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묵
(梁正默,
1875年
~ ?)은
大韓帝國
時期에
一進會
會員으로,
日帝强占期
當時에
滿洲
地域에서
滿洲보민회
會員으로 活動했던 人物로, 본적은
全羅南道
이며 全羅南道 木浦 出身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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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年
前後에
一進會
木浦 地域 幹部를 歷任했으며,
1919年
에는
侍天敎
布德師로 任命되었다. 1919年 10月 11日에는
이동휘
大韓民國 臨時 政府
國務總理의 命令을 받은 同僚들과 함께 獨立 運動 資金으로 活用한다며
京城府
鍾路通 6정목 260番地에 位置한 안우준(安祐濬)의 邸宅에 있던 地下室에서 中國 紙幣를 僞造한 嫌疑로 안우준(安祐濬), 鄭泰榮(鄭泰英), 조내헌(趙乃憲), 박행원(朴幸源), 이回로(李曾魯), 崔瑩의(崔榮儀), 金碩基(金錫基)와 함께
京城府
鍾路警察署에 依해 逮捕되기도 했다.
[1]
1920年
부터 1921年까지
濟愚敎
(濟愚敎) 本部 北滿洲 總支部令에서 勤務했고, 1920年 1月 萬주보민株式會社(滿洲保民株式會社) 發起人과 株主로 參與했다.
1921年
3月 前後에
滿洲보민회
總本部 副會長으로 任命되었으며, 같은 해 4月
濟愚敎
신도사로 任命되었다. 滿洲보민회 總本部 副會長 在職 時節 滿洲보민회 勢力을 間島 地域으로 擴張하는 데에 積極 協力했으며, 特히 間島 地域에서 活動하던 日帝의 抗日 勢力 彈壓에 積極 加擔했다.
1924年
日本 政府로부터 滿洲보민회 解散分配金 187원 50錢을 받았고,
1926年
2月에는 濟愚敎 浮橋令으로 任命되었다.
1938年
11月부터
1940年
4月까지 옛 一進會 出身 人士들이 結成한 親日 團體인 帶同一進會(大東一進會)에서 相談役, 社會部長을 歷任했다. 光復 以後인
1949年
에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에 逮捕되었다. 1949年 6月 22日 서울地方法院에서 열린 特別裁判部 結審 公判에서 檢事로부터 懲役 2年을 求刑받았지만 裁判長으로부터 無罪를 宣告받았으며 그 뒤의 行跡은 남아 있지 않다.
事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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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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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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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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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2009). 〈양정묵〉.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 報告書 Ⅳ-9》. 서울. 768~7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