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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明 ‘親日國防論’도 鄭鎭奭 ‘朝鮮亡國論’도 틀렸다|신동아

李在明 ‘親日國防論’도 鄭鎭奭 ‘朝鮮亡國論’도 틀렸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王朝는 卑怯했으나 百姓은 勇敢했다

  • 노정태 經濟社會硏究院 專門委員·哲學

    basil83@gmail.com

    入力 2022-10-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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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親日?反日 論할 事項 아니거늘

    • 北과 戰爭 時 日本 손은 뿌리칠 텐가

    • 與圈이 내놓을 수 있던 ‘正答’은…

    10월 12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0月 12日 鄭鎭奭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왼쪽)과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代表(오른쪽)가 서울 汝矣島 國民日報 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2 國民未來포럼’에 參席해 對話를 나누고 있다. [寫眞共同取材團]

    “大韓民國의 軍事 安保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日本의 軍事 利益을 지켜주는 行爲라고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極端的 親日 行爲다. 대일 屈辱 外交에 이은 極端的 親日 國防 아니냐.”

    10月 7日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代表가 민주당 最高委員會議에서 한 말이다. 北韓의 미사일 發射 挑發이 연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美·日 東海 聯合 軍事訓鍊을 두고 “外交 慘事에 이은 國防 慘事”라며 대단히 强勁한 코멘트를 던진 것이다.

    突發的 發言이 아니다. 바로 前날, 서울 龍山區 合同參謀本部에서 열린 國會 國防委員會 國政監査에서 李在明은 김승겸 合同參謀本部 議長을 相對로 “日本 自衛隊와 獨島 近海에서 合同(聯合) 訓鍊을 하게 되면 自衛隊를 正式 日本 軍隊로 認定하는 것 아니냐”고 質問했다. 김승겸이 “獨島 近處라고 하지만, 獨島와 185㎞ 떨어져 있고 日本 本土와 120㎞ 떨어져서 오히려 日本 本土와 가까웠다”고 答하자, 李在明은 準備해온 듯한 한 마디를 던졌다. “必要하면 언제든지 日本 自衛隊가 韓半島에 들어와서 作戰을 해도 되는가?”

    다시 歷史論爭에 빠진 大韓民國

    민주당 黨代表가 反日 攻勢를 몰아가는 가운데, 尹相現 國民의힘 議員이 砲門을 열었다. 10月 9日 그는 페이스북에 “왜 李 代表는 日本에는 竹槍으로, 美國에는 쇠막대기로, 尹錫悅 政府에는 角木으로 攻擊하면서, 우리를 威脅하는 北韓에는 限없이 부드러운 깃털로 攻擊하는 시늉만 하는 것인가”라고 썼다.

    鄭鎭奭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이 參戰하면서 이 論爭은 單純한 國防 問題에서 近現代史를 바라보는 歷史觀의 問題로 昇華됐다. 鄭 委員長이 10月 11日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한 대목을 引用해본다.



    “朝鮮은 왜 亡했을까? 日本軍의 侵略으로 亡한 걸까? 朝鮮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亡했다. 日本은 朝鮮王朝와 戰爭을 한 적이 없다.”

    朝鮮이 日本에 依해 合倂된 것은 朝鮮 스스로의 탓이거나, 적어도 남을 非難할 일은 아니라는, 말하자면 ‘朝鮮亡國論’에 基盤한 主張이다.

    李在明의 發言에 對해 政府와 與黨이 내놓을 수 있는 ‘正答’은, 적어도 筆者가 보기에 따로 있다. ‘退行的인 歷史論爭과 反日몰이는 그만둬라, 北韓의 挑發에 對應하면서 民生을 챙기기도 바쁜 時點이다’라고 應酬하면 그만이다.

    核彈頭를 가진 北韓이 發射體를 改良하고 있다는 건 否定할 수 없는 事實이다. 게다가 1400원臺를 넘나드는 換率과 그로 인한 高物價가 庶民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金利를 높인 탓에 이른바 ‘靈끌族’을 비롯한 高額 貸出者들 亦是 呻吟소리를 내고 있다. 國政 全般에 對해 包括的 責任을 避할 수 없는 政府와 與黨은 抽象的이고 먼 過去에 對한 論議보다는 當面한 現實的 問題에 于先 集中하는 便이 옳다.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 수는 없는 法. 2022年 10月 現在, 大韓民國은 다시 한 番 歷史 論爭에 빠지고 말았다. 日本이 公式的으로 ‘軍隊를 가진 나라’가 된다는 것은 果然 우리에게 威脅인가, 아니면 도움이 되는 일인가. 韓美同盟의 틀 안에서 日本과 協力하는 것은 싫어도 먹어야 하는 쓴 約 같은 것인가, 아니면 積極的으로 追求해야 할 未來志向的 行爲인가. 朝鮮이 亡하고 日本의 植民地가 된 것은 邪惡한 侵略者 日本 帝國主義 때문인가, 아니면 朝鮮王朝 스스로의 問題 때문이었는가.

     6월 29일 한‧미‧일 3국 정상이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대통령실사진기자단]

    6月 29日 한?美?日 3國 頂上이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國際會議場에서 頂上會談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尹錫悅 大統領,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 기시다 후미오 日本 總理. [大統領室寫眞記者團]

    6?25戰爭과 日本

    韓國이 戰時 狀況에서 日本의 도움을 받는 일은 果然 想像할 수 없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國防 慘事’일까. 그런 狀況을 前提로 우리의 國防 政策을 計劃하고 論議하는 것은 ‘極端的 親日’일까. 그렇지 않다. 國軍 및 大韓民國 全體가 有事時에 日本 및 日本 軍事力의 도움을 받는 것은 親日, 反日을 論할 事項이 아니다. 20世紀 中盤 以後의 現實 속에서 그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外交·安保의 當然한 前提 條件 中 하나일 뿐이다. 甚至於 歷史的으로 볼 때 이미 現實 속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2011年作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1963年의 요코하마를 背景으로 하고 있다. 主人公은 열여섯 살 少女 미츠자키 優美. 언덕 위의 코쿠리코 下宿집을 運營하며 兩親 없이 살아간다. 어머니는 美國으로 留學을 가 있고, 船長이었던 아버지는 不意의 事故로 世上을 떠났다. 優美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每日 아침 배들의 無事 航海를 祈願하는 旗발을 내건다.

    앞서 말했듯 優美는 열여섯이고, 背景은 1963年이다. 1945年, 日本이 太平洋戰爭에서 降伏한 바로 그 해에 태어난 ‘戰後世代’다. 그리고 優美는 아버지와의 追憶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優美의 아버지가 世上을 뜬 것은 優美가 태어난 1945年 以後의 일이다. 大體 어떤 일로 優美의 아버지는 목숨을 잃게 됐을까.

    正答은 6?25戰爭이다. 많은 이들이 運轉할 줄 아는 自動車와 달리 飛行機나 배는 該當 機體를 다룰 줄 아는 人員이 同時에 戰爭에 끌려들어가는 일이 적지 않다. 軍人이 아닌 民間 海運會社의 船員이던 優美의 아버지가 6?25戰爭에 參戰하게 된 건 그런 理由에서다. 興南撤收 當時 1萬3000餘 名의 避難民을 싣고 釜山으로 向한 메러디스 빅토리號, ‘칼레의 奇跡’으로 불리는 됭케르크 撤收作戰에 投入된 수많은 漁船과 마찬가지다.

    優美의 아버지 設定을 만들 때 지브리의 製作陣이 參考한 實話는 다음과 같다. 戰爭에 動員된 民間 貨物船 中 하나인 센盞마루가 機雷 탓에 沈沒하고 被害者가 發生한 것이다. 簡單히 말해, 6?25戰爭에서 韓國을 돕다가 日本人이 목숨을 잃었다. 當時 日本은 美國에 依해 점령당한 狀態였으므로 日本 스스로의 意志에 따른 行爲라고 말하기에는 語弊가 있다. 하지만 日本이 우리의 友邦으로 活動한 點을 否定해서는 안 된다. 儼然한 歷史的 事實이기 때문이다.

    萬若 北韓이 다시 武力을 動員해 韓國을 侵攻한다면 어떻게 될까. 過去와 달리 只今은 在來式 兵力에서 南北 間 隔差가 엄청나지만, 北韓에는 核이 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現在 사드(THAAD·高高度미사일防禦體系)는 平澤 美軍基地가 屬해 있는 中部地域만을 커버할 뿐이다. 大韓民國의 人口, 尖端 産業, 國力이 集中돼 있는 首都圈은 核을 비롯한 北韓의 長距離 미사일 攻擊 앞에 相對的으로 허술하게 露出돼 있다. 多幸히 몇 基의 미사일을 막아내거나 무력화한다 해도, 單 한 발이라도 떨어진다면, 只今 우리가 當然하게 여기는 ‘韓國의 優勢, 北韓의 劣勢’는 現實이 아니게 될 수 있다.

    日帝에 ‘已往(李王)’ 作爲 받은 朝鮮王室

    安保와 國防은 最惡의 狀況을 假定하고 對備해야 마땅하다. 與野의 立場이 달라서는 안 될 일이다. 野黨 黨代表는 大統領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潛在的 未來 權力이며 國家 指導者 中 하나다. 北韓이 核保有國이 돼 있다는 것을 더 以上 否定할 수 없는 現實에서, ‘日本의 도움 없이 韓美同盟만으로도 充分하지 않느냐’는 主張을 하며 輿論을 煽動하는 國家 指導者가 있다는 것은 實로 놀라운 일이다.

    筆者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남은 平生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 하지만 萬若 北韓이 우리를 다시 攻擊한다면, 駐日美軍뿐 아니라 日本 自衛隊, 더 나아가 日本 民間 領域의 힘을 빌어서라도 우리는 싸워야 한다. 北韓과의 戰爭 狀況에서 ‘極端的 親日’ 云云하며 日本의 도움을 뿌리치는 것이야말로 國家的 次元의 ‘極端的 選擇’이라고 말해도 無理가 아닐 것 같다.

    問題는 國民의힘의 對應이다. 日本이라는 ‘絶對惡’李 朝鮮이라는 ‘善한 弱者’를 侵奪했다는 觀點만큼이나, 朝鮮은 ‘亡할만한 나라’ ‘亡해도 싼 나라’였기 때문에 亡했다는 主張 또한 歷史的 現實을 穩全히 反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保守 陣營과 親和性을 지니는 ‘朝鮮亡國論’만큼이나, 進步 陣營에 친숙한 ‘朝鮮被害者論’ 亦是, 當時를 살았던 朝鮮人들의 複雜하고 多層的인 世界를 度外視하고 있다.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觀點 모두 잘못된 觀點이다. 오직 國家만을 歷史의 主體로 보는 誤謬를 犯하고 있다.

    ‘朝鮮被害者論’의 問題부터 살펴보자. 只今까지 確認된 歷史的 事實과 符合하지 않는다. 朝鮮 王室은 朝鮮이라는 國家 그 自體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王室의 安慰와 豐饒에만 關心이 있었다. 中國(淸나라), 러시아, 日本 等 여러 外勢를 놓고 줄타기를 하며 自身들의 庫間을 불려나갔을 뿐 根本的인 改革과 富國强兵 따위는 그리 眞摯하게 苦悶하지 않았다. 高宗은 歷史的 召命意識을 지니고 富國强兵을 꾀한 悲運의 改革君主와 距離가 먼 人物이다. 그 아들인 純宗 亦是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비롯한 朝鮮의 王室 後裔들은 日本으로부터 天皇家(家) 다음이자, 다른 貴族과도 區分되는 ‘已往(李王)’의 爵位를 받았다.

    그러나 그런 事實만을 根據로 ‘朝鮮은 抵抗 없이 亡한 나라’라고 말하는 것도 語弊가 있다. 朝鮮의 王室과 高位職, 兩班들이 나라가 亡하건 말건 自身들의 安慰와 利益을 챙길 때, 外勢의 國權 侵奪에 맞서 싸우는 쪽을 擇한 이들이 存在하는 것 또한 歷史的 事實이기 때문이다. 1907年 8月부터 1910年까지 日本軍과 義兵의 戰鬪를 보면, 2852回의 戰鬪로 인해 1萬7779名의 朝鮮人이 戰死했다. 이것은 日本 側의 記錄으로 確認 可能하다. 單純 騷擾나 治安 不安으로 說明하기 어려운 現象이다. 可히 內戰 狀況이었다는 얘기다.

    歷史는 平凡한 사람이 이끌어 간다

    여기서 우리는 19世紀 末부터 20世紀 初까지 이어진 韓半島 歷史의 矛盾을 目擊할 수 있다. 아무리 잘 싸운다 한들 日本의 힘을 이길 수 없으며 經濟的, 社會的 報償을 받으리라 期待하기 어려운 地方의 儒生과 殘飯, 平民들은 日本과 게릴라전을 벌이며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義兵들이 지키고자 했던 朝鮮의 王室과 그 側近들은 自身들의 利益을 圖謀하기 바빴으며 日本으로부터 돈과 爵位를 챙기기 위한 裏面의 協商을 繼續해 나갔다. 朝鮮은 絶對惡에 依해 滅亡한 善良한 弱者인가, 아니면 抵抗 한 番 하지 못하고 亡해버린 腐敗한 封建 國家였을 뿐인가.

    正答은 둘 다 맞고 둘 다 틀렸다는 것이다. 朝鮮은 王朝國家였으나 스스로 생각하고 行動하고자 하는 百姓들의 힘으로 支撐되고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王朝는 無能하고 卑怯했으나 百姓들은 外勢 앞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1919年 3月 1日 高宗의 葬禮式을 핑계로 거리에 나온 朝鮮人들이 王朝의 復元이 아닌 새로운 民主共和國을 志向하며 ‘大韓獨立萬歲’를 외쳤던 까닭은 그런 理由 때문 아니었을까. 歷史를 이끌어 가는 힘은 結局 平凡한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노정태
    ● 1983年 出生
    ● 高麗大 法學科 卒業, 서강대 大學院 哲學科 碩士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韓國語版 編輯長
    ● 著書 : ‘不良 政治’ ‘論客時代’ ‘탄탈로스의 神話’
    ● 曆書 : ‘밀레니얼 宣言’ ‘民主主義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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