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番의 毆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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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番의 毆打
Les Quatre Cents Coups
監督 프랑수아 트뤼포
脚本
  • 프랑수아 트뤼포
  • 마르셀 無視
製作 프랑수아 트뤼포
出演 장피에르 레오
撮影 앙리 드카에
編輯 마리-조셉 요요테
音樂 腸 콘스탄틴
開封일
  • 1959年 5月 4日  ( 1959-05-04 ) ( 칸 映畫祭 )
  • 1959年 6月 3日  ( 1959-06-03 ) (프랑스)
  • 2016年 4月 13日  ( 2016-04-13 ) (大韓民國)
時間 99分
國家 프랑스의 기 프랑스
言語 프랑스語

400番의 毆打 》( 프랑스語 : Les Quatre Cents Coups )는 프랑스 映畫 監督 프랑수아 트뤼포 의 첫 長篇 映畫이다. 現地에서는 1959年 6月 3日 에 開封하였다.

學校의 成跡은 나쁘지만 惡한 아이가 아닌 少年을 少年院으로 쫓아 넣어, 바다에라도 빠져 죽고 싶게 만든 것은 누구의 責任인가. 자칫 陳腐해질수있는 이 테마를 군더더기가 거의 없이 미장센 (Mise-en-Scene)을 演出한 트뤼포의 手法은 차갑고 리얼하다. 少年의 눈에 눈물이 빛나는 것도 實은 護送車의 窓門을 통해서 밤에 파리의 輝煌한 燈불빛이 보일 때 뿐이다. 나쁜 것은 어른이라고도 强調치 않는다. 시네마스코프의 넓은 스크린이 잘 使用되고 있다.

줄거리 [ 編輯 ]

自敍傳的 要素가 많은 이 映畫는 앙뚜안 두아넬의 어려운 少年期를 그린다. 1950年代 末, 13歲가 되려고 하는 12살 앙투안(레오)은 파리 에서 無心한 어머니와 養아버지 사이에서 자라고 있다. 그는 自己班에서 돌려가며 보는 누드 寫眞을 보다가, 敎室 구석에서 罰을 서게 된다. 누드 寫眞을 갖고 온 親舊나 그 寫眞을 본 많은 다른 親舊들은 罰을 받지는 않는다. 집엘 돌아갔더니 어머니에게 酷使되어서 宿題를 할 時間도 없다. 그래서 이튿날엔 學校를 쉰다. 그 다음 날은 缺席屆가 없으므로 어머니가 어제 死亡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의붓아버지로부터 뺨을 맞는다. 火김에 집을 나가 버린다. 끌려 돌아오게 되나 또다시 家出하여 의붓아버지가 다니는 會社의 打字機를 훔쳤으나 팔아먹을 수가 없으므로 돌려주려고 갔다가 붙잡힌다. 警察署에 呼出된 父母는 少年刑務所 拘置監으로 子息을 집어넣는 問題에 對해 承諾한다. 그러나 앙투안은 運動時間의 틈을 利用하여 도망친다. 逃亡친 海岸의 저쪽은 바다이고, 이젠 더 도망칠 길도 없다.

出演 [ 編輯 ]

主演 [ 編輯 ]

助演 [ 編輯 ]

撮影 [ 編輯 ]

1958年 11月 1日 크랭크인 하여 1959年 1月 5日 撮影을 마쳤다. 앙뚜안 父母의 집은 마르까데 가(Marcadet 街)에서 撮影했다. 엄마와 愛人의 키스신은 클리시 廣場 에서 撮影했다.

分析 [ 編輯 ]

누벨 바그 映畫라고 볼 수 있다. 이 映畫를 통해 트뤼포가 大衆에게 알려졌다.

400番의 毆打라는 題目은 'faire les 400 coups'라는 프랑스語 表現에서 왔다. '할 수 있는 모든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뜻이다.

外部 링크 [ 編輯 ]

이 文書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 (現 카카오 )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配布한 글로벌 世界대백과사전 의 "어른은 알아주지 않는다" 項目을 基礎로 作成된 글이 包含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