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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黃敎安 “제가 親朴(親朴)이라고? 얼굴에 써 있나”|신동아

〈인터뷰〉 黃敎安 “제가 親朴(親朴)이라고? 얼굴에 써 있나”

2·27 全大로 돌아온 黃敎安 前 總理

  • 배수강 記者

    bsk@donga.com

    入力 2019-02-18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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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彈劾 事件’ 心慮 끼쳐 悚懼

    • 文政府 失政이 나를 召喚했다

    • 文政府 報復과 理念에 사로잡힌 ‘政策 暴走’

    • 北만을 위하는 文政府, 總選에서 審判

    • 統進黨 解散, 憲法守護 歷史로 記憶될 것

    • 肺疾患 앓은 아들 粉塵 印刷所 配置된 게 兵役特惠?

    • 强한 野黨 必要…黨 根本 體質부터 확 바꾸겠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記者]

     ‘黃敎安이 돌아왔다.’

    黃敎安 前 國務總理가 1月 15日 自由韓國黨에 入黨하고 내친김에 黨代表 選擧에 뛰어들었다. 최순실 國政壟斷 事態 以後 한동안 求心點을 찾지 못하던 韓國黨은 ‘黃敎安 召喚’에 반색했고, 黃 前 總理는 ‘强한 野黨’ 旗발을 높이 들고 ‘保守 結集의 아이콘’을 自處한다. 韓國黨 支持率은 모처럼 고개를 들었고, 오랫동안 黨權을 노리던 老將(老將)들은 ‘黃의 登場’에 舞臺 밖으로 밀려났다. 오세훈 前 서울市長, 金振泰 議員과의 黨權 레이스에서도 ‘統合’을 强調한다.

    그러나 黨 代表가 되면 ‘도로 親朴黨’이 될 거라는 ‘박근혜 프레임’은 如前히 그의 발목을 잡는다. 擴張性과 콘텐츠 不足을 憂慮하는 視線도 걷어내야 한다. 그는 彈劾과 잇따른 選擧 敗北로 수렁에 빠진 保守派를 統合하고 革新해낼 수 있을까. 2022年 大選에서 유리한 高地를 占할 수 있을까. 政治 新人 黃敎安의 ‘쇼’는 이제부터다. 그래서일까. 2月 12日 午後 서울 汝矣島洞 ‘黃敎安 캠프’에서 만난 그는 “내가 親朴인가?”라며 되물었다.

    - 박근혜 前 大統領의 辯護人 柳榮夏 辯護士는 ‘黃 前 總理가 大統領權限代行 時節(朴 前 大統領 收監 拘置所 房에) 冊床과 椅子 搬入을 要求했지만 反映되지 않았다’며 ‘배박(背朴) 論難’에 불을 지폈다. 黃 前 國務總理는 朴 前 大統領에 對한 特檢 搜査期間 延長 要請을 不許(不許)韓 點을 浮刻해 맞불을 놓았는데.

    “글쎄. 내가 ‘親朴’인가…. ‘親朴’ ‘非朴’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나?”

    - 朴槿惠 政府에서 法務部 長官과 國務總理를 지냈고, ‘親朴’은 韓國黨 入黨의 原動力인 거 같은데.




    “長官, 總理로서 일할 때는 大韓民國을 위해 함께 일한 것이지 ‘親朴’ 때문이 아니다. 이미 黨內 系派는 없고, 系派 싸움할 時間도 없다.”


    朴槿惠 政府 共同責任論

    - 黃 前 總理가 代表가 되면 韓國黨은 ‘도로 親朴黨’李 되고, 選擧에서는 ‘民主黨 도우미’가 될 거라는 觀測이 黨內에서도 나온다. ‘박근혜 政府 共同責任論’ ‘彈劾 프레임’ 攻勢에 對해선 어떻게 보나.

    “그런 責任感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는 部分에 對해 또 다른 責任感을 갖게 됐다. 망가진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使命이 생겼다. 事實 朴 前 大統領이 法的 措置를 받아 收監돼 있는 狀況은 안타깝고 不便한 마음이 크다. 當時 國務總理로서 國民들께 心慮를 끼쳐드려 嚴重한 責任을 느끼고 있고, 國民들이 이 問題로 걱정하고 많이 아파하는 걸 보면 무척 悚懼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只今 重要한 것은 團合된 힘으로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런 目的이 같다면 여러 葛藤은 解消할 수 있다고 본다. 過去의 일에 매달리기보다 現 政府 實情(失政)으로 苦痛받는 國民들을 위해 다 함께 하나로 統合해 未來로 나아가야 할 때다. 지난 政府의 어려움에 머물러선 안 되며, 正말로 나라를 다시 살리기 위한 일을 해나가야 한다.”

    - 黃 前 總理는 隨筆集(‘黃敎安의 答’)에서 朴槿惠 政府를 ‘改革志向政府’라고 評價했지만 當時 함께 일한 靑瓦臺 參謀 多數가 收監 中이거나 裁判을 받고 있다.


    “박근혜 政府는 一部 輿論의 反對 속에 公務員 年金改革을 斷行했고, 洗手 基盤을 擴充해 나라의 財政을 튼튼하게 했다. 歷史的으로 보면 只今과는 다른 評價를 받을 것이라 確信한다. 모든 政權이 그러했듯, 朴槿惠 政府도 功過(功過)가 있다. 不足한 部分 때문에 朴 前 大統領과 많은 公務員이 苦楚를 겪고 있는 건 事實이나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政權은 바뀌지만 大韓民國 政府는 繼續 發展해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現 政府는 國家 發展 次元에서 지난 政府가 잘한 政策은 繼承하는 等 政策 連續性을 살펴보고 열린 政府를 志向해야 한다.”


    “彈劾 以後 뭘 했냐면…”

    - 설 民心(民心)은 무엇이었나.

    “經濟 破綻 等 政府 實情(失政)으로 ‘너무 힘들다’는 呼訴를 많이 했다. ‘苛酷한 政治는 虎狼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라는 말을 實感했다. 政治 報復과 理念에 사로잡힌 ‘政策 暴走’를 멈추고 合理的인 政府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懇曲한 當付도 있었다. 생각보다 現場의 삶이 훨씬 어렵다는 걸 體感했다. 이제는 中産層이 極貧層으로 떨어져 福祉에 依存하는 時代가 됐고, 나라는 總體的 難局인 狀況이다.”

    - 大選 以後 1年 7個月間 ‘混沌의 保守陣營을 위해 아무런 寄與를 하지 않았다‘는 批判도 나온다.

    “그동안은 黨의 孤軍奮鬪를 보면서 黨과 國家, 國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苦悶하고 省察하는 時間을 가졌다. 그런데 이대로 두면 나라가 後退하겠다는 切迫함이 생기더라.”

    - 省察 結果가 政治權 入門이었나.


    “그렇다. 國民을 對象으로 한 無謀한 經濟 實驗,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國民들의 切實한 목소리, 國民 中心이 아니라 北韓 中心의 不安한 北核(北核) 協商 等 現 政權이 만든 實情과 破綻이 나를 (政治權으로) 召喚했다. 只今은 자유로운 大韓民國, 잘사는 大韓民國을 維持하느냐 마느냐가 切迫한 問題가 됐다. 庶民이 잘사는 나라, 中産層을 늘리고 中産層이 富者가 되는 善循環을 만들어내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 自由 右派를 위해 公職에서 쌓은 經驗과 力量을 國家와 國民을 위해 盡力해보려고 한다.”


    “이제 强力한 野黨이 必要하다”

    2월 1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2·27전당대회 충청·호남권 첫 합동연설회에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진태 의원(왼쪽부터)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양회성 기자]

    2月 14日 大田 한밭體育館에서 열린 自由韓國黨 2·27全黨大會 忠淸·湖南圈 첫 合同演說會에서 黨 代表 選擧에 出馬한 黃敎安 前 國務總理, 오세훈 前 서울市長, 金振泰 議員(왼쪽부터)이 黨員들에게 人事하고 있다. [동아일보 양회성 記者]

    - 그러고 보니 黃 前 總理는 ‘文在寅 政府 經濟 基調는 땜질 經濟’라며 連日 批判하는데. 文在寅 經濟政策의 問題點과 改善 方案은 무엇이라고 보나. 

    “市場經濟 體制에서 經濟는 市場에 맡기는 게 順理다. 지나치게 介入하고 葛藤을 誘發하는 것은 市場 混亂을 부추기고, 結局 그 被害는 고스란히 國民에게 轉嫁된다. 現在 우리나라 經濟 狀況을 보면 그런 憂慮가 現實이 되는 거 같아 무척 걱정스럽다. 經濟가 破綻 나면 國家 시스템이 崩壞되고, 나아가 總體的 難局에 逢着해 손을 쓰기 힘든 狀況에 빠질 수도 있다. 韓國 經濟는 過去 7% 以上의 高成長에서 只今은 3% 成長도 어려운 地境이고, 低成長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收縮社會’로 치닫는 狀況이다. 그럼에도 現 政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만 汲汲해 公共 分野 일자리와 短期 알바(아르바이트)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國民의 눈을 가리려고 한다. 이는 彌縫策이다. 官治(官治)를 通해 市場經濟 生態系를 攪亂하지 말고, 企業과 勤勞者가 活潑히 經濟活動을 해나갈 수 있는 環境을 造成하고 성장시키는 觸媒劑 役割에 忠實하기 바란다.” 

    - 入黨 後 곧바로 黨權 挑戰에 나선 理由는 뭔가. 

    “韓國黨은 豫期치 못한 敗北에 挫折했고, 나아갈 方向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 大韓民國의 價値를 지키고 이 나라를 한 段階 더 跳躍시키기 위해서는 이제 强力한 野黨이 必要하다. 只今과는 다른 方式의, 國民 輿論이 물 흐르듯 糖으로 流入되고, 國民 意見이 黨 意見이 되고, 그 意見을 바탕으로 希望을 提示할 수 있어야 한다. 黨의 根本 體質부터 확 바꿔 民主的 政黨으로 再誕生하게 하려면 强力한 指導力이 必要하다. 舊態 政治에 때 묻지 않은, 新鮮한 視角과 哲學으로 黨을 바꿔야 한다.” 

    - 全黨大會 候補 支持率과 次期 大選 候補 支持率 1位에 오르는 等 初盤 雰圍氣는 좋은 거 같다. ‘保守 求心點’이 됐다고 보나. 

    “國民들의 輿望이 反映됐다고 본다. 輿論調査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不安해하고 두려워하는 國民들의 輿望이 徐徐히 드러나는 거 같다.” 

    - 不安해하고 두려워하는 國民들의 輿望이라면…. 

    “國民은 常識과 合理에 바탕을 둔 나라, 憲法 價値를 지키는 나라를 願하는데 철 지난 理念에 埋沒된 現 政府가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이들이 말하는 ‘한 番도 가보지 않은 길’이 어떤 길인지, ‘主流 社會를 交替하겠다’는 이들의 主張이 果然 무엇을 말하는지 恐怖스럽다. 나는 國民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을 살피고 받들어 膽大하게 政治의 길을 가겠다.” 

    - 이番 黨 代表 選擧는 大選 前哨戰 性格이 짙다. 代表가 되면 來年 4月 總選을 이끌어야 하고, 2022年 次期 大選 候補 競爭에서 유리한 高地에 오를 수 있다. 

    “來年 總選은 2022年 政權交替를 위한 中間 過程이다. 現 政權은 나라를 성장시키고 經濟를 키우고 國民을 幸福하게 하는 政策보다는 南北關係 改善에만 集中하는 政策, 北韓 處地를 念頭에 두고 政策을 폈다는 印象을 지울 수 없다. 國民들은 이를 容納하지 않을 것이다. 黨 代表가 되면 于先 韓國黨이 第1黨이 되도록 할 거다. 幸福하고 자유로운 大韓民國을 만들 수 있는 政策들을 提示하겠다.” 

    - 總選, 大選 勝利는 結局 指導者 리더십과 擴張性 與否에 달린 게 아닐까. 選擧에서 이기려면 ‘山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黃 前 總理는 右派 中 第一 오른쪽에 있다’(오세훈 前 서울市長)거나, 政治 經驗 不足으로 鬪爭과 統合 리더십을 發揮할 수 있을지 疑懼心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글쎄. 내가 入黨하고 黨權 走者가 된 요즘처럼 黨이 활기찬 적이 있었나. 朴 前 大統領 彈劾 以後 처음으로 黨 支持率은 30%를 突破했다. 나보고 公務員 生活만 했다고 하는데, 國務總理는 ‘飯(半)政治인’ 자리다. 與黨은 勿論 野黨과도 緊密하게 協助·疏通해야 하고 國政 全般과 政治를 알아야 하는 자리다. 勿論 黨 代表가 되면 더 많은 疏通과 協力이 必要하다. 대여(對與) 鬪爭力을 强化하려면 統合과 革新은 必須다. 우리 黨은 勿論, 다른 野黨과 緊密하게 協助해 文在寅 政權의 實情을 徹底히 바로잡겠다. 自由民主主義라는 憲法的 價値, 自由 右派의 價値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克服할 것이다. 새로운 自由 右派의 모습을 만들기 위한 革新과 變化에도 躊躇하지 않겠다.” 

    黃 前 總理의 入黨 以後인 1月 29日 韓國黨 支持率은 최순실 國政壟斷 事態 以後 가장 높은 26.7%(YTN·리얼미터 調査)를 記錄했다. 2月 8日에는 29.7%(tbs·리얼미터 調査)로 3週 連續 上昇勢를 이어갔고, 2月 12日 아시아투데이·알앤서치 調査에선 朴 前 大統領 彈劾 以後 처음 30%를 突破(30.5%)했다. 그러나 韓國黨 李鍾明 金順禮 金振泰 議員 等 이른바 ‘5·18 貶毁 論難’ 以後 調査에선 25.7%(tbs·리얼미터 2月 11~13日 調査), 19%(韓國갤럽 2月 12~14日 調査)로 急落했다. 仔細한 輿論調査 內容은 中央選擧輿論調査審議委員會 홈페이지 參考.

    公安檢事와 時代精神

    - 2月 8日 ‘5·18 眞相糾明 對國民 公聽會’에서 韓國黨 議員들과 지만원 氏 發言이 알려지며 ‘5·18 貶毁 論難’이 있었다. 黨 支持率도 急落했는데.

    “그 사람(지만원) 主張을 여기에서 말할 건 아니고… 5·18은 歷史的 아픔이고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敎訓이고, 여러 次例 法的 判斷도 있었다. 未來를 向해 나가야 할 때에 아픈 過去에 對한 論難을 만들거나 또는 傷處를 입힐 말은 삼가야 한다. 一部 議員들이 極端的 主張에 同調하는 것처럼 비치는 發言을 해 黨 全體가 論難에 휩싸이게 된 것은 遺憾스럽다.”

    -黃 前 總理는 入黨 記者會見 때부터 줄곧 保守大統合을 强調했지만 具體的 戰略은 안 보이는 거 같다. 黨內 系派는 勿論 野黨과의 統合 戰略은 무엇인가.

    “내가 자주 쓰는 말이 ‘三合(三合)’이다. 統合·和合·團合. 自由民主主義 價値를 가진 분이라면 누구든 함께할 수 있는 것이 自由民主主義다. 志向하는 憲法 價値가 같다면 過去 葛藤과 서로 다른 部分들은 얼마든지 克服할 수 있다. 韓國黨의 門(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고, 市場經濟, 法治主義 等 憲法的 價値를 尊重하는 사람들은 하나로 統合해야 한다. 統合 對象에 特定人이나 特定 勢力을 制限해선 안 된다. 勿論 保守統合을 하려면 戰略과 協商이 必要한데, 나는 ‘내려놓는’ 協商의 技術이 必要하다고 본다. ‘내려놓음’이라는 過程을 통해 統合을 이뤄가는 過程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吳世勳式 非核化’ 不必要한 論難 만들어”

    - 黃 前 總理는 高位層의 ‘壓力’에도 國家情報院 道廳 事件(김대중 政府 時節 國精院이 野黨 政治人과 民間人을 對象으로 盜監聽韓 事件), 동국대 강정구 敎授 事件(‘6·25는 統一戰爭’ 等의 글을 인터넷에 올려 國家保安法을 違反한 嫌疑) 等을 搜査하며 ‘公安檢事’로 이름을 알렸지만, 公安檢事가 오늘날 時代精神과 맞지 않다는 見解도 있다.

    “‘國精院 盜聽 事件’ 當時 나는 서울中央地檢 次長檢事였는데, ‘不法은 決코 正當化될 수 없다’는 基本 立場으로 搜査 檢事들을 指揮했다. 그 結果 前職 國精院長 2名과 次長 1名을 拘束됐고, 以後 慣行的으로 해오던 國精院의 不法 道廳은 사라졌다. 國民이 安心하고 生活하는 社會를 만드는 게 오늘날 時代精神 아닌가. 30年 동안 檢事로 일하며 社會 正義와 法治를 具現하고, 安全하고 安心하며 사는 社會를 만들려고 努力했다고 생각한다. 平素 ‘半걸음만 앞서 가자’는 信念으로 公職生活을 해왔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臨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主導的으로 살기 위해 努力했다.”

    - ‘꽃길만 걸어왔다’는 一角의 認識에 對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꽃길만 걷는 삶과는 距離가 멀다. 어려서부터 家庭環境이 어려웠고, ‘所信 搜査’를 했다가 同期들이 進級할 때 ‘물먹은’ 적도 있었다. 檢事職을 그만둘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꽃길만 걸었다’는 것은 제가 法務部 長官 할 때와 國務總理 時節 모습만 보고 말하는 거 같다.”

    - 保守 政治人의 主要 德目 中 하나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인데, 黃 前 總理의 軍 免除 事實은 알려졌지만 最近 아들의 兵役特惠 疑惑도 불거졌다. 黃 前 總理가 2009年 大邱高檢長 時節, 知人이 있는 部隊에 아들이 背馳돼 補職 變更 特惠를 받았다는 건데.

    “나의 軍 免除 關聯 疑惑은 法務部 長官, 國務總理 人事聽聞會 때 다 모두 解明된 事案이다. 나는 軍隊를 가고 싶었으나 (1980年 身體檢査에서 膽痲疹(두드러기) 疾患으로) 現役 判定을 받지 못해 軍隊를 가지 못했을 뿐이다. 兵役 義務를 다하지 못한 것에 對해 늘 國家와 國民에 빚진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들이 軍 服務 時節 여러 番 補職變更으로 特惠를 받았다는 報道는 모두 ‘假짜뉴스’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印刷所 勤務兵(普及)에서 行政兵으로 딱 한 番 補職變更이 있었는데, 通商 部隊 內에서 公席이 생겨서 後任兵으로 간 것이고, 所屬은 如前히 印刷所였다. 氣胸 疾患(肺에 氣囊이 터지거나, 胸膜이 破裂돼 弊를 감싸는 胸膜 사이에 空氣가 고이는 疾患)을 앓아 治療를 받았던 아들이 종이가루가 날려 空氣가 좋지 않은 印刷所로 配置된 게 特惠란 말인가. 억지다.”

    - 2月 27~28日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北·美 頂上會談과 北韓 核問題에 對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2次 北·美 頂上會談에선 가장 重要한 ‘北韓 非核化’를 위해 두 頂上 間에 實質的인 論議가 必要하다. 金正恩 政權은 權力 維持의 核心 手段인 核을 自發的으로 抛棄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北韓을 움직일 수 있는 唯一한 手段은 制裁와 壓迫뿐이다. 北·美 頂上會談이 大韓民國의 國益과 安保가 最優先時 되는 方向으로 進行되길 바란다. 그리고 반드시 非核化가 이뤄져야 하고, ‘北核 凍結, 長距離미사일(ICBM) 廢棄’에 머무르는 協商은 안 된다. 北韓의 非核化 以後에 制裁 解除 論議도 可能하다.”

    - 黨權 競爭을 벌이는 오세훈 前 서울市長은 ‘獨自的 核開發’을 主張하며 “黨論으로 核開發을 論議해야 한다”고 말한다. 同意하는가.

    “우리가 北韓 非核化를 推進하는 것은 우리 安保에 對한 直接的 威脅을 除去하려는 目的이다. 이와 함께 核擴散禁止條約(NPT) 當事國으로서 追加的으로 核武器 保有國이 되는 걸 막고 核 非擴散 體制를 守護하려는 거 아닌가. 北韓 非核化는 우리가 決코 抛棄해선 안 될 課題다. 北核에 맞서 우리도 核武器를 갖자는 主張은 非核化 努力을 霧散시키고, 우리 스스로 問題를 만드는 것으로 警戒해야 한다. 只今은 不必要한 論難으로 우리끼리 論爭을 벌일 게 아니라, 國民과 政府가 하나 돼 北韓 非核化를 위해 總力을 기울일 때다.”


    統進黨 解散審判 事件 最後 辯論의 날

    아내 최지영 여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학창 시절의 황교안(맨 왼쪽) [사진제공·황교안 캠프]

    아내 최지영 女史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黃敎安 前 國務總理. 學窓 時節의 黃敎安(맨 왼쪽) [寫眞提供·黃敎安 캠프]

    - 올해는 3·1運動과 臨時政府 樹立 100周年이 되는 해이지만 未來志向的 韓日 關係는 遙遠해 보인다. 

    “日本은 韓美日 3國 共助를 위한 重要한 이웃 國家이며, 北韓의 非核化를 이루어내는 데 必須的인 友邦國이다. 3·1運動 100周年을 맞아 우리가 日本과의 過去事,?獨島 領有權 問題 等 事案에 對해서는 確固한 立場을 堅持해나가되, 앞으로의 100年을 내다보면서 未來志向的 關係를 定立할 수 있는 方案을 摸索해야 한다. 政府는 勿論 政界, 財界, 經濟界, 學界, 言論界 等 온 國民의 經驗과 智慧를 모아야 한다.” 

    - 黃 前 總理는 그동안 대여(對與) 鬪爭 經驗 不足을 指摘할 때마다 ‘統合進步黨을 解散시킨 사람이 누구냐’고 했다. 統進黨 解散이 가지는 意味는 무엇이라고 보나. 

    “自由民主主義의 根幹인 法治主義 精神은 오롯이 憲法에 깃들어 있다. 萬一 憲法 秩序가 毁損되면 이는 自由民主主義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李石基 內亂陰謀 事件’으로 드러난 統進黨의 反(反)憲法的 行爲는 國家體制를 흔드는 重大한 犯罪로 憲法裁判所가 判決했다. 當時 13個月에 걸쳐 進行된 憲法裁判所 心理 立證 資料만 無慮 17萬 쪽에 達했다. 只今도 記憶이 생생하다. 2014年 11月 25日 統進黨 解散審判 事件 最後 辯論에서 나는 法務部 長官으로서 ‘統進黨의 進步的 民主主義가 實際 追求하는 것은 容共(容共)政府 樹立과 聯邦制 統一을 통한 北韓式 社會主義 實現이고, 統進黨 綱領도 主體思想을 指導理念으로 한 北韓의 對南 革命戰略을 그럴듯하게 包裝했다’고 했다. 이 事件은 우리 憲法은 政黨의 設立 및 活動의 自由를 保障하고 있지만, 政黨의 目的과 活動이 自由民主主義의 秩序를 違反하면 憲法에 따라 解散된다는 自明한 事實을 보여준 것이다. 結局 統進黨 解散은 建國 以來 우리 國民이 지켜온 大韓民國의 憲法 守護 歷史로 記憶될 것이다.” 

    - 어릴 적 ‘古物商집 아들’로 태어나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學窓 時節에 學徒護國團 活動을 하고 司法考試에 挑戰한 理由는 뭔가. 

    “어릴 적 아버지가 古物商을 運營하셨고, 6男妹와 함께 놀며 자랐다. 가난한 家庭形便 때문에 도시락을 싸들고 가지 못하는 境遇도 많았다. 大學 入學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進學을 抛棄하려고 했으나, 어머니의 勸誘로 進學했고, 大學生이 되고 熱心히 工夫했다. 어려운 家庭 形便에서도 나를 믿어준 家族들을 위해 더 힘을 냈다. 가난했지만 學窓 時節에는 줄곧 ‘班長’을 하면서 漸次 親舊들로부터 리더십을 인정받았고, 리더 자리에서 責任과 最善을 다하는 姿勢를 배우는 契機가 됐다. 自然스럽게 周邊과 社會共同體에 關心을 가지게 됐다. 特히 透徹한 國家觀을 쌓으면서 自由民主主義의 根幹인 法治에 끌렸다.” 

    - 앞머리를 세운 ‘포마드 스타일’과 패션 코디는 아내(최지영 女史) 內助라고 들었다. 

    “우리 夫婦를 맺어준 사람은 큰兄嫂다. 나보다 16살 많은 兄嫂의 周旋으로 처음 만났을 때 時間 가는지 모르고 4時間 동안 이야기했던 追憶이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夫婦로 因緣을 맺은 지 어느새 34年이 흘렀다. 地方에서 일하는 나를 보러 그 먼 길을 찾아준 아내 德에 和睦한 家庭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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