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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畫産業 걱정은 暫時 꺼두셔도 좋습니다|신동아

映畫産業 걱정은 暫時 꺼두셔도 좋습니다

[김채희의 시네마 오디세이]

  • 김채희 映畫評論家

    lumiere@pusan.ac.kr

    入力 2024-03-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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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事態를 正當하게 評價하려 한다면, 우리는 日程 期間 그 風景에서 멀어져야 한다. 只今 한창 世間에 膾炙되는 ‘映畫의 危機’에 關한 모든 ‘豫測’은 事實 無用한 것이다. 그럼에도 未來를 앞당겨서 보고 싶은 人間의 欲望은 끊임없이 過去의 事例를 引用해 未來를 豫測하려 한다. 우리는 급전직하한 劇場 賣出과 이에 따른 映畫産業의 危機, 새로운 秩序로 자리 잡은 OTT 서비스가 映畫産業에 끼친 不可抗力的 影響力을 걱정한다. 映畫産業이 暫時 숨 고르기에 들어선 이 時點에서 철 지난 初期 모바일 廣告의 카피를 떠올릴 必要가 있다. “또 다른 世上을 만날 땐 暫時 (映畫에 對한 걱정을) 꺼두셔도 좋습니다.”
    1910년경 캐나다 토론토의 니켈로디언 극장. [위키피디아]

    1910年頃 캐나다 토론토의 니켈로디언 劇場. [위키피디아]

    映畫를 둘러싼 無數한 談論은 돌이켜 보면 언제나 ‘劇場’과 聯關돼 있었다. 니켈로디언(Nickelodeon)은 1905年쯤 美國에서 登場한 最初의 ‘映畫 專用’ 劇場이다. 이 劇場은 段車를 두지 않은 平平한 敎會 禮拜堂과 비슷한 構造였다. 니켈로디언 時代에는 只今처럼 映畫 觀覽이 神聖視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映畫를 보면서 惹端법석을 떨었고 온갖 飮食 냄새를 풍겼다. 淸敎徒 社會였던 美國에서 니켈로디언의 衛生 狀態와 映畫의 不道德한 이야기는 差別과 處罰의 對象이 됐다. 몇몇 州에서는 이 새로운 娛樂 施設에 閉鎖 措置를 斷行하면서 胎動하던 映畫産業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事業 感覺이 뛰어난 先驅者들이 몇 年 後 새로운 形態의 劇場을 선보였다.

    ‘고질라’와 “Size does matter”의 追憶

    輝煌燦爛한 照明, 푹신한 椅子, 數千 個의 座席이 設置된 映畫宮殿(cinema palace)은 區別 짓기의 産物이자, 떠오르는 新生 産業의 位相을 證明하는 아이콘이었다. 이 劇場은 니켈로디언에 비해 훨씬 비싼 入場料를 받았고, 服裝을 團束했으며, ‘優雅한’ 스토리를 가진 映畫를 主로 上映했다. 勿論 그 時節 美國에 니켈로디언과 映畫宮殿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兩極端 사이에 存在하는 다양한 形態의 劇場이 있었다. 自身에게 加해진 첫 番째 危機를 이렇듯 ‘크고 優雅한’ 것으로 打開한 映畫는 TV의 登場과 함께 맞이한 두 番째 危機를 드라이브인 劇場(Drive-in Theater)과 大型 畵面인 시네마스코프로 넘겼다. 멀티플렉스(Multiplex)는 1930年代에도 槪念上 存在했지만 1970年代 中盤, 블록버스터 時代가 始作되면서 꽃을 피웠다. 이는 映畫를 통해 더 많은 收益을 創出하려는 欲望에서 비롯된 것이다. 1998年 ‘CGV 江邊11’을 始作으로 우리 亦是 멀티플렉스의 時代로 접어들면서 映畫産業은 그 이름에 걸맞은 시스템과 規模를 갖추게 됐다.

    非定期的으로 찾아온 危機를 새로운 이야기와 觀覽 環境의 變化로 헤쳐 나가던 映畫産業에 從前과는 次元이 다른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以下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危機가 찾아왔다. 텐트폴 映畫, 블록버스터 映畫는 그동안 스크린을 獨寡占하면서 많은 問題를 量産했다. ‘고질라’(1998)의 헤드카피 “Size does matter”를 연상시키던 産業 戰略에 코로나는 새로운 秩序 再編을 위한 방아쇠가 됐다. 大資本이 投入된 新作이 사라진 劇場街에는 觀客이 다시 보고 싶어 하는 過去의 名作들이 再開封됐고, 相對的으로 規模가 작은 映畫들이 시나브로 얼굴을 내밀었다. 시네필(cinephile·映畫愛好家) 大部分이 바라던 이 事態는 코로나로 인해 빚어진 낯선 風景이었다. 가장 쓸데없는 걱정은 演藝人 걱정만이 아니다. 映畫는 그동안 無數한 消滅 危機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면서 不死鳥처럼 일어섰다. 確言할 수 있는 單 한 가지 事實은 어떤 對策을 내놓는다고 해도 코로나 事態 以前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劇場과 디스抛지티프의 解體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텅 빈 극장. [Gettyimage]

    코로나 事態 長期化로 텅 빈 劇場. [Gettyimage]

    2009年 初여름 어느 날, 나는 早朝割引 時間帶에 홍상수 監督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나 홀로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참으로 異常한 經驗이었다. 뒤便에는 映像機가 돌아가고 앞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山처럼 버티고 있었다. 나는 70餘 個의 座席으로 이뤄진 多島海의 中央 섬에 앉아서 빛과 어둠의 饗宴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 以後에는 單 한 番도 이런 經驗을 한 적이 없다. 꽤 오랫동안 나의 武勇談을 知人들이 부러워했지만, 코로나 事態 以後 나처럼 ‘混泳’한 사람이 周邊에 漸次 늘어갔다. 映畫라는 世界로 나를 깊이 끌어들인 몇 個의 原初的 場面 中 하나였던 當時의 經驗은 내가 映畫를 本格的으로 工夫한 以後 映畫의 ‘媒體 特定性’이란 槪念에 오랫동안 穿鑿하게 만든 契機가 됐다.

    演劇은 처음에 특정한 空間에서 上演되지 않았을 것이다. 時間이 흘러감에 따라 이 오래된 藝術은 일정한 形式을 갖추면서 舞臺에서 上演됐고, 以後 漸次 우리에게 익숙한 劇場이라는 空間으로 移動했다. 그런 다음, 演劇은 프로시니엄 舞臺를 들여놓았고, 이로 인해 생긴 제4의 壁(現實 世界와 舞臺 위 劇 中 世界를 區分하는 假像의 壁)李 現實과 劇 中 世界의 完璧한 絶緣을 이끌었다. 그러나 獨逸 劇作家 브레히트로 인해 第4의 壁을 허문 演劇은 더는 劇場이라는 舞臺를 固執하지 않았다. 길거리나 移動舞臺, 甚至於 人波 속에서도 演劇 公演은 이뤄진다. 舞臺와 臺本을 解體했지만 그래도 演劇은 살아남았다. 音樂, 舞踊뿐만 아니라 美術館을 벗어난 繪畫도 如前히 健在하다.



    唯獨 映畫만이 劇場을 固執한다. 이는 映畫가 애初에 自身을 構成한 成分, 이를테면 빛·어둠·필름·座席·러닝타임, 그리고 “劇場이라는 裝置(dispositif)에서 벗어날 수 없는 身世”라는 事實을 傍證한다. 그렇다고 映畫가 自己 變革에 疏忽했던 것은 아니다. 餘他 藝術만큼의 드라마틱한 變化는 없었지만, 21世紀 들어서자마자 映畫는 빛과 어둠으로 構成된 필름을 소멸시켰고, 한便에서는 藝術의 民主化를 主張하면서 클라이맥스라는 暴君을 내러티브에서 몰아내고자 플롯의 解體를 試圖했다. 하지만 如前히 映畫는 自身을 이루는 특별한 裝置에는 손대지 않았다. 映畫를 먼저 發明한 에디슨(Thomas Edison)을 뒤로하고 뤼미에르(Auguste/Louis Lumiere) 兄弟가 映畫의 發明者로 登極한 理由는 바로 ‘劇場’이라는 空間 때문이었다.

    映畫는 如前히 多數가 함께 觀覽할 수 있는 可能性을 提供할 때 映畫라는 論理가 인정받는다. 여기에는 强力한 産業 論理가 存在한다. OTT와 코로나는 이 産業의 論理에 致命打를 加했다. 이 世界에 存在하는 다양한 藝術 中에 映畫는 가장 늦게 發生했으며, 唯一하게 誕生日이 存在하는 媒體다. 가장 늦게 到着한 모더니티의 同義語인 映畫의 變化가 느린 原因은 다른 藝術 媒體보다 많은 資本이 投與된 데 있다. 資本을 回收할 수 있는 거의 唯一한 方法은 一種의 提議的 空間인 劇場에 觀客을 몰아넣는 것이다. 美學은 映畫와 劇場이 짝牌를 이루는 데 藝術的 理由를 提供했으며, 過去의 裝置는 映畫에 媒體 特定性이라는 正體性을 膳物했다.

    人類가 맞서 싸운 敵 가운데 가장 작은 存在인 코로나는 지난 한 世紀 동안 映畫 歷史에서 일어난 變化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影響을 미쳤다. 그러나 이 革命과도 같은 變化는 映畫 自體의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映畫는 快樂을 위해서든, 大衆 敎化의 目的이든 아니면 藝術家의 信念과 이데올로기를 表出하기 위해서든 항구히 存在할 것이다. 빛과 어둠이 픽셀로 代替됐고, 이야기는 到處에서 이미지의 運動性과 激烈한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언젠가는 俳優도 消滅할 것이며, 카메라는 러시아 비디오作家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의 主張대로 키노 브러시(kino-brush)로 代替될 것이다.

    [Gettyimage]

    [Gettyimage]

    그러나 劇場의 危機가 映畫의 沒落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確信에 便乘해, 映畫産業은 自身을 構成하는 裝置를 解體 或은 再構築하려는 모든 試圖를 只今껏 武火시켰다.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에 눈을 대고 한 사람씩 映畫를 觀覽하던 에디슨의 映畫에 不足했던 것은 바로 集團 觀覽 形態의 劇場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家庭用 비디오 方式(VHS) 時代를 지나왔고, 파일로 노트북을 통해 映畫를 再生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진 21世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뤼미에르 代身 에디슨 方式으로 映畫를 享有하지 않는가. 이러한 이야기는 더는 새로운 事實도 아니며, OTT와 코로나가 惹起한 事態는 劇場의 危機(죽음 或은 消滅)이지 映畫 自體의 危機는 아니지 않은가.

    映畫 領土를 擴張하라!

    個人化한 디바이스가 漸次 우리 生活과 깊은 聯關을 맺고 있지만 우리가 映畫를 보러 가는 理由는 簡單하다. 파일 再生 方式으로 컴퓨터로 보는 映畫와 劇場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는 映畫 觀覽 經驗이 顯著하게 差異 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펙터클 效果 以外에 餘他 論理를 動員해 映畫를 劇場에서 봐야 할 理由를 說明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論理는 코로나 以後, 온라인動映像서비스(OTT)가 大勢인 以上 莫强한 힘을 發揮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映畫 興行을 可能하게 했던 裝置가 無力化하면서 觀客이 社會的 空間인 劇場을 벗어나는 것은 順理에 가까워졌다. 이와 同時에 다른 장르와 混種 交拜해 그 境界가 흐려지는 것 亦是 一瞬間의 流行이 아닌 엔트로피의 法則에 따른 자연스러운 現象이 됐다.

    빛과 어둠, 카메라, 俳優, 劇場이라는 디스抛지티프(裝置) 解體에 直面한 映畫가 變化를 두려워할 理由는 없다. 우리는 새롭게 形成될 映畫 文法과 媒體 間의 合從連橫을 받아들여야 하며, 映畫가 自身의 限界를 뛰어넘는 것 自體를 즐겨야 한다. 映畫가 至毒한 敎條主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理由는 ‘劇場’을 爲主로 돌아간 産業에 있지 映畫 自體가 안고 있는 問題 때문이 아니다.

    한동안은 映畫라는 戰線(戰線)을 두고 兩 陣營에서 熾烈한 戰鬪가 벌어질 것이다. 2019年 아카데미 施賞式이 擧行된 直後 스티븐 스필버그는 “아카데미賞 候補 資格을 얻기 위해 形式的으로 開封하는 映畫들은 賞을 받을 資格이 없다. 그런 作品들은 (TV 作品을 施賞하는) 에미賞을 받아야 한다”고 公開的으로 아카데미의 政策을 批判했다. 反面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著者 더글라스 고머리는 “映畫를 보는 場所의 變化와 새로운 方式이 每 時代 映畫를 특징지으며, 觀覽 環境이 바뀌면 映畫 콘텐츠도 變化를 겪는다”고 말했다.

    映畫는 오래前부터 環境에 맞춰 自身을 變容하는 能力을 지니고 있었다. 映畫社 草創期, 뤼미에르風의 다큐멘터리는 한동안 스펙터클 그 自體로 人氣를 끌었다. 그러다가 魔術師 조르주 멜리에스가 登場하면서 사람들은 映畫가 幻想과 꿈을 結合하는 것을 目擊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은 白日夢이다. 現實에서 꾸는 꿈, 卽 이야기가 映畫를 召喚한 것은 그러므로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다. 20世紀 初葉, 映畫는 初步的인 이야기 媒體에 不過했지만 1912年부터 시리얼 필름(Serial Film)李 선보이면서 사람들을 劃期的으로 誘引했다. 필름 1롤에 該當하는 大略 15分 前後의 이야기를 담은 映畫를 週末마다 上映하는 이 形式은 그 有名한 ‘絶壁에 매달리기(cliff hanger)’, 이른바 切斷 神功(重要한 瞬間에 이야기를 끝내는 方式) 戰略을 極限으로 發揮해 絶頂의 人氣를 누렸다.

    1950년대 영화계를 위기에서 구한 작품 ‘쿼바디스’ ‘성의’ ‘벤허’ 포스터(왼쪽부터). [IMDB]

    1950年代 映畫界를 危機에서 求한 作品 ‘쿼바디스’ ‘性의’ ‘벤허’ 포스터(왼쪽부터). [IMDB]

    1950年代 영화에게 찾아온 두 番째 危機를 넘기게 해준 ‘쿼바디스’(Quo Vadis·1951), ‘性의’(The Robe·1952), ‘벤허’(Ben-Hur·1959) 等은 시네마스코프에 어울리는 基督敎 關聯 歷史劇이다. 앞에서도 言及했지만, 블록버스터 亦是 멀티플렉스라는 새로운 環境에 符合하는 企劃이었다. 하지만 映畫는 눈앞의 危機가 사라지자 더는 새로운 形式과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2010年代 以後 OTT 서비스 業體가 莫强한 資金力으로 映畫 콘텐츠를 블랙홀처럼 誘引할 때도 適切한 對應策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코로나라는 最强의 敵軍이 登場해 映畫, 아니 映畫産業, 더 嚴密하게 이야기하면 劇場을 解體하려는 狀況을 우리는 最近까지 經驗했다.

    音樂, 舞踊, 演劇이 그러했듯 映畫는 劇場이라는 空間과 어느 程度 訣別할 準備를 해야 한다. 이미 準備는 끝났다. 어둠이 不在하면 上映 自體가 不可能했던 필름 時代는 20世紀에 終末을 告했다. 픽셀은 더는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떠오르는 앳된 얼굴 고운 해”가 아니다. 이름도 生疏했던 퀀텀닷발狂다이어드(QLED), 有機發光다이오드(OLED), 超高鮮明디스플레이(UHD)를 내세워 크기를 키운 TV는 太陽 아래 白日夢을 可能하게 한다. 演劇, 舞踊, 音樂이 舞臺에서 내려오면서 藝術의 地位를 抛棄했던가. 憂慮와는 달리 오히려 이들 장르는 새로운 포맷으로 武裝한 채, 다채로운 環境에서 觀客을 만나며 이 世界와 더 緊密히 疏通하게 됐다. 아마도 劇場을 떠난 觀客을 가장 성실하게 맞이할 態度를 갖춘 것은 OTT, 假想現實(VR), 增强現實(AR)이라는 새로운 ‘映畫의 포맷’일 것이다.

    이 時點에 留念해야 할 것은 劇場을 떠나 새로운 新媒體와 遭遇한 그 ‘무엇’을 映畫라는 카테고리에서 排斥하는 일을 反復해서는 안 된다는 點이다. 映畫는 只今껏 充分히 競爭 媒體에 많은 部分을 빼앗겼다. 예전에 모두 映畫였던 것들은 이제 TV 드라마, 映像 콘텐츠, 인스톨레이션, 파인아트란 이름으로 映畫의 目錄에서 빠져나갔다. 그들이 도망간 것이 아니라 映畫가 러닝타임(2時間 남짓), 4角 프레임, 내러티브, 劇場이라는 디스抛지티프를 내세워 그들을 逐出한 것이다. 이런 式의 排斥과 빗금 치기가 繼續된다면 映畫는 特殊한 마이너리티 장르가 될 것이다.

    劇場은 언젠가 消滅할 수 있겠지만, 이 消滅을 늦추는 方法은 兩極端을 解體하고, 그 사이에 다양한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에 觀客을 빼앗기는 것은 時代의 흐름이다. 劇場은 ‘밴더스내치’(Bandersnatch·2018)와 같은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受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0世紀 初盤의 시리얼 필름 政策을 따라갈 수도 없다. 이미 시리얼 필름은 넷플릭스와 포털사이트에서 分家한 인터넷 플랫폼에서 過去의 形態를 매우 그럴싸하게 벤치마킹하며 運營되고 있다. 그렇다고 “Size does matter”의 追憶을 召喚한다면 몇 番은 成功하겠지만 미디어의 進化를 無視하는 處事가 될 것이다.

    인터넷, 科學技術의 發展에 따라 人間은 社會的 動物임을 切感하게 만드는 超連結 社會(hyper-connected society)에 산다. 한便으로는 그 反對給付로 超斷絶, 絶對 孤獨의 時代로 넘어가고 있다. 超連結 社會라는 用語에 眩惑될 必要는 없다. 이 用語가 强調하는 것은 人間이 社會性에 基盤을 둔 集團的 存在란 事實에 있지 않다. 그것은 情報를 媒介로 한 네트워크 패러다임 속에서 個別的 人間들을 ‘섬’으로 假定하기에 可能한 槪念이다. 코로나 以後의 人間은 더는 大陸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各自의 섬에서 自己만의 方式으로 自己에게 特化된 白日夢을 찾을 것이다. 그러므로 映畫가 苦悶해야 할 것은 디스抛지티프의 解體가 가져올 後暴風이 아니라 各自가 꾸는 이 白日夢을 다양한 方式으로 加工해 새로운 映畫的 패러다임에 맞는 디스抛지티프를 再組織하는 일이다.

    김채희
    ● 1990年 出生
    ● 부산대 藝術文化映像學科 卒業
    ● 부산대 大學院 博士
    ● 2019年 ‘東亞日報’ 新春文藝 映畫評論 登壇
    ● 現 釜山大 映畫硏究所 硏究員 및 講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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