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民國 이라크 平和·再建 師團
(
英語
:
RoK Joint Support Group for the Iraq
, 大韓民國 伊拉克 平和·再建 師團, 象徵名稱 :
자이툰部隊
(
英語
:
Zaytun Division
,
쿠르드語
:
Tipa Zeytune
, Zaytun 部隊))은 平和 維持와
아르빌
의 警備 및 再建設을 겸하기 위해
이라크
에 派兵되어
2004年
2月 23日
부터
2008年
12月 20日
까지 活動했던
大韓民國 陸軍
의 民事部臺이다.
자이툰(
아랍語
:
?????
)은
아랍語
로
올리브
를 뜻하며, 이는
平和
를 象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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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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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韓民國은 2003年 4月 2日 國會는
國軍部隊의 이라크戰爭 派遣 同意案
을 通過시켰다.
美國 聯邦 政府
는 韓國에 2003年 9月, 戰爭으로 破壞된 國家를 再建한다는 目的下에 더 많은 軍을 派兵해 달라고 要請하였다. 要請을 받아들인 大韓民國 政府는 2004年 2月 23日에 平和 維持와
아르빌
의 警備 및 再建設을 겸하는 任務로 자이툰部隊를 3,800餘名 假量의
社團
으로서 創設되어
이라크 多國籍軍
의 一員으로서 派兵하였다.
大韓民國에 敵對的인 아랍 抵抗團體에서는 이 部隊를 이라크에서 撤收할 것을 要請하였다. 그렇지만, 전
美國의 國防部 長官
도널드 럼즈펠드
이 2004年 10月 10日 이 部隊를 訪問하여 激勵하였고,
大韓民國의 大統領
盧武鉉
도 12月 8日 이 部隊를 電擊 訪問하였다.
大韓民國 時間으로 2007年 5月 19日 午後 6時 45分頃(午後 1時45分 現地時間) 자이툰部隊 오모 中尉가 營內에 있는 자이툰病院 醫務隊 理髮所에서 銃傷을 입고 숨진 채 發見됐다. 國防部 調査本部는 2007年 6月 4日 他殺이 아닌 自殺로 結論을 내렸다.
[3]
[4]
자이툰部隊는
쿠르드人
들에게 敷地와 大部分의 建設 裝備 等을 넘겨주고 2008年 12月 20日에
쿠르드 自治區
아르빌
에서 撤收하였다.
[2]
組織 構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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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期에는 師團 司令部와 司令部 直轄隊,
建設工兵團 "서희"
(2003年 4月 15日 創設)
[5]
와
醫療支援團 "제마"
[6]
, 그리고 各各
特戰司
人員이 主軸인 2個 民事(또는 再建 支援)大隊와 各
特攻隊
에서 差出된 隊員들로 構成된 1個 警備大隊, 그리고 裝甲車 中隊가 編成된 第11民事旅團(111, 112再建支援大隊)과 第12民事旅團(121, 122再建支援大隊)으로 構成되었다.
海兵隊
에서 專屬된 1個 海兵中隊가 國內 海兵隊 派兵輿論을 考慮하여 追加 編成되었으며, 重大임에도 아르빌과 바그다드 2個所에서 任務를 遂行하였으며, 바그다드의 州이라크 韓國 大使館의 經費와 가장 危險한 곳中 하나인 師團 衛兵所 警戒, 師團 本部 및 師團 觀測所 運用 任務를 遂行하였다. 以後 師團의 警戒 體系가 定立된 後 衛兵所를 民事旅團에 引繼한 後, 現地人 診療를 實施하는 義務大隊를 防護하였다. 師團의 總 規模는 約 3,800餘名이었다.
[7]
[8]
2007年 12月 28日,
國軍部隊의 이라크 派遣 延長 및 任務終結計劃 同意案
에 따라 1年 더 派兵이 延長되면서 司令部 部署인 民事妻家 민사협組本部로, 再建支援大隊에 警備大隊가 統合되었다. 兵力 減縮에 依해 650餘名으로 줄어들었으나, 獨自的인 活動을 維持하기 위해 繼續해서 所長 階級의 指揮官의 指揮를 받았다.
[9]
第58航空輸送團 "다이만"
에서 자이툰部隊에 郡守 및 兵力을 空輸하여 支援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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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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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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