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굽타 王朝
는 西紀 6世紀에서 8世紀 사이에 印度 東部의
마가다
를 統治했던 王朝이다. 後굽타는 東部 말와 또는 마가다의 統治者로서
굽타 帝國
을 繼承했지만, 두 王朝를 連結하는 證據는 없다. 이들은 서로 다른 家門으로 推定된다.
"後굽타"는 統治者의 이름이 接尾辭 "-굽타"(아디트야세나의 亞프사드 碑文에 나오는 것처럼 後期 브라흐미 :
)로 끝났기 때문에 붙여진 名稱으로, 그들이 自身들을 굽타 帝國의 後繼者로 描寫하기 위해 이러한 이름을 使用했을 수 있다.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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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타 帝國
이 衰退한 後 後굽타 王朝가 뒤를 이어
마가다
의 統治者가 되었다.
王朝의 創始者인 크리슈나굽타의 딸은
마우카리 王朝
의 아디트야바르만 王子와 結婚했다고 傳해진다. 아디트야세나의 亞프사드 碑文에 따르면 크리슈나굽타의 孫子 지비타굽타는 히말라야 地域과
벵골
南西部에서 軍事 遠征을 遂行했다.
지비타굽타의 아들 쿠마라굽타의 治世 동안 王朝는 마우카리와 競爭을 벌였다. 쿠마라굽타는 554年에 마우카리 王 이샤나바르만을 물리치고
프라野가
에서 死亡했다. 그의 아들 다모다라굽타는 마우카리에게 逆轉敗를 當했다.
茶母다라굽타의 아들 마하세나굽타는
푸슈야부티 王朝
와 同盟을 맺었다. 그의 女同生은 統治者
아디티野바르다나
와 結婚했다. 그는
카마壘派
를 侵攻하고
수스티타바르만
을 擊破했다.
그러나 그는 以後 세 名의 侵略者들, 卽 마우카리 王
샤르바바르만
, 카마壘派 國王
수프라티스티他바르만
,
吐蕃
첸抛
송첸캄포
와 맞닥뜨렸다. 그의 家臣인
샤샨카
도 그를 버렸다(그리고 나중에 獨立된
가우다 王國
을 세웠다). 마우카리 王 샤르바바르만은 다모다라굽타를 물리치고 575年頃 마가다를 侵攻하여
우타르프라데시
全體의 統治者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4]
[5]
이러한 狀況에서 마하세나굽타는 强制로 마가다를 떠나
말와
로 待避했다. 그 後, 푸슈야부티 皇帝
하르샤
는 마가다에서 後굽타 統治를 復元했고, 그들은 하르샤의 봉신으로서 마가다를 統治했다.
하르샤가 죽은 後 後굽타 統治者 아디트야세나는 北쪽의
갠지스江
에서 南쪽의 초타나가르, 東쪽의 高마티江에서 西쪽의
벵골灣
까지 擴張되는 大規模 王國의 主權者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찰루키아
에게 敗北했다.
王朝의 마지막 統治者인 지비타굽타 2世는 西紀 750年頃 카나우지의 바르만 王朝의 野쇼바르만에 依해 敗北한 것으로 보인다.
歷代 君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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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後굽타 統治者는 다음과 같다:
- 니르派 스리 크리슈나굽타, r.
c.
490
-505 CE
- 데바 스리 하르샤굽타, r.
c.
505
-525 CE
- 스리 지비타굽타 1歲, r.
c.
525
-550 CE
- 스리 쿠마라굽타, r.
c.
550
-560 CE
- 스리 茶母다라굽타, r.
c.
560
-562 CE
- 스리 마하세나굽타, r.
c.
562
-601 CE
- 스리 마다바굽타, r.
c.
601
-655 CE (王妃: 슈리마티)
- 마하라자디라子 아디트야세나, r.
c.
655
-680 CE (王妃: 코나데비)
- 마하라자디라子 데바굽타, r.
c.
680
-700 CE (王妃: 카말라데비)
- 마하라자디라子 비슈누굽타 (王妃: 日子데비)
- 마하라자디라子 지비타굽타 2歲
자야푸라의 굽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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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世紀와 12世紀에 라키사라이구 周邊 地域을 統治했던 小王國은 굽타라는 이름을 使用했으며 以後에 살아남은 後굽타 系統으로 連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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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統治에 對한 證據는 1919年에 發見된 판초브(Panchob) 銅版 碑文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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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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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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