伽陀쿠라 시게나가
(
日本語
:
片倉重長
,
1585年
~
1659年
)는
아즈齒모모야마 時代
부터
에도 時代
前期까지의
武裝
이다.
센다이番
다테氏
의
家神
.
市로이시 伽陀쿠라가
第2代 堂主.
時로이시성
週.
伽陀쿠라 가게쓰나
의 아들. 元來 이름이
시게쓰나
(重綱)였으나
에도 幕府
第3代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의 後繼者
이에쓰나
(家綱)와 같은 이름字를 쓰는 것을 避해 시게나가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나다 노부시게
의 딸을 後室로 두었다. 子息은 親딸·技士(喜佐,
마쓰마에 야스히로
(
마쓰마에 요시히로
의 아들)의 否認)와 兩者·
伽陀쿠라 가게나가
(마쓰마에 야스히로의 아들)를 두었다. 伽陀쿠라氏 代代로 내려온 '
伽陀쿠라 孤注로'
라는 呼稱으로 불리기도 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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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年
부터 始作된
오사카 戰鬪
에 病席에 누은 父親 가게쓰나를 代身해 주군
다테 마사무네
를 따라 從軍했고, 敵將
고토 모토쓰구
를 戰士시키는 等의 功績을 세워 크게 名聲을 떨쳤다.
1615年
父親이 죽자 家門을 相續하였다. 아버지에 뒤지지 않는 지용(智勇)을 兼備한 名將으로, '鬼神 孤注로'라는 別名이 붙었다.
오사카 戰鬪에서 主君을 잃은
사나다 노부시게
의 家臣들을 保護했다. 特히 여름戰鬪에서, 決戰 前夜인 5月 6日 밤에 老父시게의 次男 多以下値를 비롯한 老父시게의 子息들을 救出하여, 伽陀쿠라 家門의 本據地 시라이시 城으로 데리고 가 그들을 길렀다. 시게나가는 後날 그中 한 名인 오우메를 後室로 맞아들였다. 또 다이하치(後날의
사나다 모리老父
)는 老父시게의 아들 中 唯一하게 사나다라는 性을 後世에 繼承시킬 수 있었다.
一說에는 오사카 戰鬪에서 시게나가가 奮戰하는 모습을 본 老父시게가 '이 사람이라면 子息들을 맡길 만 하다'라고 생각하여 伽陀쿠라 陣營에 화살에 便紙를 묶어 쏘아보내 婚姻關係를 맺을 것을 提議했다고 한다.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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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게나가의 어머니가 시게나가를 妊娠했을 當時, 主君 다테 마사무네는 이제 막 家門의 指導者가 되었을 뿐이라 아직 後繼者가 될 子息이 없었다. 이 때문에 아버지 가게쓰나는 '다테 家門에 後繼者가 誕生할 때까지는 伽陀쿠라 家門에 警査(慶事) 따위 있을 수 없다'며 아이가 태어나면 卽時 殺害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마사무네가 '그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으나 그런 생각은 그만두어주었으면 하네. 아이를 죽인다면 그대를 怨望할 것이야. 부디 부디 아이를 살려 주게'라고 便紙를 보내 시게나가를 求했다고 한다.
- 男子도 반하게 할 程度의 美少年였다고 한다. 實際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가 그를 쫓아다녔다는 이야기가 傳해진다(『가타쿠라 大隊旗』中에서 『2代 시게나가 年譜』에 이러한 記錄이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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