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기
(
1929年
4月 5日
~ )는
大韓民國
의
非轉向 長期囚
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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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忠淸南道
扶餘郡
南面 出身으로 이웃
瑞山郡
에서 農業學校를 다니다가 中退한 것이 最終 學歷이다.
韓國 戰爭
中
人民義勇軍
에 自願했다가
[1]
越北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 定着하였다. 품팔이꾼으로 賤待받던 홍명기는
朝鮮人民軍
占領地에서의 平等한 待遇에 感動하여 北朝鮮의 政治를 支持한 것으로 알려졌다.
[2]
工作員으로 南派되었다가
1962年
에 逮捕되어
國家保安法
으로 投獄되었다. 裁判廷에서 國選 辯護人이 義勇軍에 强制로 徵集되어 끌려간 것이라며 辯護해 주었으나 本人이 이 事實을 否認하고 無期懲役刑을 宣告받았다.
1999年
2月 25日
에 出獄할 때까지 約 37年 동안 收監 生活을 했다. 收監 中 轉向을 勸誘받았지만
조선로동당
黨員證 番號를 외우며 轉向을 拒否하였고 이 記憶을 되살려 後에 《
勞動新聞
》에 〈나의 黨員證 番號〉라는 詩를 發表하기도 하였다.
出監 이듬해인
2000年
에
6·15 南北 共同宣言
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送還되었다.
祖國統一上
을 받았고 새로 結婚하여
平壤
에 定着하였다. 監獄 生活을 素材로 한 手記와 詩를 發表하면서
核武器
保有 等
金正日
의 政策에 對한 支持를 表明했다.
參考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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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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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풀려나는 未轉向 長期囚들”
. 文化日報 (聯合뉴스 認容). 1999年 2月 22日
. 2008年 8月 28日에 確認함
.
- ↑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세次例의 面會- 非轉向長期囚 홍명기의 手記”. 朝鮮中央通信. 2001年 2月 28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