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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道는 ‘잘 드는 칼’ 尹錫悅을 期待한 게 아니다|신동아

中道는 ‘잘 드는 칼’ 尹錫悅을 期待한 게 아니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톱니바퀴’ 大統領을 期待하는 理由

  • 노정태 經濟社會硏究院 專門委員·哲學

    basil83@gmail.com

    入力 2023-10-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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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캐릭터

    • 憲法?法律 規定된 常識의 代辯人

    • 難澁하고 粗惡한 尹의 政治哲學

    • 壓力을 견디며 常識을 지키는 길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尹錫悅 檢事의 오늘 發言, 두고두고 내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2013年 10月 21日, 曺國 當時 서울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가 트위터에 올린 內容이다. 이 트윗은 흔히 하는 말로 ‘聖地’가 됐다. 그로부터 約 8年 半 程度 歲月이 흐른 後, 檢査 尹錫悅은 大統領이 됐기 때문이다.

    그 過程을 暫時 復棋해 보자. 2013年 國政監査, 當時 驪州支廳長이었던 尹錫悅은 衝擊的인 暴露를 했다. 國家情報院 大選介入 疑惑 事件 搜査에 윗線의 壓力이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脈絡에서 나왔다. “(윗線의) 指示 自體가 違法한데 그것을 어떻게 따르겠느냐”며 尹錫悅은 힘주어 强調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2013년 10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 [동아DB]

    2013年 10月 21日 서울 서초구 서울高等檢察廳에서 열린 國會 法制司法委員會 國政監査에 參席한 尹錫悅 當時 驪州支廳長. [東亞DB]

    尹錫悅은 代價를 치렀다. 朴槿惠 政府 時節 主要 補職을 맡지 못하고 所謂 閑職을 轉轉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尹錫悅이 ‘별의 瞬間’을 움켜쥔 것은 바로 그 時點이었다. 조국 같은 政治 셀럽의 關心과 歡呼를 받았다는 事實 때문만이 아니다. 一介 特殊部 檢事에 지나지 않던 그에게 ‘魅力的인 캐릭터’와 ‘政治的 敍事’가 附與됐기 때문이다.

    2013年 10月 現在, 當時를 돌이켜보면 實로 아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10年이라는 歲月이 그리 짧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重要한 理由가 있다. 좌천당했던 問題的 檢事 尹錫悅이 大統領의 자리에 올랐다는 政治的 激變 때문만은 아니다. 大衆에게 刻印된 尹錫悅이라는 캐릭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는 事實 때문이다.



    斷乎하게 말해보자. 10年 前 大衆을 魅惑시킨 江골 檢事 尹錫悅의 캐릭터는 只今 世上에 없다. 國民에게 보이는 것은 龍山 大統領室에서 ‘人의 帳幕’에 둘러싸여 있는 尹錫悅 大統領의 모습뿐이다. 더욱 나쁜 것은 大統領이 된 尹錫悅이 本人의 旣存 캐릭터와는 全혀 상관없는 어떤 理念 鬪爭의 戰士로 猛活躍하고 있다는 點이다.

    모든 캐릭터의 變化가 否定的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間隙은 그다지 肯定的으로 作動하고 있지 않다. 就任 後 40%線을 가까스로 넘기거나, 甚至於 20%臺로 내려가기도 했던 大統領 國政 遂行 支持率이 이를 赤裸裸하게 보여준다.

    大統領 支持率이 大統領의 成功과 失敗를 모두 左右하는 要素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執權 1年次에 이런 數字를 記錄했으며, 2年次로 접어들어도 나아진 게 없다는 事實은 實로 問題的이다. 安定的인 國政 運營을 위해 必要한 過半 支持는 고사하고, 지난 大選에서 本人을 찍어준 有權者의 支持마저도 穩全히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여기서 質問은 두 가지다. 어떻게 檢事 尹錫悅은 그토록 빨리 大統領이 될 수 있었을까. 反對로 大統領 尹錫悅은 왜 이렇게 大衆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 많은 境遇 그렇듯 여기서도 두 問題는 하나의 原因을 共有하고 있다. 尹錫悅의 캐릭터가 지닌 兩面性 때문이다.

    칼날의 바탕이자 原動力

    尹錫悅의 ‘리즈 時節’을 떠올려보자. 그는 分明 잘 드는 칼 같은 存在였다. 文在寅의 손에 쥐어진 檢事 尹錫悅은 朴槿惠 政權의 깊숙한 恥部를 낱낱이 드러내어 밝혔고, 메스처럼 도려내버렸다.

    2017년 1월 22일 윤석열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의 수사팀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동아DB]

    2017年 1月 22日 尹錫悅 當時 최순실 國政壟斷 事件 特檢의 搜査팀長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特檢 事務室에 出勤하고 있다. [東亞DB]

    그런데 事實 檢事 尹錫悅 캐릭터의 起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잘 드는 칼이라는 事實 自體가 本質的인 要素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朴槿惠 政權에 抵抗했다는 點이 더 重要했다. 公務員으로서의 自意識이 確實한 檢事, 不法的인 命令은 따르지 않겠다는 最小限의 常識을 단단하게 지키는 그런 公務員으로서의 모습이 大衆에게 더 큰 感銘을 줬던 것이다.

    先後 關係를 따져보면 이는 매우 분명해진다. 尹錫悅은 그前에도 特殊部 檢事로서 言論의 注目을 받는 事件을 많이 다뤘다. 정작 그가 本格的으로 政治權의 照明을 받기 始作한 時點은 朴槿惠 政權과 맞선 後다.

    卽, 잘 드는 칼이라는 尹錫悅의 캐릭터는 不當한 命令을 받았을 때는 作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톱니바퀴 같은 그런 캐릭터가 前提됐을 때 비로소 眞價를 發揮한다.

    따라서 尹錫悅 캐릭터가 칼이었을 때보다 톱니바퀴였을 때가 더 重要하다는 點을 理解해야 한다. 이는 그가 두 番째로 權力과 맞서 急浮上한 時點을 떠올려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2019年, 이른바 曺國 事態가 벌어졌다. 大統領民政首席祕書官을 지낸 曺國은 法務部 長官에 任命됐다. 그런 祖國을 尹錫悅 檢察이 搜査했다. 搜査가 進行되면서 문재인 政權의 道德的 正當性은 뿌리째 흔들리기 始作했고 結局 政權이 交替되기에 이르렀다.

    保守의 支持者들, 國民의힘 支持者들, 或은 더불어民主黨 政權에 反對하는 사람들은 尹錫悅이 曺國의 恥部를 드러내고 搜査했다는 事實 自體에 歡呼했다. 尹錫悅이 ‘칼’이라는 點에 注目한 것이다. 하지만 相當數의 國民, 特히 中道 乃至는 不動層에 屬하는 사람들이 重要하게 생각한 面貌는 따로 있었다. 尹錫悅이 朴槿惠 政權과 맞섰던 時節과 마찬가지로 同一한 原則을 지키며 常識的 態度를 堅持했다는 點이다.

    5年만의 政權 交替는 왜 可能했을까. 그것도 文在寅 政權의 檢察總長에 依한 文在寅 政權의 沒落이라는 大異變이 벌어진 根本 理由를 묻는다면 結局 그것이다. 尹錫悅은 檢査 以前에 公務員으로서 政權이 어떻게 바뀌건 우리 社會가 지켜야 할, 이미 憲法과 法律로 規定된 常識의 代辯人 役割을 遂行했다.

    지난 大選 局面을 되짚어 보자. 文在寅의 칼이 문재인을 찔렀다. 하지만 與黨이던 민주당은 ‘背信者 프레임’을 꺼내들지 못했다. 尹錫悅이 提示하는 常識과 職業倫理의 프레임 앞에 背信者 프레임을 擧論하는 瞬間, 自身들이 非常識的 牌거리로 轉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칼날 尹錫悅’의 바탕이자 原動力이던 ‘톱니바퀴 尹錫悅’ 캐릭터의 힘으로 理解할 수 있다. 機械가 正方向으로 作動할 때는 잘 굴러가지만 逆方向의 힘이 加해지면 制動을 加하는 ‘래칫(ratchet)’의 役割을 하는 누군가가, 陣營을 가리지 않고 그러한 常識을 지키는 모습 앞에 大衆은 新鮮한 衝擊을 받았다. 그 힘으로 尹錫悅은 自身의 첫 番째 選擧에서 大統領에 當選됐다.

    李在明 令狀 棄却 後暴風

    大統領이 된 尹錫悅은 自身이 檢事 出身이라는 事實을 감추거나 그 點을 억지로 包裝하려 들지 않았다. 事實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同時에 賢明한 戰略이기도 했다.

    現行 憲法의 文言을 놓고 보면 한番 쉬고 다시 出馬하는 징검다리 ‘再選 大統領’이 不可能해보이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現實的으로 大統領은 누군가의 마지막 職業이다. 적어도 公的 領域에서의 役割은 끝난다. (안 그런 境遇도 있지만) 前職 大統領은 草野에 묻혀 大衆에게 잊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으며, 그러니 公的 이미지와 캐릭터를 더 苦悶할 必要도 없다.

    이는 尹錫悅이 그間 公職者로서 쌓아올린 캐릭터 外의 다른 캐릭터를 만들거나 굳이 探索할 理由가 없다는 말과 같다. 自身의 캐릭터를 그대로 維持하거나 發展시키면서, 그것을 통해 本人에게 주어진 大統領으로서의 任務를 完遂하고 歷史的 召命을 達成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大統領이 된 尹錫悅은 本人 캐릭터의 兩面性 乃至는 ‘칼’의 바탕이 된 ‘톱니바퀴’ 캐릭터를 忘却했다. 그가 當選된 後 展開된 흐름을 되짚어 보자. 李在明 民主黨 代表는 大選 敗北 直後 補闕選擧를 통해 國會議員職을 얻고, 野黨의 首長이 됐다.

    李在明은 本人을 向한 檢察 搜査를 避하기 위해 議員職을 活用하고 있다는, 이른바 ‘防彈 國會’ 論難에 휩싸였다. 그리고 尹錫悅은 妥協하는 政治人이 아니었으며, 大統領이 된 後에도 檢事로서의 正體性을 維持했다. 李在明을 向해 法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當然한 手順이었다.

    一般人의 觀點에서 보더라도 李在明의 여러 嫌疑를 妥協의 對象으로 삼는 건 想像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尹錫悅은 政治人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니다. 그 反對의 캐릭터를 大衆에게 提示해 大權을 爭取한 사람이다.

    정작 李在明에 對한 拘束令狀이 法院에서 棄却됐다. 筆者가 지난 뷰파인더 칼럼에서 言及했다시피, 棄却의 事由는 納得하기가 어렵다. 다만 法的 定義나 政治的 올바름 等의 要素를 論外로 하고 政治工學 觀點에서만 이 狀況을 解釋해 보자. 只今은 尹錫悅 政府 出帆 以後 最大 危機다. 尹錫悅의 캐릭터 中 아주 重要한 要素, 卽 銳利한 칼날의 캐릭터가 망가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君主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운 存在가 돼야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存在는 함부로 對하는 反面 두려운 存在로부터는 오히려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防彈 國會’를 뚫었지만 法院에 가로막혀 李在明을 拘束하지 못한 尹錫悅은, 勿論 大統領이므로 如前히 어느 程度 두려운 存在다. 하지만 그가 檢事로서 지닌 카리스마에 深刻한 損傷이 加해졌다는 事實을 否定할 수는 없다.

    尹錫悅이라는 사람이 檢事로서 壓倒的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理由는 그가 實力을 證明해왔기 때문이었다. 尹錫悅은 前職 大統領과 그 側近들을 搜査하고 起訴해 有罪 判決을 얻어냈다. 이는 韓國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事例를 찾기 어려운 超大型 修辭다. 尹錫悅은 그런 方式으로 有能함을 立證한 檢事로 大衆에 刻印됐다.

    그를 大統領으로 뽑은 이들, 特히 核心 保守 支持層이 願하던 바가 바로 그것이다. 朴槿惠 政權을 후벼 파던 時節의 尹錫悅은 싫고 미운 存在였지만, 그 칼을 ‘우리 便’의 손에 쥘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는 셈法이었다. 그런데 막상 大統領이 되고 나니, 檢察總長이 되기까지 잘만 해오던 그 일, 權力型 非理를 搜査하고 權力者를 監獄에 보내는 일에 失敗한다면?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칼’이라 여겼는데 判事 한 名의 防牌조차 뚫지 못한다면?

    自由 反共의 理念 透寫

    問題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3年의 尹錫悅은 自由 反共의 理念 鬪士가 돼있는 것이다. 大體 무엇이 尹錫悅에게 이렇게 確固한 이념적 信念을 불러일으켰을까. 어쩌다 그것이 私席이 아닌 公式 席上, 그것도 가장 重要한 光復節 畜舍 等을 통해 드러나게 됐을까. 그 內幕을 우리가 적어도 只今 當場 알 길은 없다.

    8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8月 15日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大講堂에서 열린 第78周年 光復節 慶祝式에서 尹錫悅 大統領이 祝辭를 하고 있다. [大統領室寫眞記者團]

    아무튼 大統領의 입에서 나오는 發言은 大統領의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尹錫悅이 大統領이 된 다음 늦은 나이에 새삼스럽게 以前보다 훨씬 더 頑强하고 保守的인 態度를 지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尹錫悅의 理念 中心的 態度는 市場注意가 國民의 살림에 도움이 된다거나 共産主義는 失敗한 歷史的 實驗임을 明示하는 程度, 卽 單純한 事實 次元에서 멈추지 않는다. 積極的으로 ‘共産 全體主義’와의 새로운 鬪爭을 해 나가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次元까지 나아가고 있다.

    筆者는 哲學을 工夫한 사람으로서 自身 있게 말할 수 있다. 尹錫悅의 政治哲學은 難澁하고 粗惡하다. 어딘가에서 方今 배운 듯한 印象마저 준다. 政治 指導者가 그런 式으로 行動하는 것은 그리 멋져 보이지 않는다. 第2次 世界大戰 當時 나치에 맞서 英國人의 團結과 戰爭 勝利를 이끌어낸 처칠도, 演說을 할 때면 抽象的인 理念과 價値가 아닌 ‘피와 땀과 눈물’을 이야기했다. 尹錫悅은 反對로 向하고 있다.

    尹錫悅을 ‘칼날’로 바라보던 旣存 保守層에게는 이러한 變化가 반가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大選의 均衡錘를 옮겨놓았던 中道層의 視角에서 볼 때, 이는 그들이 期待한 大統領과는 아무런 相關이 없다고 해도 過言이 아닐 程度다.

    2013年의 尹錫悅, 더 나아가 2019年 曺國 事態 當時 尹錫悅이 했던 發言은 어떠했는가. 우리나라는 自由民主主義 國家다. 尹錫悅의 發言 亦是 自由民主主義 理念을 守護하는 內容이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이념적’이라는 말을 할 때 쓰는 그러한 種類의 이념적인 發言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自由民主主義 理念의 守護者가 아니라, 自由民主主義가 當然한 支配 體制인 나라의 常識的인 公職者의 發言이었다.

    檢事 尹錫悅은 우리 社會가 常識으로 받아들이는 內容을 말했을 뿐 아니라 不利益을 甘受하면서까지 實踐했다. 바로 그 地點에서 國民은 共感했다. 權力이 아니라 常識을 지키는 檢査, 世上이 거꾸로 돌아가려 할 때 그 자리를 지키는 톱니바퀴, 그 캐릭터의 힘으로 尹錫悅은 大統領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共産 全體主義’를 詰難하는 初步 政治 思想家를 選好하는 사람도 없지 않겠으나, 萬若 大選 以前의 尹錫悅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果然 그가 大統領이 될 수 있었을까.

    常識의 목소리 내는 사람

    이것은 單純한 PI(president identity·大統領 이미지) 次元의 問題가 아니다. 大統領이 自身을 어떤 사람으로 認識하고 大衆에 提示하느냐에 따라 國政 運營의 全般的 基調가 달라진다. 大統領이 스스로를 如前히 檢事로, 한 자루의 칼로 認識하고 있으면, 公職 社會가 그 雰圍氣에 맞춘다. 假令 陸軍士官學校에서 불현듯 洪範圖 銅像 論難이 벌어진 것은 決코 偶然으로 볼 수 없다. 大統領이 自身을 理念 戰士로 여기고 있기에 아랫사람도 그렇게 行動하는 것이다.

    只今까지 말해왔듯 ‘檢査 尹錫悅’ 캐릭터의 힘은 李在明 拘束 不發로 壽命을 다했다. 完全히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以前과 같은 銳利함을 回復할 수는 없다. ‘思想家 尹錫悅’은 처음부터 可能한 일이 아니다. 우리 社會에 健康한 理念 論爭이 더 必要하다면 그것은 市民社會와 知識人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結局 남은 選擇肢는 單 하나, ‘톱니바퀴 尹錫悅’ 뿐이다. 맡은 바 자리에서 默默히 自己 일을 해내는 사람. 아무리 힘들어도 도망가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 世上이 잘못된 方向으로 돌아간다면 문득 멈춰 서서 ‘이건 아니다’라고, 모든 國民이 納得할 수 있는 常識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時間이 없다. 總選은 채 半年도 채 남지 않았다. 尹錫悅은 그를 大統領으로 만든 原動力이 무엇인지 眞摯한 苦悶을 해야 한다. 不義에 屈하지 않는, 제자리에서 壓力을 견뎌내며 常識을 지키는 단단한 톱니바퀴의 이미지를 回復해야 한다. 그래야 社會 곳곳의 올바른 톱니바퀴가 제 役割을 다할 수 있다. 大統領制 國家의 大統領이란 그런 자리다. 願하건 願치 않건, 國民을 向한 役割 모델이 됨으로써, 한 時代의 雰圍氣를 만들어나가야 할 責任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정태
    ● 1983年 出生
    ● 高麗大 法學科 卒業, 서강대 大學院 哲學科 碩士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韓國語版 編輯長
    ● 著書 : ‘不良 政治’ ‘論客時代’ ‘탄탈로스의 神話’
    ● 曆書 : ‘밀레니얼 宣言’ ‘民主主義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11월호 표지]

    [신동아 11月號 表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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