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種 (後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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油種 (劉琮, ? ~ ?)은 後漢 末期의 官僚로, 山羊群 考評縣(高平縣) 사람이다. 형주 遊標 의 아들로, 유표 事後 형주를 넘겨받았으나 곧바로 曹操 에게 降伏하였다.

生涯 [ 編輯 ]

出生과 死亡連月은 不分明 하지만 降伏 直後 淸州 비슷한 時期 祖妣가 쓴 典論에서 菜某와 손잡고 後繼者 爭奪戰에 積極的으로 參與한 情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 遊標가 死亡할 즘에는 이미 成年의 나이인 것으로 推定된다.

흔히 三國志演義 때문에 有機와의 사이가 나빴던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의 叔父 菜某 를 비롯한 周圍의 一派가 兄을 排除하고 그를 擁立 하려고 했기 때문에, 有機와 有終의 사이는 險惡하게 되었다고 한다 ( 三國志 , 後漢書 ).

208年 遊標 의 事後, 菜某 (蔡瑁), 張潤 (張允) 等에 依해서 後繼者가 되었다. 그러나, 遊標 의 죽음으로 曹操 (曹操)가 南下를 開始한다. 이에 유종은 부손 (傅巽), 한숭 , 怪月 (?越), 王粲 의 降伏建議를 받아들여 曹操에게 降伏하였다. 遊標前에는 消極的이나마 曹操와 맞서보려고 했다고 主張하지만 오히려 相當數의 抗戰派들이 有終의 行態에 失望해 有機와 劉備의 勢力으로 넘어간 것을 보면 說得力이 不足하다. 曹操 에게 降伏한 後에 諫議大夫 참桐軍事에 任命된다.

創作物에서 [ 編輯 ]

演義에서는 14살의 어린나이로 設定되어 어머니 菜氏와 菜氏側近들에게 휘둘려 遺棄를 내쫓고 曹操에게 降伏한 것으로 描寫된다. 曹操 에 依해서 淸州自社로 部임받아 가는 途中에 于今 (于禁)에 殺害되었지만, 이것은 演義의 創作이고, 오히려 曹操는 유종을 <생각이 높고 뜻이 맑으며 앎이 깊고 헤아림이 넓으며 映畫를 가볍게 여기고 義를 무겁게 본다> 라고 했으며 유종을 諫議大夫 同參軍事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이문열 三國志 5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