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報司 言論 테러 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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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報司 言論 테러 事件 1988年 8月 6日 大韓民國 陸軍 情報司令部 所屬 軍人 4名이 中央經濟新聞 社會部長 오홍근 記者에게 서울特別市 江南區 淸潭洞 所在 自宅 아파트 앞에서 凶器로 傷害를 입힌 事件이다. 오홍근 테러 事件 , 情報司 膾칼 테러 事件 等으로 불린다. [1]

背景 [ 編輯 ]

中央日報 》의 姊妹誌인 《 中央經濟新聞 》 社會部長인 오홍근은 [週 1] 1988年 3月 復刊한 《 월간중앙 》에 固定 칼럼 〈오홍근이 본 社會〉를 揭載한 4月 末부터 會社와 집에서 여러 次例 脅迫 電話를 받았다. 오홍근은 1988年 8月號 《월간중앙》에 寄稿한 칼럼 〈淸算해야 할 軍事文化〉를 통해 第2次 司法 波動 을 둘러싼 노태우 政府 의 態度를 軍事文化로 指摘하며 批判하였는데, 이 뒤로 中央經濟新聞에 抗議便紙가 오면서 住所와 身元을 確認하는 電話가 집으로 걸려오기도 하였다. [2]

經過 [ 編輯 ]

1988年 8月 6日 아침 7時 20~30分頃 청담동 所在 自宅인 삼익아파트에서 出勤하기 위해 택시를 잡고 있었던 오홍근을 怪漢들이 가로막고, "對共에서 調査할 것이 있다"며 붙잡고 길이 25cm의 칼로 왼쪽 허벅지를 찔렀다. 오홍근은 허벅지에 길이 34cm, 깊이 3~4cm의 자상 等 全治 3週 以上의 重傷을 입고 病院에 入院하였다. [3]

搜査 [ 編輯 ]

警察은 記事 內容에 不滿을 품은 이들의 請負暴行을 念頭하고 搜査하였으며, 아파트 警備員의 證言으로 犯人들의 車輛이 陸軍 情報司令部 所屬임을 밝혀냈다. 車輛 運行 記錄을 두고 搜査가 踏步狀態에 빠지자 匿名의 提報者가 犯人들의 人的事項을 陸軍犯罪搜査團 에 提報하였으며, 이에 따라 陸軍犯罪搜査團은 陸軍情報司 박철수 少領과 김웅집, 이우일, 남정성 下士 等 4名을 連行하고 犯行事實을 自白받았다. 國防部의 搜査 結果 發表에도 不拘하고 犯行 現場에 追加 人員이 있었다는 事實과 將星級 人員의 連累 情況이 드러나면서 疑惑이 擴散되자 政治權에서 國政調査 可能性을 提起하였고, 이에 搜査가 擴大되었다.

國防部는 8月 30日 將星級 現役 軍人 2名이 介入된 組織的이고 計劃的인 테러였다는 最終 搜査 結果를 發表하였다. 國防部는 이 發表에서 國軍情報司令部 第701部隊長 이규홍 准將이 "惡意的인 軍 關聯 記事를 함부로 쓰면 報復당한다는 警覺心을 줘야 한다"며 박철수 少領, 安 某 大尉 等 部隊院 5名에게 犯行을 指示했다고 밝혔다. 또한 情報司令部 參謀長 권기대 准將은 犯行에 使用된 車輛 運行記錄을 없애라고 指示하였으며, 이진백 情報司令官은 이에 對한 報告를 받고도 默認하였다. [4]

裁判 [ 編輯 ]

軍 檢察은 이규홍 准將과 박철수 少領, 안選好 大尉를 拘束 起訴하고 나머지를 不拘束 起訴하였다. 9月 29日 첫 公判에서 이 准將과 朴 少領은 各各 懲役 3年, 安 大尉는 懲役 2年을 求刑받았다. 그러나 10月 10日 陸軍普通軍事法院 審判部는 "私利私慾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고 젊음을 몸담아 온 軍을 아끼고자 한 單純한 衷情"이라는 事由를 들어 이 准將과 朴 少領에게 各各 懲役 1年과 執行猶豫 2年, 安 大尉에게 宣告猶豫를 判決했다. 이에 中央日報 勞動組合은 聲明을 내고 批判하였으며, 民辯 은 이는 言論에 對한 第2의 테러行爲라고 批判하였다. [4]

陸軍本部 高等軍事法院 은 12月 28日에 抗訴審 宣告公判에서 原審을 깨고 宣告猶豫 判決을 내리고, [5] 安 大尉에 對한 檢察의 抗訴를 棄却했으며 判決은 1989年 1月 12日子로 確定되었다. 軍은 이진백 情報司令官과 권기대 准將을 豫編措置하였다.

2007年 國防部 過去事眞相糾明委員會 는 '新軍部 言論統制 事件 調査結果 報告書'에서 政府의 公開 謝過를 勸告하였으나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3]

各州 [ 編輯 ]

內容主 [ 編輯 ]

  1. 中央經濟新聞은 테러 事件 사흘 後인 8月 9日에 公式 創刊되었으며, 事件 發生 時點에 오홍근은 中央經濟新聞 創刊을 準備하기 위해 中央日報로부터 派遣을 나온 狀態였다.

參照週 [ 編輯 ]

  1. 이충원 (2022年 3月 9日). ' 情報司 테러' 被害者…오홍근 初代 國政弘報處長 別世” . 《 聯合뉴스 . 2024年 3月 16日에 確認함 .  
  2. “中央經濟 社會部長 出勤길 被襲” . 《 中央日報 》. 1988年 8月 8日 . 2024年 3月 16日에 確認함 .  
  3. 유설희 (2018年 8月 1日). ““30年 前이나 只今이나, 軍隊가 國民 무서운 줄 몰라”” . 《 京鄕新聞 . 2024年 3月 16日에 確認함 .  
  4. 김성후 (2008年 11月 26日). “軍文化 批判 칼럼에 憤慨…大路邊서 칼부림 '報復 ' . 《 한국기자협회 기자협회보 . 2024年 3月 16日에 確認함 .  
  5. “이규홍·박철수 피고|원심 낮춰 宣告 猶豫” . 《 中央日報 》. 1988年 12月 28日 . 2024年 3月 16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