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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에 딴 運轉免許|新東亞

예순에 딴 運轉免許

[에세이]

  • 정성욱 是認

    入力 2024-02-1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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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月의 이른 아침, 나는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은 後 車를 몰고 千年 考察 强化 普門寺로 向했다. 그곳엔 가을 丹楓이 있었고 무엇보다 切親한 高等學校 同窓 스님이 있었다. 差가 金浦 톨게이트를 벗어나자, 물안개에 싸였던 漢江 다리 사이로 아침 해가 빼꼼 고개를 든다. 助手席에 앉은 아내는 그 光景을 바라보면서 신나는 듯 연신 歎聲을 자아낸다.

    “오래 살다 보니 男便이 運轉하는 車를 다 타보네. 거봐. 運轉하니까 얼마나 좋아. 아름다운 漢江 日出도 가까이 볼 수 있고.”

    그랬다. 還甲이 지나도록 運轉대를 單 한 番도 잡은 적이 없다. 아니 애初에 運轉할 생각조차 없었다. 出版 編輯者 生活만 30餘 年을 했고, 게다가 詩人이니 그럴 만도 했다. 出版 編輯者와 詩人은 길바닥에 널린 素材들을 주워 먹고 사는 職業이다 보니 冊의 題目, 廣告 한 줄을 쓸 때도 깊이 思惟하지 않으면 안 됐다.

    ‘運轉도 못 하는 不具者’

    [Gettyimage]

    [Gettyimage]

    實際로 施賞(詩想)과 企劃 아이디어는 地下鐵과 버스 안에서 갑자기 떠오를 때가 많았다. 甚至於 길을 갈 때도 甚한 偏執症으로 因해 돌부리에 넘어지거나 이마를 애먼 壁에 부딪히는 일이 種種 있었다. 그 傷處의 痕跡들은 아직도 콧잔등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가 들으면 拍掌大笑할 일이다. 하지만 이 바쁜 世上에 누군가가 내게 運轉하지 않는 理由를 굳이 대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 왔다.

    “出版 編輯者高 술을 말술로 마시는 글쟁이라서 萬若 運轉하게 되면 必是, 飮酒運轉을 밥 먹듯이 하게 될 것 같아서!”



    이런 핑계는 知人은 勿論 아내에게도 通했다. 그런 나를 보고 同窓 스님은 ‘運轉도 하지 못하는 不具者’라고 놀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事實 따지고 보면 뚜벅이 人生도 꽤 재미가 있다. 길이 險한 절과 庵子에 갈 때는 미리 스님에게 連絡하면 車가 터미널이나 逆轉 近處까지 왔기에 不便함을 全혀 느끼지 못했다. 甚至於 일로 出張 갈 때도 知人이나 職員들에게 付託하면 그만이었다. 只今 생각하면,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民弊를 끼쳤는지 反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그런 나의 行動에 反旗를 들었다. 아내는 運轉免許證을 取得한 지 20餘 年이 지났지만, 欌籠 免許에 不過했고 눈이 아주 나쁜 탓으로 運轉을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그런 아내가 白內障 手術을 받고 난 뒤 事物이 잘 보인다고 寫眞을 배우기 始作한 것이 問題였다. 아내는 寫眞 同好會에 加入하고 난 뒤로 時도 때도 없이 山川을 遊覽하면서 寫眞을 찍었고 어떤 때는 外泊까지 했다. 及其也 ‘다른 놈과 戀愛질하는 것 아닐까?’ 하는 異常한 想像까지 했다. 웃지 마시라. 그 當時 나는 相當히 深刻했다.

    別수 없었다. 아내의 바람氣(?)를 붙잡아 두는 方法은 내가 直接 運轉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運轉免許證을 따는 일은 생각한 만큼 쉽지 않았다. 막상 始作하려니 怯부터 났고 與件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平素에 電球 하나 갈지 못하고, 못 하나도 박지 못하는 내가 저토록 무서운 車를 運轉한다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及其也 그것은 恐怖로 밀려왔다. 運轉免許證을 따겠다는 決心은 이내 무너져 내렸다.

    그런 어느 날 아침, 期於이 아내가 事故를 쳤다.

    “當身, 運轉免許學院에 登錄했으니 熱心히 練習하고 免許證 따요, 命令이에요.”

    아내의 決心은 意外로 斷乎했다. 목소리에는 날 선 쇳가루가 잔득 묻어 있었다. 靑天霹靂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都大體 뭔 소리야, 다들 運轉免許證 返納할 나이에 나보고 運轉免許證을 따라고.”

    “나도 男便이 運轉하는 自動車 타고 全國을 쏘다니고 싶다잖아. 平生 뚜벅이로 늙어 죽을 거야? 아이들도 집 나가고 우리 둘만 사는데 이젠 제대로 旅行하면서 살아보자.”

    아내의 決心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만큼 確固했고 至毒했다. 아내는 ‘運轉免許 筆記試驗 問題집’을 房바닥에 ‘훽’ 던지고 나가버렸다. 難堪했다. 이미 巨金의 學院費도 決濟한 狀態였다. 나는 別수 없이 시킨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 所願도 들어준다는데, 아내가 그토록 所願이라는데 한番 해보자.’

    한番 슬쩍 훑어보고, 치른 筆記試驗과 機能試驗에 다행스럽게도 單 한 放에 合格했다. 나는 마치 國家考試에 合格한 것처럼 기뻤지만 다음 날 치른 道路 走行 試驗에는 出發하자마자 ‘信號 違反’으로 不合格했다. 겨우 4時間 練習한 뒤 치른 試驗이니 當然했다. 그 以後로 連거푸 세 番이나 더 떨어졌다. 抛棄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 監督官이 이런 말을 했다.

    “先生님은 運行은 잘하시는데 자꾸 깜빡깜빡하고 性格이 急하신 것 같아요. 남들 運轉免許證 返納하는 나이에 그냥 便하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氣가 찼다.

    ‘무슨 말을 이렇게 하지.’

    監督官은 한술 더 떴다.

    “나이 앞 數字만큼 떨어져야 合格할 수 있어요.”

    아내가 依託할 수 있는 베스트 드라이버

    갑자기 마음이 不便해졌다. ‘靑少年 保護區域 速度違反’ ‘信號違反’ ‘깜빡이 違反’ ‘中立違反’이 不合格 理由였다. 監督官의 末에 傲氣가 더 생겼다. 다음은 分明히 合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深刻한 일이 생겼다. 내가 出勤하다가 急性 心筋梗塞으로 길 위에서 쓰러져 應急室에 실려 간 것이다. 눈을 떠보니 病院이었다. 가슴에서 甚한 痛症이 밀려왔다. 磁氣共鳴映像(MRI)을 撮影한 뒤 冠狀動脈이 막힌 것을 보고 卽時 施術에 들어갔고 鐵心 두 個를 가슴에 박은 뒤에야 깨어났다.

    죽음이라는 것이 暫時 내 곁에 와 있었다. 그동안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일과 술, 담배에 찌든 탓일 게다. 아내는 곁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淡淡했다. 그 後로 아내는 運轉免許證을 따라고 强要하지 않았다. 나도 抛棄하고 있었다.

    그리고 1年이 지날 무렵, 運轉免許學院에서 ‘技能試驗 合格한 지 1年이 지나면 道路 走行 資格이 消滅되니 道路 走行 試驗을 보라’는 文字가 携帶폰으로 날아왔다. 나는 다시 勇氣를 내어 試驗을 봤고 堂堂히 合格했다. 나는 아내에게 가장 먼저 電話했다.

    “거봐요. 오늘은 틀림없이 合格한다고 했잖아요.”

    何如튼 그날만은 氣分이 最高였다. 며칠 後 아내와 아들놈이 덜컥 車를 몰고 왔다. 그것도 3000cc 大型으로 말이다. 나는 車를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놈아, 그냥 小型車로 사지.”

    “안 돼요. 큰 車가 오히려 익숙해지면 몰機가 더 便하고 安全해요,”

    하지만 車를 모는 것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한 달 동안 아파트 駐車場에 처박아 두었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다. 無條件 끌어보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運轉 經歷이 많은 後輩를 불러 며칠間 硏修받았더니 그런대로 道路 走行이 可能해졌다. 그리고 1年 6個月이 지났다.

    처음엔 내가 運轉하는 車를 타면 不安한 表情을 감추지 못하던 아내가 只今은 旅行 中에 잠을 잘 程度로 便安해한다.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베스트 드라이버의 要件은 빨리 달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同乘者가 기꺼이 自身을 依託할 수 있는 信賴性을 가진 運轉者가 眞正한 베스트 드라이버다.”

    예순에 運轉免許를 딴 運轉者에게 들려주는 그 말의 意味를 곱씹는다. 하긴 只今까지 내 옆에 탄 同乘者는 아내뿐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誤解는 하지 마시라. 예순의 初步者가 모는 次에 누가 同乘하겠는가.

    只今은 서울과 釜山을 세 番이나 往復할 程度로 運轉 實力도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사이 아내와 가고 싶은 곳에 旅行 다니면서 아이들의 將來 問題 等 한동안 닫아두었던 속마음을 나누는 等 琴瑟도 무척 좋아졌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運轉하면서부터 술을 完全히 끊게 된 것이 洽足하다. 勿論 心血管疾患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가고 싶은 곳을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事實이 즐겁다.

    남이 보면 우습겠지만, 60年을 뚜벅이로 산 나에겐 이것도 하나의 幸福이다. 그동안 아내의 寫眞 찍는 實力도 많이 늘었다. 早晩間 아내의 寫眞과 내가 쓴 詩를 모아 雅淡한 디카 詩集을 펴낼 計劃이다. 期待하시라.

    정성욱
    ● 1963年 慶南 晉州 出生
    ● 釜山日報와 동아일보 新春文藝에 詩와 時調가 當選돼 登壇
    ● 現 千戶希望財團 理事, 空思想硏究所 理事長
    ● 鏡虛 스님의 ‘無心’ 等 佛敎 圖書 30餘 卷 企劃, 出刊
    ● 著書: 詩集 ‘南道行’, 散文集 ‘편지’ ‘얼굴’ ‘스님의 생각’ ‘山寺에서 父親 便紙’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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