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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濟元보다 權性東이 尹과 親密했더라면…” [+映像]|新東亞

“張濟元보다 權性東이 尹과 親密했더라면…” [+映像]

[Special Report | 尹錫悅과 ‘나’] ‘尹의 브레인’ 될 뻔했던 張性哲의 診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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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3-05-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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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側에 세 件의 報告書 건네

    • 大邱 가면 自己催眠 빠질 수도

    • 李在明에 對한 怨恨 커 보여

    • 元喜龍度 尹의 氣에 눌리는 듯

    • 參謀·멘토 助言 안 듣는 大統領

    • 檢事 總選에 大規模 出馬시킬 것

    [+映像] 尹錫悅과 ‘나’ | 張性哲 共感課論爭 政策센터 所長



    4월 5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 [지호영 기자]

    4月 5日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寫眞 撮影을 위해 포즈를 取한 張性哲 共感課論爭 政策센터 所長. [지호영 記者]

    그에게는 ‘신동아’를 몰래 읽다 혼난 記憶이 있다. 禁書(禁書)도 아닌 雜誌를 몰래 읽은 理由는 그가 初等學生이었던 데 있다. 少年은 어린이 雜誌 ‘어깨동무’ 代身 ‘신동아’에 실린 政治 祕史(?史)에 耽溺했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에게서 政治 遺傳子를 發見했던 사람이다.

    “날 새가면서 읽었어요. ‘신동아’ 나오는 날 사서 授業 中 冊床 밑에서 읽다가 先生님한테 몇 番 걸려 혼나기도 하고….(웃음) 先生님이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 한 적도 있고요.”

    그 少年이 50代가 돼 ‘신동아’ 記者와 인터뷰를 한다. 4月 5日의 일이다. 少年을 혼낸 先生님이 미처 내다보지 못한 未來다.

    大學 卒業 後 다니던 保險社를 6個月 만에 관뒀다. “韓國 政治나 韓美 外交, 北韓 問題 等 巨大 談論을 놓고 苦悶했는데 月給받기 위해 돈 세고 있으니 못 해 먹겠다고 생각”했단다. 白手가 돼 每日같이 圖書館을 드나들다가 偶然히 接한 신한국당 黨職者 公採에 支援해 合格했다. 1996年 11月, 그의 나이 27歲 때다. 김영삼 政權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던, 그러니까 國際通貨基金(IMF) 外換危機의 悲劇이 오기 前이었다. 장경상 大統領室 政務2祕書官이 公採 動機다.



    2000年 國會로 자리를 옮겼다. 몇 군데 議員室을 거쳐 2012年 박근혜 大選候補 公報팀長을 지냈다. 에이스 補佐官의 徵標라고 自負할 履歷이나 靑瓦臺 入城에 失敗했다. 그때 느꼈을 挫折感은 쉬이 가늠하기 어렵다. 結果的으로는 그 일로 ‘國政壟斷’ 事態에서 自由로운 領土에 설 機會를 얻었다. 그 德分에 保守 革新에 對해 눈치보지 않고 말할 資格이 생겼다.

    그는 保守政黨에 對한 所屬感이 뚜렷한 사람이다. 2017年 바른政黨 創黨의 核心 實務者였지만 정작 바른政黨에 入黨하지 않았다. “이 黨(當時 새누리黨)에서 始作했는데, 모시던 김무성 議員이 脫黨했으니 함께 脫黨했지만 다른 黨에 入黨하는 건 옳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여기까지가 黨職者이자 保佐陣으로서 22年을 보낸 그의 人生 1膜이다.

    ‘保守의 민낯’

    그에게 人生 2幕이 열리는 데는 冊 ‘保守의 민낯’의 役割이 컸다. 2018年 7月 出刊된 ‘保守의 민낯’은 1萬 部 가까이 팔렸다. 2016年 새누리당 黨代表실 副室長을 하며 겪은 ‘公薦 波動’의 祕話를 담아 話題가 됐다. 그와 因緣을 맺은 것도 그 무렵이다. 冊을 읽고 連絡處를 搜所聞해 그에게 불쑥 電話를 걸었다. 20分間 靑年 報酬에 關해 對話를 나눈 記憶이 鮮明하다.

    그 뒤로는 主로 미디어를 통해 그를 接했다. 放送에서 그의 모습은 ‘물 만난 고기’였다. 政治 懸案이 있을 때마다 言論은 그에게 意見을 물었다. 몇 年 지나니 ‘金武星의 補佐官’이 아니라 ‘政治評論家 張性哲’의 存在感이 또렷해졌다. ‘셀럽’까지는 아니어도 지나가다 흘깃 쳐다보는 水準의 認知度를 갖추게 됐다. 그런 그에게 大權을 노리던 前職 檢察總長 尹錫悅이 興味를 느낀 건 제법 자연스럽다.

    尹錫悅 大統領을 直接 만나본 적은 없습니까.

    “만날 뻔했죠. 2021年 4~5月쯤 (當時 尹錫悅 前 總長과 가까운) 세 部類의 분들이 저를 찾아왔어요. 一週日에 한 番씩 저를 만나면서 ‘尹 前 總長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對해 相議했죠. 그분들은 只今 다 잘나가고 있고요. 한 분이 尹 前 總長의 (政治 參與를 위한) 實務 그룹을 꾸리는데 저도 參與해 달라고 했어요. 日曜日에 尹 前 總長과 도와주는 사람 몇몇이 만나기로 했으니 저보고도 왔으면 좋겠다면서요. 제가 先約이 있어서 못 가고, (代身) ‘나는 尹 前 總長을 통해 政權交替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안 만나도 된다.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放送이나 다른 次元을 통해 돕겠다’고 얘기했죠. 尹錫悅 캠프가 構成되기 前에 大略 세 件의 報告書를 건네줬어요. 草創期 (캠프가) 宏壯히 단출했을 때인데….”

    서너 名만 있을 때 말인가요.

    “맞아요. 大選 競選 캠프를 어떻게 構成해야 하는지, 어떤 콘셉트로 해야 하는지, 組織圖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等을 페이퍼를 통해 만들어드렸는데, 거의 그대로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거기(페이퍼)에서 캠프 名稱은 ‘尹錫悅 國民캠프’로 명명하라고 했거든요. 그대로 했잖아요.”

    그로부터 한 달餘 뒤, 그는 ‘尹錫悅 X파일 事件’으로 政局의 복판에 서게 된다. 그해 6月 19日 페이스북을 통해 “얼마 前 尹 前 總長과 妻, 丈母의 疑惑이 整理된 一部의 文書化된 파일을 入手했다”며 論難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에게 政治的 助言을 期待했던 尹 大統領 側으로서는 제법 당혹스러웠을 事件이다.

    X파일 事件의 當事者 아닙니까.

    “제가 放送에서 尹 前 總長을 擁護하고, 저런 분이 大統領이 돼야 한다고 剛하게 主張하면서 더불어民主黨 쪽 패널들과 싸우니까 知人이 ‘尹 前 總長 잘 아느냐’는 거예요. ‘나는 잘 모른다’ 했더니 ‘(尹 前 總長에 對해) 整理한 文件들이 있으니 放送 評論할 때 參考하라’면서 두 件의 文件을 傳達해 줬어요.”

    只今은 廢棄했나요.

    “괜히 갖고 있으면 火만 될 것 같아서요.”

    그 以後 尹 大統領 側과 連結고리가 끊어지지는 않았습니까.

    “(尹 前 總長 側에서) 저한테 助言도 求하고, 저도 얘기하고 했죠. 政權交替가 目的이었기 때문에 (尹 前 總長이) 大選候補가 됐을 때는 欠은 좀 감추고 어떤 戰略이 좋을지에 對해 體系的으로는 아니고 한 마디씩 코멘트해주는 程度의 도움을 줬습니다.”

    檢事가 일하는 法, 政治人이 일하는 法

    事實을 意圖的으로 굴절시키는 政派的 評論을 들을 料量이었다면 그를 만나지 않았다. 報酬의 現實과 權力의 生理에 共히 밝은 사람이다. 權力의 無常함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다. 權力에 밉보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아는 사람이다. 自然히 尹錫悅 政府에 對해서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大統領室과 內閣 곳곳에 布陣한 옛 職場 同僚들을 통해 接하는 情報도 있을 테고 말이다.

    尹 大統領이 最近 大邱 西門市場을 訪問했습니다. 尹 大統領이 不便한 자리는 避하고 自身에게 歡呼하는 大衆만 찾는다는 指摘이 있는데요.

    “自身을 剛하게 支持하는 地域 사람들이나 世代는 野黨 指導者일 때 만나야 해요. 政權으로부터 逼迫받고 어려움에 處했을 때, 應援해 주고 拍手 쳐주는 사람들을 통해 힘을 얻는 거예요. 與黨 指導者나 大統領은 그런 쪽에 가면 안 돼요. 그러면 錯覺할 수 있어요. ‘大邱 가보니 나를 熱狂的으로 支持해. 사람들이 歡呼하고 拍手 치고. 輿論調査는 (實際) 輿論이 아닐 거야.’ 이런 自己催眠에 依한 錯覺에 빠질 수 있거든요. 폭넓은 國民의 民心을 誤讀할 수 있어요.”

    大統領室에서는 全南 順天度 訪問했다고 그 나름 抗辯하는데요.

    “西門市場에서는 30分 程度 길을 다니면서 黨員들도 만나고 住民들도 만나 握手하고 얘기하면서 支持者들과 密着하는 行步를 했단 말이에요. 順天에서는 그러지 않았잖아요.”

    大統領室에서 日程 짜는 參謀 中에 黨 出身도 많은데, 그런 걸 몰랐을까요.

    “여러 안을 올렸겠지만, 雰圍氣가 안 좋은 이 時點에서는 大統領에게 힘이 되는 日程 爲主로 잡아야겠다는 政務的 判斷을 했을 겁니다.”

    記者는 新東亞 2022年 4月號 ‘여덟 가지 키워드로 읽는 尹錫悅의 모든 것’ 題下 記事에서 尹 大統領이 競爭者들을 包容하는 統合의 리더십을 펼 것이라 내다봤다. 漠然한 展望이 아니라, 尹 大統領 周圍에 있는 複數의 取材源을 接觸해 내놓은 結論이다. 1年餘가 지난 時點에서 살피면 統合보다는 疾走라는 單語가 어울려 보인다.

    尹 大統領이 大選 期間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 그러니까 競爭 相對들을 內閣에 起用한 링컨의 리더십에 關心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只今 보면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程度인데요.

    “李在明 민주당 黨代表에 對한 怨恨이 큰 것 같아요. ‘저 사람은 確定的인 犯罪者’라는 確信이 있어서 檢事 出身 大統領으로서 犯罪者와 國政 運營을 하는 것이 不適切하다고 判斷하는 것 같습니다. 野黨의 協助 없이 法案 하나 通過될 수가 없는데, 옳지 않은 勢力과는 對話·妥協이 없다는 시그널과 이미지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尹 大統領이 15代 (國會) 때부터 政治權에 關心이 있었고, 政治人들에 對해 속속들이 알았다는 얘기들이 있더라고요. 그때 認識이 좀 잘못 들어간 것 같아요. ‘政治人들은 賂物 받고 不淨腐敗하고 公薦獻金 받는 犯罪에 連累된 사람들’이라는 認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大統領이 政治人들을 낮추본다는 趣旨네요.

    “檢事 出身들은 指示하면 結果物을 내오잖아요. 政治人들은 그렇지 않아요. ‘1+1=2’가 되는 게 政治가 아니잖아요. 다른 變數가 있고, 다른 意見을 가진 사람을 說得해야 하잖아요. 힘이 不足하면 主導權을 뺏기기도 하고. 願하는 걸 100% 얻을 수 없잖아요. 그런 點에 對한 답답함이 大統領에게 있는 것 같아요.”

    金한길·金秉準 等 重量感 있는 政治 멘토들의 役割도 흐릿해졌는데요.

    “大統領 자리에 가면 專門家는 勿論 公職 社會에서 (每日) 報告가 올라오잖아요. 參謀들이 代案을 얘기해도 ‘나는 네가 모르는 다른 情報를 갖고 있어”라면서 助言에 對해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그때부터는 傲慢과 獨善이 나타나더라고요. 大略 6個月 지나면서부터 어느 政治人이나 그러한 모습을 보여요. (尹 大統領은) 參謀들이 모시기 相當히 어려운 스타일이에요.”

    그와 對話하다 보면 尹 大統領에 憑依하는 式의 語法을 자주 接하게 된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보고 政治하지 말라고 했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여 大統領까지 되지 않았느냐. 밀고 나가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거나 “‘나는 내가 判斷하고 決定하고 行動해서 서울中央地檢長度 됐고, 檢察總長도 됐고, (政治 入門) 1年도 안 돼 大統領이 된 사람이야. 너희들보다 政治를 훨씬 잘 알아.’ 自己 確信이다”라는 式이다. 大衆에게 公開되는 인터뷰에서, 그것도 任期 初의 大統領을 겨냥해 쉽사리 驅使할 수 있는 語法은 아니다. 그가 구태여 權力에 아쉬운 소리를 할 理由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傍證이다.

    政務 機能 痲痹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윤석열 정권의 국정 운영에는 정치가 없다”고 했다. [지호영 기자]

    張性哲 共感課論爭 政策센터 所長은 “尹錫悅 政權의 國政 運營에는 政治가 없다”고 했다. [지호영 記者]

    專門家 中에는 박근혜 前 大統領의 沒落을 性格 問題로 接近하는 이들이 있다. 防禦的 性格이 極端的 閉鎖性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秘線 實勢에 依存하는 行動 樣態를 만들었다는 거다. 反面 尹 大統領은 活動的이고 社交的이며 關係를 重視한다. 이에 對해서는 尹 大統領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異見이 없다. 그럼에도 ‘尹錫悅 政府’를 象徵하는 낱말 中 하나는 一方通行이다.

    尹 大統領은 社交性이 또렷한 性格인데, 國政 運營 스타일은 閉鎖的인 것처럼 보입니다. 文化나 制度가 性格조차 相殺시키는 힘이 있는 겁니까.

    “豪宕한 面이 있는 것과 어떠한 判斷과 決定을 할 때 獨斷的으로 決定하는 건 다른 次元의 問題로 보여요. 大選候補 時節 ‘석열이 兄’이라는 캠페인에서 보듯 親近하고 疏通 잘하는 모습을 强調했는데, 政策 決定에서는 相當히 固執이 强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祕書室長이 事實上 役割이 없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政治를 모르는 분이죠. 大統領은 처음 政治를 하니 政治에 老鍊한 사람을 祕書室長으로 내세우고 政策 쪽은 國政企劃首席 같은 자리를 통해 補完하면 돼요. 그런데 다 官僚 出身을 쓴단 말이에요. 政務的 機能이 痲痹됐다고 볼 수 있죠. 祕書室長이 不足하면 政務首席이 뒷받침해야 하는데, 李珍福 首席(大統領政務首席祕書官)은 좋은 분이지만 政務的으로 뛰어나고 戰略的인 思考에 能한 분이냐에 對해서는 다른 意見이 많죠.”

    그는 뒷날 尹 大統領이 泄瀉 정무형 祕書室長을 起用한다 해도 所用이 없다고 悲觀했다. 成功의 經驗이 만든 自己 確信에 더불어, 情報까지 獨占한 大統領이 參謀의 助言에 귀를 기울일 可能性은 稀薄하다는 理由에서다. 有力 大權走者였으나 權力과 不和한 悲運의 與黨 代表(김무성)를 補佐한 그의 말이어서 意味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內閣에 元喜龍(國土交通部), 權寧世(統一部), 朴振(外交部) 長官 等 重量感 있는 政治人도 있잖습니까. 이분들의 政務的 役割은 없나요.

    “없다고 봐야죠. 大統領의 氣에 눌리는 것 같아요. 直接 만나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尹 大統領이) 體格이 크고 豪宕하잖아요. (그런) 尹 大統領이 갖고 있는 雰圍氣에 주눅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言論 報道를 보면 이런 單語가 많이 나와요. ‘大統領이 激怒했다’고. 激怒하면 參謀들이 말을 못 해요.”

    只今이야 黨籍이 없다지만, 그가 親庭과 法的 다툼에 휘말린 건 얄궂은 일이다. 事態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지난해 12月 20日 國民의힘이 全黨大會 룰(rule) 改正 等을 다룬 放送社 時事 프로그램이 與黨에 不公正하다며 “一部 時事 報道 프로그램에서 保守 몫으로 政府·與黨의 立場과 背馳되는 意見을 가진 保守 패널을 出演시키는 境遇가 많아 憂慮스럽다”는 內容이 담긴 公文을 放送社에 보냈다. 이틀 뒤 鄭鎭奭 當時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은 “大統領을 비아냥거리고, 執權與黨을 時도 때도 없이 攻擊하는 사람이 어떻게 報酬를 代辯하는 패널이냐”고 했다.

    이에 張 所長이 “블랙리스트 作成 行爲에 該當한다고 본다”고 했고, 國民의힘은 1月 3日 “張 所長에 對해 민·형사상 措置를 할 方針”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로부터 一週日 뒤인 4月 12日 警察에 名譽毁損과 業務妨害 嫌疑로 정진석 前 非對委員長과 강지연 國民의힘 미디어國葬을 告訴했다.

    “그들을 處罰하기 위한 건 아니고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에 對한 歷史的 記錄을 남겨두기 위해 法的인 措置를 取하는 겁니다. 저야말로 정진석 前 委員長이나 강지연 局長보다 훨씬 保守 右派 쪽에 오래 있던 사람이에요. 政權交替를 위해 더 努力했던 사람이라고 自負하거든요. 잘못한 것도 擁護하고 억지로 抗辯하는 게 保守 右派의 德目은 아니라고 보여요. 이 사람들이 權力을 잡고 나서 여러 가지로 錯覺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張 所長이 劉承旼 前 議員나 李俊錫 前 代表, 천하람 委員長 等과 가까워서 俗稱 찍힌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과 元來 友情이 두터운 게 아니에요. 意見이 같은 거예요. 제가 봤을 때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保守 右派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朴槿惠 政權이 親朴들에 依해 무너져 갈 때 內部的으로 막지 못한 데 對한 限이 있어요. 2016年 朴槿惠 政權이 總選에서 失敗하고 많은 回生의 契機가 있었는데, 親朴들이 ‘大統領과 一致團結한 指導部를 만들어야 해’라면서 2016年 8月 李貞鉉 黨代表 體制가 出帆했잖아요. 그 結論이 뭐예요? 彈劾당하고 大選 지고 總選 지고…. 純血主義는 生態系에서 生存力이 없어요.”

    한길을 繼續 가는 張濟元

    來年 總選을 생각하면 2016年 公薦 波動이 떠오른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때보다 2008年 總選과 비슷해요. 강재섭 代表 때였는데 허수아비 黨代表였고, 이방호 事務總長과 정종복 副總長이 當時 靑瓦臺와 直去來를 통해 公薦을 다 해버렸죠. 親朴들을 虐殺하고 願하는 사람 다 집어넣고.”

    2016年 靑瓦臺 側에서 總選을 앞두고 “朴 大統領에게 충성하는 80~90名 程度의 議員만 있으면 된다는 게 靑瓦臺의 생각”이라고 했다는 逸話를 暴露한 記憶이 납니다.

    “(그것과) 비슷하죠. ‘나는 檢察權이 있잖아. 有能한 내 後輩들이 政治權을 새롭게 바꿀 수 있을 거야. 그 사람들만 내보내면 首都圈과 中道層, 20~30臺가 우리를 支持할 거야. 왜? 民主黨에 李在明이 있잖아. 犯罪 嫌疑者인 李在明 黨代表가 公薦한 候補들을 國民들이 어떻게 選擇하겠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檢事 數十 名이 總選에 出馬한다는 展望이 나옵니다.

    “只今까지의 尹 大統領 人事 스타일을 보면, 같이 일했고 信賴했던 사람들을 大規模로 政治權에 進入시키고 싶어 할 것 같아요. 明若觀火해 보여요. 李卜鉉 金融監督院長이 이 政權 내내 金監院長 하진 않을 거잖아요. 政治權에 데뷔시키겠죠. 21世紀 大韓民國에서 檢察 出身들이 가장 똑똑하고 能力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果然 多樣化된 大韓民國을 하나로 묶어 運營해 나갈 수 있을지 率直히 懷疑的이거든요. 檢察 出身들이 工夫는 잘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專門 分野에서 能力을 認定받고 業績을 쌓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大統領이 檢事 出身이니 믿는 사람들을 公薦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一部分이어야 해요.”

    尹核關(尹 大統領 側 核心關係者)으로 꼽히는 張濟元·權性東 議員은 바른政黨 創黨 同志인데요.

    “同志라기보다는 저는 (補佐官으로서) 創黨 實務 企劃을 했던 사람이고, 그분들이 움직여서 바른政黨이 創黨됐죠. 그들이 바른政黨을 創黨한 건 合理的이고 中道的인 勢力을 만들어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기문 前 유엔 事務總長을 大權候補로 내세워 權力을 維持하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張濟元 議員은 그 한길을 繼續 가는 거죠. ‘내가 믿는 사람이 大統領이 돼서 난 거기서 ‘核館’으로 자리 잡아서 權力을 繼續 維持하고 行使할 거야‘라는, 權力慾이 가득한 모습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진 模樣새인데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主導權 다툼에서 권성동 議員이 좀 밀렸다고 볼 수밖에 없죠. (두 사람 中) 더 合理的이고 客觀的이고 常識的인 분은 권성동 議員 같아요. 權 議員이 張濟元 議員보다 尹 大統領과 더 親密度가 높고 信賴받았다면 黨이 이렇게까지 안 좋은 쪽으로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權力의 暴走

    이명박·박근혜 政府 때보다 保守가 進化했습니까, 아니면 正體 或은 退步했습니까.

    “退步했습니다. 尹錫悅 政權의 國政 運營에는 政治가 없어요. 一方的인 指示와 通報만 있죠. 정진석 前 非對委員長을 두고 後날 歷史家들은 保守右派 陣營과 國民의힘을 망친 사람으로 指目할 겁니다. 非對委員長 時節 黨과 大統領室은 샴雙둥이처럼 하나가 돼야 한다고 했어요. 黨은 國民의 民心을 받아 大統領에게 傳達하는 밝은 눈과 귀가 돼야 하는데 스피커 役割만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럼 黨은 存在할 理由가 없죠. 그 出發點을 鄭 前 委員長이 끊었다고 봐요. 全黨大會 룰을 大統領이 願하는 쪽으로 바꿔줬잖아요.”

    이날 그는 主로 自身의 經驗을 土臺 삼아 權力의 暴注에 關해 이야기했다. 黨職者이자 補佐官으로서 權力이 어떻게 明滅을 거듭했는지 코앞에서 지켜본 사람이니 可能한 일이다. 말하자면 그는 牽制와 均衡이 사라진 ‘保守의 민낯’을 目擊한 사람이다. 그런 自身마저 입을 다물어버리면 保守가 다시 沒落하리라는 憂慮가 그의 말에 묻어 있다.

    “다른 소리 할 수 있잖아요. 잘못된 건 批判할 수 있고요. 같은 便이 했다고 ‘放送 出演시키지 마’란 待接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文在寅 政權에서 祖國 前 法務部 長官을 赤裸裸하게 批判했어도 그러지 않았거든요. 옳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데 自愧感이 듭니다.”

    신동아 5월호 표지.

    신동아 5月號 表紙.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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