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홀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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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
身上情報
出生
아우크스부르크
死亡
런던
職業 畫家 , 版畫家 , 그래픽 藝術家 , 揷畵가 , 肖像畫가 , 데생畫가 , 藏書票 作家 , 視覺 藝術家
思潮 獨逸 르네상스 , 北方 르네상스
父母 Hans Holbein the Elder (簿)
子女 Philipp Holbein I
主要 作品
The Ambassadors , Madonna enthroned with child and two figures , 다름슈타트 마돈나 , 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
影響
Hans Holbein the Elder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 1497年 ~ 1543年 )은 獨逸 畫家 이다. 아우크스부르크 에서 出生하였으며, 畫家였던 아버지 로부터 큰 感化를 받으며 자랐다. 헨리 8歲 의 宮廷 畫家로 特히, 肖像畫에 能하여 神聖한 것과 世俗的인 것이 同等하게 그려진 宗敎 敵人 氣風 等으로 인해 獨逸 最大의 畫家로 일컫는다. 作品으로는 <헨리 8歲>, <모레테 上>, <에라스무스>, <죽음의 無挑>, <大使들> 等이 있다.

生涯 [ 編輯 ]

獨逸 르네상스 繪畫의 最後를 裝飾하는 畫家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出生하였다. 同名인 父親도 當時의 重要한 畫家였고 아들인 홀바인度 처음에는 父親 아래서 배웠으며, 1515年 當時 유럽의 文化的 中心地였던 바젤 에 가서 그곳에서 畫家의 地位를 確立하였다. 이곳에서 1526年까지 머문 後에 約 2年間을 런던 에 滯在하였다가 다시 바젤로 돌아왔다(1526∼1528). 이 第1次 런던 滯在中에 이미 肖像畫家로서의 力量을 인정받고 있던 그는 再次 런던 行次를 決意, 一旦 故鄕인 아우크스부르크에 갔다가 1532年에 런던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安住하여 1543年에 死亡하였다. 그 동안의 1536年에는 헨리 8歲의 宮廷畫家에 任命된 적도 있다.

評價 [ 編輯 ]

홀바인은 유럽에 있어서 古今을 통하여 最大의 肖像畫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으며, 뒤러 크라나흐 가 代表하는 獨逸 르네상스의 빛나는 肖像畫 藝術의 傳統을 그 頂點에까지 끌어 올린 功績은 매우 크다. 모델에 對한 冷靜하고 銳利한 觀察과 正確하고 克明을 다한 細部 描寫, 明快한 畵面 構成, 나아가서 作品을 單純한 肖像畫에 그치지 않고 人物의 性格에 對한 透徹한 理解力 等을 그의 特色으로 하는 홀바인의 藝術은, 假令 <로트르담의 에라스무스>(1523年, 파리 루브르 美術館 所長)와 <게오르크 肖像>(1532年, 베를린 다름미술관)에 그 眞價를 찾아볼 수가 있다.

主要 作品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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