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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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雅樂)은 當時 民間 音樂인 鄕樂 , 唐樂 과 區別되는 祭禮樂·宮中 宴禮樂·正樂을 통틀어 말하며, 좁은 意味로는 文廟 祭禮樂 을 가리킨다. 그 起源은 中國의 上古 時代 宮中音樂으로 흔히 周나라 音樂이라고 한다.

韓國의 雅樂 [ 編輯 ]

編鐘
編磬
國立故宮博物館 에 展示된 어
國立故宮博物館 에 展示된 軸

雅樂의 導入 [ 編輯 ]

1116年 ( 高麗 睿宗 11年)에 宋나라 徽宗 이 高麗의 睿宗에게 아악(大晟雅樂)을 보내와 編鐘 (編鐘)· 編磬 (編磬)·축(祝)·어 같은 稀貴한 中國 古代 樂器에 依하여 4字 1具, 8具 1章으로 된 漢文樂章(漢文樂章)의 노래를 연주하는 雅樂이 宗廟 에서 처음으로 採用된 것은 劃期的이었다. 毅宗 때에는 雅樂이 원구·辭職(社稷)·先農(先農)·太廟(太廟)·文宣王廟(文宣王廟)·선잠(先蠶)에 使用되었으나, 1188年 明宗 18年 當時에는 그런 祭禮에 아악만 使用되지 않고, 鄕樂이 亞獻(亞獻)과 終獻(終獻)에만 섞였기 때문에 高麗朝의 雅樂은 아직 未備하였다고 하겠다.

대성雅樂 [ 編輯 ]

中國 宋나라 代의 雅樂으로 宋 太祖 때부터 徽宗 에 이르기까지 6回에 걸쳐 고쳐 만들었다. 1105年에 舊惡(舊樂)을 一切 쓰지 않기로 함과 同時에 對聲部(大晟府)를 세워 雅樂을 管掌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116年 ( 睿宗 11年) 송 後從 이 賀禮社 왕자지 (王字之), 문공美 (文公美)가 돌아오는 길에 대성雅樂을 보내왔다. 이 宋의 대성雅樂은 高麗 때 帝鄕(祭享)에 쓰였는데, 近世 朝鮮 世宗 때는 朴堧 等이 中國 한나라 , 唐나라 , 宋나라 의 戰績을 參考하여 中國 周나라 制度(周制)에 가깝게 새로 制定하였다.

朝鮮 前期의 雅樂 [ 編輯 ]

高麗 때부터 쓰여온 雅樂은 樂器·制度·樂律 等에서 여러 가지 不備한 點이 있었으므로 朴堧 等이 <主禮(周禮)>, <釋奠樂譜(釋奠樂譜)> 等 中國 古代 惡書(樂書)를 參考하여 雅樂을 嚴格하게 바로 잡았다. 첫째는 高麗 때 祭禮樂에 雅樂만을 쓰지 않고 亞獻(亞獻)·終獻(終獻)과 送信(送神)에 享樂을 섞어 쓰던 것을 世宗 10年부터 그 享樂을 없애고 純全히 雅樂만을 썼다. 둘째, 前에는 登歌(登歌)와 軒架(軒架)의 音樂이 모두 陽律(陽律)의 宮(宮, 中心音)만을 썼었는데, 世宗 12年頃에 <主禮>에 따라 等價에는 陰呂(陰呂)의 宮, 軒架에는 陽律의 宮을 써서, 陰陽地합(陰陽之合) 또는 合成(合聲)의 格에 맞게 고쳤다. 셋째, 世宗 9年에 朴堧이 처음으로 律官과 編磬을 國內에서 製作하였다. 넷째, 祭禮에 使用되었던 아악곡, 卽 奉常寺(奉常寺)에 傳來된 <朝鮮國樂長(朝鮮國樂章)>은 그 出處가 未審하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하여, 世宗 12年에 그것을 버리고, 霖雨(林宇)의 <대성雅樂步(大成雅樂譜)>를 바탕으로 새로 雅樂譜를 制定하고 그것을 祭禮樂으로 使用하였다. 이 革新된 雅樂曲이 오늘날까지 演奏되고 있다. 다섯째, 그前에는 弔賀(朝賀)와 回禮(會禮)에 唐樂과 享樂이 使用되었는데, 世宗 12年에는 <儀禮時惡經傳通解(儀禮詩樂經傳通解)>의 小雅篇(小雅篇)의 樂譜에 期하여 弔賀에 쓸 雅樂譜(雅樂譜)를 制定하고, 世宗 13年 正月에 처음으로 弔賀에서 唐樂 代身에 아악 <隆安之樂(隆安之樂)>, <舒安之樂(舒安之樂)>이 演奏되었고, 世宗 15年 正月에 廻禮에서 唐樂과 享樂에 아악 <文明之曲(文明之曲)>, <武烈之曲(武烈之曲)>이 追加 演奏되었다. 이같이 世宗 때에는 雅樂이 祭禮에서 弔賀, 廻禮에까지 擴張되었지만 世宗 以後 다시 中國制度의 祭禮에만 局限되었고, 朝會와 廻禮에서는 다시 後退하였다.

朝鮮 後期의 雅樂 [ 編輯 ]

壬辰倭亂 ( 1592年 )과 丙子胡亂 ( 1636年 )의 두 次例의 외침을 받고 首都를 비웠던 까닭에 宮中音樂은 朝鮮 前期의 그것과 많이 달라졌다. 丙子胡亂 後 國力이 疲弊해져 戰後 10年 肝을 宗廟祭享을 비롯한 모든 祭享과 調整 意識에 音樂이 빠졌다가, 1647年 人組 25年이 되어서야 겨우 正月의 宗廟祭享에 그前과 같이 音樂이 使用되었을 程度였다. 仁祖 때의 祭禮 雅樂의 規模는 겨우 軒架(軒架) 22人, 等價(登歌) 20人으로, 成宗 때의 軒架 124人 等價 64人에 비하면 極히 작고, 그 以後에도 그 以上 더 커지지 못하였다.

大韓民國의 雅樂 [ 編輯 ]

오늘날에는 文廟 祭禮樂 에서만 쓰인다. 編鐘 · 編磬 · · ·知·勳·部·어 같은 稀貴한 中國의 古代 樂器로 編成되었다. 12律 4淸聲으로 制限해 쓰고 7音階로 되었다. 主音(主音)으로 始作해서 주음으로 마친다. 4/2拍子에 8小節로 한 曲을 이룬다.

같이 보기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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