兆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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兆쇼인 ( 長勝院 ( ちょうしょういん ) , 덴分 17年 ( 1548年 ) - 겐나 5年 12月 6日 ( 1620年 1月 10日 ) ) 은 센고쿠 時代부터 에도 時代에 걸쳐 살은 女性이다. 에도 幕府 初代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側室이다. 모노노베性 나加味氏 나加味 요시히데의 딸이다. 通稱 오코챠(於古茶), 오만老카打(於万の方), 코토쿠노츠보네(小督局) 이다. 流寓키 히데야스 의 生母이다.

生涯 [ 編輯 ]

오만老카打 誕生地 (아이치縣 緇流視 소支持)

덴分 17年 ( 1548年 ), 미카와國 치리後메이眞 의 死因(社人) 나加味 요시히데 (詩磨耗카미)의 딸로 태어났다. 이름은 萬(万) , 오코챠(於古茶) , 마츠(松), 키쿠코(菊子), 오코만(於故?)으로 傳해진다. 水癌見聞錄에 收錄되어 있는 혼다 시게츠구 書信에는 "오코챠(おこちゃ)"라고 쓰인 것이 보이므로, 當時 혼다 時게츠區에게는 "오코챠"라고 불린 것으로 보인다. 또, 『緇流示唆(知立市史)』에서는 만의 어머니를 미즈노 타다마사 의 딸로, 誤다이노카打 의 外조카로 쓰여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의 情實 츠키야마道노 의 오쿠조츄 中에서 이에야스 의 周旋을 받아 오기이 (後의 流寓키 히데야스 )를 낳았다고 하는데, 이에야스 가 나加味氏를 臣下로 삼았을 때, 쵸쇼인에게 섬길 것을 約束하게 하고, 겐키 3年에 하마마츠性 에서 섬기며 誤記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때 雙둥이였다고 하며, 흔히 나加味 사다치카 가 다른 雙둥이라고도 한다. 緇流 神社 에는 쵸쇼인이 사다치카 의 妖態를 걱정하여 보낸 便紙가 남아 있다.

이에야스 의 情實 츠키야마道노 는 쵸쇼인이 이에야스 의 아이를 갖는 것에 對해 承認하지 않았기 때문에 쵸쇼인은 하마마츠性 內에서 退去당했다고 한다. 그것은 定處로서의 權限이었다. 定處는 別處나 妾으로서 承諾할 수 있는 權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츠키야마道노 는 쵸쇼인을 이에야스 의 妾으로 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럼에도 妊娠했기 때문에, 뇨보슈로부터 追放한 것이다. 그것이 에도 時代에 이르러 아내의 嫉妬 等이라고 하는, 縮小된 理解가 되고 있다. 히데야스를 妊娠한 쵸쇼인은 重臣 혼다 시게츠구 의 配慮로 出産 하였다. 城 안에서 追放되었다는 것은 태어날 아이를 이에야스 本人의 아이로 認定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덴쇼 12年 ( 1584年 ), 11歲의 오기이마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의 養子가 되어 나중에 元服 하고 히데야스 로 改名하였다. 히데야스 流寓키 하루모토 의 養女 에도 츠루코 와 結婚해 데릴사위로 乳牛키씨를 이었다. 세키가하라 戰鬪 後에는 히데야스 키타노쇼性 의 성주가 되었으므로, 쵸쇼인도 이에 同行한다. 게이初 12年 ( 1607年 ), 히데야스 가 키타노쇼에서 急死하자, 이에야스 의 許諾 없이 出嫁했지만, 責望은 없었다.

겐나 5年 ( 1619年 ), 72歲의 나이로 키타노쇼에서 死亡하여, 코겐지에 묻혔다. 에이헤이地에서 奔汨하였다. 葬禮 市의 誡命은 長勝院松室妙載大姉이다.

나加味氏 [ 編輯 ]

히데야스 의 後孫인 에치젠 마츠다이라가 후쿠이番 을 비롯한 各 다이묘 家門에서는 書類(庶流)는 쵸쇼인에 더해 나加味氏를 自處하는 境遇가 있다. 또한 가신단 中에 쵸쇼인의 連戚人 나가미씨가 여럿 存在한다. 나加味 요시카츠, 나加味 요시츠구, 나加味 요시노 等이 있다. 그 外 마찬가지로 후쿠이番과 關聯된 나加味 民部 (마츠다이라 民部) 가 있다.

쵸쇼인이 登場하는 作品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