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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齊 建物→複合文化空間… “아픈 過去는 묻기보다 품는 것”|新東亞

一齊 建物→複合文化空間… “아픈 過去는 묻기보다 품는 것”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하는 ‘길에서 만나는 人文 活動家’] 一齊 建物을 複合文化空間으로 만든 씨엔시티에너지 황인규 會長의 꿈

  • 大戰=허문명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3-10-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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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帝强占期 物流의 中心에 들어선 東洋拓殖株式會社

    • ‘大田의 正體性’ 關心 갖다가 發見한 建物

    • 建物主 說得에만 2年, 設計圖 찾아 百方 搜所聞

    • 올드냐, 에이징이냐 앵글에 따라 用途 變해

    • 質問 던지는 空間에서 各自의 答 찾길

    신동아는 人文學財團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길에서 만나는 人文 活動家’ 시리즈를 進行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年 11月 設立된 國內 最初 人文學 支援 財團으로 人類의 오랜 知識과 智慧를 바탕으로 삶의 根源的 물음을 새롭게 傳한다는 趣旨로 硏究 支援, 大衆 講演, 온라인 포털 等 다양한 事業을 進行하고 있다. 새로 선보이는 ‘길에서 만나는 人文 活動家’는 地域社會나 空間을 基盤으로 人文 價値를 苦悶하고 이를 새로운 時代의 言語와 메시지로 알리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進行한다. 두 番째 主人公은 日帝强占期 東洋拓殖株式會社 建物을 100年 前 모습으로 살려 複合文化空間으로 만들어 大田의 文化를 꽃피우고 싶다는 황인규 氏엔시티에너지 會長이다. <編輯者 週>

    [대전=허문명 기자]

    [大田=허문명 記者]

    KTX 대전역에서 南쪽으로 約 1.5km 떨어진 大田 東區 忍冬(仁洞)은 서울로 치면 鍾路와 같은 곳이다. 日帝强占期에 鐵道가 놓인 이곳은 大田이라는 都市의 發祥地라고도 할 수 있다. 韓半島 內陸 한가운데 놓인 鐵道 德分에 日帝强占期 物流 中心地가 됐고, 忍冬에서 가장 오래된 場터 ‘忍冬 市場’은 가마니와 쌀 市場으로 全國에 有名稅를 떨쳤다고 한다. 大規模 3·1運動도 이곳 忍冬에서 펼쳐졌다.

    日帝가 지은 東洋拓殖株式會社의 變身

    秋夕 名節 連休가 始作되기 前 KTX 대전역에 내려 忍冬으로 向했다. 最近 이곳에 새로 開館한 美術館 ‘헤레디움(HEREDIUM)’을 찾았다. 獨逸 出身으로 世界的 名聲이 있는 畫家이자 彫刻家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大規模 新作 展示가 열리고 있는 곳이다. 美術에 關心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接해봤을 世界的 知名度를 가진 作家의 韓國 첫 個人 展示가 서울이 아닌 大戰, 그것도 막 새로 開館한 空間에서 열리다 보니 美術界에서는 그 나름대로 입所聞이 퍼지고 있었다.

    記者의 興味를 刺戟한 것은 ‘헤레디움’이라는 建物 自體였다. 이 建物이 지어진 지 올해로 꼭 101年. 日帝强占期에 지어진 東洋拓殖株式會社 大田支店 建物이 바로 이곳이었다. 國內에 남아 있는 흔치 않은 近代建築物을 美術館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異例的으로 느껴져 取材길에 나선 터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透明 바닥 아래 돌階段이 觀覽客을 먼저 맞는다. 空間을 리노베이션하는 過程에서 地下를 播多 나온 것인데 위에 透明 발板을 깔아 그대로 보이게 살렸다고 한다.

    안젤름 키퍼는 이番 展示 題目을 ‘가을 : Herbst’로 定했다. 題目에 딱 어울리게 展示場 안은 落葉과 가을 風景을 主題로 다양한 作品이 걸려 있어 무르익어 가는 바깥 가을 雰圍氣와 걸맞았다. 이番에 나온 18點이 모두 代作인데다 作家가 오로지 이 空間을 위해 製作한 新作들이라는 點에서 키퍼가 空間에 對해 갖고 있는 愛情이 느껴졌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독일 작가 안젤름 키퍼의 대형 작품들을 선보인 전시장. ‘폐허에서의 재생’이라는 작품 세계 콘셉트에 맞게 ‘가을’을 주제로 했지만 쇠락의 느낌보다는 생명의 순환적 느낌을 강조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대전=허문명 기자]

    世界的으로 認知度가 높은 獨逸 作家 안젤름 키퍼의 大型 作品들을 선보인 展示場. ‘廢墟에서의 再生’이라는 作品 世界 콘셉트에 맞게 ‘가을’을 主題로 했지만 衰落의 느낌보다는 生命의 循環的 느낌을 强調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大田=허문명 記者]

    畫家이자 彫刻家인 키퍼는 캔버스에 모래, 짚, 나무, 再, 진흙, 납과 같은 材料들을 自由롭게 붙이는 獨特한 作品 世界를 갖고 있다. 이番 展示에서도 落葉을 납으로 만들어 붙여 그림과 彫刻의 境界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作品이 大擧 나왔다. 平平한 畵面에 洋동이를 붙여서 落葉이 떨어지는 모습을 表現한 것에서부터 불에 타버릴 듯한 울긋불긋한 色感의 落葉을 中心으로 나무와 風景을 驅使해 思索과 冥想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가을 風景을 만들어냈다.

    헤레디움 建物에 서린 아픈 歷史

    戰時 案內를 해주던 함선재 館長에게 ‘헤레디움’의 뜻을 물었더니 ‘遺産으로 물려받은 土地’라는 意味의 라틴語라고 했다. 앞서 言及했듯 1922年에 만들어진 東洋拓殖株式會社(以下 동척) 建物의 歷史性을 담은 作名이다. 동척은 무슨 일을 하던 機關이었을까.

    事實 ‘拓殖’이란 말은 우리에게는 侮蔑的인 單語다. 辭典에서 찾아보면 척(拓)은 ‘生땅을 일구어 논밭을 만들거나 아무도 한 일이 없는 일을 처음 始作한다’는 뜻이고 式(植)은 ‘심는다’는 뜻이다. ‘拓殖(拓植)’은 ‘開拓(開拓)과 植民(植民)’이라는 意味가 합쳐진 單語로 ‘未開의 땅을 開拓해 自國民을 심는다’는 뜻이다. 日帝는 未開拓 땅인 朝鮮을 開發해(척) 日本人들을 심는다(식)는 뜻으로 이 單語를 썼다.

    周知하다시피 日帝는 朝鮮總督府를 통해 朝鮮人들의 政治的 自由를 빼앗았고 拓植會社를 通해 經濟的 自由를 빼앗았다. 1910年 土地調査事業을 통해 全國 땅의 所有權, 價格, 用途를 모두 申告하도록 하면서 王室과 官廳 所有 國有地, 마을 門中 土地, 未申告 土地 等을 總督府 財産으로 만들었다. 拓殖 會社를 통해 日本人에게 破格的으로 싸게 拂下하는 方式으로 日本人들이 朝鮮 땅으로 移住하도록 돕고 經濟活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日帝强占期 全國에 總 9個였던 동척 建物은 光復 後 하나둘 사라져 現在 大田, 釜山, 木浦 等 3곳에만 남아 있다. 이 가운데 大田 建物은 遞信廳 等으로 쓰이다가 民間에게 賣却돼 商店들이 들어선 狀態에서 登錄文化財가 됐다. 이를 사들인 會社가 大田에 基盤을 둔 都市가스 供給業體 ‘씨엔시티(CNCITY)에너지’다. 황인규 氏엔시티에너지 會長은 建物을 허무는 代身 復元을 決定했는데 當時 復元 作業을 主導한 김정동 목원대 名譽敎授(우리近代建築硏究所)는 동척 大田支店의 歷史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인동 100年 歷史가 되다’ 圖錄에서 引用)


    1922년 일제가 만든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헤레디움 외관. [대전=허문명 기자]

    1922年 日帝가 만든 東洋拓殖株式會社 建物이 複合文化空間으로 變身한 헤레디움 外觀. [大田=허문명 記者]

    “1980年代頃부터 大田의 都心 近代建築物을 調査 硏究할 때 말 못할 콤플렉스에 젖어들곤 했다. 植民地 時代 만들어진 官公署와 銀行 建物들을 보면서 어딘가 움츠러들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隣洞에 있는 동양척식회사 建物도 마찬가지다. 동척은 1908年 日本에서 設立되었고 도쿄에 本店을 두었다. 이어 1911年 을지로入口에 서울事務所(京城地點)를 始作으로 釜山, 木浦, 强勁에도 세웠다. 大田은 3·1運動 直後인 1922年에 세운 것이다.

    釜山 建物은 迂餘曲折 끝에 釜山近現代 歷史觀이 되었고, 木浦 建物은 헐려나가는 途中에 木浦近代歷史觀으로 탈바꿈했다. 大戰 建物은 1950年代 民間에 拂下되어 파이프 角材들을 파는 鐵鋼資材上廻, 타일 陶器 商店으로 使用되었다. 1層은 거의 다 變形됐고 內部는 가게 用度여서 一般人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以後 登錄文化財가 되었다. 그러다 황인규 會長을 만나 復元을 하게 된 것이다. 實測 圖面을 그리고 現況을 把握하니 建物 內外 輪廓이 드러났다. 歲月에 依해 깨지고 찢어지고 파였지만 內容物은 거의 다 되살아났다.”

    大韓都市가스 創業主 故 황순필 會長의 長男이기도 한 황인규 會長은 24年間 檢査 生活을 하다 會社를 맡아 CEO로 變身했다. 現在 씨엔시티 마음에너지財團도 이끌고 있다.

    展示場을 둘러보고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大田에 基盤을 둔 會社로서 大田의 正體性에 對한 關心이 建物 復元과 헤레디움 個館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大田은 1905年에 생긴 新都市이자 計劃都市입니다. 大田이라는 都市가 생기게 된 가장 큰 理由는 鐵道였죠. 러일戰爭에서 이긴 日本人들이 滿洲 進出을 위해 朝鮮에 鐵道를 놓았다는 얘기는 다 아시잖아요. 큰 밭이던 大戰을 보고 딱 찍은 거죠. 처음에는 日本 驛務員들과 軍人들이 와서 살았는데 漸漸 規模가 커져서 여러 建築物을 남기게 되죠. 그中 하나가 이 建物입니다.”

    實際로 大田에는 옛 忠南道廳史를 비롯해 옛 조흥은행, 산업은행 大田支店, 韓國電力公社 大戰普及所 等 近代建築物이 많이 남아 있다. 大部分 日帝强占期에 지어진 것들이다 보니 保存보다는 撤去 輿論이 만만치 않았다. “日帝 殘滓는 淸算해야 한다”며 忠南道廳舍 撤去를 公約으로 내세운 市場 候補者가 있었을 程度다.

    過去는 解釋의 領域, 重要한 것은 現在와 未來

    “남들은 허물자고 한 空間을 사서 復元하겠다는 決心을 한 契機가 궁금하다”는 質問에 黃 會長은 建物을 사람의 人生에 빗대 說明했다.

    “누구나 아프고 후회스러운 過去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過去라는 것도 結局 내가 어떻게 解釋하기 나름이잖아요. 아프고 한스러운 過去라고 해서 그냥 덮어버리고 外面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걸 發展의 契機로 삼는 게 現在와 未來를 위해 더 有益한 것 아닐까요. 이 空間도 그런 意味를 담고 싶었어요.”

    그는 2022年 12月 竣工 記念 音樂會를 하면서 바이올리니스트 민유경 誠信女大 敎授가 선보인 交響詩 쇤베르크의 ‘淨化된 밤’의 意味가 이 建物에도 녹아 있다고 했다.

    “‘淨化된 밤’은 元來 리하르트 데멜의 聯作詩 ‘淨化된 밤’에 曲을 붙인 絃樂 6重奏曲입니다. 이 詩에는 男女 커플이 아름다운 달빛 아래 나무 사이를 거닐면서 나누는 사랑의 對話가 나오는데 女子가 불쑥 ‘다른 男子의 아이를 가졌다’는 衝擊的인 告白을 합니다. 男子가 얼마나 놀라고 背信感을 느꼈겠어요. 하지만 男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기는 우리 사랑을 妨害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이다. 重要한 것은 過去가 아니라 우리의 未來’라고 말하죠.

    저희는 開館 記念 音樂會로 그 公演을 選擇하면서 詩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傳하고 싶었어요. 日帝强占期에 만들어진 이 建築物은 어쩌면 우리 歷史가 낳은 남의 아이잖아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 여러 選擇이 있을 수 있지요. 優先은 미워하는 마음이 크겠죠. 그렇다고 虐待하고 죽일 거냐(웃음) 그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자, 包容하자. ‘淨化된 밤’에 나오는 男子의 마음처럼 남의 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잘 키우면 우리 아이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이 建物에 對한 생각을 하게 됐죠.

    이제 우리도 日本에 對해 傷處만 記憶하는 時代는 지났다고 봅니다. 剛한 나라가 됐잖아요. 그리고 未來를 생각해 볼 때 果然 只今으로부터 100年 後에도 우리 後孫들이 이 建物을 보면서 只今 우리가 갖고 있는 傷處와 트라우마만을 갖고 이 空間을 볼까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日本人들이 이 建物을 쓴 期間은 1922年부터 1945年까지이니까 23年 程度예요. 以後 우리가 쓴 時間이 훨씬 길죠. 그런 點에서 보면 ‘남의 아이’도 아닙니다.”

    空間에서 삶을 되새길 수 있다면 그 自體로 意味가 있어 보입니다.

    “當然한 말이지만 大田市民 德分에 저희 企業이 있는 것 아닙니까. 勿論 저희도 서비스를 提供하고 있지만 市民들이 없다면 저희도 없죠. 그래서 늘 뭔가를 돌려드리고 寄與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제가 檢事이던 時節에 일로 大田에 몇 番 온 적이 있지만 企業을 맡으면서 大田의 오리지널리티, 正體性에 本格的으로 關心을 갖게 됐어요. 大田의 歷史에 對해서도 關心을 갖게 됐고요. 그러다 이 建物이 눈에 띄었습니다.

    建物은 周邊이랑 커뮤니케이션하는 空間이잖아요. 重要한 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하는 건데 낡고 허름한 모습 그대로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密集된 空間으로 쓰이는 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建物을 引受하는 過程 自體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建物主가 팔지 않겠다고 하셔서 說得하느라 時間이 걸렸어요. 그분이 移徙 갈 새로운 場所를 찾으실 때까지 한 2年 기다렸어요. 建物을 引受한 다음에는 專門家들을 모아 諮問하는 過程이 이어졌습니다. 原形을 最大限 保全하고 原形이 없거나 不分明한 境遇에는 모던하게 바꾸기로 定했습니다.

    復元 過程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建物을 지은 會社가 日本 다이세이 建設이라는 會社인데 이곳에 물어보면 設計圖가 있지 않을까 要請했더니 ‘없다’는 答이 왔어요. 이어 日本建築物協會라는 곳까지 搜所聞해 알아보니 亦是 ‘關東 大地震 以後 文書들이 모두 消失되어 찾을 수 없다’는 答을 들었습니다.

    結局 몇 張 남아 있지 않은 當時 外形 寫眞들과 記錄物을 中心으로 復元을 始作했습니다. 內部를 다 뜯는데 頹廢 理髮所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浴槽가 나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웃음). 內壁이 똑바르지 않아 展示 空間으로 만드는 데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質問이 떠오르는 空間이면 좋겠다”

    日帝 殘滓 淸算의 목소리는 아직도 現在進行形인데 자칫 攻擊받지 않을까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요.

    “藝術은 뭔가 다르게 보는 눈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創造力의 出發이라고 봅니다. 旣存에 있던 걸 다르게 보는 거. 이 建物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이미 무너진 建物로 볼 수 있고, 올드한 建物로 볼 수 있고, 에이징(熟成)돼 있는 歷史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앵글로 봤느냐에 따라서 用途가 變하잖아요. 저는 이 空間이 사람들에게 質問을 던지는 空間이었으면 해요. 왜 낡아빠진, 더군다나 日帝가 남긴 이런 建物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묻는 것에서 出發하면 大歡迎이죠. 勿論 答은 各自가 내는 거지만요.”

    用途도 苦悶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復元도 復元이지만 果然 이 建物을 통해 大田市民들과 무엇으로 커뮤니케이션할 것이냐, 이게 重要했죠. 저는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 새로운 親舊들이 와서 靈感을 받을 수 있고 質問할 수 있고, 그래서 어떤 創意性이나 靈感을 얻어갈 수 있는 그런 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文化的으로는 서울과는 좀 동떨어질 수 있는 空間인데 世界的 作家의 첫 展示를 幼稚한 것도 意味가 있어 보여요.

    “運이 좋았습니다. 키퍼가 韓國 展示에 關心 있다는 소리를 傳해 들었고, 우리가 오퍼를 냈는데 하겠다는 答이 왔습니다. 二分 作品 世界 콘셉트가 ‘廢墟에서의 再生’이잖아요. 그래서 이 空間의 意味를 共感해 준 것 같아요. 버려진 空間이 다시 태어났으니까요.

    作家가 모두 新作으로 大作을 만들어 보내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運送費 保險料 等 經費도 많이 들었지만 要求 條件도 많았어요. 觀客들이 그림을 充分히 滿喫해야 한다면서 接近 禁止先導 두지 말라고 하고, 案內文도 쓰지 말라고 하고 말이죠. 作品 망가질까 봐 操心하고 있습니다(웃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空間에 對한 생각이 남다른 것 같네요.

    “空間은 使用者가 便해야 한다는 게 基本 생각입니다. 職員들 指定席을 없앤 것도 그런 생각의 延長線上이었어요. 都市가스公社는 都市가스를 供給하고 維持管理 保守가 本業이잖아요. 現場이 事務室입니다. 安全이 生命이다 보니 새롭게 아이디어를 내기보다 旣存 方式을 그대로 固守하는 文化가 澎湃할 수 있지요.

    처음엔 職員들이 問題가 있는 가스管을 發見하면 寫眞을 찍어서 바로 共有하지 않고 報告書를 쓰는 데 時間을 보내더라고요. 只今은 3次元이 아니고 4次元 歲計잖아요. 正말 想像力에 따라 效率的으로 일할 수 있는 世上이에요. 그래서 業務 空間 스터디를 始作했습니다. 職級이 올라갈수록 九重宮闕처럼 돼 있던 事務 空間을 모두 허물고 자유롭게 만들었어요. 소프트웨어는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니고 하드웨어를 바꿔야 하잖아요. 自由石島 그냥 自由席이 아니라 現代카드, 포스코까지 벤치마킹해서 다양한 空間을 만들었습니다. 讀書室처럼 칸막이가 있는 자리도 있고, 會議室처럼 오픈 스페이스度 있고요. 自己가 願하는 그때 集中하고 싶은 房에 가서 일하도록 한 거죠.”

    그렇게 해서 生産性이 올라갔나요? 革新의 結果가 궁금합니다.

    “저희는 生産性이라기보다는 安全管理에 깊이를 더하는 게 業의 本質이죠. 空間을 바꾸니 職員들의 業務 態度와 疏通 方式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職員들이 저한테 얘기하는 게 ‘디지털 트윈’을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땅속에 묻혀 있는 가스管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디지털 空間으로 만드는 거죠. 가스管 管理에 第一 危險한 게 다른 工事를 하다가 棺을 건드리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監督을 나가는데 디지털 設計圖만 있으면 安全하게 工事하는 것이 可能하죠. 옛날엔 없었어요. 職員들이 國策 課題로 自發的으로 申請해 豫算도 따 왔습니다. 空間을 자유롭게 바꾸니 疏通이 자유롭게 이뤄져 組織의 活力이 생긴다는 걸 經驗的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 企業인 中에는 企業의 社會的 責任이나 市民社會에 對한 寄與를 苦悶하면서 各自의 터전이 되는 地域에서 다양한 空間을 만들어 人文 精神을 뿌리내리려는 움직임이 많이 읽힌다. 大戰이라는 地域 特有의 正體性을 바탕으로 過去를 顯在的·未來的 意味로 解釋해 내려는 ‘헤레디움 精神’李 이곳에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로 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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