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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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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권 (張豪權, 1949年 5月 14日 ~)은 大韓民國의 社會 運動家· 政治人 ·言論人· 企業家 ·出版人·市民社會團體人이다. 現在 새로운未來 拷問이다.

生涯 [ 編輯 ]

1968年 이화여자대학교 師範大學 附屬高等學校 卒業 하였다. 그리고 같은 1968年 軍에 入隊하여 그 後 滿期 轉役하였다. 軍服務 中 베트남 戰爭 에 參戰하기도 하였다. 1973年 新民黨 黨務委員을 暫時 지내다가 같은 해(1973年)에 脫黨한 그는 2年 後 신직수 部長이 第4共和國 時代의 中央情報部 部長 이었던 1975年 8月 17日 , 아버지 장준하 가 事故死를 當한 뒤 아버지의 죽음의 祕密을 밝히기 위해 東奔西走했다. 1976年 4月 19日 , 백기완 이 運營하는 《 白凡 思想硏究所》에 들러 아버지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聲明書를 作成했다. [1] 1975年 8月 17日 , 장준하 事後 1976年 11月에서부터 於焉 27年間 싱가포르 를 비롯한 海外 國家 逃避 生活을 해야 했고 2003年 4月 에 歸國하였다. [1] 싱가포르 韓人僑民回 副會長 等을 歷任하였고, 2003年 4月 에 歸國한 그는 2005年 3月 1日 , 月刊雜誌 인터넷 《 思想界 》를 復刊하여 代表理事에 就任하였다.

2007年 1月 1日 , 《사상계 종이冊》을 復刊하였다. [2] 2007年 1月 25日 記者會見에서 保守主義를 無視한 進步主義의 獨善的 性向을 指摘하고 아름다운 名分도 獨善으로 치달아서는 안 되며 保守主義도 代案 提示 없이 進步主義에 삿대질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3] 따뜻한 進步, 따뜻한 保守를 標榜해야 한다고 發表하였다. [3]

2007年 11月, 《 高句麗 文化硏究會》가 出帆하자 理事長 職에 推戴되었던 적이 있었다. [4]

2008年 3月 , 第18代 國會議員 總選擧 서울特別市 東大門區 甲 地域區 記號 第8番 候補者로 無所屬 總選 候補에 出馬하였으나 落選하였다. [5] [6]

家計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張俊河 先生 아들 장호권氏의 崎嶇한 人生 京鄕新聞 2008年 1月 23日子
  2. '사상계' 37年 만에 8月 종이冊 復刊 聯合뉴스 2007年 1月 25日子
  3. "現在 問題는 保守 無視하는 進步의 獨善" 文化日報 2007年 1月 25日子
  4. 高句麗文化硏究會 出帆式 뉴시스 2007年 11月 29字
  5. “18代 總選 人物情報 - 장호권” . 2011年 1月 31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10月 31日에 確認함 .  
  6. 故장준하 先生 長男 好權氏 東大門甲 出馬 聯合뉴스 2008-03-18字 記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