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葛 건 지음, 마이디어북스, 336쪽, 1萬8500원
인터넷과 스마트폰 普及 以後 포털과 유튜브 等을 통해 各種 情報가 汎濫하는 現代社會는 各種 ‘杞憂’로 가득 차 있다. 競爭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不安, 남들과 나를 比較하면서 찾아오는 嫉妬, 歪曲된 視線으로 世上을 바라보는 固執, 些少한 일에 되레 큰 목소리를 내는 劣等感, 다른 사람뿐 아니라 自身도 믿지 못하는 疑心, 누군가의 認定을 渴望하고 매달리는 낮은 自尊感까지.
情報 過剩은 쓸데없는 걱정을 낳고, 걱정은 근심을 낳으며, 다시 근심은 짜증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걱정과 근심, 짜증이 無益한 까닭은 그 自體로 우리 삶에 아무런 變化를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제보다 더 나은 來日의 내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有限한 人生을 價値 있게 살고자 努力하는 이들은 걱정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으며 짜증도 내지 않는다. 孔子는 일찍이 네 가지를 끊었다. ‘無의’ ‘舞筆’ ‘誣告’ ‘無我’ 했다. 無衣란 ‘사사로운 意見이 없음’을 뜻하고, 舞筆이란 ‘반드시 해야 함이 없음’을 뜻한다. 無辜란 ‘지나치게 固執함이 없음’을 의미하고, 無我란 ‘내가 아니면 안 됨이 없음’을 뜻한다. 世上을 즐겁게 살고 싶은가. 먼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固執부터 내려놓아라. 나를 믿고 다른 사람을 믿는 勇敢하고 根本 있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固執 피우며 不安하게 살 것인가. 選擇은 自由다.
每日, 더, 많은 數字의 支配
미카엘 달렌·헬게 토르비에른센 지음, 이영래 옮김, 김영사, 232쪽, 1萬5800원
SNS에 올린 寫眞의 照會數는 얼마나 되나. 오늘 訪問한 食堂 後期는 몇 點일까. 우리는 每日 數字에 빠져 산다. 모든 것을 計量化하고 ‘좋아요’ 數로 評價하는 同時에 스스로 數에 依해 評價받고 싶어 한다. 數字로 表現하면 무엇이든 具體的이고, 正確하고, 信賴할 수 있는 情報처럼 여겨진다. 正말 그럴까. 經濟學者인 두 著者는 數字를 通한 測定이 短期的으로 成果를 높이는 것은 事實이지만, 定量化는 結局 測定 可能한 項目에 行動을 맞추게 하는 副作用을 낳아 ‘質보다 量’에 執着하게 된다며 數字化된 社會를 批判한다.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강우근 詩集, 創批, 176쪽, 1萬1000원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는 危險이 到處에 가득한 世界에서 밝은 未來를 꿈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壁을 쌓아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몇 年 동안 ‘함께 걸어가야 할 未來’를 꿈꾸는 것은 아득하고 漠漠하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詩人은 “멀리 있는 빛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믿음”과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詩人은 混亂하고 어두운 只今을 明確히 認知하면서도 空虛와 不安을 견뎌내며 淡淡하게 未來에 對한 希望을 노래한다.
히든 포텐셜
애덤 그랜트 지음, 홍지수 옮김, 韓國經濟新聞, 392쪽, 2萬2000원
모차르트 같은 신동度 있지만 우리 周邊에는 大器晩成型 바흐 같은 이가 더 많다. 才能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大體로 成長 環境과 養育의 産物로 길러지는 境遇가 더 많다. 어릴 때 보인 才能만으로 그 사람을 評價한다면 많은 이들의 潛在力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게 된다. 冊 ‘히든 포텐셜’ 著者는 “適切한 機會와 배우고자 하는 動機가 附與되면 누구든 대단한 成就를 이룰 技倆을 기를 수 있다”고 强調한다. 潛在力을 가늠하는 尺度가 到達한 봉우리의 높이가 아니라, 그곳에 到達하기까지 얼마나 먼 距離를 前進했느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