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일 (1936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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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일
出生 1936年 5月 25日 ( 1936-05-25 ) (87歲)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平安北道 朔州郡
性別 男性
國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職業 軍人, 工作員
所屬 朝鮮人民軍 海軍
兵役 朝鮮人民軍 海軍
賞勳 祖國統一上

최수일 ( 1936年 5月 25日 ~ )은 大韓民國 非轉向 長期囚 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는 최태국 이라는 이름을 使用했다.

生涯 [ 編輯 ]

平安北道 朔州郡 出身이다. [1] 어린 時節인 日帝强占期 끼니를 잇기 어려울 만큼 힘겹게 生活했으나 太平洋 戰爭 끝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政府 樹立 後 經濟上 發展을 體驗하면서 金日成 의 政治를 積極 支持하게 되었다.

1955年 9月에 朝鮮人民軍 海軍에 入隊하였다. 黃海 의 警備艇에서 服務하면서 조선로동당 을 向한 充實性을 認定받아 職責이 漸次 올라갔다. 1980年 에는 김일성이 現地指導 를 利用해 최수일이 服務하던 警備艇을 찾아와 直接 만난 일도 있었다.

軍에서 除隊하고 朔州郡 방산리의 故鄕으로 돌아갔다가, 1965年 에 工作員으로 南派되었다. 최수일은 大韓民國에서 逮捕되고 나서 轉向을 拒否하여 非轉向 長期囚가 되었다. 1999年 3月에 出所할 때까지 總 收監 期間은 約 34年이다.

최수일은 故鄕이 北側이라 大韓民國에 知人이 없었다. 出所 當時 60臺로 餘他 非轉向 長期囚와 比較하여 젊은 나이였기에, 公共勤勞 事業 等에 參與하면서 모은 돈으로 大學生들과 獨居老人들과 生活保護 對象者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2]

2000年 6·15 南北 共同宣言 에 依據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으로 送還되고 祖國統一上 을 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 아내가 生存해 있어 다시 만났고 조선작가동맹 에 所屬된 詩人으로 活動하였다. [3] 조선로동당 創建 59周年을 祝賀하는 詩 〈黨費를 바치며〉를 發表한 바 있다. [4]

參考資料 [ 編輯 ]

  • 김만수 外 12人 (2003). 〈黨과 守令앞에 고지식한 사람이 되자 (최태국)〉. 《信念과 意志의 强者들 - 非轉向 長期囚들의 手記 4》. 平壤: 平壤出版社.  

各州 [ 編輯 ]

  1. “統一愛國鬪士들이 은정어린 生日床을 받아안았다”. 朝鮮中央通信. 2006年 5月 29日.  
  2. 김동훈 (2006年 5月 29日). “뒷모습이 아름다운 長期囚들” . 한겨레 . 2008年 9月 17日에 確認함 .  
  3. 함보현 (2006年 9月 1日). “北送된 ‘非轉向長期囚’들… 어떻게 살고있을까” . 한겨레 (聯合뉴스 認容) . 2008年 9月 17日에 確認함 .  
  4. “北送 長期囚, 黨創建 59周年 祝賀詩 發表” . 朝鮮日報 (聯合뉴스 認容). 2004年 12月 6日. 2006年 1月 8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9月 17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