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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超觸 (焦觸, ? ~ 205年 ?)은 中國 後漢 말의 武裝이다.

生涯 [ 編輯 ]

유주刺史(幽州刺史) 원희 (袁熙)를 섬겼다.

建安 (建安) 10年( 205年 ), 長男 (張南)과 함께 원희를 배반하여 그를 攻擊하였다. 이 때문에 원희는 原狀 (袁尙)과 함께 烏桓 (烏丸)의 鮮于 (單于) 答돈 (?頓)에게로 달아났다. 超蜀은 스스로 유주刺史라 稱하였고, 幼主의 여러 官吏들을 불러모은 다음 白馬를 죽이고 그 피를 입술에 발라 曹操에게 投降할 것을 盟誓하게 하였다. 이때 超蜀은 周圍에 兵士를 配置하고 拒否하는 者는 목을 베겠다고 하였으나, 別加(別駕) 韓兄 (韓珩)은 이를 拒絶하였다. 超蜀은 마음을 바꾸어 그를 살려 두고 曹操 (曹操)에게 歸順하였다.

以後 幼主에서는 原像의 使嗾로 보이는 大規模의 叛亂이 일어났으며, 이와 同時에 오환이 軍士를 일으켜 어양군(漁陽郡)을 攻擊하였다. 이때 유주刺史와 濁郡太守(?郡太守)가 곽노 (?奴)와 爪毒 (趙犢)에게 殺害되었다고 記錄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自社가 超鏃을 가리키는 것일 可能性이 높아 보인다.

이에 曹操가 直接 出陣하여 4個月에 걸친 戰鬪 끝에 艱辛히 叛亂을 鎭壓했으나 오환은 재빨리 國境 밖으로 달아났다. 曹操는 烏桓과의 全面戰을 考慮하고 있었으나 이 무렵 固諫 이 曹操에 對한 叛亂을 일으켰으며 惡眞 移轉 이 이 鎭壓에 失敗했기 때문에 直接 倂奏로 向하게 된다. 以後에도 烏桓의 支援을 받은 原象은 數 次例 國境을 넘어와 攻擊을 加했는데, 幼主는 番番이 擊破되었고 數十 만의 百姓들이 烏桓으로 끌려갔다. 이토록 원상에 依한 危險이 漸漸 深刻해짐에 따라 마침내 曹操는 直接 大軍을 이끌고 烏桓 攻擊에 나서게 된다.

《三國志演義》 속 超觸 [ 編輯 ]

원희의 命令으로 長男과 함께 남피(南皮)에서 曹操軍에게 攻擊받는 원담 (袁譚)을 救하러 갔으나, 남피가 陷落된 것을 보고 曹操에게 降伏해 列侯(列侯)가 되었다.

後날 曹操 (曹操)가 孫權 (孫權)을 制壓하고 中國을 統一하기 위해 大軍을 일으켰으나, 兵士들이 水田에 서툴러 苦戰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超蜀은 長男과 함께 曹操에게 손權君을 攻擊하겠다고 自願했으며, 軍事 5百을 받고 出陣했다. 손權君의 都督 注油 (周瑜)는 汗黨 (韓當)과 酒태 (周泰)를 내보내 맞아 싸우게 했는데, 이때 超蜀은 汗黨과 싸우다가 죽임을 當했다.

유주刺史 誤환鏃 [ 編輯 ]

三國志演義 에서는 원희와 原狀이 烏桓族에게 달아났을 때 誤환鏃 (烏桓觸)이라는 人物이 登場한다. 烏桓蜀은 幼主의 官吏들에게 一齊히 盟誓하게 하고 曹操에게 降伏하려 하였으나, 한兄이 盟誓를 拒否하자 굳이 强要하지 않았다. 이 事件이 《 三國志 》 魏書 元素前과 《 資治通鑑 》 64卷에서는 超觸이 벌인 일로 나와 있으므로, 烏桓蜀은 超鏃과 同一人物임이 確實하다. 그러나 演義에서는 이미 超觸이 降伏한 部分이 나왔으므로 不得已하게 아직 曹操에게 降伏하지 않은 誤환鏃이란 人物을 創作해낸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