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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삶꾼’ 임성빈 명지대 交通工學과 名譽敎授|新東亞

프로 ‘삶꾼’ 임성빈 명지대 交通工學과 名譽敎授

“交通工學? 나보다 잘하는 놈 많지 하지만 나보다 잘 사는 놈은 世上에 없어”

  • 송화선│東亞日報 新東亞 記者 spring@donga.com│

    入力 2010-09-29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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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幸福하게 사는 法? 나한테 물어라
    • 國樂, 鍼術, 氣功, 武藝 … 世上의 모든 趣味
    • 저녁 食事는 燒酒 한 甁, 麥酒 세 캔
    • 冥想 修鍊 中에 仙界(仙界)를 보다
    • 宇宙의 本質은 共存과 調和, 머지않아 世界의 次元이 바뀐다
    프로 ‘삶꾼’ 임성빈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
    ▼ 살면서 재미있어 보이는 건 다 하신 거죠?

    “다는 아니고 많이 했어요. 아직도 할 게 남았지.”

    예순을 넘긴 老(老)學者의 눈이 장난꾸러기처럼 반짝인다. 임성빈(66) 명지대 名譽敎授다. 그의 世界는 無窮無盡했다. 物理學科 哲學, 精神科學과 잡기(雜技)를 넘나들었다. 无涯(無碍)라는 號(號)답게 도무지 境界가 없어 따라잡기에 숨이 찼다.

    그를 紹介하기 위해 簡單하게 職銜만 整理해보자. 一旦 職業은 지난해 8月까지 명지대 交通工學과 敎授였다. 停年退任한 只今은 같은 大學 名譽敎授다. 同時에 그는 韓國精神科學學會長, 韓國바둑學會長, 서울우슈(武術)協會長, 民衆醫術(醫術)살리기 서울·京畿聯合會長, 韓國韓醫學硏究所 諮問委員, 弘益生命사랑會長 等을 現在 맡고 있거나 歷任했다. 이름만 걸어놓은 ‘會長’이 아니라, 實力을 兼備한 眞짜 리더다. 그는 跆拳道를 非公認 4段까지 修鍊했고, 우슈를 배워 武術競技指導者 2級 資格證을 받았으며, 氣孔을 익혔고, 鍼術 實力은 煉炭가스 中毒으로 死境을 헤매던 아내를 救한 程度다. 短簫 名人 김중섭에게 短簫를, 圓光大 임재심 敎授에게 伽倻琴을 배웠다. 한때 冥想에 心醉해 단학선원 法司 資格證을 받았으며, 撞球 300에 바둑 아마 5段, 麻雀, 훌라度 自稱 水準級이다. 登山狂(狂)이기도 해서 특별한 일이 없는 限 週末엔 늘 山을 찾고, 週中에도 한두 番씩 山에 오른다. 全國의 서로 다른 산 100個를 登攀할 때까지는 같은 山에 다시 오르지 말자는 뜻의 ‘100散會’를 만들어 目標를 이루기도 했다.

    “하고 싶은 건 다 한다”



    그렇다면 잡기에 빠져 本業은 等閑視한 敎授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正會員을 지낸 그는 社團法人 韓國交通問題硏究院長, 國務總理室 政策評價 諮問委員과 大統領祕書室 社會間接資本投資企劃團 諮問委員 等을 맡은 著名學者다. 명지대 안에서는 工科大學長, 交通觀光大學院長, 文化藝術大學院長, 法人企劃委員長 等을 지냈다. 요즘은 精神科學에 心醉해 宇宙의 始作부터 人類의 未來까지 洞察하는 硏究에 푹 빠져 있다. 프로필만으로도 原稿紙 서너 張이 훌쩍 넘어가는, 말 그대로 다채로운 履歷의 所有者다.

    京畿道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林 敎授의 自宅으로 찾아갔다. 아, 그는 2003年 12月, 이곳에 自身이 살 집을 直接 지었다. 世上에 하나뿐인, 獨特한 집이다.

    ▼ 設計나 時空을 배운 적이 있나요?

    “大學 때 土木工學을 專攻해서 基本은 알죠. 冊 좀 보고 硏究 좀 해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만들었어요. 一旦 1層엔 門이 하나도 없습니다. 食口끼리 사는데 門 닫아둘 必要 없잖아요. 콘센트는 110V用, 220V用 따로 만들고, 電氣線은 바닥 아래로 다 묻었어요. 앞뜰에는 메밀꽃 심고, 그 옆에 조그맣게 테라스度 만들었습니다. 財産 價値로 보면 높지 않지만, 近似하지 않아요?”

    뭐든 하고 싶으면 하는 사람이다. 앞서 言及한 수많은 專門 分野도 그렇게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 關心事가 참 다양해 보입니다.

    “다양해 보이지만 窮極的으로는 한 가지예요. 뭘 해야 幸福할까. 思春期 때 다들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幸福이 뭐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저는 그 생각을 繼續했습니다. 只今도 繼續하지요.”

    프로 ‘삶꾼’ 임성빈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
    그의 아버지는 競技고, 서울대를 卒業한 엘리트였다. 林 敎授가 보기에 어느 面에서나 自身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다. 朴正熙 前 大統領이 5·16軍事政變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는 ‘革命政府’의 象譯擔當次官補로 拔擢돼 輸出 政策을 立案했다. 그러나 그가 民政移讓 約束을 깨고 大統領選擧에 出馬하자 자리를 던져버렸다. 以後 스트레스性 疾患으로 死境을 헤맸고, 손대는 事業은 番番이 亡했다. 5男妹의 長男이던 林 敎授의 삶은 貧寒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고 在學 時節, 그는 한 時間 넘게 걸리는 登下校길을 걸어서 오가며 “어떻게 살아야 幸福해질까”를 苦悶했다.

    “그때는 좋은 學校 卒業하고 좋은 會社 들어가 出世하거나 돈 많이 버는 게 幸福이라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그 觀點으로 보면 내 未來가 너무 暗鬱한 거예요. 나보다 훨씬 잘난 우리 아버지도 돈을 못 벌고 出世 못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하겠나. 그러면 都大體 어떻게 사나.”

    幸福의 祕密

    그때 藝術人의 삶이 腦裏를 스쳤다. 音樂에 미친 사람, 演劇에 미친 사람…. 돈도 못 벌고 社會的으로 待遇받지도 못하면서 미친 듯 幸福해 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幸福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잡기(雜技)에 빠져든 理由다. 처음 익힌 건 國樂이었다. 音樂 하는 幸福이 뭔지 알고 싶었다. 複寫機가 없던 時節이라 國樂院에 가서 樂譜를 하나하나 筆寫해가며 演奏法을 익혔다. 曳引(藝人)들의 삶에 魅了돼 音盤과 映畫 비디오테이프도 蒐集하기 始作했다.

    林 敎授의 自宅 1層 書齋는 그의 關心 履歷을 보여주는 ‘여러問題硏究所’다. 直接 設計한 세 겹의 슬라이딩 冊欌에는 數千 張의 DVD와 CD가 빽빽이 꽂혀 있다. 한쪽 코너에는 그가 한 字 한 字 옮겨 적은 漢文 短簫 樂譜가 있고, 다른 冊欌 속에는 鍼術을 익히는 데 썼을 법한 人體 模型과 韓醫學 書籍들이 모여 있다.

    “國樂에 빠지면서 우리 것 全般에 關心을 갖게 됐어요. 力學과 巫俗 같은 것들이죠. 마침 집 近處 建物 2層에 使嗾作名所가 있었는데 거기 계신 兄님과 親해져 力學을 배웠습니다. 그 建物 1層은 韓醫院이라 거기도 자주 갔어요. 내기 將棋나 바둑을 두고 술을 마시며 韓醫學에 對해 주워들었지요.”

    한참 이곳저곳 關心을 키워갈 무렵 新聞에서 氣功 睡蓮에 對한 廣告를 봤다. 好奇心에 발을 들였다. 東萊 신선문(神仙門)의 內街氣孔(內家氣功)이었다. 同時에 鍼術도 배웠다. 只今은 弘益大 敎授가 된 大學 後輩가 ‘鍼術이 아주 新奇하더라’며 勸한 게 契機였다. 小顎 이주송 先生의 八相體質침을 배우며 自然스레 韓醫學의 基本 原理와 思想處方을 익혔다. 서울大 工大 大學院生 時節이다. 交通工學을 工夫하고 大學 講義도 하는 겉보기엔 멀쩡한 工學徒였으나, 남는 時間은 온통 音樂과 醫術과 祕記(秘技)에 沒頭했다.

    “어느 날 講義를 하려는데 學生 한 名이 슬리퍼를 신고 들어오는 겁니다. 禮儀가 없다고 惹端쳤더니 발등에 혹이 나서 구두를 못 신는다는 거예요. 病院에 갔는데 手術해도 再發할 수 있다고 當分間 두고 보자고 했다더군요. 이걸 침으로 고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굴 죽이려고 하느냐’며 펄쩍 뛰는 弟子를 어르고 달래 鍼을 놓았다. 그런데 바늘이 들어가는 瞬間 그만 學生은 눈을 뒤집으며 卒倒해버렸다. 筋肉이 硬直돼 침이 뽑히지도 않았다. 얼마가 지난 後 學生이 큰 숨을 내쉬며 意識을 찾은 뒤에야 林 敎授도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無謀한 첫 實驗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一週日 뒤 그 學生의 발에서 혹이 사라진 게 確認되면서, 이 ‘亂離’는 끝이 아닌 始作이 됐다. 所聞은 금세 퍼졌고 瞬息間에 鍼術의 達人으로 有名稅를 얻었다.

    “한番은 後輩 夫人이 입덧이 甚해 飮食 냄새도 못 맡을 程度로 苦生한다고 해서 鍼을 놓아줬어요. 그런데 一週日 뒤 다시 한 番 놓아달라는 겁니다. 鍼을 맞은 뒤 食慾이 너무 돌아서 過食을 했다고, 이番엔 消化 잘되게 해주는 침을 付託한다고 해요. 대충 그런 水準이었습니다.”

    周旋(酒仙)의 境地

    프로 ‘삶꾼’ 임성빈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
    집에까지 患者들이 찾아오기 始作했다. 지압 같은 手記療法(手技療法)을 익히자 實力은 더욱 向上됐다. 하지만 그는 속앓이를 해야 했다. 患者가 올 때마다 狀況에 맞는 鍼術을 工夫하느라 津이 빠졌다. 幸福하게 살기 위해 始作한 일이 苦行이 된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煉炭가스 中毒으로 瀕死狀態에 빠지는 일이 생겼다. 아는 鍼術을 總動員해 아내를 살린 뒤 그는 “내 침을 배워 아내를 살렸으면 그걸로 足한 것 아니냐. 더 以上 뭘 바라겠느냐” 宣言하고 다시는 鍼을 놓지 않았다.

    科學과 非科學을 넘나들고, 禮樂과 非술에 通達한 그에게선 朝鮮時代 都事의 風貌가 풍긴다. 남다른 株도(酒道)를 봐도 그렇다. 그는 지난 30年間 每日 저녁 한 끼는 밥 代身 술로 解決해왔다. 술을 每日 마신 건 어린 時節부터지만, 그前엔 一般人처럼 食事를 먼저 한 뒤 술을 들었다.

    “마흔이 되어가면서 갑자기 살이 많이 쪘어요. 體重 調節 때문에 밥과 술 中 하나를 選擇해야 하는 狀況에 놓인 겁니다. 그렇다면 當然히 술이었지요.”

    밥은 아침 한 끼만 먹고 點心은 굶었다. 저녁은 燒酒 한 甁을 基本으로 삼았다. 按酒는 볶은콩과 黃太채 等 가벼운 것만 곁들이고, 醉氣가 덜 오르면 麥酒 2~3캔을 보태 마셨다. 처음엔 이 程度로 充分했다. 그런데 燒酒의 度數가 漸漸 낮아지면서 問題가 생겼다. 麥酒로는 堪當할 수 없는 地境이 된 것이다. 道理 없이 基本을 燒酒 두 甁으로 올렸다.

    ▼ 그렇게 每日 함께 술을 드실 親舊 분이 계신가요?

    “아. 只今 말씀드리는 건 집에서 저녁 먹을 때에 限定된 겁니다. 밖에서는 斗酒不辭, 量껏 마시지요. 하지만 집에서는 定量이 있어야 하니까 原則을 定해둔 거예요.”

    ▼ 예순이 넘은 只今도 그 食習慣을 維持하시나요?

    “한 2年 前부터 主宗을 막걸리로 바꿨다가 只今은 마시지 않아요. 언제부턴가 바둑을 두면 자꾸 지는 겁니다. 平生 自身 있던 게 안 되니 왜 이러나 싶더군요. 저녁도 안 먹으면서 每日 燒酒를 두 甁씩 마셔서 그런가 싶어 그만뒀더니 確實히 훨씬 좋습디다.”

    ‘샹그릴라’를 보다

    처음엔 1700ml 들이 막걸리를 한 甁씩 비웠는데, 그도 좀 많은 것 같아 다시 1200ml 들이로 바꿨다. 막걸리가 웰빙食品으로 알려져 先見之明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只今은 家內 飮酒는 自制하고 있지만 밖에서는 如前히 술을 즐긴다.

    “周旋이라 불러도 不足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이番엔 맨精神으로 仙境(仙境)을 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小說 ‘單’李 話題를 모으던 무렵부터 冥想 修鍊을 始作했다. ‘저건 뭘까. 하면 재미있을까’ 하는 禮儀 好奇心에서 始作한 일이다. 修鍊團體에 加入해 呼吸과 冥想을 익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뭐라 說明하기 어려운, 놀라운 體驗이 찾아왔다. 밥을 먹지 않아도 기운이 넘치고, 추위를 타지 않게 됐다. 庭園의 꽃 냄새가 생생하게 살아나고, 世上은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周邊 모든 것이 限없이 아름다워, 神祕의 世界 ‘샹그릴라’가 바로 여기구나 싶었다.

    “가장 親한 親舊한테도 말 못할 神祕한 能力도 생겼어요. 이 程度만 얘기합시다. 숨을 들이쉬면 끝없이 숨이 들어가요. 내쉬면 또 끝없이 나옵니다. 아예 안 쉬어보면 어떨까, 勿論 상관없지요. 내 몸이 이 世界를 벗어나는 느낌이었어요. 肉身이 意味 없는 次元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요.”

    그가 ‘오프 더 레코드’를 前提로 들려준 體驗들은 一種의 宗敎 體驗 같았다. 各種 經典에 登場하는 ‘놀라운 能力’이 現實로 다가왔다. 처음엔 말할 수 없이 幸福했다. 하지만 곧 不幸해졌다. 그 幸福한 世界에 혼자만 있다는 事實 때문이다. 家族도 親舊도 모두 저 멀리, 아예 다른 次元에 있는 것만 같았다. 乖離感을 克服할 方法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있는 世界로 끌어올릴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려갈 것인지 苦悶했지요. 그런데 그 많은 이를 모두 내 次元으로 불러올리는 건 不可能했어요.”

    “아무리 샹그릴라라고 해도 나 혼자 있으면 무슨 所用이냐” 깨달음을 얻은 그는 修鍊을 中斷했다. 代身 周圍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에게 다른 世界를 案內하는 가이드 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只今도 健康管理를 위해 種種 呼吸과 冥想을 하기는 하지만, 決코 修行의 段階에 들지는 않는다. 代身 自身의 經驗을 理論的으로 整理해나갔다. 天地創造, 鎭火, 빅뱅, 外界人 等에 對한 關心과 硏究는 여기서부터 始作됐다.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事實 林 敎授는 젊은 時節 心靈學者 安東閔氏의 冊에 魅了돼 그 分野에 關心을 두고 工夫한 적이 있다. 12卷으로 構成된 ‘未來의 遺産’ 시리즈와 데니켄(Daniken)의 ‘神들의 수수께끼’ 等을 읽고 그때껏 想像도 못한 祕密이 숨어 있는 人類의 古代史에 關心을 뒀다. 美國 新科學(New age science) 運動의 先驅者인 버클리대 프리초프 카프라 敎授의 ‘現代物理學과 東洋思想(The Tao Of Physics)’에 感化 받아 東洋古典과 現代物理學에 對해 工夫하기도 했다. 샹그릴라 體驗은 그의 이런 關心에 불을 붙였다.

    “폴 고갱이 1897年 그린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作品을 아시죠? 이 質問에 對한 答을 찾는 건 人類의 오랜 宿題입니다. 科學이 그에 對한 答을 줄 수 없다면 무슨 意味가 있겠어요.”

    하고 싶은 일에 빠지고, 한番 始作하면 境地에 오르는 그의 臟器는 이番에도 遺憾없이 發揮됐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于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는 答한다.

    “現代科學은 只今 우리가 屬한 宇宙의 나이가 大略 137億年이며 이것은 巨大한 爆發(빅뱅)로부터 비롯됐다고 말합니다. 宇宙의 모든 것은 勿論 時間과 空間까지 이로부터 비롯됐지요. 宇宙는 只今도 膨脹을 繼續하고 있어요. 그러면 膨脹하는 宇宙 밖의 空間은 무엇이며 大爆發 以前에는 무엇이 存在했나. 空間은 大爆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므로, 그外엔 空間이라는 것이 없지요. 當然히 밖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時間도 大爆發 때 생긴 것이니 그前에는 時間이 없어요. 當然히 轉移라는 것도 있을 수 없지요. 빅뱅에서 모든 것이, 現在 科學의 答은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빅뱅 以後 地球에 原始的인 哺乳類가 登場한 것은 約 2億年 前이고 相當히 進化한 哺乳類가 나타난 것은 約 5000萬年 前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人類의 먼 祖上으로 볼 수 있는 所謂 類猿人이 登場한 것은 大略 700萬年 前이지요. 이들이 進化를 거듭해 只今으로부터 約 25萬年 前 네안데르탈人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不過 石器, 골기 等을 使用하는 等 動物이나 다른 靈長類와 區別되는 人類로서의 特性을 갖췄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自然을 利用하고 適應하는 能力이 있을 뿐 이들이 現代 人類의 直接的인 祖上은 아니라는 게 밝혀졌어요. 현대 人類, 卽 호모 사피엔스의 登場은 進化論이나 人類學에서 큰 不可思議입니다. 地球上에 相當期間 蕃盛했던 네안데르탈人이 어떤 理由인지 3萬年 前 거의 同時에 모두 사라진 뒤 나타났는데, 數百萬年間 이뤄진 그 어떤 進化보다 훨씬 더 큰 進化를 이룬 모습이었으니까요. 人類學에서는 이 地點을 ‘잃어버린 連結 고리’라고 부릅니다. 이 疑問을 풀기 위해 여러 學說이 나왔는데 個人的으로는 外界人 介入說이 가장 說得力 있게 느껴져요.”

    프로 ‘삶꾼’ 임성빈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

    林 敎授가 直接 筆寫한 短簫 樂譜와 運動에 沒頭하던 時節 따낸 우슈 競技指導者 資格證.

    現代 科學을 넘어

    여기서 잠깐 說明을 끊어야겠다. 人類의 祖上이 ‘外界人’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虛無孟浪하지 않은가. 그는 國內 有名 私立大의 工科大 學長을 지낸 正統 科學者다.

    ▼ ‘人間을 만든 存在는 곧 外界人이다’라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人類가 다른 行星에서 건너온 外界人으로부터 進化해왔다는 말씀입니다. 스위스 出身 考古學者 에레히 폰 데니켄의 主張인데요. 데니켄은 創世記를 비롯한 여러 民族의 神話에 登場하는 神은 모두 外界人이며 現 人類는 地球上의 原始 人類를 生物學的으로 改造하거나 外界人과의 混血에 依해 誕生했다고 主張했습니다. 한 集團의 外界人이 아니라 各其 다른 여러 集團의 外界人이 찾아옴으로써 여러 民族이 생겼고 그들이 傳授한 文明이 人類의 古代 文明이라는 거죠. 저는 ‘잃어버린 連結 고리’를 볼 때 이 假說이 가장 說得力 있다고 봐요.”

    ▼ 그렇다면 그 外界人은 어디서 온 겁니까.

    “太陽系가 屬한 銀河 宇宙에만 太陽 같은 行星이 約 1000億個 存在한다고 합니다. 그中 相當數가 行星을 거느리고 있고, 그런 銀河集團이 現在까지 觀察된 것만 2000億個 程度가 돼요. 地球와 비슷한 條件을 가진 行星은 數없이 많다는 얘기지요. 한 가지 더 생각할 건 宇宙의 나이가 約 137億年이라는 겁니다. 그에 비해 地球의 나이는 46億年에 不過해요. 地球보다 數億年 또는 數十億年 먼저 생긴 行星도 相當數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도 빅뱅으로 創造된 生命體가 鎭火했을 거예요. 地球에서 원시人類가 네안데르탈人까지 進化하는 데 約 700萬年이 걸렸습니다. 그로부터 現在 人類까지 自然 進化하는 데는 數千萬年, 數億年 또는 數 十 億年이 所要될 수 있어요. 宇宙에는 그만한 時間的인 餘裕를 가진 行星이 얼마든지 있지요. 그곳의 生命體가 地球로 건너왔다면 어떻습니까.”

    林 敎授는 1990年 國內에 飜譯 出刊된 ‘그대, 반짝이는 별을 보거든’이라는 冊을 紹介했다. 스위스의 한 農夫가 約 50年에 걸쳐 文明이 매우 앞선 플레이아데스라는 별에서 온 外界人과 接觸한 經驗을 쓴 冊이다. 이 冊에 登場하는 人類의 起源과 宇宙의 歷史에 關한 內容은 林 敎授가 紹介한 假說과 거의 一致한다고 한다. 그걸 믿을지 말지는 於此彼 個人의 選擇이다. 다만 그는 이런 冊들을 통해 샹그릴라 體驗의 答을 찾아나갔을 뿐이다. 그가 던진 세 質問 中 마지막 質問이 남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天才 物理學者 스티브 호킹은 宇宙가 11次元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現在 人類가 있는 곳은 그中에서 本能的 精神體의 人間들이 支配하는, 人間屆 中에서도 第一 바닥인 4次元 世界지요. 이제 우리는 知的 精神體의 人間이 支配하는 5次元 世上으로 進化해야 해요. 그곳은 對立과 葛藤이 아니라 調和와 共存의 原理가 作動하는 世界입니다. 暴力과 戰爭이 없고, 더불어 사는 社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正統 物理學 理論과 哲學, ‘非科學’으로 置簿되는 主張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中國 記功詞들이 가장 基本的으로 하는 技術이 알藥 甁을 열지 않고 藥을 뺐다가 다시 넣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科學의 눈으로 볼 때 이건 不可能해요. 하지만 눈속임이 아닌 現實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건 科學이 아니다’라고 外面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어떻게 그런 일이 可能한지 說明하는 方法을 찾는 게 맞을까요.”

    “사는 데 프로다”

    林 敎授는 “코페르니쿠스가 地動說을 發表하기 前까지 地球上의 어느 누구도 땅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自身이 믿는 게 科學이고 眞實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科學의 基本이 完全히 달라졌다. 우리가 只今 믿는 科學이 아니면 全部 非科學이라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널리 活用하고 있는 電磁氣波를 봅시다. 超長波(VLF)부터 長波(LF) 中波(MF) 短波(HF) 超短波(VHF) 極超短波(UHF) 센티派(SHF) 밀리파(EHF)에 이르기까지 無線用 電波만 해도 다양합니다. 赤外線 可視光線 紫外線에 醫療用으로 쓰이는 X線까지 엄청나게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지요. 하지만 不過 100餘 年 前까지만 해도 人類는 이 中 極히 一部에 不過한 可視光線의 世界 속에서만 살아왔어요. 只今 우리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11次元의 世界를 보지 못하고, 一部에 不過한 4次元이 全部인 줄 안 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人間과 宇宙의 神祕를 파고드는 건 그의 現在 關心事다. 只今껏 수많은 趣味에 沒頭해왔듯 그는 이 硏究 속에서 또 다른 ‘幸福’을 찾고 있다. 그런 그를 知人들은 ‘怪짜’ 또는 ‘基因’이라고 부른다. 林 敎授는 “앞에서는 그렇게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미친놈’이라고 할 것”이라면서 “어떤 이들은 眞짜 專攻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했다.

    ▼ 眞짜 自身의 專攻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는 거지요. 재밌게 사는 거, 幸福하게 사는 거. 交通工學이요? 나보다 잘하는 놈 世上에 많을 겁니다. 우슈나 바둑, 鍼術은? 더 많겠죠. 하지만 나보다 즐겁게 사는 사람은 別로 없을 거예요. 나는 사는 것에서만큼은 프로페셔널이라고 自負해요.”

    林 敎授는 ‘꾼’이라는 單語를 좋아한다. ‘프로페셔널’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그는 “소리꾼, 노름꾼이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며 “나는 무슨 일을 하든 ‘꾼’의 姿勢로 덤벼든다”고 말했다. 대충 하다 말 일이라면 아예 始作을 않고 一旦 손을 대면 끝을 본다. 그가 스스로 붙인 自身의 別名은 ‘삶꾼’, 삶을 ‘꾼’의 姿勢로 살아가기 때문이란다. 그의 停年退任을 祝賀하며 後輩들이 記念文集을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表紙 글씨를 ‘停年 記念’에서 ‘定年 記念’으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時間이 情(定)해져서 學校를 떠날 뿐, 멈추지는(停) 않겠다는 意味다.

    “四季節을 보세요. 봄에는 꽃이 아름답고 가을이면 丹楓이 눈부십니다. 季節마다 제各各 魅力이 다른데 왜 다 좋아하면 안 됩니까. 關心事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게 趣味야, 이게 내 專攻이야, 限定시켜버리면 또 다른 즐거움을 스스로 抛棄하게 되는 겁니다. 나는 돈이나 出世에 對한 欲心을 버리니 하고 싶은 일에 쓸 時間이 많아요. 앞으로도 繼續 재밌는 日 幸福하게 沒頭하며 살아갈 겁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저녁을 먹고 가라고 勸했다. 그에게 저녁은 술이다. 오늘은 막걸리를 좀 마시겠다며 활짝 웃는 얼굴이 아직 靑年 같다. 좋은 게 많아서 幸福한 怪짜, 임성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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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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