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석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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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公主 (瑤石公主)는 태종무열왕 (太宗武烈王)과 洑喜否認(寶姬夫人)의 딸로 김흠운 (金歆運)과 元曉 (元曉)의 아내이자 薛聰 (薛聰)의 어머니이다.

生涯 [ 編輯 ]

三國史記 花郞世紀 에서는 元曉와 만나기 前에 김흠운 (金歆運)에게 媤집 갔으나 김흠운 655年 百濟의 조천성(助川城, 現在의 沃川 )을 攻掠하다 戰死하여 일찍 寡婦가 되었으며 所生으로 두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 中 둘째 딸이 自身의 누이이자 新羅 30代 國王인 김법민 (金法敏)의 큰 아들인 昭明太子 와 婚姻하였으나 昭明太子 가 일찍 死亡하여 媤同生인 정명태子 (政明太子)와 再婚하였으며 그 後 정명태子 는 後날 31代 國王인 신문왕 이며 그女는 신문왕 의 비인 신목왕후 (神穆王后)이다.

舌禍 [ 編輯 ]

元曉는 40歲 前後에 요석公主를 만났다. 正確한 時期를 알 수는 없으나 '太宗이 元曉가 길거리에서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는 事實에 依해 요석公主의 男便 김흠운이 戰死한 以後 太宗武烈王의 執權期인 655年에서 660年 사이에 있었던 일로 推測된다. 스님이 어느 날 갑자기 거리에서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 주겠는가? 내가 하늘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때 太宗이 이 노래를 듣고 "이 스님은 畢竟 貴婦人을 얻어서 貴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賢人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때 요석궁에 寡婦 公主가 있었는데 王이 窮理에게 命하여 元曉를 찾아 데려가라 했다. 元曉는 窮理를 보자마자 일부러 물에 빠져서 옷을 적셨다. 窮理가 元曉를 宮에 데리고 가 옷을 말리고 그 곳에 쉬게 했다. 그 後에 公主가 胎氣가 있더니 薛聰을 낳았다. [1]

家計도 [ 編輯 ]

先代 [ 編輯 ]

男便과 後孫 [ 編輯 ]

  • 男便 : 김흠운 (金歆運, ? ~ 655年 ) - 小版(蘇判) 김달복(金達福)의 아들. 百濟와 戰鬪에서 戰死하였다.
  • 男便 : 元曉 (元曉, 617年 ~ 686年) - 新羅의 高僧, 說담날의 아들이며 설원랑 의 曾孫이다.

요석公主가 登場한 作品 [ 編輯 ]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