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州 정토사지 弘法國師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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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州 정토사지 弘法國師塔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
(Stupa of State Preceptor Hongbeop from Jeongtosa Temple Site, Chungju)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寶
種目 國寶 第102號
( 1962年 12月 20日 指定)
數量 1期
時代 高麗 ( 1017年 )
所有 國有
住所 서울特別市 龍山區 西氷庫로 137,
國立中央博物館 (용산동6街)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忠州 정토사지 弘法國師塔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은 高麗 時代 에 만들어진 僧塔 이다. 新羅 末·高麗 初의 僧侶로 局社(國師)를 지낸 弘法(弘法)의 僧塔이며, 塔號(塔號)는 實狀(實相)이다. 1962年 12月 20日 大韓民國의 國寶 第102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高麗 穆宗 때의 僧侶인 弘法國師 의 塔으로, 忠淸北道 中原郡 (現 忠州市 )의 정토사 옛터에 있던 것을 1915年에 景福宮 으로 옮겨 왔으며, 現在는 國立中央博物館 에 所藏되어 있다. 弘法國史는 統一新羅 末부터 高麗 初에 活躍하였던 有名한 僧侶로서 唐나라에서 遂行하고 돌아와 선(禪)을 流行시켰으며, 高麗 成宗 때 大禪師(大禪師)를 거쳐 穆宗 때 局社(國師)의 稱號를 받았다.

基壇(基壇)은 네모난 바닥돌을 깐 後에 8脚의 아래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엎어놓은 蓮꽃무늬가 새겨진 높직한 괴임을 두어 가운데받침돌을 올린 後 다시 윗받침돌을 얹어 놓은 모습이다.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容易 섬세하게 彫刻되어 있고, 윗받침돌에는 아래와 對稱되는 솟은 蓮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塔에서 가장 特徵的인 것은 塔身(塔身)의 몸돌로, 둥근 공模樣을 하고 있다. 몸돌에는 공을 가로·세로로 묶은 듯한 十(十)字形의 무늬가 彫刻되어 있으며, 그 交叉點에는 꽃무늬를 두어 裝飾하고 있다. 지붕돌은 별다른 裝飾은 없으나 여덟 곳의 모서리마다 꽃조각을 둔 것이 눈에 띄는데, 아쉽게도 大部分이 없어져 버렸다. 삿갓 模樣으로 깊숙이 패인 지붕돌 밑面에는 飛天像(飛天像)李 彫刻되어 있다.

全體的인 構成에서는 8角形을 基本으로 하는 新羅의 塔形式을 잃지 않으면서 一部分에서 새로운 試圖를 보여준 作品으로, 製作年代는 高麗 顯宗 8年(1017)이다. 공模樣의 몸돌로 인해 ‘알毒’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 塔은 새로운 技法을 보여주는 高麗時代의 代表的인 塔으로, 섬세한 彫刻과 단조로운 무늬가 잘 調和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現地 案內文 [ 編輯 ]

高麗時代 高僧인 弘法國師의 廟塔으로 높이는 2.55m이며 1017年(高麗 顯宗 8年)에 造成된 것으로 推測된다. 元來 玉女峯 아래 남사면에 있었으며, 1915年頃 日本人들에 依해 國立中央博物館(當時 朝鮮總督府)으로 옮겨졌다. 原位置에는 現在도 址臺石 等 石物이 남아 있으며 마을사람들은 이 廟塔을 '알毒'으로 불렀다고 한다.

材料는 花崗石으로 八角원당의 基本形을 잃지 않으면서 部分的으로 變化를 加味한 作品이다. 8脚의 址臺石위에 福連席을 얹었고, 8角 中臺石 各 面에는 高麗時代 特有의 方形 안상 속에 운룡문을 섬세하게 彫刻하였다. 相對石은 單葉의 蓮花紋 內部에 꽃文樣이 裝飾되어 있다.

塔身은 이 不渡에서 가장 特徵있는 部分으로 願求刑을 이루며, 2가닥의 陽刻線을 上下·左右로 配置하여 單調로운 塔身에 變化를 주었다. 屋蓋石에는 8角 귀퉁이에 수막새처럼 생긴 귀꽃이 남아있다. 願求刑 塔新婦의 形態가 注目되는 作品이다.

하천리 住民들이 積極的인 還收運動을 벌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代身 實物 크기로 模型을 製作하여 2005年 12月 現在의 位置에 安置하였다. [1]

寫眞 [ 編輯 ]

各州 [ 編輯 ]

  1.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現地 案內文 認容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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