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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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贈 (追贈)이란 官僚 의 事後에 品階 또는 職級을 높이는 일, 또는 官職 없이 죽은 사람에게 事後 官職을 내리는 일을 말한다.

槪要 [ 編輯 ]

主로 東아시아 儒敎文化圈에서 어떤 人物이 죽은 後에 生前의 公的이나 活動을 살펴 調整(朝廷)에서 그 品階나 官職을 올려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追贈은 元來 推恩封贈 (追恩封贈)이라는 單語에서 由來된 것으로, 追贈되어 받은 官職 이름 앞에는 '蒸(贈)' 字를 붙여 生前에 實際 官職을 歷任한 境遇와 區分되게 한다. 이를테면, 洪吉童이라는 人物이 死後에 資憲大夫 吏曹 判書 兼 知義禁府事로 追贈되었다면, '蒸 資憲大夫 吏曹判書 兼 知義禁府事 洪吉童'李 된다. 萬若 生前에 官職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生前의 官職 이름 앞에는 '行(行)' 字를 붙인다. 이를테면, '蒸 資憲大夫 吏曹判書 行 通德郞 吏曹正郞'과 같은 式이다. 이러한 表記는 墓碑銘이나 實錄 等과 같은 記錄에서 자주 觀察된다.

朝鮮 에서는 宗親(王族), 文官, 無關 가운데 2品 以上인 官僚는 그의 祖上을 三代까지 追贈하여, 父母는 本人의 品階에 準하고 祖父母와 曾祖父母는 本人의 品階에서 1品階를 降等하여 官職을 주었다. 또한 아내에게는 男便의 벼슬에 準하는 品階를 주었다. 이를 三大追贈(三代追贈)이라 한다. 또한 王妃의 親庭아버지(王의 丈人)에게는 情1品 議政府 領議政 을, 大君(大君)의 丈人에게는 情1品 議政府 左議政 을, 軍(君)의 丈人에게는 종1品 議政府 右議政 , 世子의 丈人에게는 종1品 議政府 左贊成 等을 各各 本人 事後에 追贈하였고 [1] , 그 위의 三代에도 그에 맞게 追贈하였다. 功臣의 아버지에게도 일정한 職位를 주었다. 功臣의 아버지에게는 그 功臣의 職責에 準하는 功臣職責을 附與하고 子孫의 官職에 準하는 職責을 追贈하거나, 官職을 지낸 사람은 그가 살아生前에 最終的으로 지낸 官職에서 1階級을 더 追加로 追贈하는 方式이었다.

西洋에서도 軍人을 中心으로 生前 階級보다 더 높여주는 境遇가 種種 있다. 例컨대, 美國 初代 大統領의 生前 階級은 陸軍 中將이었는데, 1976年 제럴드 포드 美國 大統領 大元帥 로 3階級 進級, 追敍하였다. 追敍된 워싱턴은 生前에 大怨讐로 任命되었던 퍼싱보다 上位에 있다.

加症 [ 編輯 ]

加症 (加贈)은 어떤 人物이 죽은 後에 이미 追贈되어 官職이 오른 사람에게 다른 事由로 그 生前의 官職을 再次 올려줄 境遇 이를 加症(加贈)이라 한다. 卽, 一旦 追贈되거나 贈職(贈職)된 官職을 다시 승진시키는 措置이다.

贈職 [ 編輯 ]

贈職 (贈職)은 어떤 人物이 죽은 後에 그 生前의 官職을 올려주는 것이다. 官職이 없던 人物에게 官職을 追敍하는 것을 追贈 (追贈)이라고 하는데, 비슷한 意味이다. 一旦 追贈되거나 贈職된 官職을 나중에 다시 올려주는 것을 加症(加贈)이라고 한다. 특별한 呼稱, 이름 代身 活用될 수도 있는 地位를 올린다는 것에서 單純히 官職, 職責을 事後에 붙이는 追贈이나 贈職과는 意味가 다르다.

推尊 [ 編輯 ]

推尊 (追尊)이란 어떤 人物이 죽은 뒤에 그를 높여 부르는 특별한 呼稱을 올리는 일이다. 特히 王이 되지 못하고 죽은 王族이나 王의 祖上에게 事後에 王과 王妃의 地位를 주는 것은 推尊 또는 追封(追封), 追崇(追崇)이라고 한다. 어떤 人物이 나라를 세웠을 境遇에 王(諸侯王)은 慰勞 4代(簿-조-曾祖-高調)를 追尊하고, 皇帝는 5臺를 追尊하는 것이 一般的인 禮法이었다. 한便 아랫 사람이나 臣下에게 높여 부르는 특별한 呼稱이나 諸侯職을 事後 내리는 것과 軍, 府院君, 大院君 等의 爵位를 事後 올리는 일은 追封(追封)이라고도 한다.

王朝에서 追尊하는 對象은 大部分 王族이나 皇族, 諸侯 等이며, 民間에서 追尊하는 對象은 祖上 가운데 衰退한 家門을 일으켜 세운 사람으로 中始祖로 追尊한다(→ 譜牒#用語 ).

그밖에 죽은 僧侶의 佛德을 높이 사서 局社 또는 王사 等의 呼稱을 올리는 일도 追尊이라 하며, 佛敎를 崇仰한 高麗 때에 여러 高僧을 王命으로 推尊하였다.

各 王朝의 推尊 [ 編輯 ]

死마진을 세운 司馬炎 은 祖父 四魔의 와 三寸, 父親인 私馬社 , 司馬所 灣을 皇帝로 推尊했고 司馬懿의 父親인 社馬房 以上의 祖上들은 宗廟에 配享하기 위해 尊靈으로만 追尊하였다.

이는 司馬炎이 皇帝로 卽位했음에도 自身이 皇帝로 追尊韓 太祖 사마소의 鳳國인 '晉'을 그대로 第國號로 使用하여 國際를 繼承하였음을 나타냄에 따라 사마소가 死마진의 招待 君主로 看做되었으며 單純히 君主의 稱號가 王에서 皇帝로 바뀐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卽, 司馬懿가 社馬社를 皇帝로 追尊韓 것은 君主의 稱號가 變更됨에 따라 그에 맞춘 것에 不過한 것이다.

司馬懿와 私馬社는 實際 眞意 君主(辰王)으로 君臨하지 않았으나 사마소가 辰王으로 推尊하였기에 眞意 君主가 되었고, 司馬炎이 皇帝로 卽位해 君主의 稱號가 王에서 皇帝로 바뀌자 그에 맞추어 皇帝로 格上시킨 것이다.

反對로 辰王으로 君臨하지 않은 社馬房 , 사마준 , 社馬良 , 私馬菌 은 皇帝가 아닌 夫君 (尊靈)으로만 秋視되어 宗廟에만 配享되었다. 다만 이들 亦是 題號만 獻上받지 못했을 뿐 皇帝가 祭祀를 지내고 週期的으로 기리는 等 그 待遇는 題號를 獻上받은 推尊 皇帝들과 똑같았다.

이에 따르면 아무리 直系 祖上이라도 追尊은 一部 名위가 있는 祖上에만 限定하는 境遇가 大部分이였다. [2] 다만 建國 皇帝의 父親일 境遇 아무런 名위가 없는 一般人으로 死亡한 者與도 皇帝로 追尊하는 境遇가 많았다. 五胡十六國 一部 王朝의 境遇처럼 父親이라도 追尊을 하였음이 確認되지 않는 事例도 있다.

北朝의 初代 王朝인 北緯 의 境遇 선비足 酋長을 지낸 始祖인 托鉢모 부터 父親인 托鉢式 까지 總 30名의 祖上을 追尊한 境遇가 있는데 死마진의 事例처럼 托鉢모를 招待 君主로 看做한 것이다.

北齊 의 境遇 渤海王, 帝王을 지낸 睾丸 高澄 , 渤海王으로 推尊된 高수생 문선제 가 皇帝로 追尊하였는데 死마진의 事例처럼 睾丸을 招待 君主, 高澄을 2代 君主로 看做하여 追尊한 것이다. 高水生은 實際 君主로 君臨한 적은 없으나 招待 君主인 睾丸이 追尊한 對象이고 君主의 稱號가 王에서 皇帝로 變更되었기에 그에 따라 皇帝로 格上시킨 事例이다.

南朝의 宋, 제, 羊의 建國 皇帝들은 自身의 父親까지만 皇帝로 推尊했고 祖父 ~ 熱祖까지의 祖上들은 皇帝가 아닌 尊靈으로만 追尊하여 宗廟에 配享하기만 하였다. 후경 은 自身의 父親은 皇帝로 推尊했고 祖父는 特異하게 官職인 大勝上으로 推尊 [3] 했으며 진패선 은 父親 진문찬 을 廟號와 諡號를 題號로 바르게 推尊했으나 祖父 珍島거 는 墓를 首陵으로만 改稱하고 工作으로만 追贈하였다. 다만 傳한 도黃高 의 事例처럼 祭祀만 天子의 例로 지내고 諡號를 諸侯의 例로 내린다 하더라도 皇帝로 看做하기 때문에 진패선은 父親과 祖父를 皇帝로 追尊韓 事例가 된다.

南北朝를 統一한 隋나라 의 境遇 特異하게 父親인 恙蟲 灣을 皇帝로 追尊하고 祖父 楊汀 , 曾祖父 양렬 은 王으로 推尊했으며 高祖夫人 洋鞋下 는 皇帝나 王도 아닌 尊靈으로만 追尊하였다. 一旦 양충의 鳳國인 '水'를 그대로 第國號로 使用하였기에 恙蟲을 招待 君主로 看做하여 國際를 이었으나 굳이 祖父와 曾祖父를 格이 낮은 王으로 追尊韓 理由는 다음과 같다.

양충의 境遇 辰王과 帝王처럼 王이 아닌 그보다 한段階 格이 낮은 工作이였기 때문에 恙蟲 本人이 工作으로 봉해질 當時 糧政과 양렬度 工作으로만 追尊되었다. 以後 良犬이 北周의 水菊共에서 獸王으로 昇進하자 父親인 恙蟲만이 환왕(桓王)으로 格上되었고, 良犬이 皇帝로 卽位하자 한 等級만을 格上하는 過程에서 旣存부터 工作이였던 糧政과 양렬은 王까지만, 中間에 王으로 格上된 양충은 皇帝로 追尊될 수 있었던 것이다. 勿論 工作이였던 糧政과 양렬度 皇帝로 追尊할 수 있었겠지만 환玄의 事例처럼 名위를 따져 追尊을 嚴格히 한다는 點도 勘案해야 한다.

唐나라의 境遇 弄國-當局功을 歷任한 祖父 二號 , 父親 二兵 萬 皇帝로 追尊하였다. 詳述한 事例처럼 當局功을 歷任한 이호를 招待 君主로 看做한 것이다. 다만 曾祖父 이천석 과 高祖父 이희 는 君主로 君臨하지 않았으나 禮遇 次元으로 皇帝보다는 格이 낮은 義王, 仙間공에 追尊하였다. 이聯의 現祖父인 二重이 는 이연 臺에 追尊되지 않았다가 唐 太宗 臺에 尊靈으로 追尊되어 宗廟에 配享되었다.

그러나 唐 高宗 銀 위의 追尊에 對한 原則과 先例들을 어기고 儀旺을 儀曹 狂皇帝로, 仙間功을 헌兆 先皇帝로 追尊하였다. 또한 黨 顯宗 은 本人 基準으로 11代祖인 이고 를 興盛제로 推尊했으며 고요 , 路資 이경 을 先祖로 삼고 그들도 皇帝로 追尊하는 等 特異한 追尊을 施行하였다.

宋나라 는 本來 儒敎의 宗孫이 모시는 範圍의 祖上만을 [4] 皇帝로 追尊하였다.

明나라 는 宋나라처럼 4大棗만을 皇帝로 推尊했고 5代祖인 週中팔 은 尊靈으로도 追尊하지 않았고 宗廟에 配享하지도 않았다. 淸나라 의 境遇 建國 皇帝의 父親, 祖父, 曾祖父, 列朝部만을 推尊했고 高祖父, 現祖父는 尊靈으로도 追尊하지 않았다.

追敍 [ 編輯 ]

現代社會에서도 勤務中 殉職者나 功績이 顯著한 者에 한하여 階級을 最小 1~2階級에서 그 以上 올려주는 境遇도 있다. 이는 追敍 (追敍)라고 한다.

贈位 [ 編輯 ]

贈位 (贈位)란 生前에 功績이 있는 者에게 事後 位階 를 加症시키는 制度이다. 例示로 '蒸 태정대신 '이 있다.

기타 [ 編輯 ]

벼슬이나 官職에 나가지 않은 이들의 脂肪 에 顯考 學生 府君神位(顯考 學生 府君神位) 또는 顯? 孺人 ○○○氏神位(賢妃 誘引 ○○○씨神位)라고 表記하는 것도 一種의 追贈(推尊)에 該當한다. 學生(學生)은 留學을 工夫하던 사람에게 附與되었던 朝鮮時代 直譯 (職役) 名稱이며, 孺人(孺人)은 情9품과 種9品 벼슬아치의 配偶者에게 내리는 外命婦 의 名稱이다. 兩班層 男子들의 境遇에 品階, 官職 等이 없었으면 그 直譯을 살아서는 '留學(幼學)'이라고 하고, 死亡한 後에는 '學生'이라고 하였다. 兩班層 女子에게는 男便이 官職에 나가지 않았더라도 外命婦의 9品 名稱인 '劉因'을 碑石, 地方 等에 使用할 수 있도록 하여 子女가 어머니의 恩德을 追慕할 수 있게 하였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그 職責보다 낮은 職責을 지낸 사람에 한해서
  2. 參考: 東進 환現傳.
  3. 司書에서도 追贈이 아닌 推尊 이라고 記述되어 있다.
  4. 本人 基準 父親, 祖父, 曾祖父, 高祖父까지를 祭祀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