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晶의 밤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 水晶의 밤 事件 에서 넘어옴)

水晶의 밤 ( 獨逸語 : Kristallnacht , 1938年 11月 9日 ~ 11月 10日 )은 나치스 突擊隊(SA)와 獨逸人들이 유대人 商店과 시나高그를 攻擊한 事件이다. 韓國語로는 ‘깨진 修正의 밤’ 或은 ‘깨진 琉璃의 밤’으로도 불리는데 이 名稱은 事件 當時 수많은 琉璃窓이 깨졌다고 해서 붙었다.

經過 [ 編輯 ]

水晶의 밤 다음 날 撮影했으리라 推測되는 映像.

一說에 依하면 그린슈판은 獨逸의 유대人 迫害를 復讐하겠다는 一念으로 파리 駐在 獨逸 大使였던 요하네스 폰 벨체크 (Johannes von Welczeck, 1878年 9月 2日 - 1972年 10月 11日 )를 暗殺하려고 計劃했으나 마침 3等 書記官 라트가 用務 次 大使官邸를 訪問했다가 代身 狙擊당했던 것이다. (1938年 11月 7日 ) 또 특정한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大使館에서 獨逸人 아무나 죽일 생각이었다고도 한다. 히틀러를 代身해 聲明을 發表한 요제프 괴벨스는 히틀러가 示威는 許可하지 않지만, 自然發生的인 憤怒의 表出에는 關與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暗默的인 暴動의 承認으로 받아들인 獨逸人들은 11月 9日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7,000餘個 商店과 29個의 百貨店, 住宅 171棟, 유대人 禮拜堂 시나高그 193個所가 불에 타거나 破壞했다. 유대人 3萬名 以上이 10日 當日 逮捕되었다.

11月 10日 새벽 1時 20分에 帝國保安本部 의 樹齡 하이드리히 는 全國의 警察과 SS保安防諜部 에 示威 運動 組織을 協議하라는 內容을 傳達했다. 이 訓令에는 유대人 商店과 집은 破壞할 것, 유대人 禮拜堂은 周邊에 불이 번질 念慮가 없으면 燒却할 것, 警察은 示威를 沮止하지 말 것, 可能하면 富裕한 유대人을 優先 順位로 逮捕할 수 있을 만큼 逮捕하라는 命令이 들어 있었다.

유대人의 受難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트가 유대人에게 殺害된 罪값을 치르라는 意味에서, 暴動으로 被害를 當한 유대人이 保險社에서 保險金을 受領하자 當時 經濟部 長官이었던 괴링 이 이 유대人들의 保險金과 財産을 모두 沒收해 갔다. 이것은 라트의 暗殺에 對한 補償을 유대人들이 國家에 代身 낸다는 名分으로 行해진 것이었다. 이 措置를 確立한 것은 11月 12日 이었다.

이 事件은 나중에 뉘른베르크 裁判 에서도 擧論되었고 괴링度 事實을 認定한 바 있다.

參考 文獻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