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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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경 (李玉慶, 1902年 ?~? [1] )은 日帝强占期 아나운서 로 韓國 最初의 職業 아나운서이다. [2]

生涯 [ 編輯 ]

仁川海關 官吏이자 制令學校 英語 講師였던 이학인 (李學仁)의 無男獨女로 仁川에서 태어났으며, 仁川 最初의 日本 女學校 出身이다. [1] 인천고등학교를 卒業하고 日本으로 건너가 東京 日本 女子 音樂學校에 다니다가 中退하였다. 그 뒤 歸國하여 노창성과 結婚하였다. [2]

1935年 《三千里》 8月號 記事에 따르면, 仁川 小學校를 다니던 途中 아버지가 안동현 稅關 館長으로 轉任되어 가자, 그 곳에서 小學校를 卒業하고 그 해에 안동현 高等女學校에 入學하였다. 그女의 목소리가 明朗하고 아름다웠으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學校를 卒業하자 노창성을 만나 結婚하였다. [1]

한국방송공사 의 前身인 京城 放送局에서 試驗 放送을 하던 1925年 6月 무렵 아나운서를 할 사람이 없어서 技術職 職員들이 돌아가면서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노창성이 自身의 아내를 推薦하였고, 陰性 테스트를 받은 다음날부터 職業 아나운서가 되었다. 이옥경을 推薦한 가장 큰 理由로는, 當時 京城 放送局에서 韓國語와 日本語를 함께 使用하여 放送해야 했으며, 이옥경은 두 言語를 잘 驅使하였기 때문이다.

1927年 2月 16日 , 京城 放送局이 본 放送을 開始하면서 마현경이 公採로 들어올 때까지 [2] [3] 單獨으로 아나운서를 맡았다. 나중에 그女는 回顧談에서 自身이 구경거리였으며, 經費 節減 次元에서 한·日語 兼用 아나운서로 酷使當했고, 마이크 앞에서 혼자 그것도 하루 두 時間 남짓 休息 時間도 없이 일을 하여 疲困하기 그지없었다고 하였다.

家族 關係 [ 編輯 ]

  • 아버지 : 이학인 (李學仁)
  • 男便 : 노창성
  • 子女 : 9名 - 그 中 韓國 最初 女性 패션디자이너 노명자 (노라 노)가 있다.

各州 [ 編輯 ]

  1. 김윤식 (2008年 6月 29日). “우리나라 女子 아나운서 1號 이옥경” . 기호일보 . 2008年 7月 9日에 確認함 .  
  2. 김은신 (1995年 11月 1日). 《이것이 韓國 最初》. 三門. 78~80쪽쪽. ISBN   9788985407359 .  
  3. 《기호일보》의 記事에서는 마현경度 推薦으로 入社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