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具光謨 ‘Beyond LG’, 더 독해지고 果敢해졌다|신동아

具光謨 ‘Beyond LG’, 더 독해지고 果敢해졌다

具仁會·구자경·구본무 ‘人和·實속·뚝심’ 넘어…

  •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代表

    入力 2024-02-2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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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人和’ 具仁會 作故로 始作한 長子 承繼 原則

    • 具滋暻 實속 經營, 賣出 1150倍, 任職員 5倍 ↑

    • “抛棄하지 말고 길게” 글로벌 企業 낳은 ‘뚝심’ 구본무

    • ‘選擇과 集中’으로 發展的 繼承, 具光謨

    • 具光謨 體制 完成, 변해선 안 될 것 지키면서 變해야 산다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LG트윈스 선수들과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月 13日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具光謨 LG그룹 會長이 LG트윈스 選手들과 韓國시리즈 優勝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月 具光謨 LG그룹 會長이 서울 잠실구장에서 ‘2023 프로野球 韓國시리즈’ 優勝컵을 힘껏 들어 올렸다. LG트윈스는 11月 13日 열린 韓國시리즈 5次戰에서 kt 위즈를 6-2로 꺾고 시리즈 全的 4勝 1敗로 統合 優勝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4年 以後 29年의 恨을 풀었다.

    LG의 勝利는 긴 時間 ‘뚝심과 끈氣’로 忍苦한 LG의 主要 事業인 배터리·戰場 事業의 成果와 오버랩 됐다. 또한 燕巖 九人會 會長의 ‘人和’에서 상남 具滋暻 會長의 ‘顧客中心 經營’으로 글로벌 기틀을 마련한 後 和談 구본무 會長의 程度 經營과 1等主義와도 오버랩됐다.

    트로피를 들어 올린 具光謨 會長은 只今까지의 LG를 넘어서야 하는 課題 ‘Beyond LG’도 함께 안게 됐다. 持續 可能한 成長을 위해서 企業은 빠르게 變化하는 環境에서 변해선 안 될 것을 지키면서도 同時에 變해야 하기 때문이다.

    文在寅 政府 時節 公正去來委員長과 大統領 政策室長을 歷任한 김상조 한성대 敎授는 2015年 한 言論과 인터뷰하면서 LG그룹에 對해 “總帥 一家나 支配構造가 論難이 되지 않을 程度로 國內 財閥 가운데 模範的이었고, 勞使關係에서도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왔다”면서도 “經營 成果 側面에서는 三星과 比較해 隔差가 더 많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人和를 强調하는 企業文化가 支配構造, 勞使關係 側面에서는 肯定的인 反面, 經營 成果 側面에서는 否定的이었던 셈”이라며 “向後에는 積極的 企業家精神으로 어려움을 突破하고 새로운 商品과 市場을 創出해 내는 挑戰的 姿勢가 必要하다”고 했다. 具光謨 會長 就任 以後의 LG는 이러한 指摘에 對한 變化를 보여주고 있다.

    1969年, 分水嶺 그해

    LG그룹에서 44年 동안 몸담으며 系列社의 革新을 이끌었던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副會長이 지난해 11月 22日 勇退했다. 權 前 副會長은 1979年 금성사에 入社해 오너 一家 3代에 걸쳐 함께한 唯一한 經營陣이다. 1970年에 就任해 1995年까지 LG그룹을 이끈 2代 會長인 故(故) 구자경 名譽會長과는 16年을, 1995年부터 2018年 他界할 때까지 3代 會長을 지낸 故 구본무 會長과는 23年을, 그리고 4代 會長인 具光謨 會長과 5年을 보냈다.



    權 前 副會長은 “2018年 世上을 떠난 故(故) 구본무 會長이 뚝심과 끈氣의 리더십을 가르쳐줬다”며 “오랫동안 主要 事業에 뜻을 같이하며 많은 成果를 이룰 수 있도록 支援해 주신 具光謨 代表께도 깊은 感謝를 드린다”고 했다. 이어 “LG그룹의 未來에 많은 應援을 보내겠다”는 말을 남기고 LG를 떠났다. 具光謨 會長의 親政 體制 完成이자 具光謨 會長이 旣存의 LG를 넘어설 수 있는지에 對한 分水嶺의 始作이다.

    구본무 會長 體制 때 副會長은 구본준 副會長을 包含해 모두 7名이었고, 그 가운데 지난해까지 남은 唯一한 人士가 權 前 副會長이었다. ‘2024 定期人事’에서 權 前 副會長이 勇退하면서 구본무 會長의 副會長團 人士는 한 名도 남지 않게 되었다. 副會長團 自體도 신학철과 권봉석 2人 體制로 改編돼서 規模가 줄었다.

    LG그룹은 4代에 걸쳐 長子 承繼 原則을 지켜왔다. 具滋暻 會長은 갑작스럽게 그룹을 이끌게 됐다. 1969年 8月 初 創業主 九人會 會長이 갑작스럽게 쓰러져서다. 九人會 會長은 ‘雷管腫瘍’이라는 診斷을 받은 지 4個月 만인 12月 31日 63歲를 一期로 他界했다.

    1969年은 三星과 LG 企業社에서 分水嶺과도 같은 해다. 三星 創業主 湖巖 이병철 會長은 1月 13日 三星電子工業株式會社를 設立하고 電子産業 進出을 電擊 宣言했다. 금성사를 앞세워 電子産業을 先導하던 LG에 對한 挑發이었으며 査頓이자 事業 同志였던 九人會 會長의 心氣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1969年 末 創業會長 他界 後 1週日 만인 1970年 1月 6日 서울 관철동 大王빌딩 會議室에선 次期 會長 宣布가 있었다. 當時 後繼者 選定의 키(key)는 燕巖의 첫째 동생 구철회 락희化學 社長이 쥐고 있었다. 創業에 寄與한 功勞로 보자면 그가 그룹 會長을 맡는다고 해도 말릴 사람이 없는 狀況이었다. 그러나 구철회 社長은 “나는 이제 經營에서 물러나겠다”며 열여섯살 아래의 長조카, 當時 45歲의 具滋暻 금성사 副社長을 會長 자리에 앉게 했다. LG의 長子 承繼 原則이 자리 잡은 瞬間이다.

    愚直하면서도 飢民, LG 1150倍 키운 상남 具滋暻

    1970년 회장 취임 당시 구자경 회장. [LG그룹]

    1970年 會長 就任 當時 具滋暻 會長. [LG그룹]

    具滋暻 會長은 20年間 生産 現場을 지키다 서울路 勤務地가 바뀐 지 不過 1年餘 만에 父親의 遺稿로 마음의 準備 없이 會長 자리에 올랐다. 老鍊한 湖巖을 相對하는 그는 愚直하면서도 機敏했다.

    具滋暻 會長의 機敏함은 가장 먼저 當時 技術의 先鋒에 있던 日本 企業들과의 合作社 設立을 통한 大大的 防禦線 構築으로 드러났다. 1970年 日本 알프스電子와 合作해 錦城알프스電子 設立을 始作으로 1971年 日本 포스타電氣와 함께 金星포스타를 設立했다. 이어 日本 후지電氣와 손잡고 錦城通信(獨逸 지맨스와 3社 合作)을 세웠고, 1974年엔 NEC(일본전기)와 合作해 錦城電氣를 設立했다.

    具滋暻 會長은 機敏하면서도 LG그룹의 實속 經營과 內實을 쌓는 데 注力했다. 企業 이미지를 말할 때 ‘現代’는 豪放하고 迫眞感 넘치고, ‘三星’은 緻密하고 세련됐다고들 한다. ‘LG’는 堅固하고 內實 있는 企業이라는 이미지가 剛하다. 具滋暻 會長의 堅實한 人品이 LG의 企業 DNA로 昇華된 셈이다.

    節制된 儒敎的 家風 속에서 자라며 空冊 한 卷, 鉛筆 한 자루 허투루 쓰지 않는 儉朴함을 體得했고, 이는 實事求是(實事求是)를 追求하면서도 外形보다 實質을 더 重視하는 企業 精神을 일구는 方向으로 나아갔다. 1995年 그룹 經營權을 長男인 구본무 會長에게 물려주기까지 25年間의 LG는 內實을 다졌다. 具滋暻 會長이 在任하는 동안 LG그룹은 賣出 260億 원에서 30兆 원臺로 約 1150倍 成長했다. 任職員 數도 2萬 名에서 10萬 名으로 늘었다.

    “會長(구본무)李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아. 事實은 會長한테 絶對로 1等夏至 말라고 했는데….” (한국경제신문 인터뷰, 2003年)

    急激한 成長을 이끈 具滋暻 會長의 實속 經營을 端的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는 이러한 實속 經營을 하면서도 1980年代 後半부터는 다가올 21世紀를 主導할 수 있는 企業 體質을 갖추기 위한 事前 準備를 차근차근 했다. 未來를 위한 硏究開發 投資와 企業의 持續 發展을 위한 透明하고 安定的 資金 調達을 꾀했다. 卽 企業公開(IPO)다.

    1970年 2月 그룹의 母體 企業人 락희化學이 民間 企業으로서는 國內 最初로 上場했다. 이어 電子業界 最初로 금성사가 企業公開를 하면서 主力 企業을 모두 公開한 韓國 最初의 그룹이 됐다. 以後 錦城通信(1974), 半島上司·錦城電氣(1976), 錦城繼電(1978), 럭키콘티넨탈카본(1979) 等 10年間 10個 系列社의 IPO를 斷行했다.

    이 期間 具滋暻 會長은 顧客 中心 價値 創造, 人間 尊重 經營을 經營理念으로 追求했다. LG그룹의 初期 經營理念이 創業 家門 및 創業者들의 哲學을 反映했다면 以後의 經營理念은 初期 經營理念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急變하는 經營 環境에 맞춰 새롭게 要求되는 哲學을 더하면서 發展한 것이 特徵이다. 具滋暻 會長은 先親의 ‘人和團結’에 基礎를 둔 ‘人間尊重 經營’과 當時 物件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時節 槪念조차 生疏한 ‘顧客價値 經營’을 새로운 經營理念으로 宣布하며 變化를 이끌어갔다.

    具滋暻 會長은 1995年 구본무 會長에게 그룹을 넘겨준 뒤에는 徹底하게 平凡한 自然人으로 살았다. 大企業 最初 ‘誣告(無故·아무런 事故나 理由가 없음) 承繼’로 記錄되며 新鮮한 波長을 일으켰다. “한番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九人會 會長의 말에 따라 隱退한 後엔 後進의 領域을 確實히 지켜줬다.

    具滋暻 會長이 자리에서 물러날 때 創業 때부터 그룹 發展에 貢獻해 온 허준구 LG電線 會長을 비롯해 구태회 顧問, 구평회 LG商社 會長, 허신구 LG石油化學 會長,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會長 等 當時 創業 世代 元老 會長團도 ‘同伴 退陣’을 斷行해 큰 龜鑑이 됐다.

    世界 1位 배터리 낳은 ‘글로벌 創業主’ 花潭 구본무

    1995년 2월 22일 구본무 회장이 취임식에서 LG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흔들고 있다. [LG그룹]

    1995年 2月 22日 구본무 會長이 就任式에서 LG로고가 새겨진 旗발을 흔들고 있다. [LG그룹]

    구본무 會長은 1995年 2月 具滋暻 會長 뒤를 이어 會長職에 올랐다. 會長就任 한 달 前에는 社名도 LG로, 그룹 이미지(CI)도 붉은色 原形 바탕에 럭키의 ‘엘(L)’과 골드스타의 ‘知(G)’를 새긴 只今의 形態로 바꿨다. CI의 變更은 具滋暻 會長이 쌓아온 內實 있는 實속 經營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그룹으로 跳躍하겠다는 意志였다. 구본무 會長은 就任辭에서 “내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世界 超優良을 追求하는 會社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果敢히 挑戰해서 最高를 成就해야 한다”라는 말로 글로벌 企業의 意志를 밝혔다.

    創業主는 具仁會지만 ‘글로벌 創業主’는 구본무라는 評價가 나온다. 實際 구본무 會長 任期 中 LG그룹의 賣出은 30兆 원臺(1994年 末 基準)에서 2017年 末 160兆 원臺로 5倍 以上, 特히 海外 賣出은 約 10兆원에서 約 110兆 원으로 10倍 以上 成長했다. 海外 賣出이 全體 賣出에서 차지하는 比重이 30%에서 約 70%로 늘어났다. 이는 1999年 LG半導體 賣却, 같은 해 LIG그룹 系列分離, 2003年 LS그룹 系列分離, 2005年 GS그룹 分離, 2007年 LF그룹 系列分離 等 等 굵직한 系列分離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成長한 것이다.

    九人會 會長의 家訓 ‘人和團結’로 뿌리내린 經營理念을 具滋暻 會長이 顧客 中心 價値 創造, 人間 尊重 經營으로 발전시켰다면 구본무 會長은 正直과 工程을 바탕으로 한 ‘程度 經營’으로 價値創造型 一等主義 經營理念을 追求했다.

    1999年 始作된 LG그룹의 系列分離는 自然스럽게 구본무 會長으로 하여금 核心 事業을 除外한 事業들은 整理하고, 核心 事業의 글로벌 競爭力은 提高하게끔 했다. 그는 電子, 化學, 通信서비스 3大 核心 事業群을 集中的으로 育成했다. 20世紀 말에서 21世紀로 넘어가는 當時엔 世界化라는 波高가 밀려들고 있었다. 우리 産業은 싸게, 잘 만들어서 先進國에 팔던 環境인 ‘Fast Follower’에서 더 높은 技術로, 새로운 價値를 提供해야 하는 ‘First Mover’가 돼야 살아남는 環境으로 急變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1998年 國際通貨基金(IMF) 外換危機 以後 海外資本에 對한 門戶가 開放되면서 資本市場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 水準의 透明性도 要求하기 始作했다. 구본무 會長은 2003年 大企業 最初로 持株會社 體制로 轉換해 한발 앞선 先進 經營시스템을 構築했다. LG는 大企業의 痼疾的 問題로 指摘된 循環出資의 고리를 끊고, 會社가 오로지 本然의 自己 事業에만 專念할 수 있는 시스템을 構築했다.

    ‘SK-소버린 事態’의 敎訓이 이러한 支配構造 改編을 앞당기는 데 한몫했다. 2003年 소버린資産運用은 SK그룹의 持株會社인 SK㈜의 持分을 8.64% 確保했다는 內容의 報告書를 提出한 뒤 繼續 株式을 買入했다. 이듬해인 2004年에는 及其也 SK㈜ 株式 1902萬餘 株를 사들여(총 1689億 원) 資産 規模 17兆원 企業의 1代 株主(14.99%)로 登極했다. 當時 최태원 SK그룹 會長 等 總帥 一家의 直接 持分은 1.39%에 그쳤다.

    소버린은 1年 後인 2005年 7月 SK㈜ 株式 全量을 處分했다. 賣買 差益과 配當金, 換差益을 合算하면 9437億 원, 不過 2年 4個月 만에 投資金의 4倍인 1兆 원에 가까운 收益을 가져가며 韓國 大企業의 支配構造와 經營權에 警鐘을 울렸다. 이 事件으로 구본무 會長은 支配株主의 持分 15%를 마지노線으로 强調했다. 2018年 具光謨 會長에게 相續하면서도 持分 15%를 지킬 것을 强調한 것으로 傳해진다.

    구본무 會長은 程度 經營을 통한 一等主義를 持續 可能하도록 하는 것은 끊임없는 新成長動力 發掘과 投資라고 믿었다. 그의 ‘뚝심과 끈氣’ 經營은 이를 뒷받침했다. 권영수 前 副會長이 隱退하며 그의 뚝심과 끈氣의 리더십에 對한 感謝를 표했듯, 구본무 會長의 經營 哲學은 ‘2次電池’에서 드러난다.

    충북 청주시 오창 LG에너지솔루션 2차전지 공장. [동아DB]

    忠北 淸州市 梧倉 LG에너지솔루션 2次電池 工場. [東亞DB]

    1991年 當時 副會長이던 구본무 會長은 그룹의 未來 新成長動力 發掘을 위해 떠났던 英國 出張길에서 偶然히 2差電池를 接한다. 한番 쓰고 버리는 乾電池가 一般的이던 時節, 充電하면 여러 番 反復 使用이 可能한 2差電池는 그에게 新鮮한 衝擊으로 다가왔고, 그는 여기서 未來 事業의 可能性을 엿본다.

    럭키金屬에서 始作한 2次電池 硏究는 1996年 LG化學으로 移轉된다. 리튬電池가 陰極材, 兩極財, 電解質 等 化學物質로 構成돼 있는 만큼 素材 分野 硏究에 强點이 있는 LG化學이 專擔하는 것이 效率的이라고 判斷한 것이다.

    成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1997年 LG化學 硏究陣이 처음으로 小型電池 파일럿 生産에 成功하긴 했지만 大量 量産에는 나설 수 없었다. 品質이 따라주질 않았고, 日本 先發 業體들의 技術力을 따라잡기에도 力不足이었다. 數年間의 投資에도 不拘하고 可視的 成果가 나타나지 않자 事業을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意見이 여기저기서 提起됐으나 구본무 회장은 “抛棄하지 마라. 길게 보고 投資하자”며 “硏究開發에 더욱 集中해라. 꼭 成功할 수 있다는 確信을 가지고 다시 始作하라”고 督勵했다.

    LG化學은 2005年 2次電池 事業에서 無慮 2000億 원에 達하는 赤字를 記錄했다. 이때도 구본무 會長은 事業에 對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2次電池 事業은 우리의 未來 成長動力”이라며 “끈질기게 하면 반드시 成果가 나올 것”이라고 다시 한番 任職員을 다독였다. 2009年 LG化學이 美國 完成車 企業 GM의 電氣車用 리튬이온 배터리 單獨 供給業體로 選定되면서 LG그룹은 過去 日本을 追擊하던 處地에서 世界市場을 主導하는 企業으로 탈바꿈하기 始作했다.

    LG化學은 2011年부터 2次電池 事業에서 黑字를 냈다. 2013年에는 글로벌 市場調査業體 네비건트리서치가 發表한 世界 電氣車 배터리 企業 評價에서 主要 業體들을 따돌리고 1位를 차지했다. 2次電池 事業을 始作한 지 20餘 年 만의 成果였다. 數十 年에 걸친 赤字에도 不拘하고 꾸준히 뚝심과 끈氣로 硏究開發에 莫大한 資金을 쏟아부은 結果였다. 10年이 지난 現在까지 LG그룹은 中國 CATL의 猛烈한 追擊에도 中國을 除外한 글로벌 2次電池 市場에서 世界 1位를 지키고 있다.

    親政 體制 構築, B2B·未來 事業 大轉換 具光謨

    구본무 會長의 經營은 2018年 그의 腦腫瘍으로 인해 幕을 내렸다. 長子承繼 原則을 지켜온 LG그룹은 理事會를 열어 40歲의 具光謨 LG電子 常務를 代表理事 會長으로 삼았다. 具光謨 會長이 經驗을 더 쌓을 동안 작은아버지인 구본준 當時 副會長이 LG그룹을 總括하면서 징검다리 役割을 맡을 것이란 展望도 있었지만 48年 前 구철회 社長이 그랬듯 구본준 副會長은 具光謨 會長을 推戴하고 3年 後인 2021年 5月 LX그룹으로 分離 獨立했다.

    2006年 LG電子 財經部門 代理로 入社한 具光謨 會長은 LG電子 HE事業本部·HA事業本部, ㈜LG 시너지팀 等을 거쳤다. 特히 2014年부터 2018年까지 約 4年 동안 ㈜LG 시너지팀, 經營戰略팀 等에서 LG그룹의 未來 事業 發掘에 關與해 왔다. 이 期間의 具光謨 會長에 對한 對內外的 評價는 “顧客과 市場 等 事業의 本質을 理解하려 努力하고, 先制的으로 市場을 만들고 앞서가기 爲한 戰略을 苦悶하는 데 힘을 쏟는다”였다.

    祖父인 具滋暻 會長이 40代에 갑작스럽게 會長이 됐을 때 그랬듯 40歲의 具光謨 會長 亦是 機敏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는 먼저 事業構造 改編과 이를 위한 人材 登用과 組織文化 構築에 變化의 始動을 걸었다.

    그의 機敏함은 人材 起用에서 始作됐다. 會長 就任 後 實質的 自身의 人事라고 할 수 있는 2019年 人事 때 ‘世代交替’와 ‘外部 輸血’을 통한 內部 組織의 變化를 이끄는 同時에 親政 體制 構築을 進行했다. 2019年 任員 人事에서 副會長團 6人 가운데 박진수 LG化學 副會長이 代表理事 자리에서 물러났고, 2019年 9月에는 한상범 前 副會長이 LG디스플레이 代表理事 자리를 辭任했다. 이어 조성진 前 LG電子 副會長, 하현회 前 LG유플러스 副會長 等이 退任한 後 2022年 차석용 前 LG生活健康 副會長, 지난해 권영수 副會長까지 勇退하며 世代交替를 마무리했다.

    LG그룹의 核心인 電子 部門 首長을 조성진 副會長에서 當時 50代 中盤인 권봉석 社長(現 LG 副會長 代表理事)으로 交替했고, 化學 部門 首長은 박진수 副會長에서 外部 出身인 신학철 副會長으로 交替했다. 이는 世代交替와 外部 輸血의 象徵과도 같았으며 LG그룹은 現在까지 이렇게 ‘2人 副會長’ 體制를 維持하고 있다.

    具光謨 會長은 事業 改編도 斷行했다. 구본무 會長의 核心 事業인 電子, 化學, 通信서비스 等 3大 核心 事業群 가운데 스마트폰 事業을 비롯해 燃料電池, 照明用 OLED, 電子決濟, 偏光板 等 不振한 事業을 整理했다. 代身 AI와 배터리, 戰場 事業 等 新事業을 中心으로 主要 系列社의 體質 改善을 꾀했다. 이러한 變化로 LG그룹의 公正資産 規模는 2018年 123兆1000億 원에서, 지난해 4月 基準 171兆2440億 원으로 늘었다. 會長 就任 5年 만에 39.1% 불어난 셈이다.

    具光謨 會長은 그룹의 事業 構造 亦是 ‘選擇과 集中’ 戰略을 통해 B2C(企業 對 顧客)에서 B2B(企業 對 企業)로 轉換을 꾀했다. 會長 就任 以後 B2B 事業을 擔當하는 BS事業本部를 부활시켰다. B2B事業은 B2C事業과 比較해 相對的으로 景氣沈滯에 影響을 덜 받고, 長期 顧客社 確保에 成功하면 安定的 事業 展開와 收益 獲得이 可能하다. 具光謨 會長은 100% B2B 事業인 戰場 事業과 배터리에 大大的으로 投資했고, 이 戰略은 빛을 보기 始作했다.


    LG에너지솔루션 분기별 실적 그래프.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分期別 實績 그래프.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事業을 擔當하는 LG에너지솔루션이 歷代 最大 實績을 記錄하며 主要 收益源으로 자리 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賣出 33兆7455億 원, 營業利益 2兆1632億 원을 達成했다. 前年 對比 賣出은 31.8%, 營業利益은 78.2% 增加한 數値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그룹의 母胎인 LG化學의 不振을 挽回하며 새로운 캐시카우(Cash Cow)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LG電子 生活家電(H&A)事業本部는 年賣出 30兆 원 時代, 戰場(VS)事業本部는 年賣出 10兆 원 時代를 各各 열며 安定的 成長 基盤과 未來 動力을 모두 確保했다. LG電子의 지난해 4分期 賣出은 23兆1041億 원, 營業利益은 3131億 원이다.

    事業本部別 實績을 보면, H&A事業本部는 지난해 營業利益 2兆 원 時代를 열었다. 2022年 1兆1296億 원에서 지난해 2兆78億 원을 記錄했다. 營業利益率도 2022年 3.8%에서 지난해 6.6%로 크게 改善됐다. 유럽 中心의 프리미엄 需要 不振에 對應하고 冷暖房共助, 빌트인, 部品 等 B2B 市場에 積極 對應한 게 奏效했다.

    未來 먹거리인 戰場 事業의 宣傳도 두드러졌다. 注目할 點은 電氣車 市場 鈍化에도 黑字를 냈다는 것이다. VS事業本部는 지난해 賣出 10兆1476億 원, 營業利益 1334億 원을 記錄했다. 올해는 글로벌 景氣 不況과 유럽의 TV·家電 需要 沈滯로 어려움이 豫想되지만 生産事業腸 平均 稼動率이 100%가 넘었고, 受注 物量이 擴大돼 收益性·賣出 모두 成長勢가 期待된다. 이를 통해 LG電子는 2030年까지 全體 賣出 가운데 B2B 關聯 賣出을 40%까지 끌어올릴 計劃이다.

    독해진 LG, 2024年 ‘Beyond LG’ 元年 삼아야

    1월 9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서 LG전자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LG 시그니처 올레드 T’로 구성된 미디어아트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1月 9日 美國 네바다州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열린 世界 最大 家電·IT 展示會 ‘CES 2024’에서 LG電子 展示館을 찾은 觀覽客들이 ‘LG 시그니처 올레드 T’로 構成된 미디어아트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具光謨 會長의 親政 體制 構築과 事業 構造 改編엔 選對 會長과는 다른 變化가 눈에 띈다. ‘人和’의 LG가 ‘毒해졌다’고 할 만큼 攻擊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LG그룹은 2019年 競爭社와 배터리 紛爭을 벌여 2021年 最終 結論이 나기까지 달려들어 無慮 2兆 원에 達하는 合意金을 받아냈다. 顧客社의 電氣車 火災 및 리콜 發生 때도 分擔金 比重 調整에서 熾烈하게 다퉈 그 나름대로 善防했다.

    具光謨 會長은 2022年 美國의 IRA(인플레이션 減縮法)로 營業 環境이 바뀌자 글로벌 배터리 工場을 잇달아 찾았다. IRA는 배터리 原料를 美國이나 同盟國 內에서 求해야 하는 걸 原則으로 하기 때문에 韓國 政府조차 當場 實現은 不可能할 것이라 診斷할 程度의 難題였지만 LG그룹은 모든 로비力을 쏟아 이에 對應했다. 相對的으로 電氣車 進出이 늦은 世界 1位 自動車會社 도요타가 美國市場 進出을 위한 파트너로 LG를 擇한 것이 이를 傍證한다.

    올해까지 約 6年間 在任하는 동안 具光謨 會長의 共通된 키워드는 ‘顧客’이다. 2018年 會長 就任 以後 具光謨 會長은 2019年 첫 新年辭에서 “LG가 나아갈 方向을 數없이 苦悶해 봤지만 結局 그 答은 ‘顧客’에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키워드는 ‘挑戰’, 그것도 ‘果敢한 挑戰’이다. 구본무 會長이 남겨놓은 LG그룹의 核心 戰略 基地, 서울 麻谷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任職員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果敢하게 挑戰하지 않는 것이 失敗다. LG사이언스파크만의 挑戰 文化를 만들어달라”고 注文한 것은 잘 알려진 逸話다.

    企業經營을 하는 이들이 共通되게 追求하는 目標는 ‘偉大한 成果를 오랫동안, 持續的으로 내는 것’이다. 이를 爲해선 急變하는 環境에서 지켜야 할 것을 붙들며, 이를 土臺로 環境에 適應해 變化해야 한다. 具光謨 會長에게 올해는 LG의 核心 價値를 지키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Beyond LG’ 元年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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