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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은 與로 이언주는 野로… 철새 連帶記|新東亞

이상민은 與로 이언주는 野로… 철새 連帶記

金富謙·孫鶴圭·이인제 移籍 비슷한 場面 어디서 봤더라?

  • 金星坤 이데일리 記者

    skzero@edaily.co.kr

    入力 2024-02-2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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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敵의 敵은 同志” 總選 앞둔 離合集散

    • 李仁濟·金民錫·孫鶴圭 妙한 共通點

    • 脫黨·復黨, 議員 꿔주기, 黨籍 變更

    • 金富謙과 陣營은 多少 獨特한 事例

    • 北美·유럽에는 없는 韓國的 現象

    • 劃一化된 政黨 文化 固着化가 原因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상민 의원(왼쪽)과 국민의힘 탈당 후 민주당 복당을 선언한 이언주 전 의원. [동아DB]

    더불어민주당을 脫黨해 國民의힘에 入黨한 이상민 議員(왼쪽)과 國民의힘 脫黨 後 민주당 復黨을 宣言한 李彦周 前 議員. [東亞DB]

    바야흐로 總選의 季節이다. 與野 離合集散이 어지럽다. 國民의힘과 더불어民主黨의 兩强 構圖 속에서 여야 脫黨派들이 主導한 第3地帶 빅텐트마저 登場했다. 더 나아가 ‘進步에서 保守로, 報酬에서 進步로’ 政治 行路를 180度 뒤집는 境遇도 茶飯事다. 政治的 名分보다는 ‘金배지’라는 實利를 選擇한 것이다. 歷代 總選 때마다 되풀이돼 온 ‘黨籍 變更’의 歷史다. 代表的 事例가 이상민 議員과 李彦周 前 議員이다. 민주당을 脫黨한 이상민 議員은 國民의힘을 選擇했다. 國民의힘을 脫黨한 李彦周 前 議員도 민주당 復黨을 宣言했다. 與野 모두 남는 장사다. 國民의힘은 가장 代表的인 李在明 狙擊手를, 民主黨은 李俊錫 改革新黨 共同代表에 버금가는 尹錫悅 狙擊手를 얻을 수 있다. 支持層 結集과 外延 擴張을 위한 戰略的 考慮다.

    다만 ‘철새 政治人’이라는 꼬리票는 덤이다. 180度 正反對의 黨籍 變更은 아무래도 語塞하다. 政治哲學과 信念보다 總選 勝利의 有不利가 우선시된다. ‘내가 하면 決斷, 남이 하면 철새’라는 내로남不度 橫行한다. 選擧철마다 反復되는 脫黨·復黨·政黨 異跡은 北美나 유럽에서는 事例를 찾기 힘든 韓國만의 獨特한 現象이다. 멀게는 ‘1盧3金(盧泰愚·김영삼·金大中·김종필)’ 87年 體制 樹立 以後 1990年 3黨 合黨이나 1997年 DJP(金大中·김종필) 連帶 等 메가톤級 政界 改編 事例도 있다. 2000年代 以後 3金政治의 消滅과 더불어 ‘保守 vs 進步’라는 一對一 兩黨 構圖가 成事됐지만 選擧 때마다 철새 論難은 反復돼 왔다. 敵對的 共生 構造에 基盤한 兩黨 體制의 餘波였다. 政治的 고비 때마다 反復돼 온 主要 政治人들의 政黨 移籍史를 되짚어봤다.

    “黨籍 變更, 宏壯한 리스크 甘受해야”

    “敵의 敵은 同志다.” 與野 政治權의 有名한 格言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며 獨裁에 抵抗했던 김영삼 前 大統領이 3黨 合黨으로, 維新政權의 最大 被害者였던 金大中 前 大統領이 DJP 連帶를 武器로 大權을 거머쥔 게 代表的이다. 政治는 돌고 돈다. 4月 第22代 總選에서도 類似한 事例가 나타날 兆朕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상민 議員과 李彦周 前 議員의 行步다.

    李在明 代表 體制의 민주당을 辛辣하게 批判했던 이상민 議員은 國民의힘을 選擇했다. 한때 ‘保守의 與專社’로 불린 李彦周 前 議員은 國民의힘을 脫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당 復黨설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所長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철새 이미지로 成功한 政治人은 흔치 않다”며 “國民의 意識水準이 높아진 만큼 黨籍 變更은 宏壯한 리스크를 甘受해야 한다”고 指摘했다.

    이상민 議員은 17代 總選부터 21代 總選까지 大田 儒城乙에서만 내리 5選을 記錄한 重鎭이다. 18代 總選 當時 自由先進黨을 除外하고는 모두 民主黨 所屬으로 當選됐다. 李 議員은 脫黨의 邊에서 “民主黨은 李在明 代表 體制 以後 李在明 祠堂, 개딸糖으로 變質돼 反常識的이고 破廉恥하기까지 한 行態가 常習的으로 蔓延됐다”고 批判했다. 評價는 極端的이다. 不可避한 選擇이라는 擁護論과 철새에 不過하다는 酷評이 나온다. 李 議員으로서는 政治 人生을 건 賭博이다. 成功한다면 6選 高地에 오르면서 22代 國會에서 國會議長職度 노려볼 수 있다. 失敗한다면 政界 隱退 以外의 選擇肢를 찾기 힘들다.



    辯護士 出身의 李彦周 前 議員은 19·20代 總選 當時 京畿 光明乙에서 民主黨 所屬으로 再選 高地에 올랐다. 한명숙 前 國務總理가 主導한 迎入 人材라는 象徵性에 민주당을 代表하는 次世代 女性 리더로 成長했다. 다만 過度한 親文 霸權主義 批判 論難 속에 2017年 4月 安哲秀 候補 公開 支持와 함께 國民의黨으로 옮겼다. 以後 바른未來黨을 거쳐 21代 總選을 앞두고 未來統合黨에 合流했다. 尹錫悅 政府 出帆 後에는 尹 大統領과 김건희 女史를 正照準한 猛非難을 쏟아내며 눈길을 모았다. 脫黨 以後 第3지代行이 점쳐졌지만 李在明 代表의 提案으로 民主黨 復黨을 宣言했다. 復黨이 議決된다면 親庭 復歸지만 難題는 적잖다. 公薦 與否는 勿論 向後 政治 行步도 不透明하다.

    最大 關心事는 두 사람의 汝矣島 入城 與否다. 最近 與野 間 保守·進步의 境界線이 많이 허물어졌다고는 하지만 黨籍 變更은 如前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成功하면 大박, 失敗하면 政界 隱退 手順이다. 최진 大統領리더십硏究院長은 “黨을 옮긴다는 것은 本人의 所信과 價値, 世界觀을 모두 바꾸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가”라고 反問하면서 “政治的 價値나 哲學의 指向點 없이 短期的 實益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保守와 進步를 넘나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新律 명지대 政治外交學科 敎授는 “黨籍 變更은 韓國 政治의 後進的 現象”이라면서도 “이를 改善하기 위해서는 與野 內部에서 시스템 公薦이 確實하게 保障돼야 한다. 가장 問題가 되는 게 競選이 保障되지 않는 戰略公薦이나 單數公薦”이라고 指摘했다.

    어지러운 黨籍 變更史 百態

    韓國 政治는 ‘保守·進步’라는 理念과 ‘英·湖南’이라는 地域을 根幹으로 構築된 巨大 兩黨 構造다. 다만 仔細히 뜯어보면 不安定한 體制다. 87年 體制 成立 以後 歷代 大選과 總選은 多者 構圖의 痕跡이 적잖다. 大選만 본다면 △2002年 大選(盧武鉉 vs 李會昌) △2012年 大選(박근혜 vs 文在寅) △2022年 大選(尹錫悅 vs 李在明) 程度가 事實上의 兩者 對決이었다.

    總選도 마찬가지였다. 脫黨·분당·合黨 等 與野의 合從連橫이 어지럽게 反復됐다. 민주당 系列 政黨은 2004年 17代 總選(민주당 盆唐과 열린우리당 創黨), 2016年 20代 總選(새정치민주연합 盆唐과 國民의黨 創黨)을 거치며 分裂과 統合을 지루하게 反復했다. 國民의힘 系列 政黨 亦是 2016年 國政壟斷·彈劾 事態의 餘波 속에서 마찬가지 흐름을 持續했다. 政治權의 合從連橫이나 大規模 政界 改編의 소용돌이 속에서 與野 議員들은 뜻하지 않게 黨籍이 뒤바뀌는 境遇가 不知其數였다.

    民主黨은 17代 總選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創黨으로 盆唐乙 經驗했다. 以後 노무현 政府 末期 盧武鉉 前 大統領의 레임덕과 不透明한 大選 展望에 수없는 離合集散 끝에 大統合民主新黨이 만들어졌다. 2009年 盧武鉉 前 大統領의 逝去 以後 민주당 單一隊伍로 統合했지만 2016年 20代 總選에서 또다시 親文 霸權主義 論難과 안철수 議員의 獨自勢力化로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民主黨과 國民의黨으로 分裂됐다. 이러한 過程을 거치면서 민주당 系列 出身의 一部 政治人은 2012年 大選에서 박근혜 前 大統領 支持, 2022年 大選에서 尹錫悅 大統領 支持라는 180度 다른 選擇을 하기도 했다. 親盧·親文의 主導權 確認 以後 민주당은 安定的인 黨 運營을 이어왔지만 지난 大選 以後 親命 主導로 黨이 再編되면서 22代 總選을 앞두고 李洛淵 前 國務總理(現 改革新黨 共同代表) 等의 脫黨에 이어 悲鳴系의 追加 脫黨도 豫想된다.

    國民의힘은 總選 公薦 때마다 大規模 分裂을 經驗했다. 2008年 18代 總選 當時 親李系의 親朴 公薦 虐殺에 따른 親朴聯隊와 親朴無所屬連帶의 突風이 代表的이다. 以後 總選에서도 公薦 論難에 따른 脫黨과 復黨이 反復됐다. 20代 總選 當時 眞朴 公薦과 非朴系 虐殺은 總選 敗北의 原因이 됐다. 21代 總選에서는 無所屬 4人坊(洪準杓·權性東·김태호·尹相現)李 當選 以後 復黨하기도 했다. 2016年에는 國政壟斷·彈劾事態로 創黨 以後 最大 分裂을 經驗했다. 새누리黨은 自由韓國當 vs 바른政黨으로 分裂됐다가 2018年 自由韓國黨 vs 바른未來黨(바른政黨+國民의黨)을 거쳐 2020年 21代 總選 直前에야 未來統合黨으로 이어졌다. 이番 22代 總選에서는 李俊錫 前 代表(現 改革新黨 共同代表)의 線도 脫黨에 이어 公薦 以後 非윤계 落薦者들의 改革新黨 追加 合流도 占쳐진다.

    ‘6選의 不死鳥’ ‘철새 꼬리票’ ‘不運의 아이콘’

    이인제 전 의원과 김민석 민주당 의원,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왼쪽부터). [동아DB]

    이인제 前 議員과 김민석 민주당 議員, 손학규 前 바른未來黨 代表(왼쪽부터). [東亞DB]

    △1990年 3黨 合黨 △1997年 DJP連帶 △2004年 열린우리당 創黨 △2020年 未來統合黨 創黨은 勢力 次元의 統合이었다. 政治史를 돌이켜 보면 個人的 次元의 黨籍 變更도 엄청난 衝擊波를 던진 事例가 적잖다. 이인제 前 議員, 김민석 민주당 議員, 손학규 前 代表가 代表的이다. 최진 大統領리더십硏究院長은 “該當 政治人들은 結果的으로 國民의 信望과 尊敬을 받는 指導者 班列에 오르지 못했다”며 “本人들의 華麗한 政治 履歷을 考慮하면 매우 뼈아픈 대목”이라고 指摘했다.

    이인제 前 議員은 흔히 ‘不死鳥’로 불린다. 黨籍 變更은 그야말로 華麗하다. 김영삼 前 大統領이 主導했던 統一민주당을 始作으로 민주당系 政黨, 忠淸圈 地域政黨, 保守政黨을 두루 거쳤다. 2002年 民主黨 大選候補 競選 當時 大勢論에도 盧武鉉 前 大統領에게 逆轉敗한 根本 理由로 黨籍 變更을 꼽기도 한다. 6線 經歷 또한 統一민주당(13代), 民主自由黨(14代), 새千年民主黨(16代), 自由民主聯合(17代), 無所屬(18代), 自由先進黨(19代) 等으로 同一 黨名이 아니다. 20代 總選에서 새누리당 候補로 忠南 論山·鷄龍·錦山에, 2018年 第7回 地方選擧에서 自由韓國當 候補로 忠南知事에 挑戰했지만 모두 失敗했다. 22代 總選에서도 出馬 意志를 다지면서 捲土重來를 노리고 있다.

    김민석 議員의 事例는 가장 論爭的이다. 서울대 總學生會長 出身으로 86(1980年代 學番·1960年代 出生)世代를 代表했던 金 議員은 15代 總選에서 萬31歲로 最年少 國會議員이 된 以後 16代 總選에서 再選에 成功했다. 次世代 리더로 乘勝長驅했지만 그야말로 “한 房에 훅 갔다”는 評價를 받았다. 2002年 大選 局面에서 民主黨 脫黨과 더불어 정몽준 國民統合21 候補를 選擇, 엄청난 波紋을 일으켰다. 以後 政治 人生 내내 ‘철새’라는 꼬리票에 시달렸다.

    現役 復歸까지는 20年이 걸렸다. 20餘 年의 貴重한 時間을 政治 浪人으로 흘려보냈다. 金 議員은 21代 總選에서 千辛萬苦 끝에 汝矣島로 復歸했다. 以後 機會 있을 때마다 “노무현 候補의 支持率이 떨어지는 狀況에서 이회창 候補의 勝利를 沮止하기 위해 候補單一化가 必要했다”고 强調했지만 一部의 뿌리 깊은 否定的 視線 또한 如前하다.

    손학규 前 代表의 黨籍 變更도 큰 衝擊을 줬다. 그는 노무현 政府 時節 한나라당을 脫黨했다가 열린우리당 後身인 大統合民主新黨 大選 競選에 電擊 參與했다. 李明博·박근혜 兩强 構圖를 깨지 못하고 單騎匹馬로 黨籍을 옮긴 것이었다. ‘低評價 優良株’라는 評價에도 以後 政治 人生은 不運의 連續이었다. 特히 重大한 政治的 決斷을 내릴 때마다 메가톤級 이슈가 터지는 ‘孫鶴圭 징크스’로 애를 먹었다. 민주당과 國民의黨 大選 競選에 3次例 나섰지만 모두 失敗했다.

    禿수리 5兄弟에서 陣營 前 長官 事例까지

    多少 奇怪한 黨籍 變更 事例도 있다. 이른바 ‘議員 꿔주기’다. 김대중 政府 時節 자민련의 院內交涉團體 維持를 위해 새千年民主黨 所屬 議員 一部가 자민련으로 黨籍을 移動한 것이다. 꼼수 政治에 不過한 議員 꿔주기 事例는 20年이 흐른 21代 總選 當時 比例代表 衛星政黨 論難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했다.

    援助 ‘議員 꿔주기’ 事例는 金大中 前 大統領과 김종필 前 總理 간 政治的 妥協의 産物이었다. DJP 連帶를 再構成해 한나라당에 對抗하기 위한 目的이 컸다. 2000年 16代 總選 以後 17席을 얻는 자민련의 院內交涉團體 維持를 위해 새千年民主黨 所屬인 송석찬·배기선·송영진·장재식 議員이 자민련으로 移籍했다. ‘議員 꿔주기’라는 稀代의 코미디는 內閣制 霧散과 對北政策에 對한 視角差로 DJP 連帶가 崩壞되면서 幕을 내렸다. 자민련으로 移籍했던 민주당 議員들은 以後 親庭인 민주당으로 復歸했다.

    21代 總選에서 ‘議員 꿔주기’는 그야말로 亂場판이었다. 與野는 總選 不出馬 또는 公薦 脫落 現役議員들을 比例 衛星政黨으로 大擧 떠넘겼다. 이는 比例代表 投票用紙 記號를 上位 順番으로 配置하기 위한 꼼수였다. 問題는 22代 總選에서도 準聯動兄弟의 維持로 比例代表 衛星政黨이 存置하면서 자칫하면 또다시 議員 꿔주기라는 事例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點이다.

    議員 꿔주기와 正反對인 俗稱 ‘議員 빼가기’도 特異 事例다. 過半 確保에 失敗한 執權 與黨이 試圖한 人爲的인 政界 改編에 該當한다. 政策連帶라는 包裝에도 野黨 議員이나 無所屬 議員을 당근·채찍을 武器로 스카우트해서 與小野大를 與大野小로 만든 것이다. 15·16代 總選에서 各各 過半 議席 確保에 失敗한 신한국당과 새천년민주당이 政局 安定을 名分으로 使用한 戰略이었다.

    정당을 옮긴 인물 중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왼쪽)와 진영 전 행정안전부 장관. [동아DB]

    政黨을 옮긴 人物 中에서 比較的 좋은 評價를 받는 金富謙 前 國務總理(왼쪽)와 陳永 前 行政安全部 長官. [東亞DB]

    이 밖에 2003年 노무현 政府 時節 열린우리당에 合流한 한나라당 出身 禿수리 5兄弟와 朴槿惠 政府 初期 민주당을 選擇한 陳永 前 保健福祉部 長官의 事例도 눈길을 끈다. 禿수리 5兄弟(金富謙·김영춘·안영근·이부영·이우재)는 철새라는 批判도 받았지만 다른 한便에서는 地域主義 克服 行步라는 讚辭를 받기도 했다. 特히 金富謙 前 總理는 ‘第2의 노무현’으로까지 불리며 注目받았지만 大選 街道에는 失敗했다. 陳永 前 長官은 第18代 大統領職引受委員會 副委員長을 맡은 朴槿惠 政府의 實勢였고 長官도 지냈지만 基礎年金 問題를 둘러싼 葛藤으로 박근혜 前 大統領과 訣別했다. 親朴 主流로 乘勝長驅했던 晉 前 長官은 19·20代 總選에서 민주당으로 黨籍을 옮겨 서울 龍山에서 當選됐다. 以後 文在寅 政府 時節에는 行政安全部 長官도 지냈다.

    排除 아닌 包容의 政黨 民主化 必要

    總選 때마다 되풀이되는 철새 論難 等 黨籍 變更은 後進的인 韓國 政治 地形의 産物이다. 理念과 政策이 中心이라는 政黨政治의 本質에 背馳되기 때문이다. 黨 內部로 視線을 돌리면 帝王的 總裁 또는 政治的 보스로 불리는 指導者 1人에 依存하는, 다시 말해 名望家 政黨의 殘滓다.

    홍형식 所長은 “黨籍 變更은 政治哲學이나 信念에서 코페르니쿠스的 大轉換이 發生할 수 있는 對內外的 狀況이 前提돼야 한다”며 “萬一 그렇다 해도 國民을 납득시켜야 하고 以後 實行해야 한다. 民主化 以後 政治的 外部 變數는 크지 않다는 點을 考慮하면 結局 黨 內部의 問題로 歸結되는 것”이라고 指摘했다. 다시 말해 韓國籍 兩黨 構造가 다양한 有權者 理念 地形을 反映하지 못하는 構造的 要因 탓이라는 것이다. 例를 들어 ‘飯(反)尹錫悅’은 ‘親(親)李在明’이라거나 ‘飯(反)李在明’은 ‘親(親)尹錫悅’이라는 黑白論理가 橫行한다는 意味다.

    1992年 大選 YS 執權, 1997年 大選 DJ 執權, 2004年 17代 總選 JP 政界 隱退 以後 3金 政治가 幕을 내렸다. 以後 韓國의 政治 地形에서 ‘保守 vs 進步’의 理念 對決이 한層 强化했다. 그러면서 與野 議員들의 180度 다른 黨籍 變更은 ‘철새 政治人’이라는 汚名 속에 批判의 標的이 됐다. 金배지만을 노리고 陽地를 좇는다는 批判이었다. 具體的 成功 事例를 찾기도 쉽지 않다.

    專門家들 亦是 韓國 政治의 後進性을 批判하면서 政黨 民主主義의 實現을 先行 條件으로 提示했다. 최진 大統領리더십硏究院長은 “帝王도 아닌데 帝王처럼 行動하는 格이다. 黨內 主流가 모든 것을 獨食하면서 閉鎖的으로 黨을 運營하기보다는 非主流를 包容하고 認定해야 한다”며 “過去 YS나 DJ는 貞操나 英祖처럼 强力한 帝王의 리더십을 가졌지만 人材를 破格的으로 拔擢하고 登用하는 蕩平을 實施했다”고 强調했다. 新律 명지대 政治外交學科 敎授는 “말로는 政黨 民主化를 이야기하지만 實狀은 劃一化된 政黨 文化가 固着化됐기 때문”이라면서 “與野 모두 다른 목소리를 包容하고 反映하는 黨內 民主主義가 制度的으로 定着돼야 한다”고 했다.

    신동아 3월호 표지.

    신동아 3月號 表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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