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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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에서 은 집을 計算할 때 百(白)을 잡은 사람에게 더해주는 집, 또는 그러한 規則을 말한다. 바둑은 먼저 두기 始作한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에, 나중에 둔 사람에게 그 不利함을 補償해 주기 위한 規則이다. 현대 바둑에서는 無勝負를 막기 위해 덤에 半집의 槪念을 導入하고 있다. 但, 덤의 境遇 韓國과 日本은 6輯 班을 6.5輯, 中國은 7輯 班을 7,5輯으로 代替하여 使用하고 있다.

덤의 導入 [ 編輯 ]

바둑 歷史의 草創期에는 덤이 없었고 黑白의 집이 같으면 無勝負로 處理하였다. 따라서 實力이 같은 號線 勝負에서는 黑白을 번갈아 쥐면서 勝負를 가리곤 하였다. 그러나 近代 바둑의 成立 以後 一般 大會에서는 當日 勝負를 가릴 必要性이 커졌고 번갈아 黑白을 나눠잡아 勝負를 가리는 것은 相當한 時日이 걸리고 勝負의 가름이 쉽지 않기 때문에 덤의 槪念이 導入되었다. 또한 日本에서 있었던 事件이 決定的 契機가 되었는데, 當時 프로棋士에게는 大國마다 大局料가 策定되어 있었고 無勝負가 되었을 境遇에는 다시 再大局을 벌이며 大局料를 받을 수 있었는데 프로棋士 둘이 談合하여 세 판을 無勝負로 만들었고 巨額의 大局料를 챙긴 事件이 發生했다. 일본기원에서는 이 事件을 契機로 理事會를 召集하여 無勝負를 防止하기 위한 對策으로 半집 의 槪念을 導入했다.

덤의 크기 [ 編輯 ]

덤의 크기는 漸次 커지는 方向으로 發展하였다. 덤이 公式棋戰에 登場한 最初의 프로棋戰이라 할 수 있는 1940年 日本 본인방 棋戰에서는 4輯을 策定했다. 1973年 1月 大韓日報社가 그 當時 優勝賞金 50萬원의 最大 棋戰인 백남배를 創設하면서 5輯 班을 덤으로 策定했다. 日本은 1974年 本人방전에서 5輯 半이 採擇했고 이는 오랫동안 通常的인 덤의 크기가 되었다. 그러나 5輯 班에서도 黑을 잡는 것이 便하다는 記事가 많았고 實際로도 黑의 勝率이 더 높았다.

以後 臺灣의 잉씨杯 에서는 프로棋士間 黑白間 집 差異를 單純 計算하는 方式으로 獨特하게 덤을 8輯(韓國式 計算으로는 7輯 半이 된다)으로 計算하여 白에게 유리한 덤을 策定했다. 잉창치氏는 1978年에 日本新聞에 發表된 總 1,971 大國의 結果를 分析하여 黑의 勝率이 54%가 넘으므로 덤 5집半은 黑에게 유리하고 泄瀉 덤을 6집半으로 하더라도 黑의 勝率이 53%에 達해 如前히 黑이 유리하다고 하면서 덤을 8輯으로 했을 때에는 비로소 黑과 白의 勝率이 거의 50%로 같아지므로 8輯이 妥當하고 하였다. 그래서 잉씨杯의 記事에서 黑白을 가릴 때 百을 먼저 選好하는 記事가 더 많기도 하였다.

以後 1990年代 後半에 와서 5輯 半은 黑이 亦是 便하다는 技士들의 態度에 따라, 韓國에서는 1998年 第3回 LG杯 世界旣往戰에서 덤 6집半을 電擊 採擇함으로써 덤을 增强하였다. 마지막으로 5집半 덤을 固守하던 王位顚倒 2003年 37期 大會부터 6집半을 採擇함에 따라 韓國의 棋戰은 모두 6집半으로 치러진다. [1] 現在 韓國과 日本은 6輯 半이며, 中國은 7輯 半으로 策定한다.

各州 [ 編輯 ]

  1. “바둑뉴스”. 《바둑》. 35卷 7號 (서울特別市 성동구 홍익동 315: 한국기원). 2003年 2月 1日. 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