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지
(梁誠之,
1415年
~
1482年
)는
朝鮮
前期의 文臣, 學者, 作家이다.
歷史學
·
地理學
에 밝았다. 本貫은
南原
. 字는 순부(純夫) 號는 눌재(訥齋)·送波(松坡), 諡號는 문양(文襄). 世宗부터 成宗까지 6名의 王을 섬기며, 官職은 崇政大夫 行
李朝
板書
兼 判義禁府事에 이르렀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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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歲에 學問을 始作하여 9歲에는 글을 지었다고 한다. 司馬試에 及第한 後 다시
世宗
23年 科擧에 及第,
勳舊派
의 重鎭으로 世宗의 寵愛를 받았고, 《
高麗史
》 改撰(改撰)에 參與하였으며,
斷種
1年에는 《조선도度》(朝鮮都圖) 《八道角度》(八道各圖)를 作成, 다음 해 《皇極治平도》(皇極治平圖)를 編纂,
1455年
(世祖 1年)에는 《
八道地理志
》를 編纂,
1463年
에는 《東國地圖》(東國地圖)를 撰進하였다.
그는 書籍의 保存·刊行에 힘써 10條의 上疏를 한 적도 있고, 《世祖實錄》 《睿宗實錄》 編纂에도 參與하였고,
1471年
成宗
의 卽位를 도운 功勞로, 佐理功臣에 錄勳되었다.
1481年
에는 《
東國輿地勝覽
》編纂에 參與하였다. 그는
1481年
書籍의 人間(印刊)·首長(收藏)에 對해 12條의 建議文을 올리기도 하였다.
事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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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浦의 大砲서원, 수안社 等에 祭享되었다. 後에
壬辰倭亂
때의 將軍
元均
은 그의 外4代孫이다.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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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量石絨(梁碩隆)
- 아버지: 양구주(梁九疇)
- 어머니: 권담(權湛)의 딸
- 否認: 변상근(邊尙覲)의 딸
- 長男: 兩院(梁瑗)
- 次男: 羊水(梁琇)
- 三南: 糧饌(梁瓚)
- 三南: 良好(梁琥)
- 孫子: 陽結(梁潔)
- 孫子: 量활(梁活)
- 孫子: 양연(梁淵)
- 孫子: 양윤근(梁允謹)
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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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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