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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健熙에게 三星은 道具일 뿐 富强한 國家가 目標였다 [+映像]|新東亞

李健熙에게 三星은 道具일 뿐 富强한 國家가 目標였다 [+映像]

[經濟思想家 李健熙 探究?]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4-01-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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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職員들이 相續稅 苦悶할 만큼 돈 벌면 좋겠다

    • 李健熙의 欲心은 名譽에 있었다

    • 會社가 잘돼야 各自의 地位가 높아지는 것

    [+映像] 半導體 戰爭 中인 只今은 '李健熙' 다시 읽을 때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추진 훨씬 이전부터 어린이집 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어린이집을 세워서 엄마들을 육아로부터 해방시키면 맞벌이 가정이 늘어 소득이 늘 것이고 아이들도 전문교사에게 맡기면 교육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업이 어린이집 사업을 하는 것에 내외에서 반발이 많았다. 사진은 1990년 7월 서울시립 꿈나무어린이집 개원식 참석 모습. 오른쪽은 고건 당시 서울시장. [동아DB]

    李健熙 會長은 1993年 新經營 推進 훨씬 以前부터 어린이집 事業에 對한 關心이 많았다. 어린이집을 세워서 엄마들을 育兒로부터 解放시키면 맞벌이 家庭이 늘어 所得이 늘 것이고 아이들도 專門敎師에게 맡기면 敎育效果가 높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當時만 해도 企業이 어린이집 事業을 하는 것에 內外에서 反撥이 많았다. 寫眞은 1990年 7月 서울市立 꿈나무어린이집 開院式 參席 모습. 오른쪽은 櫜鞬 當時 서울市長. [東亞DB]

    한용외 理事長에 따르면 李健熙 會長은 平素 “職員들, 社長들, 더 나아가 協力業體 社長과 職員들이 相續稅를 苦悶할 程度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나는 社會 全般的 水準이 높아지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名譽만 갖겠다”는 것을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찼던 ‘비욘드 三星’

    李 會長이 ‘名譽’를 强調한 것과 關聯해 그는 平素에 三星을 大韓民國 水準을 높이는 道具로 생각했다는 證言이 많다.

    배종렬 前 社長은 1990年부터 祕書室에서 勤務해 자연스럽게 이 會長의 이야기를 들을 機會가 많았다. 그中에서도 아직도 머릿속에 깊게 刻印된 말이 앞서 한 理事長도 言及한 “내게 必要한 것은 名譽다. 나는 名譽를 갖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배 前 社長 말이다.

    “그 말은 돈을 많이 벌어서 子孫들 잘살게 해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國家를 위해서, 任職員을 위해서 그 열매를 나눠주고 當身은 ‘名譽’를 갖는다는 큰 뜻을 품겠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三星은 道具이고 眞짜 目標는 富强한 國家라는 말도 하셨죠. 普通 사람의 常識을 뛰어넘을 程度로 꿈이 컸는데 이처럼 三星의 存續을 넘어 國家와 民族을 위해 늘 苦悶한 분이었습니다.”



    盧 前 社長도 “會長님은 純度 99.9%로 平生 일에 對한 엄청난 集中과 沒頭를 했는데 이건 三星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이는 나올 수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고 傳했다.

    이들의 말이 무게가 있는 것은 이 會長 스스로 生前에 그것도 1993年 新經營 宣言 때 이미 自身이 삶에서 追求하는 것은 ‘名譽’라는 걸 밝혔다는 點이다.

    1993年 2月 美國 LA에서 열린 電子 關聯 社長團 會議 發言이다.

    “내가 내 財産 늘리려고 이렇게 밤잠 안 자고 떠드는 것 아니다. 財産 10倍 늘어봐야 나한테는 아무 意味가 없다. 내가 갖고 있는 財産의 ‘利子의 이자의 利子’로도 나는 몇 臺가 살 수 있다. 分明히 말하지만 나 自身이 富貴榮華를 누리자는 것이 아니다. 名譽 때문이다. 成就感 때문이다. 成就感은 여러분, 三星그룹, 우리나라가 잘되게 하는 것이다. 內 個人 良心을 지키고 責任을 다하고 싶다.”

    ‘利子의 이자의 利子’로도 代代로 먹고살 수 있는 돈을 가진 財閥 總帥가 追求한 것은 바로 名譽였다는 것. 三星 祕書室에서 일했던 황영기 前 KB金融持株 會長 말은 더 具體的이다.

    “斷言할 수 있는데 會長님은 個人의 돈 버는 것에는 關心이 없었습니다. 三星電子가 1994年 末부터 利益이 나지 않습니까. 한 달에 거의 千億씩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듬해에는 살림이 꽤 괜찮아졌죠. 제가 資金팀長을 할 때인데 그해 여름 프랑크푸르트에 갔는데 師母님도 오시고 子女分들도 오셨죠.

    雰圍氣가 全體的으로 便安했어요. 그래서인지 하루는 財務팀長이 會長께 ‘會長님 財産 變動 狀況에 對해 報告드리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會長이 ‘뭐할라꼬?’ 이러시는 데 室長이 ‘先代로부터 넘어온 以後에 財産 整理를 한 番도 안 하셨고, 제가 財務팀長을 맡은 以後에도 한 番도 財産 關係로 報告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整理를 해 갖고 왔습니다’ 했어요. 그랬더니 會長이 ‘됐다’ 하며 報告를 물리셨어요.

    李健熙 會長이 돈에 關心이 없었다고 한다면 異常하게 들리겠죠. 하지만 財閥 總帥라고 하루에 여섯 끼를 먹겠습니까, 일곱 끼를 먹겠습니까, 名品 옷을 두 벌씩 껴입겠습니까, 잠을 두 番씩 잘 겁니까.

    結局 意味나 價値를 생각하게 됩니다. 돈이 目的이 아니라면 나는 왜 일하는가 이런 質問 앞에 서게 되는 거죠. 그것은 남한테 지고 싶지 않은 勝負欲日 수도 있고 自尊心일 수도 있고 愛國心일 수 있죠. 그런 點에서 보면 會長님은 남들로부터 尊敬받는 사람, 卽 名譽를 第一 價値로 두었다는 게 말이 아닌 眞心이었다는 걸 直接的으로 體驗할 수 있었습니다.”

    黃 前 會長은 “그런 點에서 이 會長을 單純하게 ‘成功한 企業인’ 程度로 그려내면 너무나 작게 그리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늘 일밖에 모르셨으니 퍼스널 라이프가 幸福했다고 보기엔 어렵죠. 골프도 한때는 잘 치셨고, 옛날엔 레슬링도 하시고, 卓球도 잘 치셨다고 하는데 나중엔 몸도 많이 안 좋아지셨고 運動도 많이 못 하시고. ‘왜 그렇게 살았을까? 무슨 目的으로?’ 이런 마음이 누구라도 들죠.

    하지만 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요. 後世들이 當身을 評價할 때, ‘아, 이분은 그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企業을 한 게 아니구나’ 이런 걸 듣고 싶었던 거죠. 다시 말해 三星만 잘되는 것이 이분의 目的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걸 世上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해요.

    三星이란 건 當身이 到達할 더 큰 目的을 위한 手段이었을 것이란 거죠. 그게 뭐냐? 바로 企業의 水準을 높여 國家의 水準을 높이고 싶다는 目標였죠. 그분의 머릿속은 늘 三星보다 더 큰 目標, 卽 ‘비욘드 三星’이었다는 건 제가 옆에서 經驗했기 때문에 분명해요.”

    큰 것을 봐야 큰 것을 볼 줄 안다

    한便 42年間 三星에서 일한 허태학 前 에버랜드 社長은 “李 會長은 愛國愛族이라는 말보다는 ‘人類 公營共存’이란 말을 썼다”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일에 對한 熱情이 누구보다 降下셨어요. 잠을 자지 않고 일을 챙겼으니까요. 제가 신대방동 살던 때인데 새벽에도 安養, 龍仁으로 부르셨어요.

    그리고 누굴 뒤쫓아 따라가는 건 自尊心이 容納하지 않으셨어요. 日本을 따라가는 것도 싫고, 美國 따라가는 것도 싫고, 우리가 그들보다 市場을 먼저 先占해 따라오게 만들자, 여기서 成就感을 느끼셨던 거죠. 그러면서도 目的이 분명하셨습니다. 普通 사람은 漠然하게 愛國 愛族하지만, 人類 公營共存이라는 單語를 잘 쓰셨어요.”

    祕書室長을 지낸 소병해 氏도 會長이 내놓은 비전이라는 것은 普通 사람들로서는 따라가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傳한다(신경영실천위 冊子).

    “1988年 末頃 일이다. 會長께서 ‘우리가 5000億 원의 利益을 내고 있다면 3年 以內에 1兆 원 利益을 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에 對해 ‘過去 實績에 비추어보거나 現在 與件을 보아서 빠르면 5年, 아마 10年 程度는 걸려야 할 것 같다’고 對答했다.

    그러자 ‘經營陣이 現實 妥協的 思考方式을 갖고 있으면 큰 戰略도 戰術도 期待할 수 없다, 큰 目標나 進取的 以上을 앞세워 强力한 實踐 意志와 勇氣만 있다면 그 以上도 可能하지만, 어렵다는 생각이 앞서면 어떤 戰略도 나올 수 없다’며 큰 생각을 가지라고 했다. 半導體라는 機會 先占을 위한 先行 投資와 施設 投資를 한 結果, 世界 最大 生産과 3兆 원의 利益을 實現하게 된 것이다. (…) 經營陣의 眼目을 키우기 위해 會長이 늘 强調하는 것이 ‘큰 것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큰 것을 봐야 큰 것을 볼 줄 알고, 보이게 된다. 큰 것이 보여야 우리 位置를 알게 되고 무슨 戰略이 나오지 않겠는가? 只今 世界가 어떤지 보고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社長이나 任員들이 出張을 가면 定해진 業務 日程만 빡빡하게 짜고 期間도 줄이니, 極히 實務的 얘기만 할 수밖에 없다.

    그런 出張은 갈 必要가 없다. 2~3日 餘裕를 더 잡아서 그 社會를 둘러보고 그 나라 인프라도 보고 博物館도 보아야 한다. 놀고 쉬라는 뜻이 아니라 工夫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 나라 文化를 알게 되는 것이고 世界的 企業의 톱과도 對話가 될 것이 아닌가?’

    會長은 어느 部門에서 一流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趣味生活이든 物件 購入이든, 建設이든 最高 一流로 始作부터 끝까지 한 番만이라도 해보아야 한다며 그런 經驗을 바탕으로 一流를 생각하고 一流로 實行하는 方法을 알게 되면, 그 結果도 一流가 되는 것이라고 强調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富者집에서 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난 性格上 恒常 무슨 일을 始作하면 最高, 最上으로 해보아야 直星이 풀린다. 돈을 쓴다는 것을 單純히 浪費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돈을 써도 目的과 目標가 있으면 攄得하는 것이 있는 法이다.’”

    고정웅 前 하쿠호도제일 社長은 弘報 일을 할 때 會長의 新年辭 作成에 參與하는 過程에서 會長이 正말 世上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三星이 그냥 三星이 아니고 韓國의 中心이라는 自負心이 宏壯히 降下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强調했는데 ‘最高다운 責任感을 꼭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大企業이 社會的 責任을 다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三星에 對해서는 가볍게 말하지 않게 三星이 ‘쎄져서’ 一流로 剛해져야 한다. 그러니 國內 1位로는 안 된다. 世界的 企業이 돼야 한다. 그래야 政府도 國民도 ‘三星이 必要하다. 三星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리움美術館 細細하게 챙긴 李 會長의 뜻

    리움미술관 전경. [동아DB]

    리움美術館 前景. [東亞DB]

    2004年 財團總括이 된 한용외 理事長은 2009年 12月까지 6年間 일하면서 漢南洞 리움美術館 開館에도 主導的으로 參與했다.

    “事實 現代美術館을 서울에 세우자는 프로젝트는 1995~96年 始作됐습니다. 龍仁에 호암미술관이 있지만 位置도 서울에서 멀고 所藏品도 古美術 爲主여서 서울 中心部에 現代美術館을 세워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많은 窮理를 하셨어요.

    元來 敷地는 서울地下鐵 3號線 안국역 近處인 雲峴宮 뒤쪽이었는데 敷地 確保 問題 때문에 如意치 못했고 美 大使館 敷地도 샀다가 高度制限을 받아 結局 한남동으로 가게 된 겁니다. 建物도 最高로 지어야 한다고 해서 全 世界 좋은 美術館을 다 둘러보며 벤치마킹했지요.

    美術館에 對한 愛情이 많으셔서 重要한 展示가 있으면 展示場을 미리 둘러보기도 하시고 디스플레이는 勿論 作品 說明文까지 꼼꼼하게 체크하셨습니다. 그때마다 많은 指摘을 當했는데 그런 때에도 槪念이나 原理를 가지고 말씀을 하셨어요.

    例를 들어 ‘說明文도 말로 하는 것처럼 보는 사람 머리에 쏙쏙 들어가기 쉽게 하되 正말 하고 싶은 얘기만 적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늘어놓고, 정작 말로 說明할 때는 內容과 다르게 要約해서 얘기한다면서 말이죠. 結局 觀覽客 立場에서 알기 쉽게 하라는 말씀이었죠.”

    展示에 對한 指摘도 細心하게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陶瓷器들은 빽빽하게 展示하면 안 되거든요. 作品 하나만 놓고도 照明을 集中해서 포인트가 돼야 하는데 그저 많이 보여주면 좋겠거니 하면 안된다는 거죠. 어느 날인가는 ‘只今 내놓은 거 半은 치워도 되겠다’ 하셨습니다. 防彈琉璃 有無까지 直接 묻고 確認하셨어요.

    會長님이 처음 생각한 美術館의 用途는 世界的 企業家나 著名 人士, 美術愛好家들이 왔을 때 文化나 藝術 關聯 얘기를 나누며 晩餐 等을 할 수 있는 場所였습니다. 會長의 文化에 對한 關心은 先進 會社들과의 비즈니스 體驗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뭘까요.

    “直接 들은 건데 世界的 企業家들을 만나면 일 얘기는 안 하고 美術, 音樂 或은 相對便 國家의 關心 分野에 對해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꼭 얘기해야 할 事案이 있으면 자리가 罷하기 前에 ‘오늘 참 有益한 時間이었는데, 돌아가시면 그 問題도 實務者들께 잘 檢討시켜 주십시오.’ 이 程度가 딱 끝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三星 CEO들에게도 文化 工夫를 疏忽히 하지 말라는 注文을 많이 하셨어요. 結局 비즈니스는 去來處, 더 나아가 消費者와의 精神的 交流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問題意識이었다고 봅니다.

    文化的 素養이 바탕이 돼야 비즈니스가 잘된다는 이야기는 結局 自己 혼자만의 獨斷的 思考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他人과 精神的 交流를 해야 일이 되는 것이라는 거죠. 저도 現場에서 外國 CEO들을 만나 비즈니스 協商을 할 때면 去來나 該當 事案에 對한 戰略만이 아니라 文化的 素養이 큰 사람들이 많아 놀란 적이 많았습니다. 文化와 關聯된 이야기들이 協商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도 많이 經驗했고요.”

    그는 會長의 또 다른 語錄 中에서 記憶에 오래 남는 것이 있다며 이렇게 紹介했다.

    “新經營 宣言 直後니까 只今으로부터 벌써 30年 前이에요. 승지원에서 社長團 會議를 하던 날 같아요. 앉아서 다른 얘기를 쭉 하시다가 갑자기 當身은 힘이 하나도 없고 能力도 없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會長은 平素 콜라를 좋아했는데 會議 中에 앞에 놓여 있던 콜라 盞을 들어 보이면서 이렇게 말하시는 거예요. ‘내가 그룹 總帥라고 하지만 무슨 能力이 있나. 갖다 주는 콜라 盞 程度 겨우 집어서 마실 程度의 힘밖에 없다, 내가 일하는 건 三星이라는 큰 組織에 있는 會長이라는 타이틀이 일을 하는 거다. 그래서 三星의 業績이 내 業績이 되는 거다. 萬若 내게 三星會長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면 나는 이 콜라 盞, 요거 들 힘밖에 없다. 個人的 能力은 없다.’”

    한 理事長은 이 말이 社長團을 向한 嚴重한 警告로 들렸다고 했다.

    “自慢과 驕慢을 警戒하고 謙遜하라는 거죠. 當身들이 三星 社長이라고 하니까 長官 같은 높은 사람들이 만나주는 거지, 그런 타이틀이 없다면 만나 주겠느냐. 當身들이 只今 똑똑하다고 亂離를 쳐도 三星電子 社長이기 때문에 그런 거지 個人이라고 하면 나처럼 콜라 하나 들고 마실 힘밖에 안 되는 거다라는 意味였지요. 다시 말해서 能力이 아니라 職責이 일을 시켜주는 것이니 괜히 잘난 척하지 말고 謙遜하게 잘 하라는 警告性 얘기로 저는 들었어요.”

    이수빈 前 삼성생명 會長도 新經營實踐위 冊子에서 비슷한 에피소드를 傳한다. 그의 말이다.

    “1993年 오사카 新經營 會議 直後 나가사키에 있는 ‘네덜란드 民俗村’을 見學할 때 일이다. 鄭重하고도 親切한 案內를 받아가며 見學을 마친 우리가 暫時 休息을 取하고 있을 때 會長이 문득 ‘우리가 이렇게 제대로 된 待接을 받는 것도 다 組織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며 이렇게 말門을 열었다.

    ‘나도 三星 會長으로 있으니 이런 待接을 받고 여러분도 그룹의 任員이니 이런 待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個人的으로는 아무것도 아닌데 三星이라는 組織이 우리를 待接받게 만드는 것이다. 結局 三星이 잘돼야 우리들 地位가 높아지는 것이다.’

    나로서는 그 當時 會長의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韓國 最高 企業인 三星에서 成長하고 力量을 發揮해 온 바탕에는 아무래도 個人的 能力이 優先일 것이라는 自負心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以後 가까운 同僚나 親舊들이 職場이나 公職을 떠나는 境遇를 많이 보게 되면서 새삼 會長 말에 共感하게 되었다. 職場이나 公職에서 能力을 發揮하던 사람들이 個人 身分으로 돌아갔을 때 影響力, 權威, 大宇 等에서 큰 差異가 생긴다.

    結局 사람이 能力을 發揮하는 바탕이 그 사람의 個人的 能力보다도 組織의 힘과 社會的 地位에 있다는 것을 皮膚로 느끼게 됐고 會長 말씀의 깊은 뜻을 切實히 느끼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마련됐던 이건희 컬렉션을 둘러보는 시민들. 삼성가의 미술품 기증이야말로 최고 사회공헌사업의 하나였다. [동아DB]

    國立現代美術館에 마련됐던 李健熙 컬렉션을 둘러보는 市民들. 삼성家의 美術品 寄贈이야말로 最高 社會貢獻事業의 하나였다. [東亞DB]

    組織의 가장 큰 ‘빽’은 當身 自身

    李 會長이 傳한 이 말은 結局 믿을 것은 外部에서 주는 자리나 職責이 아니라 自己 自身이라는 말로 들린다. 이와 關聯해 新經營實踐委員會 冊子에 실린 최우석 三星經濟硏究院 代表도 비슷한 趣旨의 經驗談을 들려준다.

    “1990年代 初로 記憶된다. 中央日報 幹部들만 모인 자리였는데 會長이 參席者 모두에게 各自 할 말을 해보라고 했다. 모처럼의 機會여서 次例대로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조심스러워했지만 더러 엉뚱한 소리도 있었고 重言復言하는 이도 있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相當히 時間이 걸렸지만, 會長은 中斷시키지 않고 다 들었다. 한 茶禮가 다 돈 後 會長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中央日報에서 가장 큰 빽이 누군지 아는가?’라고 물었다. 모두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社長인가 會長인가’. 大部分 그런 心情이었던 것 같다. 한참 만에 會長이 입을 열더니 이렇게 말했다. ‘中央日報에서 가장 큰 빽은 바로 여러분 自身입니다.’

    그리고 말이 이어졌다. ‘내가 會長이지만 어느 누구를 어찌해 줄 수가 없다. 여러분 各自 하기에 따라서 役割이 決定되고 자리도 定해진다. 三星에선 親姻戚 人事도 없고 情實 人事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또 다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平素 같으면 주눅이 들어 會長 앞에서 한마디도 못 하지만 그날은 雰圍氣가 좋아 한마디하게 됐다. 會長에게 ‘너무 (저희들을) 惹端을 치시니 모두들 매우 어려워합니다.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으니 가끔은 稱讚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한 것이다.

    한참 가만히 듣고 있던 會長은 ‘攝氏와 華氏 같은 거지요’라고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곰곰이 생각해 본즉 攝氏 0度가 華氏 32度와 같듯 야단치는 것도 다 差異가 있다는 말이었다.

    늘 稱讚만 하면 그 稱讚에 別 뜻이 없어지고, 惹端을 쳐도 그 속엔 激勵의 뜻이 包含된다는 것이다. 會長은 ‘내가 惹端을 치는 것은 그래도 希望이 있을 때 하는 것이고, 아예 抛棄한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라고 했다. 惹端을 많이 맞으면 풀이 죽기 쉬운데, 希望을 갖고 더욱 奮發하라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한番은 漢南洞 會長 宅으로 가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雰圍氣가 무척 부드러웠지만 宅에서도 家族들에게 仔詳하게 말하거나 行動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딘가 덤덤한 便이었다.

    마침 雰圍氣도 무르익고 해서 ‘會長님은 아드님을 어떻게 敎育하십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家庭敎育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때는 5共 末期여서 데모가 極烈했다. 會長은 이렇게 말했다.

    ‘좀체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가끔 불러 물어보면 學校가 시끄러운 模樣이더군. 서울大엔 어려운 사람이 많아 라면도 제대로 못 먹는 學生이 있는 模樣이에요. 우리 애는 極部와 極貧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니 더러 힘들 때도 있는 模樣이지만, 그런대로 圓滿히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것이고, 그 속에서 이겨나가야겠지요.’”

    崔 代表의 말은 여기서 끝난다.

    平素 이 會長을 가까이 모셨던 사람들도 李健熙 會長은 周邊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거나 共感을 表現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어느 程度 늘 距離를 두는 사람처럼 여겨져 對하는 게 늘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結局 사람을 公平하게 對하고 있구나 하는 믿음을 가져다주는 動力이기도 했다고 退任 任員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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