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마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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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에 있던 "對社會主義 人民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의 "人民事務所"( 大使館 ) 名判

자마히리야 ( 아랍語 : ???????? , jam?h?riyya, 文化語 : 人民共同體(人民共同體))는 리비아 의 指導者였던 무아마르 카다피 가 만든 造語(造語)이다. 아랍語 로 " 對中 의 國家", "大衆에 依한 共同體"를 뜻한다. 카다피가 " 直接 民主制 를 標榜하는 人民이 支配하는 共同體"를 表現하기 위해 "자마히리야"를 만들었는데 이는 "人民이 統治하는 共和國( 人民共和國 )"科 비슷한 槪念이다.

"자마히리야"(jam?h?r?ya)라는 單語는 "줌후리야"(jumh?r?ya, 아랍語로 "共和國"을 意味)에서 派生되었다. 카다피 支配下의 리비아의 正式 國號를 外國語로 表記할 때 이 單語는 따로 飜譯하지 않고 對社會主義 人民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大社會主義人民-, 文化語 : 對리비아아랍社會主義人民共同體)로 表現한다.

카다피는 自身의 著書인 《 綠色서 (綠色書)》에 記述되어 있는 直接 民主主義 , 아랍 民族主義 , 社會主義 , 이슬람主義 의 影響을 받은 政治 哲學을 主張해 왔다. 1977年 3月에 카다피는 直接 民主主義를 提唱하면서 리비아의 모든 成人은 國政에 參與할 수 있고 모든 리비아人은 2,000餘 名으로 構成된 基礎인민회의를 傍聽할 權利가 있었으며 여기서 決定된 事項들은 13個의 自治制 人民會議에서 交代로 責任을 지는 人民委員會에 依해서 施行되었다. 政黨 等의 政治 團體는 表面的으로 存在하지 않았다. 그러나 實狀은 무아마르 카다피 大領의 軍事 獨裁였다.

자마히리야 體制에서는 國家 元首의 槪念이 存在할 수 없으므로 1979年에 全(全)人民會議 書記局의 書記長 等 모든 公式 職銜을 버렸으나 最高 指導者라는 稱號로 繼續 불리게 되었다. 이 때부터 카다피는 '革命의 指導者이자 守護者',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의 偉大한 9月 社會主義 人民 革命의 守護者' 等의 別稱으로 불리기 始作했다. 자마히리야 體制는 結局 2011年 에 일어난 리비아 內戰 으로 完全히 崩壞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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