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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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姜邯贊
장르 史劇
放送 國家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放送 채널 KBS TV
放送 期間 1973年 10月 8日 ~ 1974年 1月 9日
放送 時間 每週 月~土 午後 9時 30分 (1973年 10月 8日 ~ 11月 10日)
每週 月~土 午後 10時 (1973年 11月 11日 ~ 12月 1日)
每週 月~土 午後 9時 40分 (1973年 12月 3日 ~ 1974年 1月 9日)
放送 分量 約 20分
放送 回數 75回 [註解 1]
演出 임학송
脚本 이은성
出演者 주현 , 박근형 , 이선근 , 이형구 , 이효춘 , 김자옥 , 김성옥 , 新舊

강감찬 》은 1973年 10月 8日에서 1974年 1月 5日까지 放映한 한국방송공사 의 일일連續史劇이다. 高麗 중기의 여요전쟁 을 背景으로 한 最初의 長篇 드라마이며 1973年에 進行된 落星垈 整備 事業에 맞춰서 放映되었다. 一日連續史劇 《世宗大王》의 後續作으로 編成돼서 《世宗大王》의 劇本을 擔當한 이은성이 이어서 맡았다.

《韓國放送社》에 依하면 "壁에 부딛쳐" 1974年 1月에 早期 終映했다고 한다. [1] 李秉勳 PD는 本作을 두고 "資料 蒐集에 많은 努力을 기울임"이라 言及했다. [2] 1970年代 初葉에 放映한 드라마답게 映像은 前篇 消失된 것으로 推定되나 國家記錄院 에 臺本 [3] 과 人物票 [4] 가 保存되어 있어 映像 小室을 看做하더라도 編成表 줄거리 以上의 具體的인 內容 展開를 把握할 수 있다.

把握되는 줄거리 [ 編輯 ]

編成表 줄거리上으로는 거란의 1次 侵攻 이 벌어진 993年 [5] 에서 鬼誅大捷 이 벌어진 1019年 까지 劇化한 것으로 推定된다. [6]

993年 以前 事件으로 姜邯贊의 誕生과 壯元及第를 다룬 回次가 編成表上 言及된다. [7]

編成表上 確認되는 78個의 廻車 中 成宗 治世는 1~26回, 穆宗 治世는 27~62回, 玄宗 治世는 62~75回로 配分된다. 거란의 1次 侵攻은 1~9回, 2次 侵攻은 64~74回, 3次 侵攻은 75回에서 다룬다. 二重 3次 侵攻이 極度로 簡略하게 다뤄진다.

穆宗 治世에 드라마의 折半 分量에 가까운 35回(27~62回)를 割愛한 만큼 作中 가장 細密하게 다뤄지는 事件社는 金致陽과 遷推太后의 專橫과 大量援軍(玄宗)의 登極 過程이다.

登場人物 [ 編輯 ]

  • 이 目錄은 어디까지나 編成表上 確認 可能한 人物들을 다룬 것이다.

高麗 [ 編輯 ]

강감찬 一家 [ 編輯 ]

강감찬
演: 주현
本作의 主人公. 거란의 1次 侵攻 때 楊規, 强調와 함께 文臣들의 强化論 主張에 反對한다. [8] 穆宗 治世에 金致陽과 遷推太后가 專橫을 일삼자 이에 對抗해 대량院君을 暗殺 威脅으로부터 保護한다. [9] 穆宗과 뜻을 같이 해 [10] 强調의 叛亂을 劃策함으로써 金致陽을 除去하고 大量援軍을 擁立한다. [11] [12] 거란의 2次 侵攻 때 禮部豺狼으로서 出陣해서 맞서 싸운다. [13] 그後 서북면 行營都統使를 除授받아 高麗의 北方을 지키다가 [14] 거란의 3次 侵攻에 맞서 鬼誅大捷 으로 敵을 壞滅하는 大勝利를 거둔다. [15]
躬進
演:
姜邯贊의 父親. 삼한壁上功臣. 아들과 함께 혼란스러운 高麗의 國政을 恨歎한다. [16]
강중찬
演:
姜邯贊의 아우. 强調에게 眩惑되어 姜邯贊에게 指彈받는다. [17]

高麗 王室 [ 編輯 ]

成宗
演:
高麗의 6代 王. 編成表상으로는 具體的인 行跡이 거의 描寫되지 않는다. 衰弱해지자 개령군(穆宗)에게 讓位한다. [18]
穆宗
演:
高麗의 7代 王. 成宗에 依해 개령군으로 冊封돼 帝位를 承繼받지만 實權은 母后 遷推太后와 金致陽이 쥔다. [9] [19] [20] 母后와 김치양의 不倫行脚 [21] 과 忠臣 한언공의 殉國에 衝擊받아 [22] 姜邯贊과 함께 强調의 叛亂을 劃策해 金致陽을 除去하고 大量援軍에게 讓位하려 한다. [10] 結局 强調에 依해 폐위당한 後 적성현 村家에서 生을 마감한다. [23]
顯宗
演:
高麗의 8代 王. 作中 大部分 대량院君으로 稱해진다. 氣槪있고 英敏하다고 言及된다. [24] 사수현에서 後날의 원화왕후와 가난하게 지내던 中 [25] 金致陽에게 危險要素로 注目받아 除去 威脅에 시달린다. [9] [26] 姜邯贊에게 保護받아서 暗殺을 謀免하고 끝내 强調에게 擁立되어 王位에 오른다. [27] [12] 强調의 叛亂을 名分으로 擧行된 거란의 侵攻에 强調가 붙잡히고 高麗軍이 敗退하자 羅州로 播遷하지만 斥和論에 골치를 겪는다. [28] 以後 姜邯贊을 서북면 行營都統使로 除授한다. [14]
遷推太后
演:
穆宗의 母后. 成宗의 寢所에서 소외당하는 屈辱도 겪으나 [29] 아들 穆宗이 卽位하자 姦通對象인 金致陽과 함께 國政을 專橫한다. [9] [19] 姜邯贊을 꺼려한다. [30] 김치양의 아들을 낳으면서 이 專橫은 더욱 심해진다. [31] 强調의 叛亂에 依해 穆宗과 더불어 行方不明이 된다. [32] 穆宗은 죽음이 確實히 言及되는 反面 遷推太后는 編成表上 言及이 끊긴다.
원화왕후
演:
顯宗의 비. 현종이 사수현에서 지내던 무렵부터 이미 夫婦였다는 事實이 編成表에서 確認된다. [25]
원정왕후
演:
實際 歷史에서는 玄宗의 第1非이나 編成表에서는 穆宗비로서 言及되며 胞胎했다는 所聞에 對한 言及이 있다. [33] 드라마賞 誤謬인지 編成表上 誤謬인지는 不確實하다.

高麗 武臣 [ 編輯 ]

强調
演: 남성우 [34]
거란의 1次 侵攻 때 陽竅와 姜邯贊과 함께 强化論에 反對한다. [8] 穆宗의 密書를 받아 當惑해하나 野心에 따라 穆宗을 廢位시키고 大量援軍을 擁立한다. [27] 强調의 叛亂을 名分으로 侵攻한 거란에 맞서 싸워 삼수陣에서 勝利를 거두나 [35] 蕭排押의 決死隊에 依해 生捕된다. [36] 歷史대로 歸順을 提議받으나 拒否한다. [37] 編成表에서는 言及이 없으나 實際 歷史대로 處刑된 것으로 豫想된다.
楊規
演:
거란의 1次 侵攻 때 文臣들이 主張하는 强化論에 姜邯贊과 强調와 더불어 抗議한다. [8] 거란의 2次 侵攻 때는 흥화진에서 遊擊隊를 組織해 거란軍의 後方을 籠絡하는 活躍을 보인다. [38]
정신용
演:
숭敎師와 신혈사에서 大量援軍을 除去하려는 김치양의 刺客과 맞서 싸운다. [39] [40] 以後 거란의 2次 侵攻 때 陽竅와 精製와 더불어 흥화진으로 出陣한다. [41]
精製
演:
정신용의 아우. 신혈사에서 大量援軍을 除去하려는 김치양의 刺客과 맞서 싸운다. [40] 以後 거란의 2次 侵攻 때 陽竅와 정신용과 더불어 흥화진으로 出陣한다. [41]

高麗 文身 [ 編輯 ]

서희
演:
卓越한 外交力으로 談判에서 거란의 侵攻을 沮止하는 功을 세우고 組功勞를 名分삼아 江東 6週의 回復을 꾀한다. [42] 그러나 김치양의 亂政으로 인해 어지러운 高麗의 國政을 걱정하며 숨을 거둔다. [43] 强調의 野心을 警戒한 것으로 描寫된다. [44]
한언공
演:
創作이 많이 加해진 人物로 病死한 實存人物과 달리 遷推太后와 김치양의 專橫에 맞서 木鐘에게 大量援軍 逐出 陰謀를 알리는 等 忠言을 거듭하다가 [45] 結局 刑틀에서 목숨을 잃는다. [46] 魯迅 한언공의 죽음에 穆宗은 衝擊받는다. [22]
김치양
演:
遷推太后 와 姦通을 일삼아 穆宗이 卽位하자 母后와의 關係를 利用해 調整 內 權臣으로 발돋움한다. [9] [20] 대량院君을 눈엣가시로 여겨 除去하려 하나 姜邯贊이 沮止한다. [9] 遷推太后와 낳은 아들이 커가며 더욱 權力이 强해지지만 [31] 穆宗과 姜邯贊이 劃策한 强調의 叛亂으로 因해서 제거당한다. [32] 成宗 時代에도 僧兵을 組織해 서희 等에게 危險要素로 여겨졌다는 內容이 있다. [47]

거란 [ 編輯 ]

蕭遜寧
演:
거란 淨甁 17萬을 이끌고 高麗를 侵攻하나 [5] 徐熙와의 談判에서 說得돼 다시 本國으로 돌아간다. [42]
蕭排押
演:
거란側 指揮官으로써 2, 3次 侵攻에 參戰한다. 2次 侵攻 때는 決死隊를 動員해 强調를 붙잡는 功을 세우나 [36] 3次 侵攻 때는 姜邯贊에게 鬼誅에서 大敗한다. [15]

에피소드 目錄 [ 編輯 ]

  • 아래 目錄은 編成表上 再構成한 것으로 實際 放映과 얼마나 一致하는지는 알 수 없다. 現存하는 臺本과 比較해야 더 明確히 알 수 있는 部分이다.
  • 編成表에 記載된 廻車 줄거리는 誤謬로 推定되는 部分은 任意로 바로잡고 띄어쓰기도 現代 基準에 맞춰서 적는다.
廻車 放送일 出演 編成表 줄거리 備考
- 1973.10.08
21:30-21:50
이선근, 이형구, 주현, 박근형, 이효춘, 김자옥 等 [48] 前夜祭 [48]
1 1973.10.09
21:30-21:50
주현, 박근형, 이효춘, 김자옥, 김성옥, 新舊 等 [49] " 高麗 成宗 12年 書記 993年 10月 契丹
蕭遜寧 淨甁 17萬으로 高麗를 侵略..." [5]
2 1973.10.10
21:30-21:50
"삼한壁上功臣 躬進의 아들로 태어난 姜邯贊은
983年에 文科에 壯元及第한다" [7]
3 1973.10.11
21:30-21:50
"御殿會議에서 文臣들은 講和論을
强力하게 主張하나 左補闕 姜邯贊과
種當 龍虎軍의 强調 , 楊規 等은 싸우자고 主張" [8]
4 1973.10.12
21:30-21:50
5 1973.10.13
21:30-21:50
주현, 박근형, 이효춘, 김자옥, 김성옥, 新舊 等 [50]
6 1973.10.15
21:30-21:50
"蕭遜寧의 强化封書를 놓고
朝廷은 또 다시 激論이 벌어진다" [51]
7 1973.10.16
21:30-21:50
"서희는 마침내 莫重한 國運을 걸고
敵將과 講和談判을 벌이기 위해 敵陣으로 向한다" [52]
8 1973.10.17
21:30-21:50
"旗幟槍劍이 井然한 글安 陳永, 單身으로 敵將 蕭遜寧과 對坐한 서희는 팽팽한 威壓感을 無視하고, 땅은 決코 내놓을 수 없다는 決意를 보인다" [53]
9 1973.10.18
21:30-21:50
"서희가 談判을 繼續하는 동안
調整은 焦燥와 緊張 속에 잠겨있다" [54]

"契丹의 眞意를 看破한 서희는 會心의 微笑를 짓는다" [55]

10 1973.10.19
21:30-21:50
"契丹에 朝貢을 바치는데 妨害되는 女眞땅을 討伐,
國老를 開設해야 한다는 서희의 妙策에..." [56]
11 1973.10.20
21:30-21:50
"談判을 성공시킨 서희는 署經에 돌아와 成宗께
契丹 兆功勞를 名分삼아 撤軍하는 글安君을 따라
江東6株를 征伐할 것을 進言한다" [42]
12 1973.10.22
21:30-21:50
"강동6株를 얻어 城을 쌓고
邊方 國境警備를 단단히 對備하는
高麗의 總力態勢를 깨드리는 中國 一角의 陰謀는...." [57]
13 1973.10.23
21:30-21:50
"正月 보름 燃燈會에 變服하고 南京으로 오라는
김치양 의 密書에 遷推太后 는 그리움에 몸부림친다" [58]
14 1973.10.24
21:30-21:50
"兵部 改編에 强調가 物望에 오르자
그의 野心과 私組織을 꺼리는 서희는 反對한다" [44]
15 1973.10.25
21:30-21:50
주현, 박근형, 이효춘, 김자옥, 김성옥, 新舊 等 [59]
16 1973.10.26
21:40-22:00 [60]
17 1973.10.27
21:30-21:50
"金致陽이 僧兵을 키우는 事實을 알고 서희를 爲始한 調整 忠臣들이 對策을 熟論한다" [47]
18 1973.10.29
21:30-21:50
"날로 時局은 어수선하고
강감찬 富者는 모여 앉아 歎息을 하는데..." [16]
19 1973.10.30
21:30-21:50
"成宗은 萬乘의 자리를 개령군 에게 讓位할 뜻이다" [18]
20 1973.10.31
21:30-21:50
"心血社 김치양의 무리를 監視하던
護身은 發覺되어 칼을 맞고 쓰러진다" [61]
21 1973.11.01
21:30-21:50
"成宗의 寢所 萬寧殿 앞에서
소외당한 遷推太后는 憤痛을 터뜨린다" [29]
22 1973.11.02
21:30-21:50
"사수현의 大量援軍 원貨 젊은 夫婦는
가난 속에서도 마음을 依支하고 團欒하게 살아간다" [25]
23 1973.11.03
21:30-21:50
" 개령군 의 登極 所聞에 김치양의 野心은 불타오르고
사수현 大量援軍 의 適所韓 姜邯贊은..." [62]
24 1973.11.05
21:30-21:50
"遷推太后를 손아귀에 쥔 김치양에겐
대량院君이란 存在가 눈의 가시같다.
사수현에서 大量群 夫婦를 모시고 오던 감찬은..." [9]
25 1973.11.06
21:30-21:50
"감찬의 집에 暫時 머문 大量援軍,
감찬 一行은 그의 氣槪있고 英敏한 모습에
欽慕와 尊敬을 보낸다. 成宗은 死境을 헤매고..." [24]
26 1973.11.07
21:30-21:50
27 1973.11.08
21:30-21:50
"成宗이 崩御하고 개령군이 卽位하여
高麗 7代 穆宗이 된다. 攝政을 맡은
遷推太后 가슴은 復讐와 野心에..." [19]
28 1973.11.09
21:30-21:50
"遷推太后 一角에서는 失意를 쫓기 위한
무리와 遷推太后가 金致陽을 推戴하고
朝廷大臣의 肅淸陰謀가 함께 始作되는데..." [63]
29 1973.11.10
21:30-21:50
"감찬과 서희를 去勢시키자는 太後의 請을
뿌리치는 穆宗. 감찬은 천추전으로 太后를 謁見하고..." [64]
30 1973.11.11
22:00-22:20
"거란 使臣을 맞은 迎接節次로 아뢰는 姜邯贊에게
太后는 냉랭히 물러가라 외친다" [30]
31 1973.11.14
22:00-22:20
"마침내 太后는 金致陽을 閤門使仁義
벼슬에 앉히고 그 무리로 宮中人士가 改編되니
감찬은 削奪官職을 當한다" [65]
32 1973.11.15
22:00-22:20
"감찬은 淡淡히 落鄕을 決心하는데
金致陽은 거드름을 피며 入闕한다.
門下侍中 한언공 은 散髮하고 老軀를 끌며..." [66]
33 1973.11.16
22:00-22:20
"太后는 金致陽에게 右僕射 兼
判三司事의 벼슬을 내리니 高麗朝의
人事權과 財政權은 그의 손아귀에 잡힌다" [20]
34 1973.11.17
22:00-22:20
35 1973.11.19
22:00-22:20
"母后가 대량院君의 逐出陰謀를 꾸민다는
한언공의 諫言에 천추전의 납신
穆宗은 놀라운 場面을 보게 되는데..." [45]
36 1973.11.20
22:00-22:20
"金致陽과 不倫의 關係를 맺고 있는
母后의 醜惡한 光景을 目擊한 穆宗은
憤怒가 爆發, 칼을 빼어들고 천추전으로..." [21]
37 1973.11.21
22:00-22:20
"어지러운 國事를 痛歎하면서 서희는 눈을 감는다.
천추전에선 太后와 金致陽이 泰然히 主演을 베풀고
穆宗은 寢食을 全廢하고 술로 날을 보낸다" [43]
38 1973.11.22
22:00-22:20
"穆宗은 寢食을 全廢하고 술로 날을 지새우니..." [67]
39 1973.11.23
22:00-22:20
40 1973.11.24
22:00-22:20
41 1973.11.26
22:00-22:20
"穆宗非 遠征이 胞胎했다는 所聞이..." [33]
42 1973.11.27
22:00-22:20
"强調에 眩惑당한 동생을 責望하는 강감찬" [68]

"强調에 眩惑당한 동생 中贊의 輕擧妄動을
指彈하는 감찬 宮中에선 太後의 指令으로..." [17]

43 1973.11.28
22:00-22:20
44 1973.11.29
22:00-22:20
"太后가 김치양의 아이를 孕胎했다는
놀라운 後門을 確認하고 姜邯贊은 등골이 오싹해진다" [69]
45 1973.11.30
22:00-22:20
"대량院君을 擁護하는 감찬의 집엔
不安과 緊張이 감도는데, 그날밤 치孃이 보낸 刺客이..." [26]
46 1973.12.01
22:00-22:20? [70]
22:10-22:30? [71]
"숲속마다 치양의 心腹들이 潛伏한 낡은 崇高社.
대량院君은 치양의 속셈을 알아채자..." [70]
47 1973.12.03
20:40-21:00
"다시 斧鉞을 메고 천추전으로 들어간 한언공.
늙은 몸을 바치기로 決心한 그 悽慘한 모습에
어린 목종의 가슴은 찢어질 듯하다" [22]
48 1973.12.04
20:40-21:00
"刑틀을 準備하고 毒氣를 품은 遷推太后의 발치에서
怨恨과 痛歎어린 눈빛으로 上疏文도 울부짖던
한언공 大監은 끝내 숨을 거두니..." [46]
49 1973.12.05
20:40-21:00
"刑틀을 準備하고 毒氣를 품은 遷推太后의 발치에서
怨恨과 痛歎어린 눈빛으로 上疏文도 울부짖던
한언공 大監은 끝내 숨을 거두니..." [72]
49 1973.12.05
20:40-21:00
"한언공 大監이 숨을 거두자 하늘도 우는 듯
천둥이 친다 그밤으로 入闕하라는 勅旨가 감찬에게 내려지니..." [73]
50 1973.12.06
20:40-21:00
"아닌 밤中에 감찬을 불러들인 穆宗은
대량院君에 讓位할 뜻을 비치니..." [10]
51 [74] 1973.12.07
20:40-21:00
"生母 遷推太后가 金致陽과 不倫의 씨를
孕胎한 기막힌 現實 속에 姜邯贊은..." [75]
52 1973.12.08
20:40-21:00
53 1973.12.10
20:40-21:00
"穆宗으로부터 隱密히 職牒을 받은 감찬은
정신용을 보내 숭敎師 大量援軍을 保護케 하고
한便으론 强調의 軍士를 일으켜
치양을 去勢키로 하는데..." [39]

"감찬은 숭敎師의 大量援軍을 保護하는 한便
치양을 去勢할 計策을 꾸미기 始作한다" [76]

54 1973.12.11
20:40-21:00
"大量援軍 毒殺 計略이 綻露나자
치양의 刺客과 精製는 必死의 血鬪를 벌인다" [77]
55 1973.12.12
20:40-21:00
"穆宗과 姜邯贊은 隱密히
强調의 軍士를 일으킬 勅旨를 내린다" [11]
56 1973.12.13
20:40-21:00
"김치양의 勢力은 遷推太后가 난 子息이
커가자 더욱 커지고 穆宗은 더욱 몸이 衰弱해진다" [31]
57 1973.12.14
20:40-21:00
"치양 一黨이 穆宗 寢室에까지 侵入, 脅迫하는 속에
감찬은 죽기를 決心하고 上監을 護衛한다" [78]
58 1973.12.15
20:40-21:00
"대량院君이 避身한 신혈사에서 감찬이 보낸
정신용 兄弟와 치양의 刺客들은 必死의 血鬪를 벌인다" [40]
59 1973.12.17
20:40-21:00
"上監의 密書를 받아쥔 强調는 當惑한다.
穆宗 곁에 있는 姜邯贊을 意識한 强調
대량院君을 擁立 새 調整을 꾸밀 野心으로 드디어..." [27]
60 1973.12.18
20:40-21:00
"强調의 軍士가 開京에 突入하니
宮中은 阿鼻叫喚 修羅場이 된다. 發惡이 極에 達한 치양은
遷推太后를 끌고 內戰으로 가다 감찬에게 체포당한다" [12]
61 1973.12.19
20:40-21:00
"亂離통에 穆宗과 遷推太后의 行方이 杳然해진다.
감찬의 집에 避身했던 大量援軍은..." [32]
62 1973.12.20
20:40-21:00
63 1973.12.21
20:40-21:00
"强調에 捏造된 誓約에 穆宗은
적성현 村家에서 恨많은 一生을 마친다" [23]
64 1973.12.22
20:40-21:00
"거란이 40萬 大軍을 일으켜 强調의 罪를 물으니" [79]
65 1973.12.23
20:40-21:00
"契丹의 외침에 大急해진 宮中에서는
玄宗과 감찬이 强調의 去勢를 뒤로 미루고
一致團結, 契丹과 싸울 채비를 차린다..." [80]
66 1973.12.25
20:40-21:00
"高麗는 마침내 顯宗의
斷案으로 强調를 行影島紅絲로 삼고
楊規 정신용 精製 兄弟를 홍화진으로 派兵..." [41]
67 1973.12.26
20:40-21:00
"姜邯贊은 情4品 禮部豺狼으로
삼아 거란과 一戰을 겨누는데..." [13]
68 1973.12.27
20:40-21:00
"거란과 一戰을 겨누는 강감찬" [81]
69 1973.12.28
20:50-21:10
"홍화진의 陽竅는 疊疊이 싸인 3萬의 敵陣을
12番이나 夜襲을 敢行, 13의 敵將과 5千 3百의
敵兵을 베어 契丹의 後進을 攪亂시키니..." [38]
70 1973.12.29
20:40-21:00?
21:00-21:20?
"삼수陣에서 契丹軍의 銳鋒을 꺾어
勝戰을 올렸다는 强調의 狀啓를
받고 玄宗은 기뻐한다" [82]
71 1974.01.01
20:40-21:00
"삼수陣에서 契丹의 銳鋒을 꺾고
2萬이 넘는 敵兵을 무찔렀다는
强調의 狀啓에 宮中은 歡喜에 싸인다" [35]
72 1974.01.02
20:40-21:00
"蕭排押이 이끄는 契丹의 決死隊에
强調가 생포되자 高麗軍은 허물어지고
調整은 虛脫感에 빠진다" [36]
73 1974.01.03
20:40-21:00
"契丹 陣營에서 强調는
歸順을 勸誘받으나 屈하지 않는다" [37]
74 1974.01.04
20:40-21:00
"감찬의 喪主를 들어 玄宗은 羅州로
播遷하고 텅빈 城內에 敗殘兵과 屍體만이..." [83]
75 1974.01.05
20:40-21:00
"羅州에 播遷한 玄宗은 契丹 成宗에게
親朝하기를 約束한다. 開京에 復位한 玄宗은
감찬을 서북면 行營都統使로 임명한다" [14]

"마지막回- 高麗에 재侵入한 契丹은
감찬의 구주대첩으로 十萬大君을 잃는다" [15]

- [84] 1974.01.07
20:40-21:00
"마침내 契丹軍은 開京에 到達한다.
羅州로 播遷한 玄宗은 斥和論에 골치를 앓고
텅빈 開京 城內엔 派잔病과 百姓들이" [28]
- 1974.01.08
20:40-21:00
"羅州로 播遷한 玄宗은 斥和論에
골치를 썩이는데 텅빈 開京 城內엔
屍體만이 櫛比하다" [85]
- 1974.01.09
20:40-21:00
"姜邯贊의 鬼誅大捷으로 考慮는 마침내
勝利를 거두게 되고 契丹軍은 물러간다" [6]

"玄宗은 姜邯贊을 서북면 行營都統使로 삼아
北方警備를 强化하다가 契丹의 再次 侵入을 當한다" [86]

各州 [ 編輯 ]

內容主 [ 編輯 ]

  1. 編成表上 實際로 確認되는 廻車들은 78회이나 마지막 3回의 編成表 줄거리를 보면 旣存 內容의 再放送으로 推定됨으로써 實質的으로 75回 放映으로 推算된다. 또한 1973年 12月 6日 東亞日報 編成表에서는 編成表象 確認되는 51回가 아닌 50回로 表記되어 있는데 이게 맞다면 總 74回가 된다.

參考週 [ 編輯 ]

  1. 《韓國放送社》. 1977.06. 584쪽.  
  2. 《TV 史劇의 變遷과 特性에 關한 硏究》. 1997. 132쪽.  
  3. 臺本은 總 4部로 나뉘어 있다. 例示로 1部만 引用한다. 各 部마다 몇回를 包括하는지 明示돼 있지 않다. “강감찬 1974 (1) (作家 : 이은성)” . 《國家記錄院》. 行政安全部. 1973.10.08 . 2023.10.03에 確認함 .  
  4. “강감찬 (人物票) (作家 : 이은성)” . 《國家記錄院》. 行政安全部. 1973.10.08 . 2023.10.03에 確認함 .  
  5.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0.09. 8面 . 2023.09.19에 確認함 .   : "高麗 成宗 12年 10月 契丹은 蕭遜寧 淨甁 17萬으로 高麗를 侵略..."
  6.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4.01.09. 6面 . 2023.09.25에 確認함 .   : "姜邯贊의 鬼誅大捷으로 考慮는 마침내 勝利를 거두게 되고 契丹軍은 물러간다"
  7.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0.10. 8面 . 2023.09.19에 確認함 .   : "삼한壁上功臣 躬進의 아들로 태어난 姜邯贊은 983年에 文科에 壯元及第한다"
  8.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0.11. 6面 . 2023.09.19에 確認함 .   : "御殿會議에서 文臣들은 講和論을 强力하게 主張하나 左補闕 姜邯贊과 種當 龍虎軍의 强調, 양규 等은 싸우자고 主張"
  9.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04.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遷推太后를 손아귀에 쥔 김치양에겐 대량院君이란 存在가 눈의 가시같다. 사수현에서 大量群 夫婦를 모시고 오던 감찬은..."
  10.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06.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아닌 밤中에 감찬을 불러들인 穆宗은 대량院君에 讓位할 뜻을 비치니..."
  11.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3.12.12.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穆宗과 姜邯贊은 隱密히 强調의 軍士를 일으킬 勅旨를 내린다"
  12. “TV프로” . 朝鮮日報. 1973.12.18.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强調의 軍士가 開京에 突入하니 宮中은 阿鼻叫喚 修羅場이 된다. 發惡이 極에 達한 치양은 遷推太后를 끌고 內戰으로 가다 감찬에게 체포당한다"
  13.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2.26.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姜邯贊은 情4品 禮部豺狼으로 삼아 거란과 一戰을 겨누는데..."
  14. “TV 프로” . 朝鮮日報. 1974.01.05. 6面 . 2023.09.25에 確認함 .   : "羅州에 播遷한 玄宗은 契丹 成宗에게 親朝하기를 約束한다. 開京에 復位한 玄宗은 감찬을 서북면 行營都統使로 임명한다"
  15.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4.01.05. 8面 . 2023.09.25에 確認함 .   : "마지막回- 高麗에 재侵入한 契丹은 감찬의 구주대첩으로 十萬大君을 잃는다"
  16.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0.29.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날로 時局은 어수선하고 강감찬 富者는 모여 앉아 歎息을 하는데..."
  17.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1.27. 6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强調에 眩惑당한 동생 中贊의 輕擧妄動을 指彈하는 감찬 宮中에선 太後의 指令으로..."
  18.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0.30.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成宗은 萬乘의 자리를 개녕軍에게 讓位할 뜻이다"
  19.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1.08.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成宗이 崩御하고 개령군이 卽位하여 高麗 7代 穆宗이 된다. 攝政을 맡은 遷推太后 가슴은 復讐와 野心에..."
  20.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15.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太后는 金致陽에게 右僕射 兼 管三司使의 벼슬을 내리니 高麗朝의 人事權과 財政權은 그의 손아귀에 잡힌다."
  21.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20.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金致陽과 不倫의 關係를 맺고 있는 母后의 醜惡한 光景을 目擊한 穆宗은 憤怒가 爆發, 칼을 빼어들고 천추전으로..."
  22. “TV프로” . 朝鮮日報. 1973.12.02.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다시 斧鉞을 메고 천추전으로 들어간 한언공. 늙은 몸을 바치기로 決心한 그 悽慘한 모습에 어린 목종의 가슴은 찢어질 듯하다."
  23. “텔레비존프로” . 東亞日報. 1973.12.21.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强調에 捏造된 誓約에 穆宗은 적성현 村家에서 恨많은 一生을 마친다"
  24.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06.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감찬의 집에 暫時 머문 大量援軍, 감찬 一行은 그의 氣槪있고 英敏한 모습에 欽慕와 尊敬을 보낸다. 成宗은 死境을 헤매고..."
  25.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02.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사수현의 대량院君과 원貨 젊은 夫婦는 가난 속에서도 마음을 依支하고 團欒하게 살아간다"
  26. “텔레비전” . 京鄕新聞. 1973.11.30. 6面 . 2023.09.20에 確認함 .   : "대량院君을 擁護하는 감찬의 집엔 不安과 緊張이 감도는데, 그날밤 치孃이 보낸 刺客이..."
  27. “TV프로” . 朝鮮日報. 1973.12.16.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上監의 密書를 받아쥔 强調는 當惑한다. 穆宗 곁에 있는 姜邯贊을 意識한 强調 대량院君을 擁立 새 調整을 꾸밀 野心으로 드디어..."
  28. “TV 프로” . 朝鮮日報. 1974.01.06. 6面 . 2023.09.25에 確認함 .   : "마침내 契丹軍은 開京에 到達한다. 羅州로 播遷한 玄宗은 斥和論에 골치를 앓고 텅빈 開京 城內엔 派잔病과 百姓들이"
  29.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1.01.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成宗의 寢所 萬寧殿 앞에서 소외당한 遷推太后는 憤痛을 터뜨린다"
  30.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12.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거란 使臣을 맞은 迎接節次로 아뢰는 姜邯贊에게 太后는 냉랭히 물러가라 외친다"
  31.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13.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김치양의 勢力은 遷推太后가 난 子息이 커가자 더욱 커지고 穆宗은 더욱 몸이 衰弱해진다"
  32. “TV프로” . 朝鮮日報. 1973.12.19.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亂離통에 穆宗과 遷推太后의 行方이 杳然해진다. 감찬의 집에 避身했던 大量援軍은..."
  33. “텔리비전” . 메일經濟. 1973.11.26.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穆宗非 遠征이 胞胎했다는 所聞이..."
  34. 장경순 (2015.04.26). “金宗瑞를 매섭게 꾸짖은 黃喜 政丞” . 초이스經濟 . 2023.09.20에 確認함 .   : "太宗役의 남성우는 1970年代의 유동근에 該當하는 俳優다. 굵직한 外貌와 부리부리한 눈초리, 무게感 있는 목소리가 君王의 카리스마에 제格이었다. 몇 年 앞선 드라마 ‘姜邯贊’에서는 거란 成宗의 40萬 侵略에 맞선 高麗軍 總司令官 强調로 登場했었다."
  35. “新正連休(新正連休) 텔리비전·라디오 프로” . 京鄕新聞. 1973.12.29.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삼수陣에서 契丹의 銳鋒을 꺾고 2萬이 넘는 敵兵을 무찔렀다는 强調의 狀啓에 宮中은 歡喜에 싸인다"
  36. “新正連休(新正連休) 텔리비전·라디오 프로” . 京鄕新聞. 1973.12.29.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蕭排押이 이끄는 契丹의 決死隊에 强調가 생포되자 高麗軍은 허물어지고 調整은 虛脫感에 빠진다"
  37. “新正連休(新正連休) 텔리비전·라디오 프로” . 京鄕新聞. 1973.12.29.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契丹 陣營에서 强調는 歸順을 勸誘받으나 屈하지 않는다"
  38. “TV프로” . 朝鮮日報. 1973.12.28.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홍화진의 陽竅는 疊疊이 싸인 3萬의 敵陣을 12番이나 夜襲을 敢行, 13의 敵將과 5千 3百의 敵兵을 베어 契丹의 後進을 攪亂시키니..."
  39.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2.09.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穆宗으로부터 隱密히 職牒을 받은 감찬은 정신용을 보내 숭敎師 大量援軍을 保護케 하고 한便으론 强調의 軍士를 일으켜 치양을 去勢키로 하는데..."
  40.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15.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대량院君이 避身한 신혈사에서 감찬이 보낸 정신용 兄弟와 치양의 刺客들은 必死의 血鬪를 벌인다"
  41. “TV프로” . 朝鮮日報. 1973.12.25.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高麗는 마침내 顯宗의 斷案으로 强調를 行影島紅絲로 삼고 楊規 정신용 精製 兄弟를 홍화진으로 派兵..."
  42.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0.20.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談判을 성공시킨 서희는 署經에 돌아와 成宗께 契丹 兆功勞를 名分삼아 撤軍하는 글安君을 따라 江東6株를 征伐할 것을 進言한다"
  43.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21.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어지러운 國事를 痛歎하면서 서희는 눈을 감는다. 천추전에선 太后와 金致陽이 泰然히 主演을 베풀고 穆宗은 寢食을 全廢하고 술로 날을 보낸다"
  44.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0.24.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兵部 改編에 强調가 物望에 오르자 그의 野心과 私組織을 꺼리는 서희는 反對한다"
  45.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18.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母后가 대량院君의 逐出陰謀를 꾸민다는 한언공의 諫言에 천추전의 납신 穆宗은 놀라운 場面을 보게 되는데..."
  46.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04.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刑틀을 準備하고 毒氣를 품은 遷推太后의 발치에서 怨恨과 痛歎어린 눈빛으로 上疏文도 울부짖던 한언공 大監은 끝내 숨을 거두니..."
  47.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0.27.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金致陽이 僧兵을 키우는 事實을 알고 서희를 爲始한 調整 忠臣들이 對策을 熟論한다."
  48.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0.08. 8面 . 2023.09.19에 確認함 .  
  49.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0.09. 8面 . 2023.09.19에 確認함 .  
  50.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0.13. 8面 . 2023.09.19에 確認함 .  
  51.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0.15. 8面 . 2023.09.19에 確認함 .   : "蕭遜寧의 强化封書를 놓고 朝廷은 또 다시 激論이 벌어진다"
  52.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0.16. 6面 . 2023.09.19에 確認함 .   : "서희는 마침내 莫重한 國運을 걸고 敵將과 講和談判을 벌이기 위해 敵陣으로 向한다"
  53. “TV프로” . 朝鮮日報. 1973.10.17. 8面 . 2023.09.19에 確認함 .   : "旗幟槍劍이 井然한 글安 陳永, 單身으로 敵將 蕭遜寧과 對坐한 서희는 팽팽한 威壓感을 無視하고, 땅은 決코 내놓을 수 없다는 決意를 보인다"
  54.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0.18. 6面 . 2023.09.20에 確認함 .   : "서희가 談判을 繼續하는 동안 調整은 焦燥와 緊張 속에 잠겨있다"
  55.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3.10.18. 6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契丹의 眞意를 看破한 서희는 會心의 微笑를 짓는다"
  56.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0.18. 6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契丹에 朝貢을 바치는데 妨害되는 女眞땅을 討伐, 國老를 開設해야 한다는 서희의 妙策에...
  57.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0.21.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강동6株를 얻어 城을 쌓고 邊方 國境警備를 단단히 對備하는 高麗의 總力態勢를 깨드리는 中國 一角의 陰謀는...."
  58.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0.23.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正月 보름 燃燈會에 變服하고 南京으로 오라는 김치양의 密書에 遷推太后는 그리움에 몸부림친다"
  59.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0.25.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60. 編成表에 依하면 忠州 肥料工場 竣工 報道特輯으로 因해서 10分 늦게 放映.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0.26.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61.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0.31. 6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心血社 김치양의 무리를 監視하던 護身은 發覺되어 칼을 맞고 쓰러진다"
  62.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03.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개령군의 登極 所聞에 김치양의 野心은 불타오르고 사수현 대량院君의 適所韓 姜邯贊은..."
  63.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09.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遷推太后 一角에서는 失意를 쫓기 위한 무리와 遷推太后가 金致陽을 推戴하고 朝廷大臣의 肅淸陰謀가 함께 始作되는데..."
  64.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10.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감찬과 서희를 去勢시키자는 太後의 請을 뿌리치는 穆宗. 감찬은 천추전으로 太后를 謁見하고..."
  65.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14.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마침내 太后는 金致陽을 闔門私人의 벼슬에 앉히고 그 무리로 宮中人士가 改編되니 감찬은 削奪官職을 當한다."
  66. “TV 프로” . 朝鮮日報. 1973.11.15.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감찬은 淡淡히 落鄕을 決心하는데 金致陽은 거드름을 피며 入闕한다. 門下侍中 한언공은 散髮하고 老軀를 끌며..."
  67.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3.11.22.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穆宗은 寢食을 全廢하고 술로 날을 지새우니...."
  68.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3.11.27.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强調에 眩惑당한 동생을 責望하는 강감찬"
  69. “텔레비전” . 京鄕新聞. 1973.11.29.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太后가 김치양의 아이를 孕胎했다는 놀라운 後門을 確認하고 姜邯贊은 등골이 오싹해진다."
  70. “TV프로” . 朝鮮日報. 1973.12.01.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숲속마다 치양의 心腹들이 潛伏한 낡은 崇高社. 대량院君은 치양의 속셈을 알아채자..."
  71.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2.01.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72.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05.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刑틀을 準備하고 毒氣를 품은 遷推太后의 발치에서 怨恨과 痛歎어린 눈빛으로 上疏文도 울부짖던 한언공 大監은 끝내 숨을 거두니..."
  73.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05.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한언공 大監이 숨을 거두자 하늘도 우는 듯 천둥이 친다 그밤으로 入闕하라는 勅旨가 감찬에게 내려지니..."
  74. 동아일보의 編成表에서는 51回가 아닌 50回라 表記한다.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07.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75.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07.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生母 遷推太后가 金致陽과 不倫의 씨를 孕胎한 기막힌 現實 속에 姜邯贊은..."
  76.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3.12.10.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감찬은 숭敎師의 大量援軍을 保護하는 한便 치孃을 去勢할 計策을 꾸미기 始作한다"
  77.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3.12.11.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大量援軍 毒殺 計略이 綻露나자 치양의 刺客과 精製는 必死의 血鬪를 벌인다."
  78. “텔레비존·라디오프로” . 東亞日報. 1973.12.14.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치양 一黨이 穆宗 寢室에까지 侵入, 脅迫하는 속에 감찬은 죽기를 決心하고 上監을 護衛한다"
  79. “텔레비존프로” . 東亞日報. 1973.12.22. 6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거란이 40萬 大軍을 일으켜 强調의 罪를 물으니"
  80. “TV프로” . 朝鮮日報. 1973.12.23.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契丹의 외침에 大急해진 宮中에서는 玄宗과 감찬이 强調의 去勢를 뒤로 미루고 一致團結, 契丹과 싸울 채비를 차린다..."
  81.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3.12.27. 8面 . 2023.09.20에 確認함 .   : "거란과 一戰을 겨누는 강감찬"
  82. “年末(年末) 텔리비전 프로” . 京鄕新聞. 1973.12.28. 8面 . 2023.09.25에 確認함 .   : "삼수陣에서 契丹軍의 銳鋒을 꺾어 勝戰을 올렸다는 强調의 狀啓를 받고 玄宗은 기뻐한다"
  83. “텔리비전” . 每日經濟. 1974.01.04. 8面 . 2023.09.25에 確認함 .   : "감찬의 喪主를 들어 玄宗은 羅州로 播遷하고 텅빈 城內에 敗殘兵과 屍體만이..."
  84. 1月 7日에서 9日까지의 放送은 모두 5日까지 放映한 廻車들의 줄거리가 反復된다. 參考用으로 編成表 內容을 덧붙이되 그後 放映은 再放映으로 看做하고 회차수에 包含시키지 않는다.
  85. “텔리비전” . 京鄕新聞. 1974.01.08. 6面 . 2023.09.25에 確認함 .   : "羅州로 播遷한 玄宗은 斥和論에 골치를 썩이는데 텅빈 開京 城內엔 屍體만이 櫛比하다"
  86. “텔레비존프로” . 東亞日報. 1974.01.09. 8面 . 2023.09.25에 確認함 .   : "玄宗은 姜邯贊을 서북면 行營都統使로 삼아 北方警備를 强化하다가 契丹의 再次 侵入을 當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