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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新東亞

스위스 취리히

실개川 되살리고 世界的인 親環境都市로 變身하다

  • 한상진 |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greenfish@donga.com |

    入力 2009-09-08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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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크리트 더미 밑으로 더러운 河川이 흐르던 時節이 世界的인 親環境都市人 스위스 취리히에도 있었다. 開發과 成長의 이름 아래 環境破壞를 참고 견뎌야 했던 어두운 過去는 먼 옛날이 아닌 不過 20餘 年 前까지 持續됐다. 이제 달라진 취리히에는 맑디맑은 실개川이 都心 곳곳을 흐른다. 아파트 團地를 가로지르는 개川에선 벌거벗은 아이들이 첨벙거린다. 市政府는 50年이 걸리는 에너지 節約 計劃을 하나하나 進行 中이다. 生態都市 취리히에서 自然이 가져다준 健康한 삶을 생각했다.
    스위스 취리히
    7月3日, 스위스 취리히에 到着했다. 한여름의 취리히는 무척 더웠다. 눈을 뜨기 힘들 만큼 햇볕이 따가웠다. 多幸히 濕度는 높지 않아 그늘에 서 있으면 시원함이 느껴졌다. 취리히 中央驛 周邊은 여느 汽車驛과 다를 바 없었다. 바쁘게 오가는 都心列車(트램), 버스, 自動車로 북적거렸고 사람들도 걸음을 바삐 옮겼다. 트램에 電源을 供給하는 戰線이 거미줄처럼 머리 위에 널려 있었다. “뭐가 親環境이고 生態都市野”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취리히 중앙역을 나와 트램이 오고가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車가 다닐 수 없는, 유럽 金融의 中心地로 불리는 반호프 距離였다. 數百年은 됐을 법한 고풍스러운 建物들, 그 建物에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갖춘 名品가게들이 볼거리를 提供했다. 여기저기 세일을 알리는 看板이 櫛比했다. 서울 청담동 같기도 하고 鳴動 같기도 했다. 그렇게 5分假量 걸어가자 취리히湖水가 눈앞에 펼쳐졌다.

    취리히湖水를 보고 나서야 이 都市를 왜 親環境 生態都市라 하는지 그 理由를 알 것 같았다. 一旦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깨끗한 湖水물에 視線이 固定됐다. ‘이게 말로만 듣던 코발트빛이구나’ 싶었다. 都市 한복판에 이런 湖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물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湖水 周邊에선 사람들이 즐거운 時間을 보내고 있었다. 遊覽船 船着場에는 觀光客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서 平均 1時間에 한 臺씩 떠나는 遊覽船을 기다렸다.

    湖水 곳곳에서 水泳하는 사람도 많았다. 船着場 옆에도 있었고 다리 밑에도 있었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발가벗고 물장구를 쳤다. 아기가 물을 먹거나 말거나 엄마로 보이는 女子는 그냥 구경만 했다. 물이 깨끗해서 그런가 싶었다. 白鳥 몇 마리가 아기 옆을 悠悠히 지나갔다. 아기는 놀라지 않았다. 湖水 한복판에는 큰 돛을 단 요트 몇 臺가 바람을 가르며 어디론가 흘러갔다.

    工業都市 & 生態都市



    취리히는 總길이 40㎞에 達하는 취리히湖水의 끝자락에 位置해 있다. 취리히湖水로 이어지는 리마트江과 漆强 沿岸에 만들어진 湖畔都市. 人口는 35萬에 不過하다. 事實 취리히는 오래前부터 ‘돈’의 都市로, 環境이니 生態니 하는 單語와는 距離가 먼 歷史를 가지고 있다. 中世時代부터 북이탈리아·프랑스·獨逸을 連結하는 交通의 要地로 有名했고 유럽을 代表하는 絹織物 生産地이자 流通誌였다. 17世紀에는 綿工業과 染色業이 本格的으로 始作되면서 스위스 工業의 中心地로 登場했다.

    스위스 취리히

    아파트 團地 곳곳에 흐르는 실개川에서 아기와 엄마가 즐거운 時間을 보내고 있다.

    只今은 親環境都市 취리히를 代表하는 觀光地이지만 當時 취리히湖水는 織物工業이 傳播·普及되는 交通路로 사랑받았다. 代身 湖水물은 汚染으로 얼룩졌다. 19世紀 後半부터는 라인江의 水力發電을 利用한 重化學工業이 크게 發展하면서 취리히는 또다시 그 中心에 섰다. 世界的인 機械工場이 雨後竹筍 들어서면서 20世紀 初에는 都市 全體가 重化學 工場地帶로 變貌했다. 金融都市로의 變身도 이때부터 始作됐지만 그렇다고 工業中心地로서의 役割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이런 歷史를 보면 工業都市 취리히가 걸어온 過程은 世界 여느 大都市와 다를 바가 없다. 整理하면 이런 式이다. 사람이 모여들고 돈이 모이면서 都市가 커졌고 山과 들은 깎여나갔다. 그 자리엔 工場과 住宅이 들어섰다. 사람의 손을 탄 河川과 湖水는 더러워졌고 또 메워졌으며 콘크리트로 덮였다. 河川 位로 道路가 생기고 建物이 들어섰다.

    1850年頃 만들어진 統計에 따르면, 當時 취리히視에는 總延長 160㎞假量의 크고 작은 河川이 흐르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130年 後인 1980年에는 80㎞假量만 남게 됐다. 數百年間 내려온 아름다운 河川의 이름은 4車線, 8車線 道路 이름으로 遁甲했다. 콘크리트에 갇힌, 빛을 잃은 河川은 더러운 下水를 處理하는 쓰레기場日 뿐이었다. 工業化 過程에서 온 都市를 거미줄처럼 친친 감아 돌던 맑디맑은 河川은 썩어갔고 사라졌다. 環境은 念頭에 없었고 오직 開發의 숨가쁨만이 都市를 감쌌다.

    그렇게 썩어버린 都市가 親環境都市로 變身하기 始作한 것은 不過 20餘 年 前부터다. 1985年 취리히 都心 한복판의 알투스케크라仁川을 덮고 있는 覆蓋 콘크리트 150m가 뜯겨나간 것을 始作으로 環境復元, 特히 河川을 되살리는 作業이 本格化됐다. 취리히湖水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重要했다. 취리히視 觀光國 責任者인 바흐톨드氏의 說明이다.

    “1970年代까지도 環境에 對한 認識은 거의 없었습니다. 1980年代에 들어서면서 많은 學者, 市民團體 會員, 一般 市民들 사이에서 自省의 목소리가 나오기 始作했죠. 河川 問題, 環境汚染 問題 等에 對한 反省이었습니다. 죽어가는 都市를 살리자는 캠페인이 始作됐습니다. 취리히湖水, 리마트江, 漆强을 包含한 河川의 水質을 改善하고 元來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 都市를 開發하는 過程에서 覆蓋하거나 없앤 小河川들을 되살리는 것, 大氣汚染의 主犯이던 重化學工場의 問題를 解決하는 것 等이 重要한 課題였습니다.”

    1987年 취리히 州政府는 土木技術者와 生物學者, 造景設計字로 構成된 15個 都市리모델링 그룹을 만들었다. 河川 活性化, 生態保全學的 觀點과 景觀을 考慮한 住居環境 改善, 河川의 汎濫 防止를 위한 整備事業을 推進하기 위해서였다. 628個 河川이 硏究對象 河川으로 選定됐다. 河川의 總延長은 자그마치 563㎞에 達했다.

    公社는 河川을 덮은 道路를 걷어내고 元來의 河川을 되살리는 作業으로 始作됐다. 풀 한 포기 살 수 없게 만들어져 있던 河川 바닥과 傾斜面의 콘크리트도 모두 除去됐다. 代身 그 자리에는 흙과 자갈이 깔렸다. 사라졌던 動植物이 돌아올 수 있는 空間이 만들어진 것이다. 復元作業이 끝나고 몇 年이 흐르자 復舊된 개川에 물고기가 돌아왔다. 數秒에는 잠자리 等 昆蟲들이 알을 낳았고 棲息處로 삼았다. 自然은 아주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살아났다.

    스위스 취리히

    취리히 湖水 周邊 公園에서 市民들이 餘裕를 즐기고 있다(왼쪽). 취리히 中央驛 前景. 中央驛에서 취리히湖水로 이어지는 2km假量의 거리가 취리히市의 中心인 반호프距離다.

    1m 復元에 1000萬원

    여기서 注目할 대목은 취리히市에서 進行한 河川整備가 生活下水館과 개川을 分離하는 方式으로 이뤄졌다는 點이다. 모든 물을 한데 모은 뒤 淨化施設로 보내는 式이 아니라 生活下水는 淨化施設로, 溪谷물이나 빗물은 그대로 개川으로 흘려보내는 式이다.

    이런 方法이 導入된 것은 于先 더러운 下水와 깨끗한 溪谷물과 빗물을 한데 모아 河川으로 보내는 移轉 方式은 費用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물과 만난 깨끗한 물은 곧 더러워졌다. 慢性的인 下水處理場 容量 超過도 問題였다. 洪水 때는 下水處理場 물이 逆流해 道心이 沈水되기 일쑤였다. 水質淨化 體系를 바꾸자 淨化가 必要한 물의 量이 3分의 1로 줄었고 그만큼 費用도 줄었다. 下水處理施設의 問題도 自然스레 解決됐다.

    勿論 이러한 方式에는 問題도 있었다. 一旦 돈이 많이 들었다. 河川 1m를 復舊하는데 1000萬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하나의 河川을 2個로 나눠야 하는 大規模 土木工事이다 보니 時間도 많이 所要됐다. 洪水對策까지 세워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工事가 늦어지면서 住民들의 抗議가 빗발쳤다. 그러나 취리히市는 住民들을 說得해 이 事業을 成功的으로 이뤄냈다. 취리히視 觀光國 바흐톨드氏의 얘기다.

    “河川 覆蓋 以前에 都心의 江으로 流入되던 小河川을 管理하는 것이 河川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判斷해 生活下水 分離부터 始作했습니다. 工事費用은 많이 들었지만 한番 만들어진 後에는 效率的인 물管理가 可能해졌지요. 運營費用은 以前보다 훨씬 적게 들었습니다. 淨化施設로 들어오는 下水의 量이 3分의 2 假量 줄어 그만큼 費用이 節約됐기 때문입니다. 河川으로 流入되는 生活下水가 分離되면서 河川이 生態河川으로 되살아난 게 가장 큰 所得이었죠.”

    記者는 河川管理 業務를 總括하는 취리히視 河川保護管理局 責任者인 라인하더氏의 도움을 받아 취리히市에서 推進해온 河川整備의 代表的인 地域을 몇 군데 돌아봤다. 主로 住宅街와 都心地域이었다.

    스위스 취리히

    住宅街를 가로지르는 개川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노는 아기(왼쪽). 하늘에서 내려다본 알프스 氷河.

    먼저 찾아간 곳은 우리 式으로 말하면 大團地 아파트 團地였다. 아파트 團地 사이사이에 실개川이 졸졸 흐르는 風景이 印象的이었다. 洪水에 對備한 넓은 安全地帶에는 靑布처럼 보이는 水邊植物이 치렁치렁 자라고 있었다. 라인하더氏는 “이곳은 5~6年 前만 해도 下水가 흐르던 覆蓋川이었다. 洪水에 對備해 緩衝地帶를 만들어놨는데 只今은 觀光地로 더 有名해졌다”라고 說明했다.

    아파트 團地 入口의 4車線 道路 兩쪽으로 골목골목에서 흘러나온 실개川이 모여 規模가 꽤 큰 河川을 이루고 있었다. 물은 깨끗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뛰어놀고 있었지만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되살아난 개川이 아이들에게 氣막힌 膳物이 된 셈이다. “개川물은 모두 山에서 내려온 溪谷물이거나 빗물”이라고 傳한 라인하더氏의 說明이다.

    “이곳을 包含한 市內 곳곳에서 벌어진 개川 復舊作業에는 住民, 學生들이 直接 參與했습니다. 復元의 方向과 方式이 住民會議를 통해 決定됐어요. 事業 推進 初期에는 反對하는 市民도 많았죠. 生活이 不便해진다는 意見도 있었고 便利性이 떨어질 것이란 憂慮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自己 집 앞이 시냇물이 흐르는 快適한 住居環境으로 變貌하자 積極的인 支持勢가 일기 始作했어요. 洞네마다 住民投票를 거쳐 河川整備가 決定됐고 市政府는 住民들의 意見을 尊重해 천천히 事業을 推進해가고 있습니다. 速度는 느리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推進하고 있습니다.”

    復舊된 개川에는 물고기들과 개구리, 도롱뇽이 헤엄을 치고, 水草에 잠자리 等 昆蟲들이 알을 낳아 生物의 重要한 棲息處 구실을 하고 있었다. 現地에서 만난 한 韓國人 僑胞의 얘기다.

    “여기로 移徙한 지는 10年쯤 됐어요. 실개川이 생긴 것은 5年쯤 前이고요. 元來는 2車線 道路가 있던 자리입니다. 집밖에 바지를 걷어올리고 뛰어들어가 놀 수 있는 개川이 있다는 것은 큰 幸運입니다.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개川에 풀어주고 每日 觀察하기도 합니다. 개천이 생긴 뒤 散策을 즐기는 사람도 늘었지요. 復舊된 개川이 洞네에 活氣를 불어넣어주죠. 事實 豫想치 못한 일입니다. 여름에는 물이 蒸發하면서 近處를 시원하게 해줘서 좋아요.”

    現在 취리히視에는 108㎞의 河川이 흐르고 있다. 44㎞假量이 都心 한복판을 흐르는데 그中 34㎞가 自然 그대로의 모습으로 復元됐다. 지난 20餘 年間 努力한 結果다. 環境을 復元하기 위한 努力은 只今도 繼續되고 있다. 라인하더氏는 “아직도 親環境的으로 復元되지 못한 河川이 많다. 現在 취리히 都心에는 復元이 必要한 河川이 15㎞假量 남아 있다. 긴 時間이 걸리겠지만 조금씩 復元이 進行되고 있다. 自然을 되돌리는 것은 취리히 市民들의 삶의 質을 높이는 것이다. 單純히 美觀上의 理由 때문은 아니다. 持續可能한 都市를 만들기 爲한 努力이다”라고 말했다.

    工場이 博物館으로

    現在 취리히에서 工業都市 時節의 痕跡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工場의 煙氣는 이미 오래前에 사라졌다. 都心 外郭에서 間間이 볼 수 있는 工場의 殘骸들 大部分은 觀光地가 됐다. 어떤 工場터는 公演場이 됐고 또 어떤 工場터는 술집이 됐으며 博物館이나 體育館으로 꾸며진 곳도 있다.

    취리히는 이제 世界에서 가장 살기 좋은 都市로 꼽힌다. 어떤 統計에선 3年 連續 살기 좋은 都市 1位에 올랐다(머서휴먼리소스컨설팅, 2008年). 지난 6月에는 벨기에 月刊誌 ‘모노클’이 ‘世界에서 가장 살기 좋은 都市 25곳’을 發表했는데 여기서도 1位를 차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優秀한 大衆交通, 50곳이 넘는 美術館과 一級 레스토랑 等 豐富한 餘暇施設, 良好한 비즈니스 環境 等을 그 理由로 꼽았다. 또 親環境 政策, 空港科의 接近性, 낮은 事務室 賃貸料 等도 높은 點數를 받는 要因이다.

    河川整備 外에도 취리히가 生態都市, 親環境都市가 된 理由는 많다. 持續可能한 都市로 變身하기 위한 市政府의 오랜 努力은 좋은 評價를 받고 있다. 特히 에너지 消費를 줄이기 爲한 努力은 印象的이기까지 하다. 1人當 에너지 消費를 年間 2000w로 줄이기 위한 事業, 1印堂 二酸化炭素 排出量을 1t 規模로 줄이기 爲한 努力이 代表的이다. 現在 이와 關聯된 政策은 모두 취리히視 健康環境保護國이 맡고 있다.

    취리히市는 2008年 11月30日 全體 住民投票를 통해 年間 1人當 에너지 消費를 2000w(1年 基準) 水準으로 줄인다는 目標를 是正策으로 通過시켰다. 6200w에 達하는 現在의 1人當 에너지 消費量을 3分의 1 水準으로 떨어뜨린다는 것. 健康環境保護國 매니저 펜터너氏는 “스위스에서는 이런 政策 하나하나가 市民들의 參與와 合意로 이뤄지고 있어 政策的 效果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現在 취리히市는 에너지 消費를 줄이기 위해 몇 가지 原則을 세웠다. 天然가스 使用 擴大, 電氣를 利用한 暖房, 公共交通體系 整備 等이 그것이다. 취리히市는 2050年을 目標로 하는 計劃을 세워놓고 하나하나 推進하고 있다.

    具體的으로 電氣가 生産되고 消費되는 構造를 單純化해 에너지 效率을 높이는 方案을 推進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市政府가 所有한 建物(취리히視 全體의 約 10%)부터 에너지 效率을 點檢하고 都市 全域에 150m마다 大衆交通手段을 利用할 수 있는 停留場을 만들어 自動車 使用을 抑制하는 政策도 推進 中이다.

    特히 都心에서는 自動車의 使用을 事實上 禁止하기 위한 方法으로 트램의 運行을 늘리는 方案을 論議하고 있다. 100% 電氣를 使用하는 트램은 公害가 全혀 發生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原子力에너지 使用은 더 以上 擴大하지 않고 漸漸 依存度를 줄여나간다는 것도 취리히市의 方針이다.

    이밖에 취리히市는 EWZ라 불리는 電氣節約펀드를 만들어 運營 中이다. 電氣消費를 擴大함으로써 發生하는 經濟的 利益의 10%假量을 모아 만든 基金人 이 펀드는 太陽에너지, 親環境 電氣製品, 에너지 效率을 높인 製品을 開發 生産하는데 投資된다. 太陽에너지를 一般 家庭, 工場 等에서 사들여 消費者에게 低廉한 價格에 파는 일도 한다. 現在 EWZ는 취리히視 全體 消費電力의 0.2% 程度를 擔當하고 있고 2050年까지 30%로 늘린다는 게 취리히市의 野心찬 計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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