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進士宅 慶事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孟進士宅 慶事 (孟進士宅 慶事)는 오영진 (吳泳鎭)李 쓴 시나리오이다.

槪要 [ 編輯 ]

1942年에 쓴 시나리오를 1943年 作者 自身이 戱曲으로 改作, 1944年에 '太陽劇團'에서 招演했다. 그 後 '신협(新協)'(1951年 이광래 演出)과 '實驗劇場'(1969年과 1972年 나영세 演出)에서 공연되었다. 1964年 國際劇藝術協議會 파리 本部에서 英文科 不問으로 飜譯되고 映畫로는 시집가는 날 로 1956年 製作되어 1957年 도쿄에서 열린 第5回 아시아映畫祭에서 最高 喜劇賞을 獲得했다. 韓國의 演劇은 新劇(新劇) 以後부터 現代劇에 이르기까지 喜劇(喜劇)의 風土를 開拓하는데 疏忽해 왔고 따라서 볼만한 作品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不毛(不毛)에서 〈孟進士宅 慶事〉가 나왔다는 것은 極히 드문 例外라 하겠다. 韓國의 傳統劇은 獨特한 諧謔(諧謔)과 諷刺性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繼承·발전시킬 作家는 없었다. 그러한 터에 吳泳鎭이 나와 그 作業을 1940年代에 훌륭히 해냈다는 것은 喜劇 作家로서 吳泳鎭의 力量과 才能을 立證하는 것이고 나아가 韓國의 現代 喜劇이 志向해야 할 한 里程標(里程標)를 提示했다고 볼 수 있다(그는 1970年에도 그와 같은 系列의 喜劇 〈許生傳〉을 써서 큰 成功을 거둔 바 있다). 區(舊)結婚制度의 矛盾과 因習을 諷刺한 이 作品의 內容은 韓國의 固有한 生活風俗과 思想을 如實히 보여주고 있다.

줄거리 [ 編輯 ]

無男獨女의 외딸을 가진 孟進士(그 自身은 眞사 자리를 돈으로 산 사람이다)는 오직 돈 많고 지체높은 金大監집과 査頓이 된다는 虛榮에서 사위될 사람을 보지도 않고 婚姻承諾을 한다. 그런데 그 사위가 다리를 煎茶는 事實이 알려진다. 이에 놀란 孟進士는 몸종인 입분이로 하여금 딸 甲分이 代身 婚姻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婚姻날에 나타난 新郞은 身體에 全혀 異常이 없는 健康한 靑年이었다. 新郞은 不安하여 어쩔 줄 모르는 입분이에게 自己가 다리를 전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마음씨 고운 女人을 擇하기 위한 基地(機智)였다면서 입分을 아내로 맞을 것을 宣言한다.

같이 보기 [ 編輯 ]

이 文書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 (現 카카오 )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配布한 글로벌 世界대백과사전 의 內容을 基礎로 作成된 글이 包含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