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物學 講義, '筆耕士'種에 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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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博物學 講義: ‘筆耕士’種에 關하여 Une lecon d’histoire naturelle. Genre Commis〉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 1821-1880)가 젊은 時節에 쓴 短篇이다. 1837年 3月 30日에 루앙의 文藝誌인 《벌새 Le Colibri 》에서 ‘루앙의 風俗’ 欄에 실렸는데, 作家의 初年期에 쓴 글 中에서 公式的으로 出刊된 것으로는 1837年 2月, 같은 文藝誌에 發表된 〈藏書壁 Bibliomanie 과 〈博物學 講義〉의 두 作品밖에 없다. [1] 〈藏書壁〉李 幻想的인 色彩를 띤 콩트라면 〈博物學 講義〉는 生理學 장르의 短篇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플로베르는 조르주 퀴비에 (Georges Cuvier, 1769-1832)와 같은 動物學者가 되어 ‘筆耕士’라는 한 社會的 類型을 그리는데, 그 속에는 프티 부르주아的 順應主義에 對한 諷刺가 담겨 있다. 〈博物學 講義〉는 主題 面에서 플로베르의 마지막 小說인 《부바르와 페퀴셰 Bouvard et Pecuchet 》(1881)와 連結되며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1819-1891)의 《筆耕士 바틀非 Bartleby the Scrivener (1853)를 聯想시킨다. [2]

줄거리 [ 編輯 ]

〈博物學 講義: ‘筆耕士’種에 關하여〉는 只今까지 博物學 分野에서 이룩한 成果를 嘲弄하며 始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퀴비에까지, 플리니우스부터 드 블랭빌 氏까지, 우리는 自然 科學에서 매우 큰 發展을 이루”었지만, 정작 “우리 時代의 가장 興味로운 動物”인 筆耕士에 對해서는 누구도 이야기한 바가 없다고 話者는 批判한다. 그에 依하면 筆耕士에 關한 硏究가 이루어지지 않은 原因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筆耕士에 對한 豐富한 知識을 갖출 만큼 充分히 보고 苦悶한 學者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筆耕士를 어느 과(科)로 편입시켜야 할지, 卽 어떻게 分類해야 할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이때 話者가 描寫하는 筆耕士의 外樣은 서로 다른 部類에 屬하는 動物들을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博識한 動物學者”를 自稱하는 話者는 直接 여러 事務室을 旅行하며 그곳에 繁殖한 筆耕士라는 動物에 關해 얻은 다양한 情報를 바탕으로, 다른 動物學者들이 여태껏 하지 못했던 筆耕士에 關한 分析的 硏究를 試圖한다. 筆耕士라는 族屬은 主로 獨身으로 지내는데, 이들은 담배를 태우며 火를 내고, 깃털 펜을 아주 까다롭게 고르고, 事務室의 使喚을 괴롭히고, 帳簿에 失手로 남긴 잉크 자국을 보며 가슴 아파한다. 結婚해서 定着한 筆耕士들度 種種 있는데, 그들은 日曜日이면 카페오레를 마시고, 日刊紙와 시시한 小說을 읽고, 輕薄한 演劇을 보러 다니고, 7月 王政을 熱烈히 支持한다. 筆耕士들은 날씨나 女子나 道路의 再包裝이나 켕케식 燈불에 對해 시답잖은 수다를 떤다. 熱(熱)을 좋아하는 筆耕士들에게 가장 重要한 일은 事務室의 暖爐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그들은 長斫 타는 소리를 들으면서 입을 헤벌쭉 벌리며 좋아하고, 누군가 門을 열어놓는 바람에 熱氣가 빠져나가면 불같이 火를 낸다. 그들을 ‘筆耕士’라고 부르지 않도록 留意해야 한다. ‘事務員님’이라는 呼稱을 써야만 한다. 이처럼 “稅關의 筆耕士부터 證券 去來所의 會計員까지 폭넓은 社會的 階層에 퍼져 있는” 筆耕士의 類型에 關해, 作家는 “이 動物學 講義의 續篇을 出刊”하겠다는 抱負를 내비치며 글을 마무리한다.

장르 [ 編輯 ]

〈博物學 講義: ‘筆耕士’種에 關하여〉는 장르上 ‘生理學physiologie’ 에 屬한다. 生理學 小說은 모든 人間型을 職業, 環境, 性格 等 一連의 範疇로 分類하여 檢討하고, 各 類型의 가장 些少한 特徵들까지도 素描하는 것을 特徵으로 한다. 1820年頃 프랑스에서는 生理學이라는 槪念이 流行하면서 科學의 한 分野로 자리 잡고 있던 生理學이 漸次 文學의 領域으로 擴張되기 始作했다. [3] 1825年에 出刊된 腸 앙텔름 브리野-사바랭 (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의 《美食 生理學 Physiologie du Gout 》은 生理學的 文學 作品의 始初로 여겨진다. 1829年, 오노레 드 발자크 (Honore de Balzac, 1799-1850)의 《結婚 生理學 Physiologie du mariage 》이 큰 成功을 거두면서 1830年 무렵부터는 生理學이 文學界에서 人氣를 얻었다. 漸次 生理學은 값이 싼 文庫判으로 發行되고 揷畵가 들어간 시리즈出版物로 製作되는 等 出版社의 商業的 利潤을 위해 大量으로 生産되기 始作했다. 그리하여 生理學 장르가 黃金期를 맞이한 1840-1842年에는 無慮 130餘 篇의 作品이 出版되었으나 이는 오래 持續되지 못했고, 1843年부터 生理學은 文學界에서 急激한 衰落을 맞았다. 플로베르의 〈博物學 講義〉는 形式上으로 生理學 小說에 屬하긴 하지만, 지난 時代에 博物學과 分類學이 必然的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빈틈을 指摘하고 있다는 點에서, 卽 人間의 모든 類型을 分類하는 것이 애初에 不可能함을 前提한다는 點에서 生理學 小說 自體를 問題 삼는 生理學 小說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各州 [ 編輯 ]

  1. Yvan Leclerc (ed.). Gustave Flaubert (1991). 《Memoires d'un fou ? Novembre et autres textes de jeunesse》. Flammarion. 21, 141-142쪽.  
  2. Laurence M. Porter (2001). 《A Gustave Flaubert Encyclopedia》. Westport : Greenwood Press. 194쪽.  
  3. Kim In-Kyoung (2011). “La Vogue des “Physiologies” et Les Petits Bourgeois de Balzac”. 《佛語佛文學硏究》 (88輯).  


外部 링크 [ 編輯 ]

小說 專門(wikisource)

프랑스國立圖書館 所長 筆寫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