理的, 心理的 戰利品들을 나눠 가진 王과 親衛 貴族은 안으로 더욱 똘똘 뭉쳤을 것이다. 하지만 한 勢力이 나머지를 모조리 吸收하지 못하는 한 힘의 均衡錘는 늘 가운데 눈금으로 向하게 돼 있다. 高句麗나 왜에 反對하는 內部 勢力, 新羅와 同盟을 維持하려는 內部 勢力, 그리고 무엇보다 新羅 全體가 必死的으로 武王 勢力에 對抗하고자 團結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新羅에 敵對 政策을 편 武王과 益山乙 中心으로 한 土豪貴族 社宅 氏의 堅固한 提携를 象徵하는 彌勒寺 서탑 舍利奉安器는 歷史 흐름의 兆朕에 눈감은 不幸한 選擇의 痕跡일 수 있다. 아니, 백제 滅亡의 兆朕 그 自體일 수도 있다. 이처럼 後날 甚大한 變化를 몰고 올 兆朕들은 지나고 나서야 눈에 띄거나 當時에는 些少하게 取扱됐다는 共通點이 있다.

    暴政의 孕胎, 禮訟論爭의 點火, 颱風 사라

    KBS 대하사극 ‘무인시대’에서 
정중부 역을 맡았던 배우 김흥기. [사진 제공 · KBS]

    KBS 大河史劇 ‘武人時代’에서 鄭仲夫 役을 맡았던 俳優 김흥기. [寫眞 提供 · KBS]

    1179年 己亥年에는 高麗 武臣政權을 創出했던 鄭仲夫가 경대승에 依해 殺害됐다. 王朝 秩序를 뿌리째 뒤흔든 政變의 主役이던 鄭仲夫는 人種이 各別히 寵愛한 無信이었다. 그런 그가 逆謀의 中心에 뛰어든 건 些少한 한 事件이 빌미가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文身 金富軾의 아들 金敦中이 宴會 途中 그의 鬚髥을 불태웠다는 有名한 逸話가 그것이다. 

    朝鮮과 달리 高麗는 儒敎 儀禮가 嚴格히 定着된 社會가 아니었다. 上下가 格式 없이 飮酒歌舞를 즐겼다. 賃金과 臣下가 어울려 詩를 짓고 暴飮하던 當時 雰圍氣에서 김돈중의 失手는 슬쩍 넘겨도 좋을 일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自尊心 剛하고 何必 술기운마저 없던 鄭仲夫는 이를 容恕치 않았고, 이는 平素 文武 差別에 不滿을 품고 있던 武臣들의 火에 기름을 부은 格이었다. 

    SBS 사극 ‘왕과 나’에서 폐비 윤씨 역의 구혜선이 사약을 마시고 있다. [사진 제공 · SBS]

    SBS 史劇 ‘王과 나’에서 廢妃 尹氏 役의 구혜선이 死藥을 마시고 있다. [寫眞 提供 · SBS]

    高麗 滅亡을 몰고 온 導火線이 된 紅巾賊의 侵入이 1359年 己亥年에 벌어졌으며, 王家의 사사로운 暴力 事態처럼 보였지만 後날 燕山君 暴政의 빌미가 된 王妃 尹氏의 成宗 容顔 毁損과 이로 인한 廢妃 事件이 發生한 것 亦是 1479年 己亥年이었다. 

    1659年 己亥年에는 朝鮮의 王 가운데 마지막 北伐을 企劃했던 孝宗이 宿願을 이루지 못한 채 昇遐했다. 孝宗의 꿈이 霧散되면서 外部의 敵을 겨냥해 國稅를 擴張하려던 氣勢는 우리 歷史에서 사라지게 된다. 또한 이 事件 直後 自意對比(孝宗의 아버지 仁祖의 두 番째 王妃)가 喪服을 몇 年 입느냐를 두고 禮訟論爭이 點火함으로써 朝鮮은 空理空論의 나라로 기울어가게 된다. 

    1839年에는 3名의 西洋人 天主敎 神父를 비롯해 天主敎人 119名이 處刑되거나 投獄된 己亥迫害가 發生한다. 表面的으론 2次 天主敎 迫害였지만 裏面的으론 헌종이 親政(親政)을 始作하면서 得勢한 풍양曺氏 門中과 正祖 事後 勢道政治의 核이던 安東金氏 門中 間 權力 鬪爭의 副産物이었다. 

    1899년 창간 4년 만에 폐간된 ‘독립신문’(왼쪽)과 1959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사라’가 남긴 흔적. [동아DB]

    1899年 創刊 4年 만에 廢刊된 ‘獨立新聞’(왼쪽)과 1959年 9月 韓半島를 强打한 颱風 ‘사라’가 남긴 痕跡. [東亞DB]

    이 밖에 1899年 己亥年에는 最初의 民間 新聞 ‘獨立新聞’이 政府에 批判的 記事를 실었다는 理由로 創刊 4年 만에 廢刊된다. 工巧롭게도 60年 뒤 己亥年人 1959年 4月에는 李承晩 政府를 向해 猛烈하게 筆鋒을 휘두르던 ‘경향신문’李 廢刊의 아픔을 겪다 1年이 지나 4·19革命 直後 復刊된다. 그리고 그해 9月에는 死亡·失踪 849名, 負傷 2533名이라는 史上 最大의 人命被害를 안긴 颱風 ‘사라’가 韓半島를 强打했다. 

    이처럼 지난날의 수많은 兆朕을 돌이켜보면 볼수록 우리는 문득 肅然해지고, 환히 웃는 己亥年 첫 太陽을 바라보면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게 된다.



    댓글 0
    닫기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