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신
(趙基信,
1892年
9月 13日
~
1972年
5月 28日
)은
大韓民國
의
獨立運動家
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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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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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畿道
强化
에서 出生한 그는 1919年 3月 18日을 期하여 京畿道 江華郡
강화면
不내리에서 姑從四寸 兄
유봉진
(劉鳳鎭)·姑從四寸 男동생
유희철
(劉熙哲) 等과 함께 公募, 獨立 萬歲 示威 運動을 主導하여 수많은 群衆들 앞에서
太極旗
(太極旗)를 흔들고 獨立 萬歲 示威를 絶叫 誘導하며 場터에서 場꾼들의 示威 參與를 促求하던 中 日警에 被逮되었지만 이에 刺戟이 되면서 萬餘 名의 示威群衆이 그의 釋放을 要求하며 邑內를 가로질러 示威 行進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19年 12月 18日을 期하여 京城地方法院에서 所謂 保安法 違反으로 笞刑(笞刑) 90度를 받았고 釋放되었다.
그 後에도 그는 日帝에 抵抗하면서 獨立을 위해 活動을 繼續하였고 光復 以後
韓國獨立黨
에 黨員으로 몸담은 後 1969年
韓國獨立黨
을 脫黨하였다.
以外 履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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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
韓國獨立黨
監察委員(1946年~1949年)
- 前
韓國獨立黨
常任委員(1949年~1956年)
- 前
韓國獨立黨
前任委員(1956年~1969年)
事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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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 政府에서는 故人의 功勳을 기리고자 1993年 大韓民國 大統領 表彰狀을 追敍하였다.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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