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國樂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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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基本 情報
本名 김순옥(金順玉)
出生 1917年 12月 1日 ( 1917-12-01 ) [1] [2]
日帝强占期 全羅北道 高敞郡
死亡 1995年 4月 17日 ( 1995-04-17 ) (77歲)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性別 女性
居住地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職業 國樂人
장르 國樂
活動 時期 1929年~1994年
웹사이트 김소희 - 韓國映畫 데이터베이스
김소희 - 두산世界대백과사전

김소희 (金素姬, 本名 김순옥(金順玉), 1917年 12月 1日 ~ 1995年 4月 17日 )는 國唱(國唱)으로 推仰받는 판소리 大名唱 利子 國家無形文化財(人間文化財) 로, 本名 김순옥 (金順玉), 號는 만정(晩汀). 朝鮮聲樂硏究會, 畫廊唱劇團 等에서 판소리와 唱劇俳優로 活躍하였으며, 時代를 風靡한 傳說的인 소리꾼이었다.

日帝强占期 全羅北道 高敞郡 에서 태어났다. 1929年 群山女子高等普通學校에 在學 當時에 當代의 女性 名唱 이화중선 (李花中仙)의 판소리 窓 추월만정 (秋月滿庭) [3] 等을 듣고 感銘을 받아 女學校를 中退한 以後 소리꾼이 되기로 決心하였다.

名唱 송만갑·丁貞烈·박동실 門下에서 소리를 工夫했다. 假聲을 쓰지 않고 上·中·下請을 自由自在로 驅使하는 唱法이 特徵이다. 韓成俊에게 煞풀이를 배웠고, 1934年에는 정정렬 門下에서 판소리 工夫를 繼續했으며, 김종기에게 伽倻琴과 거문고를 배워 소리, 춤, 器樂을 두루 익혔다. 1936年에는 最初로 정정렬, 林芳蔚과 함께 나누어 부른 春香歌를 錄音했고, 판소리 다섯 마당도 모두 錄音했다. 1939年부터 畫廊唱劇團에 參與했고, 朝鮮聲樂硏究會에 加入했으며, 박귀희와 함께 女性國樂同好會를 組織했다. 1962年에 유럽, 1964年에 美國을 巡廻 公演을 하면서 고운 音色과 明確한 唱法으로 讚歎을 받는 等 우리 傳統 藝術을 普及하는 데 이바지했다.

1964年에 國家無形文化財 第5號 판소리 《春香歌》의 藝能保有者로 認定받았다. 國立國劇團 團員, 판소리 保存硏究會 常任理事를 지냈으며, 1994年에 國樂 分野에서는 隱退하였다.

1995年에 김소희가 別世하였을 때 政府의 決定 下에 金冠文化勳章 (1等級)李 追敍되었는데 이것은 傳統藝術人 中 最初에 屬한다.

各州 [ 編輯 ]

  1. (陰曆 10月 17日)
  2. 김소희의 生日에 對해서는 12月 1日 이라는 紹介와 1月 14日 이라는 紹介가 있는데 1996年 出版된 『우리가 正말 알아야 할 우리 傳統 曳引 百사람』(이규원, 현암사, 1996)에 依하면 陰曆 10月 17日로 紹介한다. 1917年 陰曆 10月 17日은 陽曆 12月 1日이므로, 그에 따른다.
  3. 김소희의 雅號 만정(晩丁)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는 說도 있다.

參考 資料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