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계순
(池季順, 1918年 7月 3日
(
1918-07-03
)
~ 1990年 6月 16日
(
1990-06-16
)
)은 大韓民國의
俳優
兼
演劇
人이子
映畫
人이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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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鏡南道
咸興
에서 演劇俳優 지두한(親庭아버지)의 膝下 1男 4女 中 3女(셋째딸)로 出生하여 지난날 한때
忠淸北道
忠州
에서 暫時 幼兒期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後
京城府
에서 成長하였는데 그女의 아버지 지두한 先生을 主要 中心으로써 1916年 組織되어 13年間 新派劇을 이끌어오던 취성좌가 1929年 12月에 解散되고, 그 主軸 人物들이 모여 〈朝鮮演劇史〉를 創團하는데, 〈朝鮮演劇史〉는 獨唱, 寸劇, 合唱 等 多彩로운 레파토리를 上演하던 極端으로 有名하였으며 지계순 그女는 1931年 演劇俳優 첫 데뷔하였고 지계순 3姊妹는 1936年 極端(朝鮮演劇史)李 解散할 때까지 이 劇團에서 몸담았다. 姊妹는 人氣 德에 《모던 販賣術》(지계순 노래), 《靑春 問答》(첫째언니 지최순 노래), 《結婚 逃避》(둘째언니 지경순 노래) 等의 콩트
音盤
을 錄音하기도 하고, 實際 姊妹가 同時에 한
라디오 드라마
에 姊妹 役으로 캐스팅되기도 하였다. 1936年 朝鮮演劇史가 解散되고 나서는 《동양극장》에 入團하여 活動하다가, 1939年 〈考慮映畫協會〉가 組織한 極端인 〈고협〉으로 자리를 옮겨 映畫와 演劇 活動을 竝行하며, 1940年에는 國民政府 時代 中華民國 大陸 本土
허베이
性
베이핑(北京)
,
톈진(天津)
으로 演劇 公演을 떠나기도 한다. 그 後 1945年 日帝 强占期 조선국
京城府
(서울)에서 8·15(光復)를 目睹하였으며 1950年
韓國 戰爭
때 夫君(夫君)을 北傀軍의 손에 잃는 슬픔을 겪었고 그 以後, 1954年 全昌根,
최남현
等이 主要敵으로 主軸이 된 劇團 〈民藝〉에 몸담고 1955年 演劇 《白癡 아다다》, 1956年 映畫 《白癡 아다다》에 出演하였다. 그 以後 1988年 映畫 《壁속의 夫人》에 이르기까지 多數의 映畫에서 助演 및 端役을 하는 한便,
演劇
舞臺에도 繼續 머물며 1969年 演劇 《釋迦》에서의 好演으로써 好評을 받기도 한다. 子女가 없었던 그女는 250餘篇의 映畫에 出演하기도 하였으며 1990年 6月 16日 享年 73歲로 下世하였다.
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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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演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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演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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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年 《白癡 아다다》
- 1969年 《釋迦》
- 1980年 《봄봄봄 밤밤밤》
映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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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年 《白癡 아다다》
- 1960年 《哀愁에 젖은 土曜日》
- 1961年 《舍廊房 손님과 어머니》
- 1961年 《一片丹心》
- 1962年 《聖雄 李舜臣》
- 1967年 《막車로 온 손님들》
- 1968年 《울고 넘는 朴達재》
- 1969年 《사나이 유디티》
- 1970年 《悲運의 王妃》
- 1970年 《탑골 아씨》
- 1973年 《또순이와 갑순이》
- 1974年 《回想》
- 1984年 《고래사냥》
- 1988年 《壁속의 否認》
- 1989年 《새벽을 깨우리로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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製作 作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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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畫 小品 監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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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年 映畫 《또순이와 갑순이》
- 1974年 映畫 《回想》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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