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代 요크 工作 랭글리의 에드먼드
(Edmund of Langley, 1st Duke of York,
1341年
~
1402年
)은
잉글랜드 王國
의 王族으로 招待
요크 工作
이다. 잉글랜드의 王
에드워드 3歲
의 아들이며,
케임브리지 伯爵
과 요크 工作位를 授與받았다. 後의
요크가
의 始祖가 된다. 1394年부터 95年 리처드 2世가 1次 아일랜드 遠征에 出戰할 때 兄
존 곤트
와 함께 英國 攝政을 맡았고, 1399年 5月
리처드 2歲
에 依해 다시 臨時 攝政에 任命되었다.
1362年 케임브리지 伯爵이 되고, 1385年 요크 工作이 되었다. 事後 長男 에드워드에게는 요크 工作位를, 둘째 리처드에게는 케임브리지 伯爵위를 넘겨주었으나 맏아들 에드워드가 子女 없이 死亡하면서, 次男 리처드의 아들 리처드가 요크 工作위까지 물려받게 되었다.
조카
헨리 4歲
가 쿠데타를 일으켜
리처드 2歲
를 몰아내자, 에드먼드는 草創期에는 헨리 4歲에 抵抗하였으나 勝算이 없음을 깨닭고 얼마 뒤 降伏하였다.
後代의 權力鬪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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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인 리처드가 낳은 孫子 요크共 리처드는 1455年에
薔薇戰爭
을 일으켰으나 1460年에 戰鬪中에 死亡하고 말았다. 이에 에드먼드의 曾孫子인
에드워드 4歲
는 랭커스터 家門과의 權力鬪爭戰에서 헨리 6世를 죽이고 요크 王家를 創業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 4歲
가 1483年에 41歲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死亡하자, 에드먼드의 또 다른 曾孫子 리처드 3世는 조카(
에드워드 4歲
)의 王位를 簒奪하였다. 리처드 3歲의 在位는 길지 못하였는데, 1485年에 튜터價의
헨리 7歲
와 벌인 보스워스 戰鬪에서 敗北하면서 戰死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家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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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태저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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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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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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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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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와 올버니 工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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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1次 (1716年)
- 第2次 (1760年)
- 第3次 (178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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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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