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덕
(咸世德,
1915年
5月 23日
[1]
~
1950年
6月 29日
)은
韓國
의 문학인,
劇作家
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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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川 江華郡
出生으로
全羅南道
木浦
와
仁川
에서 자랐다. 當時 有名한 劇作家이던
유치진
에게 師事한 뒤
1936年
短幕劇 戱曲인 〈山허구리〉를 《
朝鮮文學
》에 실으면서 登壇했다.
1939年 동아일보 主催 第2回 演劇大會에 參加 「동승(童僧)」을 公演하여 극연좌上(劇硏座賞)을 받았다. 以後 《
朝鮮日報
》 新春文藝에 〈해연(海燕)〉(1940)으로 入選하였고, <落花巖>,<五月醫아침>,<同語(冬魚)의 끝>,<서글픈 才能>,<심원의揷畵> 等을 發表하였다. 代表作으로 꼽히는 〈동승(童僧)〉李 높은 評價를 받는 等 文才가 뛰어난 劇作家로서 好評을 받았다. 〈동승〉의 원 題目은 主人公인 童子僧의 이름을 딴 〈道念(道念)〉으로,
1947年
發刊된 함세덕의 戱曲집 《동승》의 標題作이며, 映畫化 되기도 하였다.
作品의 傾向은 初期에는 柳致眞의 農村 背景 戱曲들의 影響을 받았고, 漸次 抒情的이고 浪漫的인 特性이 더해졌다. 木浦와 江華島의 港口에서 보낸 어린 時節의 影響으로 文壇 데뷔作인 〈山허구리〉 等 많은 作品의 舞臺가 바다나 섬, 漁村이라는 點도 獨特하다. 그러나
太平洋 戰爭
과 左右翼 葛藤, 越北으로 이어지는 政治的 激變 狀況에서 그의 作品 性向은 두어次例 急激한 變化를 겪게 된다.
함세덕은 日帝 末期에 代表的인 御用 演劇團體로 柳致眞이 主導한
현대극장
에 加擔하여, 飜案 戱曲 《黑警正(黑鯨亭)》(1941), 創作 戱曲 《에밀레鐘》(1942), 《南風》, 《黃海》, 《白夜》等을 連續 執筆했다. 歷史劇人 《에밀레鐘》에서는 新羅를 괴롭히는 唐나라와 友好的으로 도와주는 日本을 對比시키고 《黃海》에서는 志願兵制를 露骨的으로 宣傳하여, 이 時期에 執筆되거나 공연된 그의 作品에서는 모두 親日 軍國主義的 傾向이 分明히 드러난다.
光復 後
황철
과 함께 낙랑극회를 組織해 活動
[2]
하며 左翼 演劇 團體인
朝鮮演劇建設本部
,
朝鮮演劇同盟
에 參與하였다. 이 時期에는 初期의 寫實主義的인 作品 性向을 極大化하면서
社會主義的 寫實主義
를 具現한 作品인 《散炙》, 《己未年 3月 1日》, 《太白山脈》, 《고목》(1947年) 等을 發表했다. 이들은 모두
日帝强占期
동안의 獨立 運動을 左派的 觀點에서 描寫한 大作들이며, 理念性이 뚜렷하다.
韓國 戰爭
以前에 越北한 뒤 北朝鮮演劇同盟에 加擔하여
南韓
의 現實을 批判하는 作品을 쓰면서 活潑히 活動했다.
濟州 4·3 抗爭
을 素材로 한 《山사람들》(1949年),
李承晩
이 登場하는 諷刺 戱曲이자 그의 마지막 作品이 된 《(所謂) 大統領》(1950年)이 代表的이다.
韓國 戰爭이 勃發하자
朝鮮人民軍
從軍 作家로서 父母와 兄弟들이 살고 있는
서울
에 들어온 直後 事故로 死亡했다.
2002年
發表된
親日 文學인 42人 名單
과
2008年
發表된
民族問題硏究所의 친일인명사전 收錄豫定者 名單
에 包含되었다. 親日 作品 數는 《酋長 移徙베라》(1942) 等 戱曲 4篇을 包含하여 總 6篇이다.
[3]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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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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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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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환 (1999). “새 資料로 본 함세덕의 家計와 文學 - 發掘 戱曲 '碧空'과 解放期 公演 資料를 中心으로”. 《황해문화》.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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