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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東學’으로 東洋 代表하는 새 文明 創造하자|신동아

‘新東學’으로 東洋 代表하는 새 文明 創造하자

  • 구해우 未來戰略硏究院腸·신동학 修行者

    入力 2023-12-3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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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테스탄트, 近代國家 轉換에 核心 役割

    • 3·1獨立運動은 韓國籍 近代化 出發點

    • 史上開闢 돼야 人間開闢·世上開闢 可能

    [Gettyimage]

    [Gettyimage]

    2024年은 靑龍의 해다. 120年 前 龍의 해, 1904年에는 러일戰爭이 있었다. 러시아·프랑스·獨逸이 한便이 되고 日本·英國·美國이 다른 한便이 돼 韓半島를 舞臺로 戰爭을 벌인 것이다. 現在의 東아시아 情勢는 總選 같은 選擧政治에 陷沒되는 것을 容認할 程度로 閑暇하지 않다. 韓美日과 北·中·러의 對決 構圖가 날로 深化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戰爭, 中東戰爭이 언제 臺灣과 韓半島에 戰爭의 불씨를 擴散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瞬間이다. 筆者는 2022年 1月 러시아·우크라이나 戰爭 勃發 한 달餘 前 東아시아를 包含한 全 世界가 새로운 戰爭의 時代로 進入하고 있음을 豫見한 바 있다. 21世紀 들어 始作된 이番 戰爭들은 世界私的 重大한 變化와 新開闢의 時代로 連結될 것이다.

    2024年은 3·1獨立運動 105周年이 되는 해다. 3·1獨立運動과 ‘3·1獨立宣言文’은 21世紀 新開闢 時代의 重要한 씨앗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評價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1776年 美國의 獨立革命 精神을 反映한 ‘美國 獨立宣言文’李 英國·美國이 主導한 西洋 近代國家 文明의 思想的 核心을 담고 있다면, 韓國의 1919年 ‘3·1獨立宣言文’은 第3世界 近代國家 文明의 思想的 精髓를 담고 있다.

    近代國家 出發點, 英 名譽革命과 美 獨立革命

    영국 명예혁명 사상적 지도자 존 로크. [Gettyimage]

    英國 名譽革命 思想的 指導者 존 로크. [Gettyimage]

    1688年 英國의 名譽革命과 1776年 美國의 獨立革命으로 始作된 近代國家 文明은 人類 歷史의 劃期的 轉換을 가져왔다. 두 革命을 背景으로 個人의 自由意志, 發展 意志가 暴發的으로 成長해 英國과 美國은 18世紀 中盤부터 産業革命을 主導하면서 物質文明의 눈부신 發展을 이루었다.

    前近代社會 數千 年 동안 變化가 거의 없던 個人의 所得이 産業革命, 近代國家 文明으로 轉換하면서 열 倍 以上 增大됐다. 이러한 經濟成長은 單純한 所得增大에 그치지 않고 人類의 生活方式, 文化生活, 政治 等 모든 領域에 걸쳐 폭넓고 깊이 있는 變化를 가져왔다.

    近代國家 文明 轉換 過程에 核心 役割을 한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다. 近代 社會科學 最高 著作 中 하나로 꼽히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倫理와 資本主義 精神’은 이를 잘 分析한 冊이다.



    16世紀 宗敎改革 過程에 登場한 프로테스탄트는 中世時代 1000年이 넘는 동안 絶對 權力을 行使하던 敎皇, 王, 敎會의 權威를 否定했다. 오직 神과의 直接 對話를 통해 自身의 召命을 찾고, 召命에 따라 個人이 自身의 職業에 充實함으로써 召命을 完遂할 수 있는 合理的 國家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이 過程에 英國 名譽革命의 思想的 指導者 존 로즈는 人間의 自由權, 生命權, 財産權, 抵抗權을 保障하는 法治主義, 議會民主主義, 牽制와 均衡의 原理 等을 具現하는 近代國家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토머스 제퍼슨 等은 1776年 ‘美國 獨立宣言文’에 이 같은 思想을 反映했다.

    이러한 歷史的 過程을 통해 다른 國家들과 比較할 때 壓倒的으로 國家의 힘을 蓄積한 英國과 美國이 帝國主義 時代를 先導하게 된다. 프랑스, 獨逸 等도 조금 다른 經路를 거쳐 帝國主義 時代를 主導하게 된다. 이 過程에 資本主義 不平等 問題 等을 集中的으로 提起하면서 19世紀 末 登場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英國·美國 主導의 自由民主主義 近代國家 文明에 對抗하는 社會主義 近代國家 文明을 提示한다. 이러한 흐름은 1917年 러시아革命을 통해 現實化돼 1990年代 初 蘇聯, 東歐 社會主義圈이 崩壞할 때까지 自由民主主義 近代國家文明과 競爭하는 役割을 했다. 그리고 19世紀부터 20世紀 初盤을 거치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多數 國家는 帝國主義 植民地가 돼 많은 苦痛과 變化를 겪게 된다. 韓半島를 包含한 東아시아도 例外가 아니었다.

    韓國的 近代化 씨앗 뿌린 歷史的 事件

    동학 창시자 최제우. [동아DB]

    東學 創始者 최제우. [東亞DB]

    이 같은 歷史的 背景에서 韓國의 崔濟愚는 1860年 큰 깨달음 ‘無極大道’를 얻었다고 宣言하고 ‘東學’을 創始했다. 東學의 核心은 開闢思想이다. 崔濟愚는 自身의 깨달음을 노래한 ‘龍潭遺詞’에서 “온 世上이 怪疾에 빠질 運數가 되니 다시 開闢”이라고 했고, 그의 後繼者 崔時亨은 “崔濟愚 先生이 恒常 말씀하신 앞으로는 요순孔孟의 德이라도 不足하다고 했던 것은 現在가 後天開闢의 時代임을 가리키는 것이고, 先天이 物質開闢이라면 後天은 人心開闢이다”고 했다.
    이 같은 崔濟愚, 崔時亨의 哲學的 思考의 大轉換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時代’ 卽 英國 等 西洋 帝國主義 勢力에 依해 동양 政治의 中心 役割을 해오던 中國이 1840∼1842年 第1次 阿片戰爭, 1856∼1860年 第2次 阿片戰爭 等으로 悽慘하게 崩壞된 消息을 接한 것과 密接하게 關聯된다.

    近代國家 文明이 몰고 온 强力한 衝擊 속에서 모든 것을 根本的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切實함을 表現한 것이 開闢思想의 出發點이었다. 이에 따라 崔濟愚는 儒敎·佛敎·道敎를 統合해 東學을 創始했고, 自身의 女性 奴婢 두 名을 解放해 한 名은 며느리로, 다른 한 名은 收養딸로 삼는 革命的 實踐을 斷行했다. 이는 英國·美國이 主導해 온 西洋 近代國家 文明이 가장 重要視해 온 天賦人權 平等思想, 人間의 自由權에 對한 尊重 思想과 比較하더라도 더욱 先進的 事故와 實踐을 보여준 것이다.

    1776年 美國 獨立宣言文에 明示된 “모든 사람은 平等하게 태어났으며 神은 그들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몇 가지 權利를 附與했다. 여기에는 生命과 自由와 幸福 追求의 權利가 包含된다”는 內容을 가장 徹底하게 實踐한 것이다. 特히 奴隸解放 問題는 西洋 近代國家 文明에서도 1861∼1865年 美國 南北戰爭 때에 비로소 本格化한 것이다. 女性平等 問題도 1908年 小說 ‘빨간 머리 앤’에서 잘 表現됐듯이 西洋 近代國家 文明에서는 20世紀 初 前後부터 提起되고 擴散됐다.

    近代國家 文明으로 轉換하는 데 한참 뒤져 帝國主義 植民地로 轉落해 가던 韓半島의 崔濟愚는 1860年 깨달음을 宣言한 뒤 奴隸解放, 女性 平等思想을 가장 앞장서 徹底하게 實踐한 것이다. 이는 韓國籍 近代化의 씨앗을 뿌린 歷史的 事件이라 할 수 있다.

    韓國의 近代化와 關聯해 進步左派는 마르크스주의 經濟學의 影響을 받아 韓國 資本主義 自體 萌芽論, 保守右派는 植民地近代化論 等의 主張을 펼쳐왔다. 이러한 主張은 共히 西洋 社會科學의 그늘 아래 놓인 事大主義的이거나 狹小한 見解다.

    近代文明의 本質은 獨立된 個人의 自由를 保障하고 個人의 創意的 發展을 돕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哲學 思想이 前近代文明과는 根本的으로 區別되는 엄청난 物質文明의 發展을 가져왔다. 資本主義 萌芽論, 植民地近代化論 等은 經濟主義的 限界에 갇혀 있기도 하다. 近代文明으로의 轉換을 獨立된 個人의 自由를 實現하는 것과 聯關해서 보면 崔濟愚의 女性 奴婢 解放은 韓國籍 近代化의 씨앗이었다. 그리고 東學의 3代 敎主 孫秉熙는 ‘民主共和制’를 目標로 한 韓國籍 近代化의 出發點이었다고 評價되는 3·1獨立運動을 指導했다.

    崔濟愚가 創始하고 崔時亨이 承繼한 東學은 1894年 東學農民革命運動을 거치면서 哲學的으로 重要한 變化를 겪는다. 그것은 儒敎性理學과 中華主義的 思考의 殘滓를 淸算한 것이다. 崔濟愚는 儒敎·佛敎·道敎를 統合해 東學을 創始했다고 主張했는데 그의 代表 咀嚼 ‘東經大全’ ‘龍潭遺詞’ 等에는 儒敎性理學, 中華主義的 思考 殘滓가 적지 않게 나타난다. 이는 道人들이 큰 깨달음을 얻더라도 깨달음 以後 적지 않은 時間 동안 깨달음 以前에 가졌던 생각의 習慣, 感情의 習慣이 남아 있는 것과 聯關된다. 卽 父親의 儒學 敎育이 作用한 것이다. 이러한 思考의 殘滓는 日本軍과 聯合한 朝鮮王朝 官軍의 農民軍 虐殺, 淸日戰爭에서 淸나라의 慘敗 等을 現場에서 目擊하면서 消滅돼 간다.

    儒敎性理學과 中華主義的 思考의 殘滓를 淸算하고 東學과 近代國家 文明의 融合을 推進한 人物이 손병희다. 孫秉熙는 東學農民革命 失敗 以後 “近代國家 文明을 제대로 理解하지 못하면 나라의 未來도 東學의 未來도 없다”고 보고 새로운 摸索을 하게 된다.

    孫秉熙의 ‘人여물開闢說’과 3·1獨立宣言文

     3·1독립만세운동. [동아DB]

    3·1獨立萬歲運動. [東亞DB]

    孫秉熙는 1900年代 初 日本과 中國을 오가면서 近代國家 文明을 工夫하고, 朴泳孝 等 開化派 人物들과도 交流했다. 그 影響으로 1904年 ‘진보회’의 斷髮 運動을 推進하게 된다.

    1894年 東學農民革命이 左派的 觀點에서 開闢의 왼쪽 門을 여는 試圖였다면, 1904年 진보회 活動은 右派的 觀點에서 開闢의 오른쪽 門을 여는 試圖였다. 以後 孫秉熙는 宗敎的 修養을 深化해 1910年 崔濟愚의 ‘無極大道’를 具體化한 ‘無體法經’을 發表했다. 1918年에는 1919年 歷史的인 3·1獨立萬歲運動의 思想的 基礎가 되는 ‘人여물開闢說(人與物開闢設)’을 天道敎 幹部들을 對象으로 說法했다.

    3·1獨立萬歲運動은 中途 思想的 觀點에서 開闢의 가운데 門을 열고자 했던 것이다. 3·1運動은 孫秉熙의 中道會通 思想에 기초해 東學·基督敎·佛敎 間 臺(大)連帶를 實現하고, 當時 2000萬 人口 中 100萬餘 名이 參與하는 平和的 示威를 만들어냄으로써 世界 近代國家 文明 推進 運動 歷史의 빛나는 별이 됐다.

    孫秉熙의 ‘人여물開闢說’은 人間開闢과 物質開闢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으로 崔濟愚의 ‘다시 開闢’ 史上, 崔時亨의 ‘後天開闢’ 思想을 繼承·발전시킨 것이다. 旣存 東學思想과 孫秉熙가 1900年代 初 以來 工夫한 近代國家 文明의 內容을 中道會通 思想으로 融合한 것이다. 卽 道學과 科學의 竝行 發展을 實現한 것이다. 이러한 東學思想과 近代國家 文明의 融合이 具體的으로 總和된 것이 ‘3·1獨立宣言文’이다.

    그 內容은 첫째, ‘吾等(우리)은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吾人(나)의 朝鮮獨立은(…) 我(나)의 固有(固有)韓 自由權을 穩全하게 지켜서’라고 하여 獨立의 主體를 우리와 함께 ‘나’ 卽 個人의 主體性을 分明히 밝히고 있다. 이는 近代國家 文明의 核心 精神인 獨立된 個人의 自由를 무엇보다 重視함을 보여준 것이며 손병희 ‘人여물開闢說(人與物開闢設)’의 人間開闢 思想을 反映한 것이다.

    둘째, ‘人類平等의 大義를 (…) 朝鮮獨立은 東洋平和의 重要한 一部로서 世界平和와 人類幸福에 必要한 手段이 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近代國家 文明의 誕生 以來로 持續的으로 發展·擴大되어 온 平等·平和라는 人類의 普遍的 價値를 담고 있다. 이는 손병희 ‘人여물開闢說’의 物質開闢, 世上開闢의 方向을 反映한 것이다. 物質開闢이 個人들의 貪慾과 物質主義를 넘어서서 人類의 平等과 平和를 志向하는 世上開闢을 實現해야 함을 表現하고 있다.

    셋째, ‘威力의 時代가 가고 道義(道義)의 時代가 (…) 眞理(眞理)가 我(나)와 함께하는 度다’라고 하여 宣言文의 哲學 思想的 志向을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道義의 時代와 眞理는 思想開闢을 말한다. 人間開闢과 物質開闢의 出發點이요 基礎가 되는 思想開闢을 實踐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宣言文의 ‘道義’와 ‘眞理’가 뜻하는 것은 韓民族 建國 哲學인 ‘弘益人間, 在世梨花(在世理化·現存하는 世上에서 眞理를 實現함)’의 뜻을 담고 있다. 나아가 ‘在世梨花’의 理致를 漢字로 表現한 崔致遠의 ‘天符經’ 哲學과 弘益人間, 天符經 哲學을 近代化한 崔濟愚의 ‘東經大全’ 等의 內容을 含蓄하고 있다.

    孫秉熙는 東學思想에 더해 近代國家 文明의 哲學인 自由, 平等, 平和의 內容을 包容해서 崔南善의 ‘3·1獨立宣言文’ 作成을 指導한 것이다. 이 宣言文은 新開闢 時代를 여는 ‘신동학’과 ‘新開闢思想’의 出發點이라고 할 수 있으며, 21世紀 새로운 文明史的 비전의 重要한 씨앗이 될 것이다.

    知識人 金正喜의 삶, 道人 崔濟愚의 삶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동아DB]

    秋史 金正喜의 ‘세한도’. [東亞DB]

    1840年 西洋 帝國主義에 依해 淸나라가 慘敗를 當한 阿片戰爭을 始作으로 서세동점이 本格化하던 19世紀 中盤 朝鮮에는 김정희(1786∼1856)와 최제우(1824∼1864)가 歷史的 激變을 비슷하게 經驗했다.

    金正喜는 朴趾源 等 所謂 北學派의 繼承者요 實學派 學者였다. 그가 남긴 最高의 遺産은 1844年 作 ‘세한도’다. 儒敎·佛敎·道敎를 通達했다는 그의 哲學을 象徵的으로 表現했을 뿐 아니라 東洋畫를 代表할 만한 傑作이다. 그러나 그는 當時 朝鮮 最高의 知識人으로 評價됐지만, 阿片戰爭 等 서세동점의 時代에 對한 洞察은 보여주지 못했다. 金正喜가 濟州島 流配 時節 ‘세한도’를 그린 場所는 17世紀 中盤 네덜란드 商人 朴堧과 하멜이 漂流하다 到着했던 곳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距離에 있다.

    17世紀 英國, 네덜란드, 美國의 프로테스탄트는 西洋 近代國家 文明의 開拓者 役割을 했다. 1600年 日本 指導者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네덜란드 商船 英國人 航海士 윌리엄 애덤스를 만나 西洋 近代國家 文明의 先進 文物을 受容하기 始作했고 이를 基盤으로 ‘蘭學’을 發展시켰다. 이는 19世紀 日本 近代化 過程에서 重要한 役割을 하게 된다. 그런데 朝鮮王朝와 知識人들은 비슷한 機會를 流失했다. 朝鮮 後期 先進的 知識人이던 朴趾源·丁若鏞도 例外가 아니었다. 北學派는 淸나라 文物을 배우자는 程度에 그쳤고, 丁若鏞이 受容한 天主敎徒 西洋 近代國家 文明의 主導者는 아니었다.

    金正喜도 先輩 世代의 限界를 넘어서지 못했다. 特히 1840年 阿片戰爭이라는 强力한 衝擊에도 不拘하고 서세동점의 時代와 西洋 近代國家 文明의 原因을 理解하고 새로운 洞察을 얻을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는 하멜과 朴堧에 對해 工夫했다는 記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비슷한 時期에 道人 崔濟愚는 서세동점의 衝擊 속에서 精神 修養을 하다 큰 깨달음을 얻고 儒敎·佛敎·道敎를 統合한 東學을 創始했다. 그리고 自身의 女性 奴婢 두 名을 解放시키는 革命的 實踐까지 斷行했다. 새로운 歷史的 轉換, 새로운 開闢 時代를 온몸으로 느끼고 實踐한 것이다.

    學問의 世界, 學者의 世界가 知識을 쌓아가는 것이라면, 도(道)와 修行者의 世界는 知識을 비워내고 世上과 人間의 本質을 꿰뚫어 보는 洞察力과 智慧를 새롭게 채우는 것이다. 哲學이 人間과 世界에 對한 解釋에 關한 것이라면, 思想은 人間과 世界에 對한 理解에 기초해 어떻게 살 것인지, 實踐할 것인지와 結合돼야 한다. 思想에 一定한 神祕主義와 組織이 結合되면 宗敎가 된다.

    金正喜가 知識人·哲學者·藝術人이었다면, 崔濟愚는 道人·修行者·思想家·宗敎人이었다. 最近 崔濟愚의 ‘東經大全’을 出刊하면서 東學을 讚揚하고 있는 김용옥의 試圖도 知識人的 接近에 갇혀 있는 限界를 드러냈다.

    崔濟愚가 創始한 東學은 近代國家 文明의 衝擊을 背景으로 世上을 開闢하고자 하는 社會改革의 內容과 人間開闢, 史上開闢의 內容을 담은 宗敎改革의 內容을 담고 있다.

    世上開闢은 東學農民革命, 진보회 活動, 3·1獨立萬歲運動 等을 통해 表出됐다. 東學의 宗敎改革的 要素는 1916年 큰 깨달음을 얻고 以後 圓佛敎를 創始한 朴重彬의 ‘物質이 開闢되니 精神을 開闢하자’는 開闢思想 等으로 發展했다. 特히 朴重彬의 ‘大宗頃’은 人間開闢, 史上開闢과 關聯한 重要한 內容을 담고 있다.

    朴重彬은 ‘淸風月常時(淸風月上時) 萬箱子延命(萬像自然明): 맑은 바람이 불고 밝은 달이 떠오르니 萬物의 實體가 스스로 밝게 드러나는구나’라고 하여 깨달음의 本質的 內容을 明白하게 보여주었다. 비슷한 時期에 日本에서는 日本 傳統思想과 佛敎를 結合해 人間 革命과 生活 革新, 더 나은 社會 建設, 平和 志向을 내세우는 ‘唱歌學會’가 創立됐다. ‘唱歌學會’는 ‘日本版 東學’으로 評價된다.

    에드먼드 버크가 ‘神의 慈善에 依한 創造物’이라고 했던 人間과 國歌는 諸行無常(諸行無常)이다. 中道 卽 眞空묘유(眞空妙有)에서 眞空의 世界는 變함이 없지만 묘유의 世界라 할 수 있는 人間과 國歌는 끊임없이 變化한다. 變化하지 않으면 고인 물이 썩듯 人間도 國家도 낡아지고 腐敗해질 뿐이다.

    1688年 英國 名譽革命, 1776年 美國 獨立革命으로 始作된 近代國家 文明은 人類 文明의 劃期的 發展을 가져온 歷史的 業績이 크다. 近代國家 文明의 思想家들人 존 로크, 애덤 스미스, 토머스 제퍼슨, 에드먼드 버크 等은 붓다, 예수, 老子, 孔子, 플라톤 等에 못지않은 偉大한 思想家들이다. 그들의 思想은 東洋思想의 核心인 中途 思想 卽 眞空묘유(眞空妙有) 中에서 묘유(妙有)라 할 수 있는 人間과 國家에 對한 具體的 洞察을 實現한 近代 中道思想이다.

    그리고 近代國家 文明의 原動力 役割을 했던 프로테스탄트의 召命 意識은 人類 歷史上 가장 훌륭했던 宗敎의 社會的 役割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近代國家 文明을 主導한 英國·美國은 1990年代 初 蘇聯 東歐社會主義圈 崩壞 以後 脫冷戰 美國 中心의 일劇體制가 作動된 以後 獨善과 洞察力의 喪失에 빠져 深刻한 리더십의 危機를 겪고 있다.

    新開闢思想 出發點은 史上開闢

    美國의 代表的 外交 戰略家 키신저 前 國務長官과 學界를 代表하는 니얼 퍼거슨 前 하버드대 敎授가 2012年에 벌인 論爭, “21世紀는 中國의 世紀가 될 것”이라는 等의 主張은 2017年 美國 트럼프 政府의 美·中 貿易戰爭 等을 거치면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中國은 이미 2003年 東北工程 等을 통해 霸權的 民族主義를 表出했다. 2010年에는 中國共産黨 氣管支에서 “中國 特色의 社會主義가 自由民主主義보다 優越하다”는 論文을 發表했지만 美國은 無視했다. 美國 知性의 洞察力 喪失을 보여준 代表的 事例다.

    많은 犧牲과 莫大한 資源을 浪費한 이라크戰爭, 아프가니스탄 戰爭의 失敗에 對한 省察도 不足하다. 이러한 混亂 속에서 터진 우크라이나 戰爭, 中東戰爭 等은 世界私的 重大 變化의 促進劑 구실을 할 것이다. 나아가 東아시아에서 臺灣 事態, 韓半島 戰爭 等이 勃發할 境遇 文明史的 轉換의 契機가 될 것이다. 美國 中心의 自由民主主義 近代國家 文明이 깊은 省察과 變化를 보이지 못하면, 世界1等 國家는 維持할 수 있겠지만 世界 霸權國 또는 指導國家로서 役割은 衰落해 갈 것이다.

    이러한 世界史的 變化와 文明史的 轉換의 局面을 韓國이 잘 準備한다면 ‘新開闢의 時代’를 先導할 수 있을 것이다. 그 出發點은 한便으로는 최제우·孫秉熙·박중빈 等의 開闢思想을 제대로 理解하고, 다른 한便으로는 英國·美國 中心의 近代國家 文明 主導 勢力의 原動力 役割을 했던 프로테스탄트의 召命 意識과 존 로크, 애덤 스미스, 토머스 제퍼슨, 에드먼드 버크 等의 哲學 思想과 近代國家 文明에 對한 깊은 理解가 必要하다.

    이러한 두 가지 흐름에 對한 제대로 된 理解와 融合에 더해 21世紀 世界에 對한 깊은 洞察力을 結合해서 思想開闢, 人間開闢, 世上開闢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이것이 開闢思想의 進化이며 21世紀 新開闢 時代에 照應하는 신동학, 新開闢思想, 現代中途思想이다.

    新開闢의 時代는 東西洋 文明의 衝突과 會通이 함께 이루어지고 나아가 佛敎, 道敎, 儒敎, 基督敎, 社會主義 間의 中道會通이 實現될 것이다.

    新開闢思想의 出發點은 史上開闢이다. 史上開闢이 돼야 人間開闢, 世上開闢이 可能하다. 21世紀 韓國을 代表하는 音樂家로 登場한 임윤찬은 伽倻琴 創始者 于勒에 對한 三國史記의 哀而不悲(哀而不悲·애잔함이 있으나 슬프지 않다)라는 坪에 對해 ‘어떤 깊은 슬픔을 吐해낸 뒤 모든 것을 超越한 狀態’라고 表現하는 洞察을 보여주었다.

    史上開闢은 슬픔(悲)과 기쁨(喜)을 超越하고, 무와 留意 境界를 넘어서고, 生(生)과 社(死)를 超越해 世上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 스스로 맑아져서 ‘참自由人’李 되는 것이다. 나아가 中道, 卽 眞空(眞空)과 妙有(妙有)에 對한 均衡 잡힌 洞察을 통해 ‘時節 因緣’에 따른 自身의 ‘本分知事’를 깨달아야 한다.

    이는 프로테스탄트의 ‘召命’과 一脈相通하는 것이고 現代的으로 발전시킨 內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思想開闢에 따르는 洞察力에 기초해 人間開闢, 世上開闢을 實現해야 한다. 韓國은 최제우·孫秉熙·박중빈 等의 開闢思想 傳統과 世界 近代國家 文明運動社에서 最高峯이라 할 만한 3·1獨立萬歲運動과 ‘3·1獨立宣言文’이라는 貴重한 資産을 保有하고 있다. 道學的 次元에서 보면 開闢思想가 孫秉熙가 ‘時節 因緣에 따른 自身의 本分知事’를 다한 結果物이 3·1獨立萬歲運動과 ‘3·1獨立宣言文’이라 할 수 있다.

    21世紀를 사는 우리가 現代社會, 新開闢 時代에 맞는 신동학을 발전시켜 낸다면 東洋을 代表하는 새로운 文明을 創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의 召命 意識’을 原動力으로 人類史의 劃期的인 發展을 가져온 西洋의 自由民主主義 近代國家 文明과 서로 배우고 回通하고 善意의 競爭을 하면서 人類 文明을 더욱 變化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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