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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匈奴 戰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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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匈奴 戰爭

張騫 을 서역으로 派遣하는 한무제
날짜 紀元前 133年 ~ 紀元後 89年
場所
中央아시아 및 北아시아 一帶
結果 漢나라의 決定的 勝利
交戰國
匈奴 帝國

한나라
新나라 ( 9~23 )
韓의 屬國

指揮官
軍신선우
이致死線禹
오유선禹
誤思慮선우
저諸侯선우
질지골도후선우  
等等
傳한 無題
위廳
두고
霍去病
伊陵   항복
李廣利   항복
두헌
班超
호한야선우
等等

한-匈奴 戰爭 (漢-匈奴戰爭)은 紀元前 133年 부터 紀元後 89年 까지 한나라 가 北方의 匈奴 와 벌인 戰爭이다. 紀元前 200年 백登山 包圍戰 에서 한告祭 가 匈奴의 冒頓單于 에게 敗하여 漢 高祖 匈奴 는 서로 兄弟 關係의 和親을 맺었었다. 紀元前 141年 에 登極한 한무제 는 匈奴와의 外交를 破棄하고 攻擊的 態勢를 取했다. 紀元前 139年 壯健을 西域 月支國 에 派遣한 한 武帝 緋緞길 을 開拓한 後, 오르도스高原 , 河西州랑 , 고비 沙漠 方面으로 大規模의 遠征軍을 派遣했고, 勝利를 거두어 이 一帶에서 匈奴를 逐出했다.

以後 恨의 攻擊은 西域 으로 向해 累卵 을 비롯한 中央아시아의 여러 小國들에 對한 支配權을 匈奴에게서 빼앗았고, 東쪽으로도 古朝鮮 을 비롯한 匈奴에 友好的인 小國들을 滅하거나 屬國化했다. 紀元後 58年 第1次 匈奴 分裂 때 洞匈奴 호한야선우 가 韓에게 도움을 要請하여 徐匈奴를 滅함으로써 韓銀 匈奴에 對한 優位를 確保하였다. 第2次 分裂 以後인 89年 恨을 敵對하던 北匈奴 가 滅亡함으로써 220年間의 恨흉戰爭은 恨의 勝利로 끝났다. 以後 匈奴는 過去 冒頓單于 時期의 榮光을 다시는 回復하지 못했고, 새로운 遊牧帝國 선비 에게 大草原을 빼앗기고 오르도스 地域의 小國으로 轉落한다.

南匈奴 는 韓의 屬國이 되어 120餘年을 더 持續하면서 抵抗을 試圖했으나 後漢末 支持始蹴後선우 曹操 에게 大敗하고 216年 陰曆 7月 마지막 鮮于 濠洲千 이 曹操에게 降伏, 위나라 首都 業城에 入闕하여 官職을 下賜받음으로써 國家로서의 匈奴는 消滅한다. 以後 曹操는 匈奴를 五部로 整理하고 濠洲千의 叔父 巨碑 와 조카 遊標 가 다스리게 했다.

같이 보기 [ 編輯 ]

  1. Graff 2002 , 40쪽.
  2. Graff 2002 , 39, 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