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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 최영미, 時代의 ‘怪物’을 말한 까닭|新東亞

特輯 | #MeToo 時代를 바꾸다 |

詩人 최영미, 時代의 ‘怪物’을 말한 까닭

그가 아무리 人類를 노래해도 世上의 折半인 女性을 卑下한다면 그의 휴머니즘은 假짜다

  • 入力 2018-03-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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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제 동아일보 기자]

    [김경제 동아일보 記者]

    En先生 옆에 앉지 말라고
    文段 初年生인 내게 K詩人이 忠告했다
    젊은 女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忠告를 깜빡 잊고 En先生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正裝 上衣가 구겨졌다

    몇 年 뒤, 어느 出版社 忘年會에서
    옆에 앉은 有夫女 編輯者를 주무르는 En을 報告,
    내가 소리쳤다
    “이 狡猾한 늙은이야!”
    敢히 三十年 先輩를 들이박고 나는 逃亡쳤다
    En이 내게 麥酒盞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色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麻布의 飮食店을 나왔는데,

    100卷의 詩集을 펴낸
    “En은 水道꼭지野.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小說家 朴 先生도
    En의 몸집이 커져 怪物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自己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大衆들



    老털上 候補로 En의 이름이 擧論될 때마다
    En이 老털상을 받는 일이 正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世上에서 살고 싶지 않아
    怪物을 키운 뒤에 어떻게
    怪物을 잡아야 하나

    최영미, ‘황해문화’, 2017 겨울


    詩人 최영미(57)를 엿보는 글은 詩(詩)로 始作해야 마땅하다. 그는 말(言)보다는 글(文)로 世上을 思惟한다. 그의 文章은 ‘透明하고 단단한 金屬性 울림’(방민호 서울大 敎授)이다. 詩人 황인숙은 그를 두고 이렇게 썼다. 

    “小說에서와 달리 詩에서는 詩人과 話者가 겹치기 일쑤다. 詩人의 日常이나 몸과 마음의 形便과 動態가 作品에서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최영미는 그걸 꺼리지 않는다. 거침없고 서슴없다. 그 大汎함에는 自負心도 한몫했으리라. 自身의 明敏함에 對한 自負心, 젊은 날 수많은 讀者의 아이돌 詩人이었던 데 對한 自負心, 내가 설핏 엿본 최영미는 그런 自負心을 가질 만하다.” 

    詩人에게 ‘다 털어놓는 憫惘함’에 對해 물은 적이 있다. “詩는,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答이었다.

    ‘怪物’은 爲先 꼬집은 諷刺詩

    그는 젊은 날 또래에게 ‘아이돌’이었다. 서른셋에 펴낸, 50萬 部 넘게 팔린 첫 詩集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 俳優 못지않은 셀레브리티가 됐다. 첫 詩集은 86世代 運動圈을 들끓게 했다. “爲先 그만 떨고 工夫나 하라”는 冷笑로 읽혀서다. 進步 性向이 强한 文壇에서 그는 評價를 올바르게 받지 못했다. 

    그는 1980年 서울대 人文大에 入學했다. 2學年 때 示威에 參與했다 逮捕돼 無期停學을 맞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學習하던 古典硏究會에서 活動했다. 苦戰硏究會는 나중에 主思派의 産室이 된다. ‘鋼鐵書信’ 김영환 氏가 苦戰硏究會 2年 後輩다. 그는 卒業 後 運動 組織 外郭에서 ‘資本論’ 飜譯에도 參與했다. 

    ‘황해문화’ 2017年 겨울號에 실린 ‘怪物’은 諷刺시다. 詩人은 이따금 내놓은 諷刺詩를 통해 知識人의 僞善과 假飾, 거짓과 속임數를 꼬집어왔다. 假飾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돼지, 여우에 빗댄다. ‘여우짓’ ‘돼지짓’을 못마땅해하는 쪽이다. ‘化粧한 얼굴’로만 살아가는 이를 體質的으로 버거워한다. 

    ‘왼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오른손이 알게 하고/ 報道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우들’(詩 ‘政治人’), ‘北朝鮮에서는 잘 우는 사람이 出世하고/ 南韓에서는 適當한 웃음이 成功의 祕訣’(詩 ‘닮은꼴’)이라고 차갑게 웃으면서 ‘얼굴에 1億짜리 微笑를 바르고/ 障礙 兒童의 몸을 씻기며/ 香水를 뿌린 목소리로/ 苦痛을 말하며/ 너는 어쩜 그렇게 便安할 수 있니?’(시 ‘政治人’)라고 묻는다. 

    諷刺詩 ‘怪物’ 속에서 “이 狡猾한 늙은이야!”라는 외침을 들은 ‘En先生’은 그조차도 正鵠을 찌르면서 까발리기가 어려운 ‘어떤 것’을 諷刺라는 文學的 裝置를 利用해 비틀어 描破한 것이다. 30代 初盤 겪은 傷處를 50代 後半에 이르러서야 諷刺詩를 통해 世上에 알렸으니 젊은 날 겪은 傷處의 무게를 斟酌해볼 수 있다.

    “詩가 실릴지 걱정했어요”

    “황해문화가 그 詩를 실을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그는 記者와의 通話에서 이렇게 말했다. ‘怪物’은 ‘황해문화’라는 文藝雜誌社의 請託을 받고 쓴 詩다. 황해문화는 詩를 請하면서 “페미니즘 特輯이니 페미니즘과 關聯한 詩를 써달라”고 但書를 달았다. 그는 ‘文段의 重要한 問題를 써야겠다’고 決心하고 ‘En先生’을 諷刺詩의 主人公으로 삼았다. 

    전성원 황해문화 編輯長은 “作品을 받았을 때 論難거리가 될 수 있음을 直感했다. 揭載 與否를 全體 編輯委員이 參與한 編輯會議 案件으로 올렸고, 作品을 읽은 編輯委員들은 이番 號에서 ‘황해문화’가 志向하는 바는 勿論, 그間 ‘황해문화’가 걸어온 길에 비춰 揭載하지 않을 理由가 없다고 判斷해 滿場一致로 揭載를 決定했다”고 했다. 

    지난해 12月 世上에 나온 詩는 두 달이 지나 注目받는다. 美國에서 始作된 미투(#MeToo·나도 겪었다)가 韓國을 包含한 世界로 퍼지는 渦中에 눈 밝은 讀者들이 ‘怪物’을 呼出해 퍼 나르면서 온라인을 달궜다. 

    그가 JTBC에 出演해 고은(85) 詩人의 性醜行을 앞장서 ‘暴露’한 것으로 잘못 아는 이가 많은데 ‘怪物’李 話題가 된 後 誤解(誤解)를 막고자 인터뷰에 應한 것이다. JTBC에서도 ‘En先生’을 애기했을 뿐 ‘고은’이라는 이름은 내뱉지 않았다. 

    作心했다기보다는 狀況이 그를 나서게 했다. #MeToo가 없었다면 칼을 뽑아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月 30日 그가 페이스북 親舊들에게 알린 글은 이렇다. 

    ‘徐志賢 檢事의 勇氣에 拍手를 보냅니다. 뉴스 보며 錯雜한 心境. 文壇에서도 性醜行 性戱弄 文化가 蔓延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時節의 이야기를 只今 할 수 없다. 이미 나는 文壇의 王따인데, 내가 그 事件들을 터뜨리면 完全히 埋葬당할 것이기 때문에? 아니, 이미 거의 죽은 목숨인데 매장당하는 게 두렵지는 않다. 다만 귀찮다. 저들과 싸우는 게. 힘없는 詩人인 내가 眞實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을까? 確信이 서지 않아서다. 내 뒤에 아무런 組織도 支援軍도 없는데 어떻게? 쓸데없는 誤解를 받고 싶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組織이 文壇.’

    #MeToo 마중물 구실 해

    #MeToo가 한국 사회의 젠더 인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박해윤 기자]

    #MeToo가 韓國 社會의 젠더 認識에 變化를 일으키고 있다. [박해윤 記者]

    그는 放送 出演 以後에도 ‘말’이 아닌 ‘글’로 마음의 形便을 傳했다. 文章의 餘白이나 段落의 模樣까지 살피는 詩人답게 페이스북에도 글을 허투루 올리는 法이 없다. 僞善과 假飾을 거짓과 속임數만큼이나 싫어하는 心情이 2月 8日 올린 글에 담겨 있다.

    그가 아무리 自由와 平等을 외쳐도
    世上의 折半인 女性을 짖밟는다면
    그의 自由는 空虛한 말잔치.

    그가 아무리 人類를 노래해도
    世上의 折半인 女性을 卑下한다면
    그의 휴머니즘은 假짜다.

    그의 試圖 그럴듯하게 包裝된 商品.
    휴머니즘을 包裝해 팔아먹는 文學은 이제 그만!


    그는 ‘#MeToo 運動’의 마중물 구실을 했다. 그가 ‘文壇의 權力’인 고은氏를 告發한 後 各界에서 #MeToo가 洑물 터지듯 이어졌으나 그는 放送 出現 後 온갖 口舌에 시달렸으며 2次 被害를 겪었다. 

    ‘文壇의 權力’을 斗頓하는 人士들은 다른 性暴力 事件의 前例처럼 行動, 性格을 擧論하는 方式으로 被害者를 陰害하고 加害者를 庇護했다. 어느 詩人은 ‘被害者 코스프레’ 云云하며 可當치 않은 論理를 내세웠다. “미투 運動은 進步陣營에 對한 政治的 工作”이라는 헛소리마저 나왔다. 

    一部 인터넷 言論은 放送에서 한 말 中 刺戟的인 대목을 뽑아 어뷰징(abusing·檢索을 통한 클릭 數를 늘리기 위한 記事)에 나섰다. 그의 發言을 토막 內 歪曲 報道함으로써 名譽를 毁損한 記事도 있다.

    “反省은커녕 怪物 庇護한 문학인”

    그가 2月 17日 쓴 글에 心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怪物’을 包含해 제 詩 3篇이 실린 황해문화 2017年 겨울號가 나온 뒤 12月 初에 仁川에서 發行되는 某 新聞에서 電話가 와 怪物에 對해 묻기에, 덜컥 怯이 나 인터뷰를 拒絶했습니다. ‘누가 나를 건드리지 않는 限 내가 먼저 말하지 않겠다’고 저는 말했지요. 怪物과 怪物을 키운 文壇權力의 報復이 두려웠고, 그들을 건드려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데…. 일부러 問題를 키우고 싶지 않았지요. 그리고 한참 잊고 있었는데 徐志賢 檢事의 暴露 以後에 제 詩가 트위터, sns에 돌아다니다 記者들의 눈에 捕捉돼 여기저기서 記事가 나왔습니다. 文壇 內 性暴力이 더는 反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겪은 슬픔과 挫折을 젊은 女性 文人들이 經驗하지 않기를 바라며 저는 放送에 나갔습니다. 

    (…) 

    여러분의 激勵와 應援 德分에, 이제 제게 怪物과 怪物을 庇護하는 勢力들과 싸울 若干의 힘이 생겼습니다. 文壇 內 性暴力이 舊時代의 遺物로 남기를 바라며, 저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더 많은 女性들이 #Metoo를 외치면, 世上이 變하지 않을까요.” 

    칼을 뽑았으니 끝장을 보기로 決心한 것이다. 2月 27日 ‘東亞日報’에 直接 作成한 글을 보냈다. 1000字 分量이다. “反省은커녕 如前히 怪物을 庇護하는 文學人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면서 ‘그때’ 目擊한 場面을 적었다. 

    서울 鍾路區 탑골公園 近處의 한 술집. 民族文學作家會議 文人들이 자주 찾던 곳이다. 先後輩 文人과 술자리에 參席했다. 그때 ‘元老詩人 En’이 들어왔다. 그가 椅子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그리고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고 自身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만졌다. 暫時 後 그는 崔 詩人과 다른 젊은 女性詩人을 向해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命令하듯 말했다. 

    ‘20年도 더 된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只今도 處置 困難한 憫惘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文學少女였는데, 내게 文壇과 文學人에 對한 不信과 背反感을 심어준 元老詩人은 그 뒤 乘勝長驅 온갖 權力과 名譽를 누리고 있다.(…) 公開된 場所에서, 사람들 앞에서 自身의 ‘物件’을 주무르는 게 그의 藝術魂과 무슨 相關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突出的 存在’인 그 뛰어난(?) 詩人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女性들의 人格과 尊嚴이 無視되어도 좋은지(동아일보 2月 28日 者 參照).’

    “딱하다”

    3月 2日 고은 氏는 英國의 한 出版社를 통해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고 主張했다. 

    “一部 人士들이 나에게 提起하는 常習的 性醜行에 對해서 斷乎하게 否認한다. 時間이 지나 韓國에서 眞實이 밝혀지고 論難이 잠재워지기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事實과 脈絡을 잘 알지 못하는 外國의 親舊들에겐 아내와 나 自身에게 부끄러울 만한 行動을 한 적이 없다는 點을 밝힌다.” 

    그는 3月 4日 “그(En)는 이제 그에게 남은 마지막 機會를 날려 보낸 것 같다. 眞心으로 謝過하고 國民들에게 容恕받을 수 있었는데 딱하다”고 했다. 

    ‘滔滔한 차都女’ 이미지가 있으나 詩人은 수줍음 많으며 社交的이지 않은 性格이다. 스물셋에 結婚해 스물셋에 離婚했다. ‘離婚女’라는 낱말이 주는 느낌이 只今과 다를 때다. 30代 初盤에 有名人이 됐다. 只今껏 혼자 살았다. 마흔 살 무렵 文壇 風土에 幻滅을 느끼고는 발을 끊다시피 했다. 딱히 보지 않더라도 TV를 켜놓아야 마음이 놓였다. 蹴球와 野球가 헛헛한 마음을 달래줬다. 文字메시지 쓰는 것도 서툴렀다. 스마트폰도 남들이 다 산 뒤에 샀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SNS를 始作하면서 世上 밖으로 목소리를 냈다. 

    글이 아닌 말로 그의 心情을 듣고 싶었다. 近況 얘기를 주고받은 後 呼吸이 긴 인터뷰 記事를 쓰고 싶다고 請했으나 그는 단박에 拒絶했다. ‘튀려고 그런 게 아니냐’는 一部의 비딱한 視角을 特히 걱정했다. 

    “1週日 동안 外部 電話를 딱 2個만 받았어요. 生放送에만 나갔잖아요. ‘글’로는 할 수도 있지만 인터뷰는 안 할 거예요.” 

    經過를 짧게 얘기한 後 그가 거꾸로 물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해요?” 

    “다들 應援하죠.” 

    “그래요?” 

    “世代別로 젠더 感受性이 다른 것 같기는 해요.” 

    “世代別로 다르고, 地域別로 다르고?” 

    “地域別로 다르진 않겠죠. 다들 應援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다들 應援한다”는 말에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文化藝術界 性暴力을 調査하는 公式 機構가 出帆하면 그곳에 나가 仔細하게 다 말할 거예요. 올해 詩集이 나오거든요. 그때는 인터뷰할게요.” 

    그는 通話 內容도 記事에 쓰지 말기를 바랐으나 그中 一部를 옮겼다. #MeToo가 時代를 바꾸고 있다. #MeToo를 마뜩잖게 여기는 이들도 마음을 바꿔 #WithYou를 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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