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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星은 癌” 李健熙가 LG昌原工場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映像]|新東亞

“三星은 癌” 李健熙가 LG昌原工場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映像]

[Special Report | 李健熙 新經營 30年 時點에서 大韓民國 ‘未來 30年’ 보다]

  • 허문명 記者 ‘經濟思想家 李健熙’ 著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3-06-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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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年 前 “이미 亡한 會社”라고 호통

    • 新經營 宣言은 ‘意識改革運動’

    • ‘品質經營’에서 ‘品’을 뺀 理由

    • “不良은 癌, 100萬分率로 管理하라”

    • 品質 部署 아닌 前 職員의 問題

    • 大韓民國이 3流로 떨어진다는 危機感

    • 問題의 本質을 向한 執念, ‘5why’

    • ‘丈人의 藝術化’로 이끌어낸 ‘相生’

    [Gettyimage]

    [Gettyimage]

    [+映像] 半導體 戰爭 中인 只今은 '李健熙' 다시 읽을 때



    5月 19日 서울驛에서 KTX를 타고 세 時間餘 달려 到着한 昌原중앙역. 大寒機械學會(會長 윤의성) 招請으로 LG電子 昌原工場을 둘러보기로 했다. 工場이 있는 昌原國家産業團地(産團)는 驛에서 車로 20分이 채 안 걸리는 距離에 있었다.

    昌原산단은 現代로템, 韓華에어로스페이스, 斗山에너빌리티 等 大韓民國 防衛産業 및 原子力産業의 메카다. LG電子 工場 建物 맨 위層에 올라가니 山을 屛風 삼아 펼쳐진 산단의 全景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옛날 굴뚝은 사라지고 깨끗하게 늘어선 工場을 한눈에 鳥瞰하는 것만으로도 大韓民國 産業 現場의 힘이 느껴졌다.

    로봇·AI가 支配하는 ‘등대 工場’

    1958年 ‘금성사’로 創立한 LG의 冷藏庫 工場은 元來 釜山에 있었다. 그러다 1976年 昌原으로 옮겨왔다. 以後 昌原 工場은 ‘골드스타(Goldstar 金星)’ 로고를 단 冷藏庫·洗濯機·食器洗滌器 等 LG 生活 家電 最大 生産基地가 됐다. 使命이 LG로 바뀐 때가 1995年이니 이제 ‘골드스타’ 브랜드를 記憶하는 MZ世代는 많지 않을 것이다.

    大韓民國이 메모리 半導體 分野에서 世界 1等이란 건 많은 사람이 알지만 家電까지 世界 1位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主人公이 LG다.



    LG電子 生活家電(H&A) 事業本部는 2021年 美國 企業 월풀을 제치고 賣出 基準 世界 1位를 記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賣出과 營業利益 모두 世界 1位로 올라섰다. 不過 얼마 前까지만 해도 집에 월풀 冷藏庫나 洗濯機가 있으면 잘사는 집 소리를 듣던 때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隔世之感이다.

    LG 창원공장은 2022년 3월 국내 가전업체로는 처음으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이 매년 선정하는 ‘등대 공장’이 됐다. [LG전자 제공]

    LG 昌原工場은 2022年 3月 國內 家電業體로는 처음으로 世界經濟포럼(World Economic Forum·WEF)李 每年 選定하는 ‘등대 工場’이 됐다. [LG電子 提供]

    名實相符 世界 1位 家電의 産室인 昌原工場이 요즘 또 다른 面에서 世界의 注目을 받는다. 다름 아닌 로봇과 AI(人工知能)가 일하는 이른바 ‘스마트 工場’이어서다. 昌原工場은 지난해 3月 國內 家電業體로는 처음으로, 또 포스코(2019) LS일렉트릭(2021)에 이어 세 番째로 다보스포럼으로 有名한 世界經濟포럼(World Economic Forum·WEF)李 每年 選定하는 ‘등대 工場’이 됐다.

    燈臺 工場이란 말은 英語 ‘라이트하우스 팩토리(Lighthouse Factory)’를 直譯한 것인데 밤하늘에 불을 비춰 길을 案內하는 燈臺처럼 最尖端 技術을 生産 工場에 導入해 製造業의 未來를 비추는 未來 工場이란 뜻이다. 人件費 上昇으로 家電에서 마진率이 떨어지는 狀況에서 LG電子는 海外 移轉 代身 2017年 總 8000億 원을 投資해 昌原工場을 로봇과 AI가 支配하는 스마트 工場으로 革新했다.

    工場은 冷藏庫를 만드는 1工場과 洗濯機·에어컨 等을 만드는 2工場으로 나뉘어 있다. 이날은 冷藏庫 工場을 둘러보는 日程이었다.

    1工場은 全體 4層 規模다. 1, 2層에서 部品을 組立해 3層 메인 라인에서 生産하고, 4層에선 完成된 冷藏庫의 品質을 檢査하고 있었다. 먼저 3層으로 올라갔다.

    半導體 工場에서 가장 重要한 것이 淸潔이듯 스마트 工場도 淸潔이 生命이다. 로봇들이 바깥世上을 認識하려면 QR코드나 센서가 제대로 作動하는 게 가장 重要한데 먼지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工場 안으로 들어서니 直四角形 模樣의 機械 裝置들이 로봇靑素旗처럼 바닥을 쓸고 다니는 게 먼저 눈에 띄었다. ‘運搬 로봇(AGV·Automated Guided Vehicle)’이라고 한다. 部品을 여기저기 싣고 옮기는 물類 로봇인데 모두 50臺가 無人 運行 中이라고 했다.

    最大 무게 600㎏까지 실을 수 있으며 磁石이 아니라 바닥에 일정한 間隔으로 附着된 6000餘 個 QR 코드를 認識해 돌아다닌다고 한다. 사람이 하루에 數千 番 오가며 할 일을 로봇이 代身하는 것이다. 와이파이가 아니라 5G로 움직이기에 通信이 갑자기 끊겨버려 停止하거나 誤作動하는 境遇도 거의 없다고 한다. 배터리가 消盡되면, 充電대로 自動 移動한다.

    로봇 導入 後 生産性 30% 向上

    LG 창원공장은 로봇 근로자 및 디지털 트윈 도입 후 공정 속도가 47% 개선됐고, 그 결과 생산성은 30% 이상 향상됐다. [LG전자 제공]

    LG 昌原工場은 로봇 勤勞者 및 디지털 트윈 導入 後 公正 速度가 47% 改善됐고, 그 結果 生産性은 30% 以上 向上됐다. [LG電子 提供]

    갑자기 어딘가에서 警告音이 들리면서 로봇 한 臺가 멈췄다. 누군가 QR코드를 밟은 것이다. 暫時 後 로봇은 다시 움직였다.

    徐徐히 作業場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 代身 巨大한 로봇 팔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映畫 ‘트랜스포머’ 撮影場 같았다. 天障을 올려다보니 高空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各種 部品을 담은 물類 박스들이 1層과 3層을 부지런히 移動하고 있었다. 이런 自動化로 資材 供給 時間은 旣存 對備 25%, 物流 面積은 30% 줄었다고 한다. 勤勞者들은 로봇들이 일을 잘하는지 畵面을 모니터링하거나 複雜한 配線을 設置하는 라인에만 보였다.

    工場 안에서 일하는 키 2m程度 되는 로봇 팔 136代는 冷藏庫 門 附着이나 高周波 鎔接, 部品 組立, 包裝 等 ‘人間 勤勞者’가 힘들어하는 工程에 集中的으로 配置돼 있었다. 이 中에서 第一 神奇한 건 冷藏庫 門을 붙이는 로봇이었다.

    門짝 하나 무게는 20㎏. 冷藏庫 한 臺에 總 4個가 들어가니 總 80㎏을 들어 올려야 한다. 20㎏짜리 門을 번쩍 들어 올려 작은 구멍에 끼워 맞춰야 해 힘과 高度의 集中力이 要求되는 工程인 터라 勤勞者들의 退社率이 第一 높았다고 한다. 작은 失手에도 스크래치가 생겨 不良이 나올 수 있고, 힘이 要求되다 보니 體力이 떨어지는 午後가 되면 不良率도 높았다.

    只今 이곳에는 사람이 없다. 本體가 라인에 到着하면 로봇 팔이 1,2秒 만에 門을 붙인다. 더 대단한 것은 各各 種類와 模樣이 조금씩 다른 58種이나 되는 冷藏庫를 한 라인에서 만든다는 것. 로봇들은 크기가 제各各인 門짝을 척척 빠른 速度로 붙이고 있었다. 팔 위에 붙어 있는 3D 카메라가 冷藏庫 本體를 撮影해 結合할 本體의 位置 情報를 正確하게 알아내는 德分이라고 한다. 로봇들은 A4用紙 세 張 두께인 0.25㎜ 程度의 微細한 差異까지 反映해 門짝을 붙이고 있었다. 이런 式의 冷藏庫 門짝 붙이기 技術은 世界 最初라고 한다.

    다음으로 힘든 일이 火焰이 튀는 鎔接 工程이다. 酸化가스度 나와 危險度가 높았지만 이제는 로봇들이 高周波로 13秒 만에 鎔接을 해내고 있었다. 로봇들은 數十萬 番의 ‘머신 러닝’을 통해 얻은 最適의 角度와 溫度로 라인 위에 있는 本體에 스스로의 判斷에 따라 鎔接을 하고 있다고 했다.

    3層 見學을 마치고 1層으로 案內받아 내려오니 로비 壁面에 大型 모니터 두 個가 보였다. 自動化를 넘어선 知能化의 現場이었다. 다름 아닌 ‘디지털 트윈’으로 實際 工場과 똑같은 雙둥이 工場을 假想空間에 再現한 것이다. 生産工程마다 設置돼 있는 바코드와 센서, 運搬 로봇을 통해 蒐集된 情報를 AI와 빅데이터를 活用해 只今 이 時間 實際 工程이 어떻게, 어떤 速度로 돌아가는지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 어느 公正에서 어떤 部品이 不足해진다는 걸 豫測하고 미리 部品도 옮겨놓는다.

    디지털 트윈의 가장 큰 長點은 이런 未來 豫測을 통한 事故 豫防이 可能하다는 것. 例를 들어 射出 라인의 境遇 射出 溫度가 900℃를 維持해야 하는데 920℃, 940℃로 올라가고 있다면 이런 狀況을 미리 알려 問題를 事前에 豫防하는 式이다. 五世紀 副社長은 “30秒마다 工場 안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모두 蒐集 分析해 라인에서 向後 10分 뒤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알려주는 시스템”이라며 “이런 시스템을 통해 工場 內 모든 狀況을 10分 일찍 豫測하는 것이 可能해졌다”고 紹介했다.

    로봇 勤勞者들과 디지털 트윈이 導入된 後 工程은 놀랄 만큼(47%) 改善됐다. 스마트化 以前엔 한 달에 10時間 程度 라인이 멈췄다면 只今은 24分假量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 結果 昌原工場 生産性은 30% 넘게 向上됐다.

    事實은 意識改革運動

    故(故) 이건희 三星그룹 會長의 新經營 宣言 30年을 되돌아보는 記事를 쓰면서 LG의 尖端 스마트 工場 이야기부터 言及한 것은 ‘萬若 李會長이 이 工場을 보면 무슨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6月 7日이 新經營 宣言 30周年이다.

    “마누라 子息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대표되는 1993年 6月 이 會長의 프랑크푸르트 宣言은 危機意識과 變化를 强調한 메시지라고 우리 大多數는 記憶한다. 이는 事實 ‘品質經營’ 宣言이었다.

    周知하다시피 製造業의 生命은 品質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製品을 싸게, 좋게, 빨리 만들어내느냐가 關鍵이다. 프랑크푸르트 宣言을 통해 李 會長은 ‘製品의 品質을 높이려면 어떻게 할까’ 하는 本質的 質問에 對한 答을 다름 아닌 ‘人間의 意識과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데서 찾았다. 로봇 勤勞者가 없던 時節인 30年 前 三星의 新經營 宣言은 그런 意味에서 意識改革運動이자 文化運動이었다.

    李 會長은 洗濯機 뚜껑을 칼로 組立하는 三星의 工場 勤勞者를 보고, 또 먼지가 쌓여 消費者의 外面을 받고 있던 LA 家電 賣場에서 衝擊을 받고 任職員들을 大擧 프랑크푸르트로 召集한다. 그러면서 “不良은 癌이고 이것은 癌的인 想像力에서 나온다”고 一喝했다.

    生前 李 會長은 冊 ‘생각 좀 하며 世上을 보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不良製品이 但只 顧客을 잃는 次元에서 그친다면 굳이 癌이라고까지 부르지 않아도 되겠지만, 事實 어느 會社 製品의 質이 좋지 않다고 하면 그 所聞은 急速度로 번지게 되어 있다. 癌細胞의 分裂과 轉移를 그대로 닮은 것이 바로 不良製品에 關한 所聞이다. 初期에 發見해서 잘라내면 完治가 可能하지만 그냥 버려두면 사람을 죽게 하는 것까지 똑같다. 不良이라는 癌도 내버려 두면 企業을 죽게 한다. 癌的 症狀의 早期 發見과 退治가 企業의 存廢를 左右하게 되는 것이다. 飛行機는 100萬 個 以上의 部品으로 構成되어 있다. 萬若 不良率이 1%라고 한다면 無慮 1萬 個 以上의 不良 部品을 달고 하늘을 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飛行機가 제대로 作動하면 아마 奇跡일 것이다. 그래서 航空産業은 보잉사 等 品質 水準이 極度로 높은 少數의 企業이 支配하고 있으며 이들은 品質을 管理하는 單位로 當然히 PPM을 使用하고 있다.

    PPM은 ‘Parts Per Million’의 頭音者를 딴 것으로 100萬分率을 나타낸다. 100分率보다 精密性이 1萬 倍나 높다. 細菌이나 박테리아의 有無를 가릴 때 使用하는 것을 봐도 그 精密度를 斟酌할 수 있다. 通信 分野에서 世界 超一流라고 할 수 있는 美國의 모토롤라는 品質 水準의 極大化를 經營 理念으로 定하고 ‘6시그마 運動’을 持續的으로 推進하고 있다. 6시그마란 統計學 用語로 100萬 個 中 3~4個 程度의 不良을 許容하는 高度의 品質 水準을 의미한다. 이런 過程을 거쳐 만들어진 會社 製品이 世界的 品質 水準을 자랑하는 것은 너무나 當然하다 하겠다.

    不良 槪念조차 잘 몰랐던 것이 우리 企業이다. 그러나 只今은 世上이 달라졌다. 生活의 質이 달라졌고 消費者의 意識이 달라졌다. 더구나 世界와 競爭하는 國際化 時代다. 製品의 質은 더 以上 퍼센트로 管理하기가 不可能해졌다. 퍼센트로 不良을 管理하는 企業은 早晩間 末期癌 症狀으로 쓰러진다.

    末期癌 症狀은 保險 窓口나 슈퍼마켓에서도 생길 수 있다. 品質 不良이 製造業에만 局限되지 않고 서비스業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는 말이다. 不良率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은 製造業뿐 아니라 서비스産業까지 全 産業에 걸쳐 覺悟해야 한다. 우리 企業들도 이제는 PPM 單位로 品質을 管理할 수 있을 程度가 돼야 世界 舞臺에서 名銜을 내놓을 수 있다.”

    사람에 集中한 先驅的 企業인

    只今이야 句句節節 當然한 말 같아도 ‘만들기만 해도 팔리던 時節’이던 30年 前에는 ‘品質’ 운운하는 것 自體가 奢侈였다고 專門家들은 말한다.

    次期 經營學會長人 김연성 仁荷大 經營學科 敎授는 品質管理 分野 專門家다. 1985年 三星에 入社해 삼성물산에서 1年間 勤務하기도 했다. 그가 碩·博士 課程에서 品質管理를 專攻할 때만 해도 當時 經營學에서는 硏究者가 別로 없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품질관리 분야 전문가인 김연성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는 “좋은 제품이 나오려면 회사 전체, 종업원 전체가 바뀌어야 하고 그래서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品質管理 分野 專門家인 김연성 仁荷大 經營學科 敎授는 “좋은 製品이 나오려면 會社 全體, 從業員 全體가 바뀌어야 하고 그래서 리더십이 重要하다”고 말했다. [허문명 記者]

    “品質이란 것이 너무 重要한 主題이긴 했는데 當時 經營學에서는 第一 人氣 있었던 專攻 分野가 財務였고 다음이 마케팅, 人事管理 順이었다. 品質이나 生産性 같은 主題는 主로 産業工學이나 統計學에서 다뤘다. 샘플링이나 管理檢査 같은 것이 다 統計 領域이었기 때문이다. 1987年에 大學院(서울大 經營學)에 들어갔는데 碩士 過程에도 品質을 專攻하는 學生은 거의 없었다. 博士課程에 있을 때 삼성경제연구소 革新팀과 經營品質아카데미라는 것을 했는데 以後 品質 硏究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美國에서 留學하면서 漸漸 品質 硏究를 파고들게 됐다. 美國에 맬컴 볼드리지 國家品質像(MBNQA·Malcolm Baldrige National Quality Award)도 그때 接했는데 品質經營이 뭔지, 品質向上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對해 새로운 視角을 주었었다.”

    그가 言及한 MBNQA는 1981年부터 1987年까지 美國 商務部 長官으로 일하면서 政府의 生産性 向上에 큰 寄與를 했던 맬컴 볼드리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80年代 後半 世界市場에서 急速히 밀려나고 있던 美國이 自國 企業들의 競爭力을 劃期的으로 높이기 위해 상무부가 만든 品質 標準이었다. 後날 이 賞이 提示하는 評價 基準은 企業 經營의 質을 評價하는 데 信賴性이 높은 尺度로 公認받아 우리를 包含해 全 世界 여러 나라가 自國의 品質經營 基準으로 採擇하게 된다. “그 賞이 어떻게 品質에 對한 생각을 바꿨다는 건가”라고 묻자 金 敎授는 이렇게 말했다.

    “흔히 品質改善이라고 하면 不良品을 없애는 것만 생각해 工程 改善에 集中하는데 이 賞의 評價 基準은 첫째가 리더십, 둘째가 會社의 戰略, 셋째 顧客 및 市場 重視, 넷째가 職員 重視, 다섯째가 情報시스템과 知識管理 시스템, 여섯째가 프로세스(生産, 顧客管理, 人事管理 業務)였다. 卽 좋은 製品이 나오려면 會社 全體, 從業員 全體가 바뀌어야 하고 그래서 리더십이 重要하다는 거였다.

    李 會長은 品質經營을 외치면서 製品에 焦點을 맞춘 것이 아니라 ‘製品을 만드는 사람’에 集中했다는 點에서 先驅的 企業人이었다. 品質이 좋으려면 但只 品質改善 擔當 職員만 잘해서는 안 되고 會社 全體의 프로세스를 다 고쳐야 한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거였다. 當時 함께 일한 삼성경제연구소 職員들이 品質經營에 對한 報告書를 쓰면서 會長의 생각을 具體化하는 데 애를 먹는 모습을 옆에서 본 記憶도 있다. 新經營 宣言의 導火線이 된 洗濯機 뚜껑 組立 事件이랄지, 日本人 技術者들의 報告書는 不良을 없애라는 게 아니라 會社 全般의 모든 프로세스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精神 狀態가 不良을 만든다고 생각한 거였다.”

    金 敎授는 이 대목에서 “李 會長이 ‘品質(品質)經營’이 아니라 ‘質(質) 經營’이라고 話頭를 던진 것도 매우 깊은 想像力에서 出發하는 것”이라고 했다.

    “李 會長이 新經營 宣言을 했을 當時 韓國 大企業 안에서 品質 部署는 大槪 ‘발목 잡는 部署’로 通했다. 職級으로 따지면 代理級이 品質 擔當, 部長級이 生産 擔當, 任員級이 財務 擔當, 副社長級이 마케팅 擔當이던 時節이었다.

    이런 狀況에서 이 會長이 ‘品質經營’이라고 했다면 다들 맨 下位 部署, 아웃사이더 部署만 變하면 된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質 經營’이라고 함으로서 品質 問題를 모두의 問題로 만들어버린 거다. 製品의 完成度에 對한 合格과 不合格을 따지기 前에 設計와 購買, 組立 等 全 過程에서 조금이라도 不良이 發生할 餘地를 남기지 말라는 뜻으로 ‘品’字를 떼어낸 것이다. 이런 哲學은 ‘리더십부터 經營 成果까지 體系的으로 遂行하고 改善해 나갈 때 品質 水準이 올라간다’는 美國의 MBNQA 精神과도 一脈相通한다.”

    “只今 三星은 國際的으로 2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천명하며 ‘신경영 선언’을 했다. 삼성은 이후 ‘질적으로 대전환’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이건희 三星電子 會長은 1993年 6月 獨逸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子息 빼고는 다 바꾸라”고 闡明하며 ‘新經營 宣言’을 했다. 三星은 以後 ‘質的으로 大轉換’을 始作했다. [삼성전자]

    李健熙 會長이 1993年 6月 프랑크푸르트 宣言에서 내건 ‘質 經營’에는 徹底한 自己反省이 있었다. ‘天下의 三星’ ‘最高 技術의 三星’이라는 안팎의 評價를 根本的으로 뒤집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삼성전자를 向해 ‘이미 亡한 會社’ ‘2流 企業’이라고 酷毒하게 깎아 내렸다. 先進國과 日本 技術을 模倣하는 데만 汲汲하고 世界市場에서 싸구려 取扱을 받는 現實을 뼈아프게 짚은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會長이 한 말이다.

    “國內에서 그래도 낫다는 三星電子를 보자. 商品 數는 數千 가지, 系列社는 30餘 個다. 이 中 國際競爭力이 있다고 할 수 있는 製品은 半導體, 그것도 메모리 하나다. 分明히 말하지만 三星은 國際的으로 2流다. 내가 會長이 되고 입버릇처럼 不良 없애라, 質(質) 爲主로 가자고 했는데 아직도 量(量)에 매달리고 있다. 만들기만 하면 팔 수 있다는 건 舊 時代的 얘기다. 오그라지고 망가지는 게 눈앞에 보이는데 (여러분은) 눈 하나 까딱 안 한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系列社들을 條目條目 重患者에 比喩했다.

    “삼성전자는 3萬 名이 만든 物件을 6000名이 하루 2萬 番씩 고치고 다닌다. 쓸데없이 資源 浪費하고 페인트 浪費해 空氣 나쁘게 하고 나쁜 物件 만들어 나쁜 이미지를 갖게 한다. 이런 浪費的 集團은 이 世上에 없다. 癌(癌)으로 치면 2기다. 第一 急하게 손을 써야 한다. 機會를 놓치면 3期에 들어간다. 누구도 못 고친다.”

    그는 삼성전자가 만들어내고 있는 不良製品들도 癌細胞에 比喩했다.

    “三星이 파는 電子製品, 重工業 製品에는 會社 로고가 分明히 박혀 있다. 그런데 故障이 나면 鬱火통이 터진다. 내가 直接 經驗한 것이다. VTR 같은 境遇 아끼는 테이프를 넣었는데 故障이 나 다 갉아먹었다. TV에서 재미있는 映畫를 보는데 휴즈가 똑 떨어져나가 꺼진다. 이러면 當然히 그 會社 辱이 나오지 않겠는가. (消費者들은) 안 잊어버린다. 그 會社 製品 絶對 안 산다. 안 사는 게 重要한 게 아니라 ‘나쁘다’고 떠들고 다닌다. 이것이야말로 몸에 癌細胞가 번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三星電子 製品 不良率이 現在 水準(3~6%)이라면 罔措다. 나는 日本 製品들을 보면 三星은 이대로 門 닫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門 닫는 것이 명예롭게 닫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三星電子가 6%씩 不良을 내면서도 昨年에 250億 利益이 났는데 不良率을 2%로 내릴 境遇 얼마나 利益이 날지 한番 생각해 보라. 不良을 줄이는 건 ‘經營을 잘해라’ ‘利益을 더 내라’는 次元의 問題가 아니다. 生存과 良心 不良의 問題다.”

    프랑크푸르트 宣言의 導火線이 된 洗濯機 뚜껑 組立 事件에 對해 李 會長은 現地에서 이런 慘澹함을 吐露한다.

    “感情의 表現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쓸쓸함, 씁쓸함, 虛無함, 火가 나는, 鬱火통 터지는, 寒心한, 諦念하는. 個人이나 社會에서 가장 무서운 感情은 ‘포기’다. 나는 平生 두 番의 抛棄를 했다. 오늘 아침 不良製品 만드는 비디오를 보고 한 番 더 하려 했다. 電子는 勿論이요, 전관·코닝·重工業·물山·毛織·製糖도 다 量으로 채워가고 있다. 完全 抛棄 狀態다. 3年 前보다 더 虛無하다. 이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職場이냐?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分明히 말하지만 나 自身이 個人의 富貴榮華를 하자는 것 아니다. 現在 내 財産 充分하다. 名譽 때문이다. 成就感이다. 成就感은 여러분, 三星그룹, 우리나라가 잘되게 하는 것이다. 質을 키우면 量이 커진다. 質이 높아지고 탄탄해지면 우리와 後孫들이 잘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別別 어려움, 虛無, 슬픔, 禍, 鬱火통, 울고, 웃고 다 겪었다. 抛棄하기는 싫다. 한番 抛棄하면 回復 不可能이다.”

    質이 되면 스케일은 얼마든 可能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質 經營은 具體的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이었을까. 生前에 한 말이다.

    “會議 方式에서 보고, 目標, 管理, 評價에 이르는 모든 일을 質 重視로 바꾸자는 거다. 質 重視라는 건 形式보다 本質과 原理, 原則을 重視하는 것이다. 質 없는 羊(量)은 알맹이 없는 빈 껍질뿐이다. 質을 높이면 저절로 量을 넘어 ‘스케일’이 나온다. 高價, 武才고, 販賣 擴大로 이어지면서 勤務 時間도 줄어들게 된다. 이는 三星人 모두의 삶의 質을 높일 것이다. 質 爲主 經營을 하려면 나 自身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個人이 變해야 三星이 變하고 三星이 變해야 다른 그룹도 變하고 政府도 變한다. 利己主義와 過去 習性을 버리고 人間性, 道德性을 되찾아야 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스케일’이라는 槪念이다. 會長은 質이 優先돼야 規模를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質을 中心으로 작은 單位로 만들어서 이것을 블록같이 붙이기만 하면 된다. 스케일 槪念이 없으니 全部 不安한 것이다. 質이 되면 스케일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그런데 質로 가면 全部 줄어들 것만 같아 怯이 난다고 한다. 여러분은 아직도 스케일 槪念을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스케일 槪念은 양하고 좀 다르다. 스케일을 키워라, 質을 徹底히 하면 스케일은 質疑 노하우만 있으면 國際的으로, 東南亞로, 北美로, 南美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呼訴한다.

    “모든 從業員이 ‘不良은 敵이다, 不良은 惡의 根源이다. 不良 세 番 내면 退職이다’ 이렇게 가야 한다. 正말 같이 한番 해보자. 只今 우리는 量과 質의 比重이 1% 臺 99%度 안 된다. 0代 100이다. 10代 90이나 1代 99로 생각한다면 이것이 언젠가는 5對 5로 간다. 한쪽을 0으로 만들지 않는 限 絶對로 못 간다. 이렇게 안 가면 내가 여기 있을 必要가 없다. 내가 없어도 會社는 얼마든지 돌아간다. 이걸 나밖에 바꿀 사람이 없고 내가 바꾼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協助 없이는 絶對로 안 된다. 電子 라인에 있는 모든 社業部長級 以上, 아무리 내려가도 常務 以上까지 이걸 참고 견딜 決心을 하지 않고는 脫皮할 수가 없다.”

    事實 그의 不安은 現在에 對한 밑도 끝도 없는 不滿足이나 걱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變化하는 안팎의 國內外 狀況에 對한 綿密한 洞察에서 나온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그의 말이다.

    “世界는 國境 없는 戰爭에 突入했다. 先代(先代)가 經營했던 1987年 以前과 現 經營 狀況에는 엄청난 差異가 있다. 政治 外交 尖端技術 等 모든 分野가 急變하고 있다. 過去 50年의 變化보다 向後 10年에 있을 變化의 量과 質이 훨씬 더 많고 클 것이다. 企業組織, 硏究所, 生産方式, 思考의 틀 모든 게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世上이 다가오고 있다. 全 世界가 市場開放을 要求하고 있고 中國 같은 後發 開途國이 追擊해 오고 있다.”

    李 會長은 이대로 가다가는 三星을 넘어 大韓民國이 3流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危機感까지 갖고 있었다.

    “우리는 1960年代에 經濟 基礎를 닦았고, 1970~80年代에 經濟의 틀이 잡혔다. 1980年代 中盤까지는 모든 것이 쉬워서 單純 組立 事業으로 輸出도 하고 먹고 살았다. 後進國에서 開發途上國으로 成功한 代表 나라가 韓國이었다. 옛날에는 行政府와 全 國民이 危機意識과 헝그리 精神을 가지고 눈이 반짝반짝했는데 요즘은 모든 게 어려워졌는데도 그저 잘되겠지, 몇 가지만 改善하면 옛날같이 되겠지 安易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는 모든 製品이 複合化 시스템化 差別化되지 않으면 팔기도 어렵지만 팔 수도 없다. 物件 하나 팔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國家 生産性을 높이는 일이 國家·國民·財界 다 合쳐도 될동말동 어려워졌는데 (狀況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다. 조금만 精神 차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錯覺하고 있다. 三星은 勿論 나라 全體가 이 時點에서 精神 안 차리면 인도네시아처럼 3流局으로 떨어진다. 난 이것이 눈에 보인다.”

    李健熙 會長은 製品의 不良은 그 製品을 만드는 사람들의 意識의 不良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가 始終一貫 變化를 强調한 것은 ‘三星 製品의 質’이 아니라 ‘三星人의 質’이었다. 生前 故人의 말이다.

    三星人의 質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촉발한 1993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베스트바이 어바인 매장 모습. 소니(438달러), 필립스(418달러) 아래쪽에 삼성전자(348달러) TV 가격표가 배치돼 있다. [삼성전자]

    이건희 三星電子 會長의 新經營 宣言을 觸發한 1993年 1月 美國 캘리포니아의 베스트바이 어바인 賣場 모습. 소니(438달러), 필립스(418달러) 아래쪽에 三星電子(348달러) TV 價格表가 配置돼 있다. [삼성전자]

    “버젓이 不良品을 내놓고도 未安한 마음이 없는 良心 不良, 三星 이름이 들어간 不良品을 보고도 분한 마음이 들지 않는 道德的 不感症, 일하는 사람 뒷다리 잡는 風土와 集團 利己主義 等 精神文化의 不良이 가장 重要하고 深刻한 問題다. 質 좋은 物件을 만들려면 會社 組織도, 三星 組織 全體도 質로 가야 하고, 여러분 個個人의 人生도 質을 追求해야 한다. 子女 敎育도 質로 가야 이 나라가 質的인 一流가 되며 質的인 삶의 槪念을 確保할 수 있게 된다.”

    삶의 質이 바뀌어야 製品의 質이 바뀐다는 그의 말은 매우 本質的이다. 生前의 그가 企業의 目的을 但只 利潤 追求에만 두지 않았다는 思想家的 側面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李 會長은 冊 ‘생각 좀 하며 世上을 보자’에서 無慮 세 챕터에 걸쳐 ‘質 經營’에 對한 哲學을 說破한다. 그가 質 經營 宣言을 밝힌 背景은 이렇다.

    “1970年代 初盤까지만 해도 企業들은 없어서 못 八正道로 物件 만들기에 바빴다. 三星 亦是 무슨 物件이든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 雪糖이나 옷감 같은 品目은 先金을 받고 파는 境遇도 많았다. 正말 그때는 不良品 따위에 神經을 쓰지 않았다. 좀 瑕疵가 있어도 消費者나 生産者 모두 別 不滿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事情이 바뀌었다. 高成長 時代가 低成長 時代로 바뀌고 市場開放으로 世界的인 無限競爭時代가 열리면서 物件이 없어서 못 파는 生産者 爲主 市場은 想像도 할 수 없게 되었다. 顧客의 要求가 아무리 까다롭더라도 生産者는 이를 受容해야 生存이 可能한 消費者 爲主 市場이 된 것이다.

    問題는 時代가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如前히 不良 不感症을 把握하지 못하고, 量的 思考의 慣性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가 新經營 모토를 ‘質 經營’으로 定한 것은, 이처럼 時代 變化에 발 빠르게 適應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여러 弊害를 一掃하기 위해서다.”

    李 會長은 質 經營을 위해 “一時的으로 市場占有率이 떨어져도 좋다” “赤字가 나도 좋다” “私財를 털어서라도 質 經營을 實現하겠다”고도 했다. 生前 肉聲이다.

    “나는 쇼크를 싫어한다. 革命이나 쿠데타가 成功한 例는 없다. 모든 것은 自律的이어야 한다. 會長 就任 以來 10~15% 市場占有率이 줄어들어도 좋다고 말해 왔다. 赤字는 다른 系列社가 메우면 된다. 그래도 赤字가 나면 내 私財라도 털겠다. 三星이 錦城, 현대 等과 맞설 때 5~10%의 市場占有率 下落은 길어야 3年이다. 占有率 下落이 가슴 아프다면 내가 더 아프다. 그것은 올리기 위한, 勝利하기 위한 作戰上 後退 아닌가. 이것도 못 하면 아무 것도 못 한다. 占有率은 別問題가 없다. 赤字도 몇 달이다. 질로 가면 利益은 自然히 올라간다. 最惡의 境遇 내려가면 내 財産 내놓겠다. 내 財産 털어서 안되는 業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힘을 하나로 모아달라고 呼訴한다.

    “單純한 感情이 아니다. 努力하라도 아니고, 더 많이 하라도 아니고, 더 잘하라도 아니다. 한 方向이라는 것이다. 이제 되어야 한다. 한 方向으로 가는 게 우리 民族에게 안 되고 있고, 우리 三星에 안 되고 있고, 電子도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質 經營의 具體的인 想像力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5why’와 ‘丈人의 藝術化’다. 앞서 紹介한 김연성 敎授의 말이다.

    “品質을 높이는 原則이 세워졌다면 이를 日常에서 具體的으로 어떻게 實踐해야 할까, 여기서 李健熙 會長이 내세운 것이 ‘5why’다. 바로 問題의 本質이 무엇인지를 探究해 들어가는 거다. 不良製品을 두고 社長과 職員이 이런 對話를 나눈다고 생각해 보자. ‘왜 잘못됐지?’ ‘部品이 問題였습니다.’ ‘部品은 왜 잘못됐지?’ ‘協力社에서 잘못했는데요.’ ‘協力社는 뭘 잘못했지?’ ‘材料 配合이 잘못된 것 같아요.’ ‘왜 配合이 잘못됐지?’ ‘職員의 失手 아닐까요?’ ‘왜 失手했지?’ ‘레시피가 없었던 거 같아요.’ 이렇게 되면 結局 問題의 本質은 레시피라는 게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는 大部分 두 番 質問하다 끝난다. 아이가 ‘하늘이 왜 파랗지요?’ 물으면 한두 番 答해주다 ‘시끄러워, 工夫나 해’ 하는 父母처럼 말이다.(웃음) 李 會長은 이런 想像力을 갖고 일하다 보니 恒常 危機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인다. 未來가 그려지고 어떻게 될지 豫測되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없는 質問, 5why

    5why에 對한 生前 李 會長의 말이다.

    “5why는 事物의 根源을 찾아내는 것이다. 왜 不良이 나는가? 不良의 種類가 무엇인가? 組立이나 部品의 不良 또는 납땜질 不良인가? 두세 番 分析하면 根源을 알 수 있다. 結局 組立業體 사람들이 不良品을 만들지 않도록 平素 商品 知識을 가지고 協力業體를 敎育하고, 資金과 技術力을 提供해 完製品이든 部品이든 關聯되는 數十 個 協力 會社를 높은 次元에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大企業 組立業體 槪念이다. 이것을 모르고 있다.”

    5why에 對해서 三星 退職 任員들의 證言이 있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飛行機 안에서 日本人 拷問의 報告書를 읽던 會長과 함께 搭乘했던 손욱 前 三星綜合技術院長과 인터뷰한 內容이다.

    飛行機에서 報告書를 읽고 어떤 意見을 냈느냐고 물었다.

    “當時 隨行員이 6名이었다. 會長 뒷座席에 앉아 討論이 始作됐다. 會長은 全혀 잠을 자지 않고 答을 기다렸다. 우리들은 ‘責任 意識과 主人 意識이 없어서 그렇다’ ‘룰에 對한 槪念이 없고 處罰이 弱해서 그렇다’ 等 한두 時間마다 答을 내 말씀드렸는데 會長은 滿足하지 않은 듯 ‘다시‘ ‘다시’를 反復했다.

    結局 프랑크푸르트에 到着해 駐在員들과 저녁을 먹고 난 뒤까지 討論이 이어졌다. 하지만 繼續 ‘아니다’라는 答만 들어야 했다. 會長은 마치 끝장을 보겠다는 心算인 것처럼 느껴졌다.

    子正 넘어서까지 이런 狀況이 이어지자 보다 못한 홍라희 女史가 ‘사람들도 疲困하니, 이제 答을 알려드리세요. 그래야 來日 또 일을 할 수 있죠’라고 하자 그제야 ‘自己 自身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禪問答 같은 말을 하며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新經營 初期 祕書室 國際金融팀長, 人事팀長을 지내며 이 會長 通譯을 맡기도 했던 황영기 前 三星證券 社長(現 韓美協會長)도 當時 遂行팀員으로 全 日程에 함께했다. 그의 記憶은 좀 더 具體的이다.

    “理由와 對策을 묻는 會長께 ‘敎育이 잘못돼서 그렇습니다. 基本 秩序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每事 얼렁뚱땅하는 文化가 옛날부터 몸에 배서 그렇습니다. 賣出 達成에 汲汲해서, 量 爲主로 ‘物量 떼기’ 하느라 그렇습니다’ 等等 各自가 머리에서 짜낸 意見들을 말씀드리니 會長은 ‘그래, 그렇다 치자. 근데 왜 그리 됐노?’ 다시 反復해 되물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다시 ‘어려서부터 家庭敎育이나 이런 것들부터 問題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軍隊 가서 要領 피우는 거를 배우는 것도 理由인 것 같습니다’라고 또 나름대로 생각을 말했다. 그러면 會長은 다시 ‘그럼 우리 社會는 와 그래 됐노?’ 이런 式으로 質問이 繼續됐다. 우리는 더는 答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생겨난 말이 바로 會長의 ‘5why’다. 卽 問題가 생기면 적어도 다섯 番 ‘왜’를 물어야 한다는 거였다.”

    다음은 현명관 前 祕書室長 말이다.

    “한마디로 問題의 本質에 接近하겠다는 執念과 努力이 대단했다. 어느 날 任員會議에서 ‘물은 왜 차가운가’라는 質問이 날아왔다. ‘얼음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얼음은 왜 讚歌?’ ‘0度 以下에서 얼기 때문입니다’ ‘왜 0度 以下에서 얼음이 되는가’ 이런 式이었다. 會長은 한番 關心을 가지면 專門家 水準의 知識을 얻을 때까지 執拗하게 파고들어 갔다. 半導體는 勿論 自動車에서부터 電氣오븐까지 디자인과 技術을 細細하게 알고 있었다. 그를 모시는 사람들도 當然히 그런 熱誠을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想像力은 丈人의 藝術化로 이어진다.

    “部品 分析만 잘하면 第一 重要한 部品을 만드는 數十, 數百 個의 協力業體를 잘 키우면 된다. 이것이 丈人의 藝術化이다. 協力業體를 등쳐서 싸게 사는 것이 아니다. 잔재주 부리는 것, 우리만 德 보자는 것은 藝術이 아니다. 그룹 各사도 利益이 가도록 하고, 協力業體도 살아갈 수 있도록 技術도 키워주고 資金도 도와준다. 이것은 事業部長이 해야 할 일이다. 이를 支援하기 위해 全無, 副社長, 社長 等이 있다. 會長과 앞뒤가 바뀌어 있다. 이것이 포인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설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李在鎔 三星電子 會長이 지난해 5月 20日 京畿 평택시 三星電子 半導體 工場을 訪問한 尹錫悅 大統領과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 演說에 앞서 人事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質 經營의 延長線上 ‘相生’

    ‘不良은 癌’이라고 부르짖었던 李健熙 會長의 質 經營論은 “品質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라인 稼動을 中斷해도 좋다”로 이어진다.

    實際로 三星은 1993年 6月 中旬 48時間 동안 洗濯機 라인 稼動을 中斷했다. 그러면서 電子를 비롯한 全 그룹에 ‘라인 스톱制’를 導入·施行했다.

    이 制度가 檢討된 것은 그해 3月 도쿄 會議에서였다. 全 系列社 社長團이 參席한 當時 會議에서 이 會長은 ‘라인 스톱制’에 對해 이렇게 말했다.

    “라인 스톱制를 하라고 하면 工場이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 社長들이 써놓은 報告書를 여러 番 보았는데 社長들이 錯覺하고 있다. 라인 스톱이란 게 있다는 것 自體에 놀라워하고 있다. 라인 스톱이 안 되기 때문에 라인 스톱을 쓰는 것이지 라인 스톱이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라인을 스톱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品質에 自信이 있다는 말이다. 어느 程度 從業員 水準이 되어 있으며 協力業體 不良이 10萬에 하나, 1萬에 하나 程度의 不良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라인 스톱이 可能하다는 거다.

    自動車, 電子, 重工業, 造船이건 工場에 라인 스톱을 設置할 수 있다는 건 우리 水準에서 不可能하다. 觀點이 다르다. 不良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라인 스톱을 쓰는 것이 아니라 不良이 안 나오기 때문에 라인 스톱을 걸어놓았다는 것이다. 不良率을 낮게 할 수 있다는 結果로서, 表示로서 라인 스톱을 달아놓은 것이다.

    經營者는 텔레비전 畵面에 나오는 뒷面을 알아야 한다. 畵面을 네 番 다섯 番 보면서 뒷面을 보지 않으면 經營者가 아니다.”

    李 會長이 中小 協力業體들과의 協力을 重視하며 ‘相生’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건 그리 많이 알려진 事實이 아니다. 李 會長의 相生 亦是 質 經營의 延長線上이었다. 그의 말이다.

    “大企業 혼자서만 製品을 完成한다는 건 現實的으로 不可能하다. 自動車는 部品이 2萬 個, 컬러TV가 400個 500個. VER이 800個 900個인데 어떻게 大企業 혼자서 이걸 만들겠느냐. 70, 80% 以上은 中小企業에서 만드는 部品에 依存할 수밖에 없다. 이런 原理는 생각하지 않고 原價節減을 핑계로 無條件 쥐어짜는 大企業 慣行은 困難하다.

    日本 製造業이 剛해진 것도 所謂 用役 卽 協力業體를 아주 잘 管理하고 있기 때문이다. 總 製造原價 中 原資材 比重이 높고 많은 協力業體를 갖고 있는 三星도 協力業體에 對한 效率的 管理는 무엇보다 重要하다. 事業의 成敗는 購買 段階에서 決判이 난다고 해도 過言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表現이 ‘購買의 藝術化’다.

    “不良品을 줄이려면 平素 商品 知識을 가지고 協力業體를 敎育하고 資金과 技術을 提供하고 完製品이든 部品이든 關聯되는 協力業體를 한 次元 끌어올리는 것이 大企業 組立業體 業의 槪念이다. 이것이 丈人의 藝術化多.”

    李 會長은 ‘品質經營’에서 ‘品’을 뺐다. 그러곤 質 經營을 외쳤다. 李 會長의 質 經營이 三星뿐 아니라 大韓民國 産業을 바꾸는 주춧돌을 놓았다고 해도 過言이 아니다. 家電 世界 1位 LG 昌原工場을 보라. 현대자동차 蔚山工場을 보라. 全國 産業團地의 製造業 工場들을 보라.

    6月 7日 李健熙 會長의 新經營 宣言이 30周年을 맞았다. 아들인 이재용 會長은 지난해 10月 就任 以後 ‘뉴三星’을 위한 行步를 이어가고 있다. 三星의 30年 뒤 모습은 어떨까. 大韓民國의 産業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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