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日 손복남 CJ그룹 顧問이 宿患으로 別世했다. 享年 89歲. 故人은 三星 創業主 故(故) 이병철 會長의 맏며느리로 고 이맹희 CJ 名譽會長의 夫人이자 李在賢 CJ그룹 會長의 母親이다. 膝下에는 이재현 會長, 李美卿 CJ그룹 副會長, 이재환 財産홀딩스 會長 3男妹를 뒀다. 京畿道知事를 지낸 故 손영기 前 안국화재(現 삼성화재) 社長의 長女로 孫京植 한국경영자총협회 會長의 누나이기도 하다.
이병철 會長에게 각별한 寵愛를 받았다. 財界 關係者는 “이병철 會長은 살아生前 집안 大小事를 손 拷問과 相議했다. 至極한 孝心과 총명함을 높이 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故人은 1956年 이맹희 名譽會長과 結婚해 三星家(家)와 緣을 맺었다. 이병철 會長의 意志에 따라 婚姻이 이뤄진 것으로 傳해진다. 故人은 1970年代 中盤부터 媤父母 이병철 會長 內外를 모시며 子女들을 키웠다. 1987年 이병철 會長이 別世한 後엔 媤어머니 박두을 女史를 2000年 1月 他界할 때까지 모셨다.
CJ그룹의 기틀을 마련한 ‘産婆’로 評價된다. 이병철 會長은 ‘靑瓦臺 投書’ 事件으로 대표되는 葛藤 끝에 後繼者 자리에서 밀려난 이맹희 名譽會長 代身 故人에게 安國火災 持分을 相續했다. 1993年 삼성그룹이 제일제당을 系列社에서 分離하려 하자 故人은 自身의 安國火災 持分 12.8%와 當時 이건희 三星電子 會長의 第一製糖 持分 11.3%를 맞바꿨다. 以後 建設, 料食業, 映像 市場까지 事業을 擴張한 제일제당은 1996年 제일제당그룹으로 公式 出帆했고, 이것이 現 CJ그룹(2002年 社名 變更)이 됐다.
1996年 自身의 持分 一部를 이재현 會長에게 넘기며 地位를 鞏固히 해줬고, 1997年 外換危機 事態로 經營 不安이 커지자 1998年 남은 第一製糖 持分 116萬 週 모두를 이 會長에게 몰아주며 後繼 다툼 素地를 源泉 遮斷했다.
顧問 外 職責을 맡眞 않았지만 여든이 넘어서도 本社에 定期的으로 出勤하며 業務를 봤다. 그룹 經營에 굵직한 影響을 미쳤다. CJ그룹의 文化事業 進出 契機가 됐던 1995年 美國 드림웍스 持分投資 當時 드림웍스 共同 創業者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캐천버그를 집으로 招請해 食事를 待接하며 協力 雰圍氣를 이끌었다. CJ그룹의 人氣 韓食 브랜드 ‘비비고’ 命名에도 故人의 뜻이 反映됐다. 2010年代 初盤 글로벌 韓食 브랜드 이름을 定할 때 “‘비비고’는 外國人들이 부르기 좋고 쉽게 刻印되는 이름”이라며 힘을 실었다. CJ그룹 關係者는 “이재현 會長은 側近들에게 자주 ‘어머니는 CJ그룹 誕生의 主役이며 나의 든든한 後援者다’라고 말하곤 했다”고 밝혔다.
2015年 末 急性腦硬塞으로 쓰러진 後 健康狀態가 惡化됐다. 殯所는 6日 서울 中區 CJ인재원에 마련됐다. CJ인재원은 이재현 會長이 어린 時節 故人과 함께 살던 집터다. 李在鎔 三星電子 會長, 홍라희 前 리움美術館 館長을 비롯해 鄭義宣 現代車그룹 會長, 최태원 SK그룹 會長, 金東官 한화그룹 副會長, 조동길 扞率그룹 會長, 鄭鎭奭 國民의힘 議員 等 多數 情?財界 人士가 訪問해 弔意를 표했다. 發靷은 8日 午前 8時 30分, 葬地는 京畿 驪州市 선영이다. 葬禮는 非公開 家族葬으로 치러진다. CJ그룹 關係者는 “遺族들이 儉素하고 차분한 葬禮를 치르길 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